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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73화 (273/1,303)

273화 진료실에서도? (1)

코난이냐는 비아냥에도 불구, 바루다는 진료실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환자를 응시했다.

실제론 수혁이 그쪽을 바라본 것이나, 집중은 바루다가 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녀석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곧장 수혁에게 공유되었기에 자연히 수혁 또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눈 뜨고 있어요. 아까처럼 딱 맞아떨어질지는 모르니까.]

‘알았어. 오케이.’

[자, 보면……. 저 환자 식은땀을 엄청 흘리고 있습니다.]

‘음, 그렇네.’

진료실은 응급실보다는 오밀조밀한 구조였기에 수혁은 자연스럽게 환자를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

다들 수혁에게 딱히 관심을 두고 있지도 않았다.

본인들 진료실에 비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진료실에 시선을 뺏긴 지 오래였다.

심지어 연차가 아직 덜 쌓인 사람들 중 일부는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와……. 기회 되면 여기 올까?”

“미국 연수 대신 여기 2년도 된다던데……. 애들 교육만 괜찮으면 뭐…….”

“연봉도 맞춰 준다던데.”

“장난 아니네, 진짜.”

마냥 뭐라고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일단 층고가 높아서 그런가, 개방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바깥의 풍경 또한 멋들어지게 늘어선 인공 도시였기에 태화 의료원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세련미가 있었다.

‘흠.’

다만 수혁만은 그 모든 사안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환자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인공 도시고 높은 층고고 나발이고 이 환자가 훨씬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대략 40대? 아랍 계통 남성. 들고 있는 비닐에는……. 냄새로 미루어 볼 때 토사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있는데, 피부는 건조해.’

[혈관이 수축하거나, 등등의 이유로 혈압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군요.]

‘외래에 있으면 안 되는 수준 아닌가?’

이 환자야말로 응급실로 갔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은 마당이었다.

보호자도 없이 외래에 덜렁 혼자 앉아 있다니.

간호사들이나 다른 직원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외래 진료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오늘은 운영이 안 된다는 것일 텐데, 어딘가로 이동하다가 여기 주저앉은 모양이었다.

[일단 가 보죠.]

‘아……. 비행기에서는 별일 없더니 병원 와서 난리네.’

[그래서 아쉽습니까? 의사가 환자 보는 게 싫어요?]

‘아니…….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지, 인마.’

[그럼 가서 봅시다.]

‘알았어…….’

갑자기 환타 된 느낌이 온 수혁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환자에게로 걸음을 떼었다.

그리곤 환자의 어깨를 흔들었는데, 의식이 선명치가 않았다.

‘좆됐네.’

이건 진단 놀음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뜻이었다.

세상에 다른 곳도 아니고 병원 외래에서 사람이 의식을 잃었는데 그걸 아무도 몰라?

이게 의료사고가 아니라면 무얼 의료사고라고 해야 할까?

‘이 병원이 교두보라고 그러지 않았나?’

여기서 이 사람 잘못되면 교두보는커녕 박살 나러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었다.

다급해진 수혁은 일단 소리부터 쳤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톤과 말투 모두 응급실 의사의 그것과 같았다.

그저 길 가던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부 의료진 아니던가.

이러한 말에 반응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 이사님? 뭔 일 났나 본데요?”

게다가 한국어였다.

장강명은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김다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였다.

그렇게 돌아보았더니 시선 끝에 걸리는 이가 하나 있었다.

“이수혁 선생?”

“또? 아니, 외래 기다리고 있는 환자를…….”

“잠시만요. 상태가 좀 이상한데요?”

“어? 어……?”

또 오버하는구나.

우수한 친구긴 한데 약간 이상한 게 흠이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김다현의 말대로 좀 이상했다.

수혁이 어깨를 치자마자 환자는 그대로 모로 쓰러진 채 의자에 누워 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저 과정에서 일말의 반응을 보여야만 했다.

손으로 의자 측을 짚거나, 하다못해 그런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뜻.

하지만 환자는 그 어떤 반응도 없었다.

그 말은 곧 의식 수준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기도 확보하시고요.]

‘자발 호흡은 있어, 다행히. 근데…….’

[맥박이 약합니다. 최소 정상 혈압은 아니에요.]

‘체온은…… 체온이 약간 떨어진 거 같지 않아?’

[수혁의 손바닥 온도가 들쑥날쑥해서 객관적인 판단은 아닐 겁니다만, 날씨를 고려하면 심부 온도는 몰라도 피부 온도는 좀 차갑게 느껴지는군요.]

수혁은 그런 환자를 아주 빠르게 제대로 눕히고는 기도를 확보하고 벨트를 풀러 혈액 순환을 도왔다.

그사이 다른 의료진들 또한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병원 의료진에게 알렸고, 누군가는 펜라이트로 눈동자 반응을 살폈다.

거의 어지간한 2차 병원 전체가 움직이고 있던 마당이라 그런지 응급 상황에 대한 대응은 빠르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어디, 어디에 있죠?”

곧 응급실 의료진이 도착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의료 설비가 없는 곳에서 의식 소실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치가 이루어진 환자였다.

‘확실히 대한민국에서 왔다더니…….’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납득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에게로 몰려갔다.

“혹시 언제…… 발견하신 겁니까?”

그리곤 환자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는데, 모두의 고개가 자연히 수혁을 향해 틀어졌다.

애초에 환자가 여기 있다는 거 자체를 수혁이 처음 발견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 또한 미리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대답은 술술 나왔다.

“발견한 것은 3분 전입니다. 그때 이미 의식은 혼돈 상태로 보였고, 발견하자마자 즉시 기도 확보 및 벨트를 풀어 혈액 순환을 확보했습니다. 다만 혈압은 여전히 낮은 것으로 보입니다. 음, 100에 80이군요.”

“아…….”

확실히 의료진의 노티는 어딘가 달라도 달랐다.

‘귀에 쏙쏙 들어오네.’

아마 여기서 멈추었어도 딱 만족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수혁이 특별하다는 얘기를 계속 들을 수 있었을까?

[계속 가시죠.]

‘오케이.’

바루다의 지원 사격을 받은 수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혀에 시동을 걸고 앞으로 나섰다.

응급 처치하던 3분은 그에게 있어서만큼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환자가 숨을 내쉴 때 냄새를 맡아 보면 아세톤 향이 아주 짙게 납니다. 병력은 알 수 없으나, 환자의 혈중 케톤 농도가 지나치게 높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혈중…… 케톤이요?”

혈액 검사를 한 것도 아닐 텐데.

난데없이 혈중 케톤이니 뭐니 하고 있으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수혁은 모든 감각에 대한 분석을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지금 이 순간 그가 말하는 혈중 케톤의 존재는 그야말로 사실이라고 보면 되었다.

“네, 환자가 의식 수준이 좋지 않아 문진이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당뇨를 꽤 심하게 앓고 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럼…….”

“우선 수액부터 주시고, 혈당 검사를 하시죠. 키트 있으십니까?”

“아……. 네.”

현지 의료진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환자의 팔에 라인을 잡고 수액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른 한 명은 방금 수혁이 요청한 혈당 검사 기기를 건네주었다.

심폐 소생 키트에는 언제나 포함되어 있는 기기이기에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슥.

수혁은 우선 알코올 솜으로 환자의 둘째 손가락 옆면을 닦고는 침의 깊이를 3.5로 맞춰서 찔러 넣었다.

3.5면 좀 깊게 들어가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혈압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어지간히 찔러서는 제대로 피가 나오지 않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수혁의 판단은 옳아서 손가락에 난 구멍에서 피가 제대로 맺혀 나왔다.

수혁은 그것을 기기에 가져다 댔고, 잠시 후 기기에 나타나 있던 숫자가 점멸하다가 제대로 된 숫자로 변하였다.

“812mg/dl군요.”

“800이 넘어…….”

보통 혈당 수치는 공복에서 100 이하여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812라니.

이건 높은 것을 넘어 미친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것만 해도 뭔가 위험하다 싶을 텐데, 과연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만만한 질환이 아니었다.

“빨리 인슐린!”

애초에 케톤산증이 발생하는 기전이 인슐린이 부족해 생기는 일이었다.

체내에 인슐린이 없어지게 되면 포도당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강제로 지방을 분해하게 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케톤이라는 물질이 대량 발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량으로 발생한 케톤은 혈액을 산성으로 바꾸는 동시에 높은 혈당과 함께 삼투압을 증가시킴으로써 체내의 수분을 고갈시키는 역할을 한다.

교정되지 않고 지속하게 되면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 아주 무서운 질환이었다.

“수액, 들어가고 있어요?”

따라서 지금 수혁이 내린 두 가지 처방.

즉 인슐린과 수액은 당뇨병성 케톤산증에 대한 치료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치료라고 보면 되었다.

“아, 네.”

“인슐린도 들어갑니다만 우선 혈액 검사 다시 나가 보겠습니다.”

“네, 인슐린은 더 정확한 검사를 보면서 따라가 보죠.”

수액이야 팍팍 넣어 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인슐린은 과량이 들어가게 될 경우 오히려 저혈당 쇼크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물론 방금 검사를 통해 혈당을 측정하긴 했지만, 손가락 끝에서 나가는 검사를 100% 신뢰할 수 있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과 같이 환자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혈압이 낮은 만큼 손가락 끝에서 피가 저류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렇다면 실제 혈당은 이보다 높을 수 있다고 봐야 했다.

피가 저류하는 동안 혈당을 조직에서 사용했을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말미에 이러한 자신의 의견을 더해서 의료진들을 납득시켰다.

현지에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같이 간 사람들 또한 감명받게 된 현장이었다.

수혁을 싫어하는 사람들이야 뭘 하건 말건 삐딱하게만 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미쳤다. 원장님 죄송합니다.’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꼬실 생각만 하고 있는 장강명이 그랬고.

‘아……. 내과 간 게 아깝네.’

이기자 교수에게 얘기만 전해 듣고 왔던 소아과 교수도 그랬다.

‘이거 뭐……. 일부러 이러나?’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중 가장 감명을 깊게 받은 것은 역시나 김다현이었다.

이현종이 호언장담을 해 대길래, 병동 가서 어려운 환자 있으면 좀 봐 보라고 하려고 했는데.

거기 가기 전부터 연속으로 빵빵 홈런을 치고 있지 않은가.

이만하면 이현종이 말한 통합의료센터를 정말로 개설해도 좋을 거 같았다.

어린놈이 한자리 차지한다 뭐 이런 얘기도 안 나오게 할 방도가 있지 않은가.

이미 이수혁이면 태화 그룹 차원에서 스타 의사로 만들어 놓은 지 오래기도 하고.

‘병실에서는 대체 얼마나 잘하려나?’

김다현은 이번에도 의료진에게 환자를 인계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수혁을 보며 기대를 품었다.

어쩌면 이현종도 아직 저 젊은 의사에 대한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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