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두바이 (3)
일반적인 두통이 아니다.
세상에 이 말만큼 의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말이 있을까?
순간 뇌경색이나 출혈 등의 질환을 떠올린 수혁이 즉시 바루다가 언급한 환자를 주시했다.
어차피 일행이 워낙에 많은 데다가, 오늘은 정말 투어 느낌의 안내일 뿐이라 잠시 걸음을 멈춘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다만 김다현 사장이 붙여 준 김 비서라는 이만 수혁의 움직임을 눈치챘을 뿐이었다.
물론 그 또한 뭐라 의견을 개진하는 대신 그저 수혁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일반적인 두통이 아니라니? 그 근거는?’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만, 환자가 손을 가져다 댄 부위가 조금 이상합니다.]
‘부위가 이상해?’
수혁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였다.
그만큼 더 눈여겨보았지만, 딱히 눈에 띄는 것은 없어 보였다.
머리가 아픈 환자들이 머리를 만지지 그런 어디를 만진단 말인가.
심지어 환자는 연신 다른 쪽 팔이나 다리를 움직거리고 있었는데, 적어도 운동이 저하되어 보이진 않았다.
그 말은 즉 우리가 두통 환자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뇌경색이나 뇌출혈 가능성은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네, 부위요. 가까이 와서 보니 더더욱 그렇군요.]
하지만 바루다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했다.
녀석은 진중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되어 환자를 보고 있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놈이 혹 장난치는 건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환자를 보는 데 있어서만큼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 놈 아니던가.
수혁의 머릿속에 들어온 이래 상당히 많이 인간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의료 목적 A.I.로 개발되었다는 숭고한 목적 자체는 퇴색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야, 좀 더 자세히 말해 봐. 부위라니? 지금 환자 이마 감싸 쥐고 있는 거 말고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이마 전체를 감싸고 있습니까?]
바루다는 수혁의 질문에 비아냥거리는 대신 또 다른 질문으로 응수했다.
무언가 가르치려고 할 때 바루다가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그만큼 수혁도 익숙한 방법이어서 금세 따라갈 수 있었다.
‘아니. 그건 아니네.’
[그럼 어디를 가리고 있죠?]
‘미간 부위?’
[네, 그렇습니다. 미간 부위를 감싸고 있죠. 손을 뗐다 붙였다 하는데, 그사이에 미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으음.’
확실히 환자는 계속 머리를 누르고만 있지 않았다.
주물주물하다가 손을 뗐다가, 다시 주물주물하다가 뗐다가 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쪽으로 무언가 반복되는 통증이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반복되는 동통이라.
그게 두통을 일으켰다라.
‘박동성 두통이 있나?’
[그렇죠.]
‘그래서?’
확실히 아까보다는 좀 더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환자가 머리가 아픈가 보다에서, 박동성 두통이 있나 보다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박동성 두통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긴장성 두통이었다.
이는 대표적인 양성 질환으로 사람마다 잘 듣는 진통제가 다르긴 하지만, 일단 그것만 찾고 나면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 외에 다른 치료는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어 가며 가까이 갈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환자의 다른 손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손?’
두통에서 다른 손이라?
이건 또 좀 생소한 접근이었다.
하지만 생소하다고 해서 덮어놓고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바루다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진단 툴이었으니까.
‘여기저기 주무르고 있는데. 음.’
환자 본인이 자신의 몸을 주무르는 행위가 시사하는 것은 아주 명확했다.
주무르는 부위가 아프다는 것.
안쪽의 통증을 보다 예민한 피부 쪽의 감각으로 속이기 위함인데, 그걸 알고 한다기보다는 본능적인 행동이라고 보면 되었다.
수많은 민간요법이 여기서 파생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중요한 진단 단서가 될 수 있었다.
‘몸 여기저기가 아픈 모양인데. 그럼 뭐…… 감염인가? 몸살?’
[수혁……. 환자가 정확히 어디를 주무르고 있습니까?]
수혁의 말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바루다는 혀까지 츠츠 찼다.
오로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위한 제스처인가 싶을 정도로 얄밉게 혀를 찼다.
하지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저건 수혁의 습관이기도 하니까.
해서 수혁은 반론할 거리를 뒤적거리는 대신 다시 한번 환자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상당히 거리가 가까워져 있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병원 투어에 나섰던 인원은 물론이거니와 원래 병원에 있던 의료진들 또한 수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어깨……. 허리…….’
[네, 환자는 어깨와 허리를 중점적으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어떤 질환을 시사합니까?]
어깨와 허리의 통증이라.
이것만으로 무언가를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진단명만으로 A4 용지 한두 장을 채울 수 있을 터였다.
‘이것만으로는 너무 많지.’
[환자는 백인이며 55세 정도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질환을 시사합니까?]
환자의 나이와 인종을 더하게 되면 조금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았다.
‘그래도 너무 많지.’
[환자는 편측 이마의 박동성 두통을 같이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질환을 시사합니까?]
하지만 편측 이마의 박동성 두통과 어깨 및 허리의 통증을 같이 동반하는 질환은 많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장 확신을 가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음.”
해서 수혁은 습관적으로 환자 침대 옆에 놓인 컴퓨터로 향했다.
환자 기록은 일종의 개인 기록이라 의료진 중 하나가 제지하려 했으나, 김다현이 가로막았다.
“일단, 일단 둬 봐요.”
“아……. 네.”
김다현의 말에 현지 직원이 가세하자 의료진도 더 뭐라 하지는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병원은 두바이 정부 측에서 두바이의 의료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태화를 초청하다시피 해서 만든 병원이지 않은가.
그렇다 보니 의료진들 대부분은 한국인 의사에게 배운 바 있었고, 따라서 대한민국 의사들의 의견을 아주 잘 따르고 있었다.
‘나 진단할 때도 이랬지?’
무언가에 홀릴 듯한 얼굴이 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진단명을 털썩 내놓았더랬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진단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혹 김다현이 VIP라는 걸 알고 의식적으로 연출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후 보고된 바에 따르면 이수혁은 원래 이렇게 진단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번에도 또 어떤 마법을 보여 줄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환자는 무슨 환자입니까?”
해서 김다현은 잠시 투어를 중단한 채 응급실 의료진에게 물었다.
이 환자가 아주 어려운 환자인지, 아니면 별거 아닌 환자인지를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냥 두통입니다. 사실 응급실로 꼭 와야 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했는데, 환자가 빠른 처치를 원하기도 하고……. 현재 병실에 여유가 있어서 일단 두었습니다. 진통제는 썼고요.”
김다현에게는 조금 실망스럽게도, 환자는 단순 두통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저 그렇겠거니 하기엔 수혁의 얼굴이 너무 진지했다.
‘두통이 주요 호소 증상이긴 한데……. 열감도 호소하네.’
[실제 발열이 있진 않았군요. 내원 전에 이미 진통제로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진통제를 복용했으니 이것 때문에 마스킹 되었을 수 있습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와는 달리 해열 작용이 아주 강한 게 특징이었다.
따라서 그 약을 먹고 나서 열을 재는 건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
‘체중 감소가 있었다고 증언했어.’
[2kg 정도군요. 이건 의학적으로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확실히 바루다의 말이 맞았다.
최근 수개월 간 2kg 감량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은 너무 많았다.
그저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었고, 운동이나 식습관의 변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증상들과 연관 지어 생각한다면, 의학적인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만도 없었다.
‘정리하면……. 환자는 55세, 백인, 좌측 측두엽의 박동성 두통, 허리, 어깨의 통증 그리고 열감, 체중감소가 있네. 음……. 이거…….’
[여기까지 했으면 떠오르는 진단명이 있어야 할 거 같은데요.]
‘아니, 잠깐만.’
[음.]
바루다는 수혁이 아예 하나도 떠올리지 못해서 잠깐이라고 한 게 아니라는 거 정도는 바로 알 수 있었다.
다만 보다 확실하게 하기 원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거 또한 알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이 성큼성큼 환자에게로 걸어가는 걸 말리지 않았다.
“어…….”
바루다에 비해 환자는 아주 놀란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수혁은 가운이 아니라 정장을 입고 있기 때문이었다.
얼굴도 영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하지만 수혁은 그런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환자분, 저는 내과 의사입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머리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유창한 영어였다.
수혁을 눈여겨보고 있던 사람들마저 모두 놀랄 정도로 완벽했다.
‘영어도 잘하네?’
김다현뿐만 아니라 장강명도 그랬다.
‘와……. 역시 소화기로 꼬셔야 된다.’
뭔가 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 같긴 했지만.
김다현이 설마 장강명과 경쟁하진 않을 거 아닌가.
어디 새로 병원을 짓는 게 아니라면야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장강명이 알기로 현재 태화가 새로 짓는 병원은 여기뿐이었다.
‘두바이로 이런 스타를 보낼 이유는 없어.’
이 병원은 그저 교두보용으로 지어 놨을 뿐이었다.
결국엔 한국으로 오게 해서 서울의 태화 의료원을 k-메디컬 허브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해서 장강명은 입맛까지 다셔 가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 내과 의사시군요. 음, 알겠습니다.”
환자 또한 수혁의 영어가 너무 뛰어난 데다가, 말하는 태도나 표정 등이 너무 당당한 나머지 당연히 이 병원 의사겠거니 하고 넘겨짚고야 말았다.
해서 손을 완전히 치우고는 머리를 보여 주었다.
수혁은 그 머리를 그저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손가락을 세워서 방금 환자가 손대고 있던 부위에 가져갔다.
둥.
둥.
그와 동시에 수혁은 손가락 끝을 통해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손가락을 가져다 댄 부위 주변으로 약간의 붓기가 있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어딘가에 부딪힌 이후 발생하는 부기와 같이 동그랗게 부은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혈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까 종합한 환자의 문제 목록에 이 혈관 모양의 부기를 더하면 무조건 하나의 진단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측두동맥염인데…….”
수혁이 확신한 얼굴로 진단명을 내뱉자, 바루다가 대견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넌 어떻게 알았지?’
[아까 제가 리포트 했던 시점의 수혁의 시야를 재생합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의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는 대신 아까 시야를 재생해 주었다.
정확히 방금 전과 같았는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환자의 이마 쪽이 조금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보면 불거져 나온 혈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친……. CIA야? 이걸 분석했다고?’
[최근 특히 시각 정보를 분석하는 능력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시험해 봤는데, 역시 맞군요.]
‘확신한 건 아니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이상한 놈 될 뻔했잖아.’
[아니니 된 거 아닙니까? 그리고 측두동맥염을 진단했다면, 정말 급한 증상이 하나 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