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2화 두바이 (4)
측두 동맥염에서 집중해야 할 증상이라.
사실 그렇게까지 위험한 질환이 아닌데다가, 내과에서 주로 보는 질환이라고 하기는 또 어려움이 있는 질환이기도 해서 딱 떠오르는 것이 있진 않았다.
하지만 바루다가 괜히 그런 말을 하진 않았을 터였다.
적어도 누군가를 진료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진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여 주는 녀석이니까.
‘측두 동맥염이라.’
다행히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지금껏 바루다의 안달복달에 의해 쌓아 둔 의학 데이터가 산더미만큼 있지 않은가.
아주 잠시 눈을 감은 것만으로 교과서 한 바닥이 후루룩 나타날 지경이었다.
동반되는 질환이나, 질환의 양상 또는 조직검사 소견 등.
뭐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중 수혁의 눈을 끈 것은 역시나 하나뿐이었다.
‘시력…… 시력 장애.’
[네, 안 동맥을 침범하는 질환입니다. 지금 당장 안저 검사를 시행하고, 이상이 있다면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에 돌입해야 합니다.]
‘오케이. 이런 젠장. 이걸 잊었네?’
[아직 멀었다는 반증이죠. 그나마 이렇게 빨리 유추했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칭찬이야, 욕이야?’
[둘 다입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의료진을 찾기 위해 눈을 번쩍 떴다.
“잉.”
그 순간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장서서 투어에 나서고 있던 김다현 및 장강명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과 의사들 및 간호사들도 수혁을 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래 이곳의 의료진들 또한 수혁을 보고 있었다.
[내가 그러게 눈 감고 진단하지 말랬잖아요.]
‘소리로라도 파악했어야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제가 무슨 초능력이라도 있습니까? 다 수혁의 시력, 청력을 활용해서 주변을 파악하는 건데…….]
‘에이. 알았어. 뭐 이런 상황 한두 번 겪나.’
[하긴 한때 태화 의료원 공식 또라이였죠?]
자부심을 가질 만한 별명인가 싶기는 했지만.
하여간에 익숙한 것은 사실이었다.
수혁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해 대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나 유창하기 짝이 없는 영어가 튀어나왔다.
한국인들로서는 들을 때마다 움찔하게 만드는 그런 발음이었다.
“혹시 이 환자분 담당 간호사분이나, 의사분 계십니까?”
“아, 네. 제가 보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나선 것은 젊은 의사였다.
그래 봐야 수혁보다는 나이가 위일 거 같긴 했지만.
의학에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환자 진단할 때 말고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
유교 국가에서 온 사람이 할 생각은 아니란 생각도 들었지만, 아무튼 간에 수혁은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혹시 진단명을 뭘로 잡고 보고 계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네. 단순 긴장성 두통으로 보고 약을 처방했습니다.”
“근거는?”
현대 의학에 있어서 근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랄 지경이 된 지 오래였다.
자연히 이 말을 들은 의사의 표정 또한 한결 진중해졌다.
진단이 틀릴 수는 있지만 근거가 말도 안 된다면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었다.
틀리더라도 그럴싸한 이유로 틀려야 했다.
물론 현지 의사는 아직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생각도 하고 있진 않았다.
다만 김다현 사장의 말을 통해 수혁이 원체 뛰어난 의사라는 걸 알게 되어 긴장했을 따름이었다.
“환자는 평소에도 간혹 두통을 호소했던 환자입니다.”
[두통이야 있었을 수 있죠. 현대인에 있어서 가장 빈도가 높은 증상 중 하나이니까요.]
바루다의 말대로 평소 두통이 있었다는 건, 이번 두통 또한 아무것도 아닐 거라 생각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주기엔 너무 빈약한 얘기였다.
수혁 또한 긍정하는 바였기에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금 더 긴장한 얼굴이 된 현지 의사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오늘 와서 시행한 CT상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어요. 여기서 뭘 더 의심해야 된다는 겁니까?”
이건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주장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brain CT상에 이상이 없다면 출혈이나 경색 등의 아주 심각한 것은 배제할 수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단순 긴장성 두통으로 간주해도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수혁은 알아차렸지만, 이 현지 의사는 못 알아차린 사실을 모르고 있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수혁은 CT까지 찍었단 말에 짜게 식어 버린 관심을 느껴 가며 입을 열었다.
태화 의료원의 교수들이라고 다 수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뒤에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내과 내에도 적지 않았다.
[저기, 저놈도요.]
바루다는 가공할 분석 능력으로 표정에 담긴 감정을 해석해 내며 수혁에게 알려 주었다.
그 덕에 수혁은 그런 이들에게 좀 더 시간을 할애해 눈빛을 쏴 주며 말을 이었다.
“평소의 두통과 오늘의 두통의 양상이 같다고 보시나요?”
“원래도 한쪽이 욱신거렸다고 했습니다.”
“평소에도 응급실에 오나보죠?”
“어…….”
응급실에 온 환자들이 흔히 불평하는 사안 중 하나는 쓸데없어 보이는 검사를 한다는 것일 터였다.
응급실에 대한 특성을 모른다면 그런 불만을 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은 설령 흔한 증상이라 해도 훨씬 심각한 질환일 수 있다는 통계가 너무 명확했다.
환자들도 본능적으로 느껴서 응급실에 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부터 이걸 의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면 진단 및 치료에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오기 전에 약을 먹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응급실로 왔습니다. 통증의 정도가 평소와 같았다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진료 행태입니다. 응급실은 비싸고 불편하니까요.”
수혁은 대한민국의 병원들에 비하면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응급실을 돌아보며 불편하다는 말은 괜히 꺼냈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넘어가요.]
하지만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정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논조에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 와서 받은 진통제로도 해결이 되지 않아, 지금도 바스 스코어 6점 이상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게 일반적인 긴장성 두통일까요?”
“어……. 그럼…….”
“게다가 환자의 이마를 잘 보세요. 툭 불거져 나온 것이 보이지 않나요?”
“아?”
아직 측두 동맥염이 시작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기에 불거져 나온 혈관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딱 진단명을 의심하고 봐야만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 손가락을 대며 퉁퉁 튀는 박동이 느껴집니다. 한번 대 보시죠.”
“아…….”
하지만 박동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했다.
수혁은 현지 의사의 표정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정리하면 CT에는 잘 보이지 않는,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박동성 두통을 유발하는 질환이 있다는 겁니다. 아마 CT도 조영 증강을 했다면 바로 볼 수 있겠지만, 보통 두통에서 조영 증강을 하진 않죠.”
brain CT는 보통 뇌경색, 뇌출혈을 감별하기 위해 찍기 때문에 바로 결과를 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지간하면 조영 증강을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안 해도 위의 두 개의 질환은 어느 정도 감별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어보니 환자는 허리, 어깨 등의 통증을 이전부터 호소해 왔더군요. 류마티스성 가발 근육통증을 의심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를 종합해서 보면 이 환자의 진단명은 측두 동맥염입니다. 이의 있으십니까?”
수혁의 설명은 일목요연하기 짝이 없었다.
현지 의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에 있던 사람들마저 다 납득이 갔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의료진이 아니라 그냥 안내차 나와 있던 직원마저 어쩐지 고개를 끄덕여야 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 버렸다.
“자, 이의 없으시면 바로 안과 컨택해 주시죠. 안저 검사가 필요합니다.”
수혁은 자신에게 불만 어린 눈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안저 검사…….”
현지 의사는 안저 검사란 단어에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왜 수혁이 요청했는지 알아들었다.
이 측두 동맥염이라는 게 진단이 좀 헷갈릴 수 있는 것이지, 질환 자체는 의대만 제대로 다녔으면 꼭 한 번쯤은 시험 문제에 나오는 질환이기에 그러했다.
“아, 알겠습니다. 바로 부르겠습니다.”
“네, 선생님.”
“결과 나오면 연락 드릴까요?”
“네? 아뇨. 아뇨. 저는 여기 탐방 왔을 뿐입니다. 그저 환자가 눈에 띄어서 끼어들었을 뿐입니다. 주제넘었다면 죄송합니다.”
수혁은 지금껏 잘난 척이란 잘난 척은 다 한 주제에 마지막에는 겸양을 떨었다.
수혁을 미워하는 놈들이라면 발작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일이기도 했다.
‘확실히 우수해.’
특히 김다현에게 더더욱 그러했다.
측두 동맥염이 뭔지야 알 게 뭐란 말인가.
김다현이 바이오 및 의료 분야에 관심을 두는 건 미래가 밝아 보여서이지, 딱히 의료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뭔지 모를 진단이라도 잘 해냈다는 건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 혹 실례가 되었을 수 있는 상황을 어찌 되었건 스스로 봉합했다는 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정치적인 면모도 있을까?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그런, 모습을 보이진 않았는데…….’
만약 이현종 정도만 머리가 돌아간다고 하면 의사가 아니라 더 크게 써먹을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이현종은 그걸 원치도 않을뿐더러, 수혁을 위해서가 아니면 머리를 안 굴려서 문제였지만.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실례했습니다.”
아무튼, 투어는 계속되어야만 했다.
이미 병원에 대한 보고는 받은 바 있지만.
뭐든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안심이 되는 성미였다.
그래야 이 병원에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할지 눈에 들어올 거 같았다.
“음, 그럼 계속 갈까? 시간이…… 지체될 거 같은데.”
게다가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떨지 몰라도 김다현은 아주 큰 일을 앞둔 마당이었다.
시간이 촉박해 일정도 조금 다르게 잡아 두었다 이 말이었다.
“아, 네. 사장님. 그럼 바로 진료실로 가시죠.”
“음, 그래요.”
“네.”
응급실이 그런 것처럼 진료실 또한 대단히 세련되고 커다랗게 잘 지어져 있었다.
모든 과에 인원수가 충분한 것은 아닌지, 다 돌아가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모양새는 그럴싸했다.
‘인원이 추가되면...…. 외래 인원수 또한 늘릴 수 있다, 이 말인데.’
지금 보고 받은 바에 따르면 이 병원의 일일 외래 수는 고작 천여 명.
태화 의료원이 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턱도 없이 적은 수였다.
물론 이곳은 의료비 자체를 비싸게 책정했기에 매출 자체가 열 배 차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가서 아직은 사업성이 없다고 평가되어 있었다.
하지만 직접 와 보니 공간이 널찍한 것이 수용 인원을 당장 두 배로 늘리는 것도 가능할 거 같았다.
‘좋군.’
김다현이 이렇게 설비 및 진료 공간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뒤떨어져서 따라오던 수혁은 또 다른 곳에 눈을 뺏기고 있었다.
외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환자였다.
[저 환자 이상한데요?]
‘코난이야?’
[무슨 소린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