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70화 (270/1,303)

270화 두바이 (2)

[이게 일등석이군. 음.]

바루다는 무려 한국 항공 일등석에 앉은 참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대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인데, 그건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까 타고 온 버스 좌석 정도 아냐?’

애초에 비행기를 타 본 경험이라고는 전에 미국 갔다 올 때가 다 아니었던가.

이코노미석에 비하면야 굉장히 넓었지만.

그렇다고 앉아 본 좌석 중에 제일 좋은 건 또 아니었다.

“불편하진 않아요?”

김다현 이사 아니, 사장은 그런 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편할 리가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였다.

마침 딱 불편하지 않은 정도라 느끼고 있던 수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뭐……. 이 정도면 오래 가도 무리 없을 거 같습니다. 이코노미도 탔었는데요, 뭐.”

“음, 그렇군요.”

일등석임에도 담담한 반응.

만약 김다현 사장이 수혁이 그저 이현종 원장의 아들이라고만 알고 있었다면 그런 갑다 할 수도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김다현은 수혁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굳이 공표할 이유가 없어 입 밖에 내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천성이 대범한 건가? 마음에 드는데.’

사업하는 사람은 이런 면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특히 김다현 본인이 그런 편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았다면 감히 태화 바이오 사장 자리를 넘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뭐 그래도 개인 TV가 있는 건 좋군요. 의학 다큐멘터리 같은 건 없나? 가는 길에 뭐라도 좀 더 배워야 할 텐데?]

‘야……. 어떤 미친놈이 비행기에 의학 다큐멘터리를 깔아 놔.’

[수혁은 가만 보면 본인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없군요? 의학이라는 게 얼마나 신묘하고 재미난 학문인데 그걸 무시하다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김다현이 자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는 수혁은 그저 TV 조작 기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 항공이 그래도 꽤 기내 콘텐츠에 신경을 쓰는 편이어서 양이 많았다.

뭐가 있나 두리번거리는 재미가 있다 이 말인데, 그사이 기장이 일등석 고객들에게 인사를 돌기 시작했다.

원래도 일등석 고객들에게 인사하는 건 기장의 루틴 업무지만 오늘은 유독 긴장되는 날이었다.

‘싹 다 태화 계열 이사진이라 이거지?’

그중에는 김다현이라는 거물도 끼어 있었다.

어느 정도의 거물인 고 하니 한국 항공 부사장에게 직접 당부의 인사가 왔을 지경이었다.

가장 큰 고객사 중 하나이니만큼 잘하라고.

운전도 잘하고, 접객도 잘하라고.

‘이거야 원…….’

부담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기장 짬밥이 상당하다 보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당당히 끼어 있는, 원래는 태화 생명 이사 자리였는데 교체되어 들어왔다는 어린 친구를 보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이 사람은 뭐지?’

자세한 언급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예약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으니, 제일 좋은 자리 중 하나로 교체해 달라는 요청만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이런 일이 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태화 생명 상무 이사면 그래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인데 갑자기 비즈니스로 밀려날 줄이야.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 꿰어 차고 앉은 게 이렇게 새파랗게 어린 친구일 줄이야.

게다가 아까 보니 김다현이, 명실상부 이 자리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먼저 인사를 걸지 않았던가.

‘이 씨지?’

그래, 이름이 이수혁이었더랬다.

공교롭게도 태화 로열패밀리 또한 이 씨고.

‘설마…….’

이유원 회장도 그렇고 그 윗대인 이장복 전 회장도 그렇고 다들 도덕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모르는 핏줄이 있나?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기장은 유독 공손하게 이수혁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이수혁 님. 저는 고객님을 두바이 공항까지 안전하게 모실 김치성 기장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아, 네. 그……. 네, 감사합니다.”

수혁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일등석에서는 이렇게 인사한다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던가.

해서 마주 고개를 숙였는데, 그게 또 좋은 인상을 주었다.

‘소탈하시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말야.’

기장은 제멋대로 역시 태화는 재벌치고 예의가 바르다는 판단을 하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곤 나머지 고객들에게 인사를 올리고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안전하게 두바이로 향했다.

[의학 드라마 같은 거 보면 꼭 이런 데서 한 명쯤 가슴 부여잡고 쓰러지던데?]

바루다는 미국 가던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기내 응급 상황을 기대했지만.

“자, 이제 우리 비행기 두바이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꼭 안전벨트를 풀지 말아 주시시 바랍니다.”

비행기가 내려앉을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네.]

‘이런 거로 아쉬워하는 건 진짜 너뿐일걸.’

[왜요, 좋잖아요. 두바이로 가는 길에 환자 발생했는데 그걸 레지던트가 치료했다. 뉴스 나오지.]

‘나한테까지 기회가 올 거 같냐? 여기 의사가 몇이나 타고 있는데.’

[아, 하긴……. 엄청 많구나.]

수혁의 말이 있고 나서야 바루다는 이게 태화 의료원 주체가 되는 비행이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지금 이 비행기에 타고 있는 교수만 20명이 넘고, 펠로우까지 치면 40에 숙련된 파트장급 간호사들도 수두룩 빽빽이라는 걸 헤아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각 분야에 대해 처치하는 건 그쪽이 훨씬 나아 보였다.

아쉬운 얘기지만 수혁은 진단하고 약 쓰는 분야, 즉 입 터는 분야에 강하지 몸 쓰는 분야에는 형편없이 약했으니까.

‘마지막 말을 꼭 입 밖에 내야 했냐?’

[아, 제가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해해 주시죠. 저랑 수혁 사이에 비밀이 있어야 쓰나요.]

‘이런 건 좀 비밀로 하면 좋겠는데.’

[명심하죠.]

바루다가 절대 명심하지 않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입국 절차가 끝이 났다.

아무래도 두바이 측, 그러니까 아랍에미리트 연방에서도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보니 모든 행정 절차가 일사천리였다.

게다가 태화 측에서는 이미 이쪽에 지사를 내고 인원을 파견하고 있지 않던가.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커다란 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다현 사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김다현은 그 밴들 앞에 놓인 세단에 올랐다.

[사장?]

바루다는 그 짧은 틈새에 김다현에 대한 호칭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사장 아니지 않나?’

[아, 이번에 설마 태화 생명 사장으로 오나?]

‘오……. 그럼 잘된 거 아냐? 내 백이 태화 생명 사장이라니.’

[근데…… 아닌가? 이건 저도 정보가 부족해서 분석이 어렵네요?]

‘뭐가.’

[지금부터의 분석은 수혁의 지식 및 이현종, 신현태 등과의 대화를 토대로 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듣기를 원하십니까?]

수혁은 김다현이 탄 세단 바로 뒤에 놓여 있던 밴에 오른 참이었다.

수혁이야 일등석을 타고 왔으니 별로 피곤함을 몰랐지만.

이코노미를 타고 온 장강명 교수를 비롯한 나머지는 푸근한 좌석에 앉자마자 다들 눈부터 감았다.

나이가 드니 이제 무리해서라도 비즈니스는 끊어야겠다는 둥의 얘기를 해 대면서였다.

덕분에 밴은 아주 조용했고, 수혁은 바루다의 분석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어, 해 봐.’

[알겠습니다. 우선 태화 그룹 내 태화 전자는 핵심 계열사이면서 동시에 상징적인 계열사입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당연히.’

[때문에 태화 전자의 이사진은 태화 그룹의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태화 물산 및 태화 중공업의 사장, 부사장보다 그룹 내 서열이 더 높습니다. 이것도 동의합니까?]

‘응. 그렇지.’

태화 자체가 중공업으로 크다가 전자로 갈아타면서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는 건, 태화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의료원에서는 신입 사원 연수 같은 것이 없기에 그룹 내 역사를 다른 계열사보다는 잘 모르지만.

교수가 되거나 하면 주기적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되기 마련이었다.

수혁은 아직 교수는 아니지만, 교수들이 하고 싸고도는 통에 저절로 알게 된 참이었다.

[그렇다면 김다현 이사 입장에서는 태화 생명 사장으로 오게 된 것은 일종의 좌천입니다.]

‘아……. 그렇네?’

[그런데 김다현 이사는 아주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바루다의 감정 인식 시스템이 아직 완전하진 않으나, 그럼에도 99% 이상 긍정 표시가 되었다는 건 그 웃음이 진심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네.’

[뭐 정보가 부족해 더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뭔가 벌어지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긴…… 진짜 뭔가 벌어지고 있지.’

수혁은 자신 바로 옆에 앉아 자신의 짐을 지키고 있는 수행 비서를 바라보았다.

이런 대우를 받아 본 것은 정말 처음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에 비서라니?

“자……. 호텔입니다. 로다 알 무르즈 호텔 예약하신 분들은 여기서 내리시면 됩니다.”

호강에 겨웠단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밴이 호텔 앞에 멈춰 섰다.

워낙 비싸서 좀 외곽에 있는 곳으로 잡으려 했다가, 이기자 교수가 준 돈 덕에 예약한 바로 그 호텔이었다.

병원과 아주 가깝기 때문에 매일 남들보다 거의 30분 이상 늦게 나올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질 수 있었다.

“앉아 계시면 체크인하겠습니다.”

“아니, 안 그래도 되는…….”

“아닙니다. 제 일입니다.”

“어……. 네.”

수혁은 비서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을 마친 후, 옷만 갈아입고는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날씨가 도저히 그렇게 두질 않았다.

가뜩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는데, 이번에도 비서가 도움을 주었다.

“택시 잡아 두었습니다. 같이 가시죠.”

“오, 감사합니다.”

“일일이 감사 인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아뇨. 어떻게 그래요.”

“편하실 대로 하십쇼.”

그렇게 도착한 병원은 두바이-태화 의료원이란 이름이 붙여진 종합 병원이었다.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에서 온 인원들이라 외관에 압도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충분히 커다란 병원이었다.

[병상이 대강 1200은 되겠네.]

‘그러니까. 엄청 화려하네.’

로비에 모여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현지 직원들이 나와 안내를 시작했다.

주요 대상은 당연히 김다현이었고, 태화 의료원 측에서는 장강명이 맨 앞으로 나섰다.

“로비에서 정면으로 난 길로 가시면 외래 진료실들이 쭉 모여 있습니다. 우측으로는 검사실, 좌측으로는 응급실이 있습니다. 우선 응급실로 가 보실까요?”

“음, 그러죠.”

“네.”

하나는 사장, 하나는 센터장이지 않은가.

당연한 일이었기에 나머지는 군말 없이 둘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응급실의 모습은 한국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확실히 침대 사이 간격이 아주 넓었다.

해서 바루다는 아까의 평가를 고쳐야만 했다.

[병실도 이 지경이면 병상 수 600이겠는데요?]

‘그러게. 여기 땅이 넓나? 사막 말고 인공적으로 만든 곳은 그렇지도 않을 거 같은데……. 오일 머니가 넘쳐서 그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였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환자 하나가 있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환자였는데, 의료진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단순 두통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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