소설리스트

A.I 닥터-264화 (264/1,303)

264화 소아도 잘해? (5)

이기자 교수는 잠시 상념에 젖어 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 아직 환자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말 하는 게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들어 보니 타당해 보여. 뭐, 뇌수막염에서도 2주간 발열이 유지되는 경우에는 MRI로 확인해 봐야 하는 것이 있기도 하고 말이야.”

수혁은 아마도 이기자 교수가 말하는 게 달팽이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에 이르러서야 아주 드문 일이지만.

예전에만 해도 열난 이후 귀를 먹었다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 않았던가.

아직 달팽이관이 성숙되지 못한 상황에서 고열에 노출이 되면 석회화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전농이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는데, 더 큰 문제는 그런 식으로 전농이 된 경우에는 인공 와우 수술도 어렵다는 데에 있었다.

너무 딱딱해지면 전선 넣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확실히 교수가 다르긴 다르군요.]

이기자 교수의 말 덕분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 바루다가 중얼거렸다.

수혁 또한 십분 공감하고 있었기에 별다른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따름이었다.

“네, 교수님.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근전도 검사도 해 보지. 방금 말한 대로……. 신체 검진에서 근육의 톤은 이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검사를 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거기서 정상이 나오면 더욱더 강력하게 소뇌 병변을 의심할 수 있지.”

“아…….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냐, 우리 과 환잔데 단순 지인이라는 이유로 와서 봐주는 게 고맙지. 여기 환자 진료 끝나면 갈 테니까……. 여건 되면 좀 더 있어 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MRI 결과 볼 때까지는 있겠습니다.”

“좋아.”

이기자 교수는 시원스레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지 애비보다 싹싹하네. 얼굴도 훨씬 낫고……. 애초에 아들은 맞는 거야?’

수혁에 대한 평가를 지속해 나가면서였다.

아무리 봐도 이현종보다는 여러 면에서 나아 보였다.

물론 이현종도 세기의 천재라는 평을 받는 의사이긴 하지만.

많이 모자란 사람이기도 하지 않던가.

특히 최근 보인 행보 전까지만 해도 대인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바보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돌았더랬다.

그에 비하면 이수혁은 약은 편이었다.

‘얘 분명 내가 자기한테 호감이 있다는 걸 알고 밑밥 깐 거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지인 드립 쳐 가면서 전화를 걸겠는가.

미리 준비한 게 아니라고 하기에는 노티도 지나치게 잘했다.

그게 임기응변이라고 한다면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괴물이라고 불러야 마땅했다.

‘그건 그렇고……. 급성 소뇌염이라?’

워낙에 드문 질환이었다.

보통 보게 되면 케이스 리포트로 직행하는 그런 질환이라고 보면 되었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건데, 그렇다고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도 된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특히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아주 그럴싸한 논거가 있었으니까.

‘어떡하지……. 이번에 맞으면 진짜 소개해 줄 마음이 들 거 같은데…….’

이기자 교수가 조금 종류가 다른 고민에 빠진 사이, 수혁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MRI실에서 환자를 불러 준 까닭이었다.

원장 아들이라는 백으로 된 건 아니고 단순히 운이 좋았다.

원래 지금 찍으려던 환자가 급한 용무로 펑크를 낸 것.

“선생님, 그럼 찍고 오겠습니다.”

“네, 보호자분. 사진 나오는 대로 설명 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보호자는 그저 검사하러 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제 다 나았구나 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치료받던 내내 속 시원한 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저 뇌수막염인 거 같은데 약이 좀 안 듣는 거 같다는 말이나, 혹은 예후가 좀 안 좋을 수도 있겠다 같은 답답하면서도 무서운 말만 들었더랬다.

근데 딱 태화에 오자마자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다른 진단명 가능성을 들었을뿐더러 바로 검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무엇보다 수혁을 TV에서, 그것도 예능이 아닌 뉴스에서 봤다는 것이 주효했다.

[이거 주기적으로 TV에 얼굴 좀 비추긴 해야겠는데요?]

‘TV가 뭐 나가고 싶다고 막 나갈 수 있는 곳이냐?’

[원장님이 밀어주면 안 될 것도 없죠.]

‘아냐……. 보통 TV는 안 좋은 일로 나가는 곳이야…….’

수혁은 뉴스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앵커나 기자들이야 노상 나오는 사람들이니 관계없지만.

원래 잘 나오지 않는 직군이 뉴스에 나왔다?

거의 100% 얼굴을 가리기 마련이었다.

때론 뻔뻔한 사람들도 있어 오히려 기자에게 면박을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나쁜 일 아니겠는가.

[나 모르게 나쁜 짓 한 거 있습니까? 이상하네? 기억을 더듬어 봤을 때, 쪽팔린 짓을 한 적은 많아도 범법자는 아니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리고 내가 뭘 쪽팔린 짓을 많이 했어?’

[열거할까요? 버스 타고 가다가 배가 아파 고속도로 중간에 내려 야산에 가서…….]

‘그만, 그만!’

세상에.

10년도 넘은 일을 꺼낼 줄이야.

정말 어렵게 잊었던 일이라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엄밀히 말하면 고속도로 중간에 내리는 게 불법이죠. 그거 때문에 버스도 갓길에 서야 했고. 그게 그렇게 참기 어려웠습니까?]

‘인마……. 너는 몰라, 그 고통.’

[고통이라…….]

‘으아아. 뭐야 이 미친놈이?’

[그렇군요. 이건 확실히 고통이라 부를 만하겠습니다.]

‘하, 시발. 진짜 싸는 줄 알았네. 이런 게 가능하다고?’

[기억을 불러오는 것뿐이죠. 근데 몸이 반응할 줄은 몰랐네요.]

바루다는 뭔가 아주 좋은 무기라도 주운 것처럼 히죽 웃었다.

기계가 어찌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나 싶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모든 인간적인 행동의 기반은 수혁에게 있다는 소리나 할 게 뻔하지 않은가.

그게 기분 나쁘다고 하는 건 제 얼굴에 침 뱉기 뿐이 되지 않겠는가.

해서 닥치고 있으려니 곧 영상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휴. 겨우 안정됐네.’

[저도 싸는 줄 알고 긴장했습니다. 그랬다간 아무래도 이 병원에 뿌리내리긴 어려울 테니까요.]

‘그걸 알면 인마! 그런 짓은 하지 말라고!’

[알겠습니다.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하지 말고 명심해.’

[말장난 같지만 유일한 입출력자인 수혁이 원한다면 그렇게 말씀 드리죠, 네. 명심합니다.]

‘후.’

어째 놀리는 듯한 대화가 한바탕 지나간 후에야 수혁은 모니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딱히 시간 낭비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사진이 넘어오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니까.

‘그래도 아이가 어떻게 잘 견디는 모양이네.’

사진을 보니 균일한 것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MRI라는 게 CT처럼 방사선을 쐬는 게 아니라지만, 실제로 찍어 보면 훨씬 불편하고 또 오래 걸리는 검사 아닌가.

노이즈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재웠겠죠, 상식적으로. 내려갈 때도 이미 자고 있었고.]

‘아, 그런가. 아무튼……. 음……. T1에서는 잘 모르겠네.’

[그렇군요. 아무래도 수혁이 영상의학과적인 정보를 많이 접하지 않다 보니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공부하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생각보다 수혁의 뇌 용량이 적다는 걸 확인했거든요.]

‘음.’

공부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웃어야 할지 아니면 뇌용량이 적다는 말에 울어야 할지 모르겠는 대목이었다.

잠시 그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이미지는 어느새 T2로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는 아까와는 달리 이상한 점을 확연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측…… 아니네. 좌측에도 소뇌 피질에 고강도 음영이 있어.’

[양측 병변이었군요? 우측으로 쏠리길래 그쪽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럼 감염이 아니라……. 뭔가 다른 원인일 수도 있겠는데?’

[다른 원인이라면 이 나이 때 가장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예방 접종이겠습니다. 과민한 반응을 보일 경우 극히 드물게 소뇌염을 일으킨다는 증례 보고가 있군요.]

‘내 생각에도 그런 거 같아. 물어는 봐야겠지만, 아무래도 나이 고려하면 그렇지.’

[그럼 치료에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추가해야겠군요.]

대뇌는 완전히 깨끗했다.

그 말은 곧 뇌수막염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예상이 완전히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아, 영상 떴구나.”

마침 이기자 교수가 수혁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낮은 굽이라도 구두를 신고 있어 그런가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얼굴을 아예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알고 있어서 그런가 저런 소리마저도 어쩐지 이기자 교수의 캐릭터를 나타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때?”

이기자 교수는 본인이 직접 영상을 확인하는 대신 수혁을 향해 물었다.

팔짱을 낀 채, 책상에 몸을 기대고서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멋들어지는지, 적어도 내과에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과 교수들이 사람은 좋은데 멋있는 사람은 거의 없죠. 장강명 교수가 그나마 세련됐지만 이기자 교수에는 미치지 못하는 거 같습니다.]

‘영상도 이하언 교수님이나 김진실 교수님은 멋지던데, 왜 내과는 이렇지?’

[누구보다 본인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수혁.]

‘하.’

내과에는 그래도 내가 있어 괜찮나? 등의 얘기를 꺼내려다가 그야말로 본전도 못 건진 수혁은 애써 정신을 차린 후 입을 열었다.

“네, 환자 T2W1 이미지를 보시면……. 대외에는 전혀 병변이 없습니다.”

“그렇네. 깨끗하네. 확실히 뇌수막염은 아냐.”

“반면에 소뇌는 보시면……. 양측에 고강도 음영이 보입니다.”

“아까는 우측이라고 하지 않았나?”

“강도 차이가 있기는 한데……. 영상에서 양측으로 보인다면 이것을 더 신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환자는 양측 급성 소뇌염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방금 근전도 결과는 사실 보고 왔어. 정상이야. 그렇다면 이수혁 선생 주장이 맞다고 봐야겠지.”

이기자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그럼 치료는 어찌해야 할까?”

감탄하는 기색 대신 여전히 평가하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모두가 우쭈쭈 하거나 심지어 헹가래 치는 분위기의 내과에 있던 수혁으로서는 다소 어색한 분위기였다.

[제가 판단할 때는 이게 정상입니다. 내과 교수들은 좀 이상해요.]

다만 바루다는 늘 객관적인 시선으로 수혁을 바라보았기에, 그의 도움을 받자 극복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았다.

“네, 양측이기에 감염보다는 다른 원인, 가령 예방 주사로 인한 과민 반응이 더 의심이 됩니다. 따라서 고용량 스테로이드를 추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여전히 감염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니 항생제 치료와 면역글로불린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음.”

이기자 교수는 한 번 더 수혁의 처방을 곱씹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감탄이 나왔다.

그러다 뒤에 대기하고 있던 소아과 레지던트를 봤는데, 웬 오징어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단하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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