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67화 (267/1,303)

267화 이현종이? (2)

신현태나 이수혁이나 둘 다 똑똑한 사람들 아니던가.

이현종 앞에서는 전혀 티를 내지 않고, 늦은 시간에 다시 접선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수혁은 신현태 파트를 돌고 있었으니까.

똑똑.

물론 최소한의 주의는 기울였다.

늘 그렇듯 신현태 방에서 만나게 되면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현종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아니, 아마 100%라고 써도 무방할 터였다.

이현종은 집 가기 전 반드시 한 번은 거기 들렀다 가는 사람이니까.

비어 있으면 그냥 집에 가고, 아니면 노닥거리는 게 그의 일상이었다.

또도독.

해서 신현태는 어느 당직실의 낡은 나무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본관 당직실인데, 이제는 다들 새로 시어진 별관이나 암센터 당직실로 터를 옮긴 지 오래라 대부분 비어 있었다.

“암호.”

“이기자.”

“네, 들어오세요.”

그럼에도 불안했는지 둘은 암구호까지 정했고, 그걸 확인하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그래야지. 현종이 형이 보통 사람이냐. 눈치가 귀신인데. 어쩌면 다 알아차렸을 수도 있어.”

“에이……. 뭐 진단하는 거면 몰라도, 이런 건 모르실걸요.”

“하긴 그런가? 아무튼, 먹으면서 얘기하자. 도시락 사 왔어.”

“아, 네. 감사합니다.”

도시락은 제육과 불고기였는데 무엇 하나 싫고 좋고가 없는 반찬이라 둘은 섞어 먹기 시작했다.

“환자는 다 괜찮습니다. 어제 불명열로 입원했던 환자는 사랑니 있는 쪽이 곪았던 거라, 치과 협진 냈습니다.”

모인 거야 이현종의 짝사랑을 위해서였지만.

그렇다고 입원해 있는 환자를 그냥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당연히 노티가 먼저 이어졌다.

“아, 그래? 어쩐지 얼굴 쪽으로 재면 열이 더 높게 나오더라니.”

“네, 그게 이상해서 샅샅이 살폈는데 거기서 잡혔습니다.”

“잘했어. 이거 계속 너랑 돌면 편하긴 할 텐데 감 떨어지겠어. 하도 잘 보니까, 하하.”

“아닙니다. 저야 뭐…….”

“그건 그렇고, 그……. 이비인후과 쪽 협진 환자는 어때? 외이도염.”

“아……. 그 환자요.”

노상 쉬운 환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감염 내과는 특히 협진 환자를 많이 보는 과 아니던가.

그러다 보니 다른 분과에서는 전혀 볼 기회가 없는 질환도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지금 신현태가 말한 이비인후과 환자가 그랬다.

[악성 외이도염 환자 말하는 거겠죠?]

‘응, 당뇨가 심해서……. 이루에서 나간 배양 검사 결과는 안 나왔지만 아마 슈도모나스겠지.’

외이도염이라고 하면 뭔가 가벼워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대부분 그렇기도 했고.

하지만 환자의 면역 상태에 따라서는 매우 치명적인 질환이 되기도 했다.

특히 당뇨 환자에서는 독이 되었는데, 아예 질환명에 ‘악성’을 붙이기도 했다.

“항생제 반코 지시했던데……. 아직 배양 결과를 본 건 아니지?”

“아, 네. 근데 이미 이전에 있던 병원에서 세프트리악손을 쓰고 온 거라서요.”

“경과는 어땠는데?”

신현태의 말에 수혁은 가만히 환자 얼굴을 떠올렸다.

누가 봐도 쇠약해 보이는 그런 얼굴이었다.

살이 많이 빠져서 볼에 주름이 깊게 패여 버린 얼굴.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보고 경과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건 보호자와 같은 일반인의 시점에서 기인하는 말 아니겠는가.

“환측의 10번 뇌신경이 마비되었습니다.”

“10번? 미주신경(Vagus nerve)?”

“네.”

“그럼 앓은 지 좀 되었겠는데?”

외이도란 귓구멍에서부터 고막에 이르는 길을 말했다.

한 번이라도 귀를 파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상당히 깊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서 조금만 위로 가면.

그러니까 외이도를 이루고 있는 얇은 뼈를 지나쳐 가면 바로 뇌였다.

문제는 외이도염 중 악성 외이도염의 경우 뼈를 잘 녹이고 쳐들어간다는 것에 있었다.

그 근처에 뇌신경들이 몰려 있어 염증이 번지면 마비 증세를 일으킬 수 있었다.

“네, 시간이……. 이전 병원에서만 거의 3주 이상 입원해 있었습니다.”

“3주? 환자 증상이 심해졌을 텐데 그냥 두고 봤나?”

“통증이 점점 심해졌다고 하는데 진통제 강도 올리면서……. 항생제는 그냥 그대로 유지했다고 합니다.”

“아이고…….”

늘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감염 질환에서 통증은 질환 경과를 유추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서였다.

물론 외이도염에는 그 외에도 다른 단서들이 있기는 했다.

“거기 이비인후과는 있어?”

“없죠.”

“그럼 뇌신경 검사도 하나도 못 했겠네?”

“그렇죠. 기록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기 전원 와서 시행한 게 다입니다.”

“음.”

수혁은 신현태의 신음 속에서 환자 기록을 떠올렸다.

어렵지는 않았다.

아예 바루다가 동영상처럼 재생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후두 내시경 소견이었는데, 환자의 외이도염이 있는 좌측의 성대는 움직이지 않고 외측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일이지만, 이제 그것 때문에도 큰일이 날 수 있었다.

“오자마자 시행한 후두 내시경상 환자 좌측 성대가 외측으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흡인성 폐렴 가능성이 있어서 지금 엘 튜브로 식사 중이에요.”

“엑스레이는 괜찮고? 그 정도면 이미……. 원래 병원에서도 문제 있었을 거 같은데.”

“양측 폐 하엽에 음영이 증가되어 있어요. 아마 폐렴도 동반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거 이비인후과에서 단독으로 볼 수 있나……?”

이비인후과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기보다는 배려하는 발언이라고 보면 되었다.

사람들이 흔히 이비인후과라고 하면 내과 계열 아닌가 하겠지만, 사실은 그냥 외과였다.

하루 종일 수술만 하는 외과 계열 과.

그렇다 보니 낮에는 아무래도 병동에 사람도 없었다.

거의 다 수술방에 들어가 있었으니.

게다가 폐렴은 애초에 보지도 않았고.

“그래서 일단 호흡기랑 저희가 좀 같이 보기로 했어요. 전과 받기는 좀 그런 게……. 외이도염에 대한 직접적인 소독을 지금 일 3회 시행하고 있어서……. 이비인후과 병동 말고는 봐줄 수 있는 곳이 없어요.”

“일 3회? 레지던트가 시간이 된대?”

“주치의가 일단 수술방 왔다 갔다 하고 뭐……. 정 안 되면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대단하네…….”

“우리 병원 이비인후과가 전국 최고인 게 우연은 아니죠.”

워낙에 교수진이 좋다 보니 분위기도 좋았고, 자연히 우수한 레지던트들이 지원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수혁이는 내과지.’

신현태는 이상한 결론을 낸 후, 재차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건 뭐 지지부진한 싸움이 되겠네. 항생제 조절 잘 고민해서 써 보도록 하자고.”

“네, 교수님.”

“그건 그렇고……. 현종이 형 말야. 어떻게 할 거야? 진짜 다리 놔 봐?”

“식사 자리하게 된 마당에 한번 얘기는 꺼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다 잘 안 되면 현종이 형 개쪽인데…….”

이현종의 명성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것이지 않은가.

최근 수혁이 아들이라고 하면서 조금 퇴색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원래도 이현종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인간들이었다.

여전히 대다수의 내과 의사들은 이현종이야말로 불세출의 천재라고 믿고 있었다.

근데 소아과 교수한테, 그것도 예순 넘어서 들이댔다가 차여?

“어휴.”

상상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럼 어쩌죠?”

“일단……. 저녁 식사에 같이 가긴 하자. 그리고 좀 친해진 다음에 간을 보자고. 이거 서두르다가 안 되면 진짜……. 야, 현종이 형 안 돼. 큰일 난다.”

“음……. 하긴 그것도 그래요. 원장님이신데, 명예를 지켜 드려야죠.”

“그래. 일단은 그냥 친해지는 걸 일차 목표로 둬.”

“네, 그렇게 할게요.”

결국, 둘의 밀회는 도시락 하나 까먹고 환자 얘기하는 것으로 끝이 나고야 말았다.

소득이라고는 그저 이기자 교수의 초대에 둘이 같이 응하자 정도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거 하나만은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그 환자 좀 좋아졌다고?”

“아……. 네. 반코도 안 들어서 이미페넴으로 넘어갔는데, 그건 다행히 잘 듣고 있습니다. 일단 성대 마비가 돌아와서 이제 입으로 식사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당 조절은?”

“내분비 내과 측에서 진짜 타이트 하게 보고 있어요. 150 이하로.”

“150? 이야……. 그럼 거의 펠로우 한 명 전담으로 붙은 수준인데?”

“네. 뭐 이비인후과 쪽에서도 진짜 최선을 다해서 보고 있다 보니까……. 김성원 교수님도 감동했는지 당 조절은 맡겨 달라고 하셨나 봐요. 알고 보니까, 이전 병원에서는 당도 뭐 개판으로 봐 가지고. 당화혈색소(HbA1c)가 12인가 그랬더라고요.”

“아예 조절을 안 했구만…….”

당뇨가 기저에 있는 감염 환자를 보면서 당 조절도 안 할 줄이야.

나중에 시간 나면 그 병원 어딘지 찾아가서 얼굴이나 좀 볼까 싶기도 한 순간이었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다수의 열심히 하는 의사들이 욕 먹지…….’

부디 태화 출신은 아니길 기도하고 있으려니, 병원 로비 중앙 쪽으로 또각 소리가 들려왔다.

이기자 교수였다.

레지던트 하나만 달랑 데리고서였는데, 당연히 이번에 봤던 환자 주치의였다.

“어, 그쪽도 둘이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신 과장. 너무 그렇게 높이지 마요. 원장님한테는 형이라고 한다면서. 나한테는 누나라고 해도 돼.”

“아유, 아뇨……. 그건 진짜 사석에서만…….”

“오늘 같은 자리도 사석이지. 불편하면 말고.”

“네네. 죄송합니다.”

높은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신현태 아니던가.

오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저 사람이 뭘 하기는 텄네요.]

‘왜 저러실까? 사실 백도 든든하고, 실력도 좋은 분이.’

[소심해서 그렇죠. 그래도 착하잖아요.]

‘그건 그래. 정말 착하지.’

그 말은 곧 수혁이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딱히 이 상황이 절망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있었으니까.

이미 1, 2년 차 때부터 어려운 자리 뻔질나게 나다닌 몸 아닌가.

해서 수혁은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이기자 교수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중식 좋아하나? 코스 잘하는 집 있어서 거기로 예약했는데.”

“예, 좋아합니다. 코스는 특히 좋아합니다.”

“잘됐네. 성격이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아.”

이기자 교수는 껄껄 웃으며 미리 불러 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수혁, 신현태 그리고 레지던트는 뒷자리에 주르륵 붙어 앉았다.

신현태가 소심한 것에 비해 덩치가 좀 있었기에 좁은 느낌도 들었지만, 다행히 중국집은 그리 멀지 않았다.

애초에 태화 의료원의 위치상 강남 번화가가 코 앞이라 그런 것도 있었다.

도착한 곳은 의외로 조금 허름한 느낌의 중국집이었다.

이기자 교수는 뒤도 안 돌아본 주제에 수혁과 신현태의 불안을 읽었는지 부연 설명을 해 댔다.

“주방장이 내공이 있어. 어지간한 호텔보다는 여기가 나아.”

“아, 진짜 맛집이군요.”

“그런 셈이지.”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고 나니, 종업원 하나가 메뉴판을 들고 들어왔다.

순간 메뉴판이 아니라 얼굴로 시선이 갈 정도로 인상적인 외모의 주인공이었다.

[수혁, 입 좀 다무세요. 왜 이현종 큐피드가 되려고 온 집에서 본인이 사랑에 빠집니까?]

‘사, 사랑에 빠지긴 누가.’

[지금 그랬는데. 그 버릇 고치셔야 합니다. 무슨 놈의 사랑에 1초 만에 빠져.]

‘아니거든? 진짜 아니거든?’

수혁이 허둥지둥하는 동안 이기자는 주문을 마쳤다.

그리곤 수혁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수혁이 자신을 마주할 때까지였다.

“네, 교수님?”

그렇게 수혁이 입을 열자, 이기자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방금 알바생 이쁘지?”

“네? 아니, 네?”

“내 딸이야. 1년 쉬고 외국 여행 가고 싶다고 해서 네 돈으로 가라고 했더니 바로 알바 하더라고.”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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