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74화 (274/1,303)

274화 진료실에서도? (2)

일행은 이제 진료실을 빠져나와 검사실을 돌고는 2층에 나머지 진료실까지 돌고는 3층에 위치한 중환자실로 도달한 참이었다.

그 전에 잠시 수술실도 구경했는데, 비어 있다는 게 아깝단 생각이 들 정도로 실로 어마어마한 시설을 자랑하고 있었다.

일행 중 그게 제일 아까웠던 사람은 당연히 김다현 사장이었다.

‘태화 의료원에 비해 수술방 개수야 적지만……. 가동률 올리면 월 수술 개수를 몇 배는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있겠는데.’

다분히 사업가로서의 안목으로 의료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살리는 일에 돈돈 거리는 것이 언짢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의사가 아닌데.

“아까 거기서 수술하면 널찍하니 좋겠네.”

“그러니까요. 기기도 꽤 많은 거 같은데……. 현미경도 다 3d 아닌가? 확실히 두바이가 돈이 많네……. 저걸로 하면 들이 파는 수술은 확실히 2d보다 훨씬 쉬워질 거 같은데?”

물론 일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의사들은 그저 시설 및 그로 인한 진료 또는 수술에 있을 유익에 관해 얘기 중이었다.

실로 의사다운 얘기였고 또 바람직한 대화였지만.

이런 것만 얘기해서는 실제로 저런 기구들을 사 올 수 없었다.

말하자면 더 비싼 기구를 이용해 더 많은 사람들을 안전하게 치료할 수 없다 이 말이었다.

누군가는, 정말 누군가는 이 병원에서조차 돈 생각을 하긴 해야만 했다.

[중환자실이 전실 다 1인실로 이루어져 있군요.]

바루다나 수혁이라고 해서 그게 가능한 존재는 아니었다.

아니, 둘은 어느 누구보다도 병원과 병원에 있는 환자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바루다는 애초에 그러라고 만들어진 존재이지 않은가.

수혁 또한 그런 바루다와 워낙에 오래 같이 붙어 지낸 상황이었고.

서로가 서로를 좀 더 그런 존재로만 이끌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미쳤네. 여긴 전실 다 감염 관리 병실로 써도 되겠네.’

[중환자실 자체도 병실이 많은 거 같군요.]

‘그러게……. 태화도 중환자실 꽤 큰 편이라고 들었었는데, 여긴 진짜 많네.’

[애초에 설계를 그렇게 한 모양인데, 이유는 알 수 없군요.]

아마 바루다가 의료 수가에 대해 해박했다면 대번에 이유를 들먹이면서 잘난 척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가령 대한민국의 의료 수가 하에서는 중환자실 베드 하나당 대략 1억의 적자가 나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에만 맞출 수밖에 없다든지.

그에 비해 두바이는 완전 시장 경제에 맞추어져 있기에 오히려 중환자실이 돈을 버는 곳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었다.

‘아, 담당 의사가 왔네. 여기서부터는 나눠서 들어가나 보다.’

[그렇군요. 하긴 중환자실 병실들이 아무리 유리 벽으로 가려져 있다고 해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지. 만전을 기하는 게 맞지.’

중환자실이 괜히 중환자실이겠는가.

중환자들이 입원하는 곳이라 그렇게 불리는 법이었다.

이곳에 있는 환자들을 바깥에 있는 환자들과 똑같이 대하면 큰일이 날 수밖에 없었다.

뭐가 되었건 출입을 자제하는 것이 맞았고, 그럴 수 없다면 한 번에 접하는 사람들의 수라도 줄여야만 했다.

“자, 이제부터 5명씩만 들어가실 겁니다. 1, 2, 3조는 대기하시고 나머지 인원분들은 일단 식사를 하시죠. 지하 3층에 병원 구내식당이 있는데 수준이 상당합니다. 아마 놀라실 거예요.”

안내를 맡고 있던 직원이 곧 담당 의사의 말을 한국말로 전해 주었다.

그제야 모두들 아까 로비에서 나누어 주었던 숫자표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중환자실을 들어갈 때 쓰라고 만들어 둔 모양이었다.

‘나는 왜 1번이냐.’

수혁은 그중 1번 패를 들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의사 중에서 1번 패는 수혁을 제외하면 장강명 센터장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김다현과 남지연 그리고 또 다른 이사진 중 하나였다.

말하자면 수혁이 모든 교수를 제치고 1번 조에 들었다 이 말이었다.

일개 레지던트 주제에 이럴 수 있다는 건 특혜를 넘어 일종의 폭력으로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니, 나는 5조인데……. 저 친구는 1조라고?”

“뭔가 착오 있는 거 아닙니까? 제가 지금 외과 의국장인데.”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로 평소 수혁을 탐탁지 않아 하던 이들에게서였는데, 상당히 거센 편이었다.

상하 관계에 유독 더 민감한 사람들이어서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김다현은 그리 신경을 쓰진 않았다.

이미 김다현의 마음속의 수혁은 일개 레지던트가 아니었다.

‘차기 부센터장이지.’

좀 더 지켜봐야 하긴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더 지켜본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수혁이 이현종의 친아들도 아니지 않은가.

이현종은 본인이 젊은 시절부터 공언한 대로 의학과 결혼이라도 한 건지 뭔지, 아예 이성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는 걸 두 눈 똑똑히 확인한 참이었다.

‘이현종 교수님이요? 실력에 진짜 엄격하시죠.’

‘본인이 천재라서 그런가……. 아마 눈에 차는 제자가 거의 없었을걸요.’

‘실력에 비해 학회 내에 힘이 약한 편이에요. 워낙 엄해서……. 제자들이 못 견디고 떨어져 나가는 편이었거든요.’

게다가 남의 실력에 대해서 정말이지 엄격 그 자체였던 모양이었다.

이런저런 루트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다들 고개를 내젓기 바빴다는 말만 해 왔더랬다.

그런 인간이 생판 남인 레지던트를 위해 본인의 커리어를 내던진다고 한다면, 역시나 수혁의 실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야 옳지 않을까.

‘뭐……. 범인들의 질투가 있기야 하겠지?’

김다현의 시선이 지금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한 이들을 향해 돌아갔다.

막상 환자 앞에서 수혁이 진단과 처방을 내릴 땐 이 앙다물고 가만히 있던 것들이 조금 책잡을 만한 사정이 생기자 입 털기 바빠 보였다.

‘한심한 인간들.’

의사씩이나 된 사람들이 왜 저럴까 싶기는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열등감이라는 건 현재 그 사람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 않던가.

심지어 재벌가의 자식들 중에서도 김다현을 향한 열등감에서 발로한 일방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적개심이야 김다현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지만 이건 그렇지 않았다.

“여러분, 잠시만.”

김다현에게는 힘이 있지 않은가.

단순히 태화 생명 사장 정도의 힘도 아니었다.

교수들 정도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걸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런 내가 이수혁과 친분이 있다는 걸 숨길 필요가 없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은 간사한 면이 있어서 힘 있는 사람에게는 또 귀신같이 꼬리를 말지 않던가.

임시직에 불과한, 이제 곧 내려와야 할 이현종 원장에게는 개길 수 있을지 몰라도 김다현에게는 그럴 수 없을 게 뻔했다.

실제 본인 신분을 다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았다.

어차피 눈치 살살 살펴 가면서 지금 이 자리의 실세가 누구라는 거 정도는 다 알아봤을 테니까.

“어…….”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떠들어 대던 게 언제냐는 듯 다들 김다현에게 주시하고 있었다.

말 한마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귀를 기울이는 시늉마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소가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김다현은 애써 근엄한 얼굴을 유지했다.

“이수혁 선생이 1조에 속한 거 가지고 말들이 많으신 거 같은데……. 제가 여러분들 중에 그나마 얼굴 아는 사람은 이수혁 선생이 유일합니다. 제 은인이기도 하고요.”

은인이라는 말에 수군거림이 삽시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 또한 기억이 있긴 한 것이었다.

수혁이 언젠가 VIP 하나를 치료해 준 적이 있다는 말을.

그 소문이 낭설이 아니라, 진짜 실세가 대상이었다는 말 또한.

보다 정보에 밝은 이들은 그 덕에 서효석 교수가 날아갔다는 것도 기억했다.

“게다가 다리가 불편한 사람에게 순서 배려하는 것이 그리도 불만인가요?”

김다현은 확연히 바뀌고 있는 교수들의 반응을 확인해 가며 쐐기를 박았다.

요약하자면 내가 이수혁 알고 있고, 고마워하고 있는 데다가 신체적인 약점에 대해 배려를 하겠다는데 불만 있냐, 이거였다.

당연히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있었지만 대놓고 나설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용기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뒤에서 수군대지는 않았을 테니까.

“불만 없으면 정해진 순서대로 식사하시고 오후에 봅시다.”

“네, 이사님.”

해서 교수들은 즉각 해산되었다.

김다현은 그 와중에 섞여 서 있던 수혁을 손짓으로 불렀다.

그 모습이 어찌나 당당해 보이는지 뒤로 후광이 있나 싶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수혁이나 바루다가 보기에는 그랬다.

[김다현 이사 눈치가 이상합니다. 대놓고 밀어주네요?]

‘그러니까……. 이게 혹시 아빠가 말했던 그건가.’

[아빠? 수혁이 아빠가 어디 있습니까.]

‘원장님, 인마. 원장님.’

[우리끼리는 호칭 똑바로 합시다. 내가 알고 수혁도 아는데 그걸 그렇게 말하면…….]

‘아무튼, 아무튼, 인마.’

수혁은 바루다의 시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중간중간 김다현의 말에는 어느 정도 대응을 해 주어 가면서였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응? 아니에요. 당연히 배려해야지. 혹시 이런 배려 기분 나쁜 건 아니고요?”

“네? 아뇨. 아뇨. 배려받는데 당연히 감사하죠. 하하.”

“다행이네요. 여기 구내식당이 괜찮다고는 하는데……. 1조는 2조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가려고 해요. 그것도 괜찮나?”

“네? 아, 네. 좋습니다.”

다 바루다와의 대화가 익숙해진 덕이었다.

또한 아직은 수혁이나 바루다의 눈에 그리 흥미로운 환자가 눈에 띄지 않기도 했더랬다.

[아무튼 뭐요.]

‘원장님이 나 가기 전에 뭐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 장강명 따위에게 넘어가지 말라고.’

[사람 앞에 두고 따위라니?]

‘인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여간에 그게 김다현 이사님이랑 관련된 거라면 어떨까?’

수혁은 슬쩍 김다현을 바라보았다.

이미 의료진과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어서 수혁에게는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중환자실 가동률도 적군요?”

“아직 중환자를 볼 만큼 충분히 수련받은 의료진이 적습니다. 의사도 의산데……. 간호 인력이 사실 더 문제입니다.”

“그렇군요. 그거야……. 태화에서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할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간호 인력 엄청 채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아……. 그거 잘된 일이군요. 네, 펠로우야 의사들만 구하면 되는 문제인데. 간호사들은…… 특히 능력 있는 간호사들은 구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이거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겪는 문제라고 보면 되었다.

의사보다 오히려 간호사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는 능력 있는 간호사들이 많은데 그 여건이 좋지 못해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이쪽은 돈은 많이 줄 수 있는데 애초에 능력 있는 간호사들이 많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여간에 해결하기에 좀 복잡한 일인지라 대화는 한동안 더 이어졌다.

덕분에 바루다와 수혁의 대화 또한 이어질 수 있었다.

[김다현 이사랑 연결이 됐다라. 아까 사장이라고 불린 호칭이 수상하긴 합니다.]

‘나도 그래서 태화 생명 사장이 됐나 했는데, 아까 비행기에서는 김다현 이사가 남지연 이사한테 사장이라고 했잖아.’

[설마 전자 사장인가?]

‘말이 되냐? 전사 사장이 되기엔 너무 어려. 게다가 로열 아니고서는 대부분 부사장이 끝이지.’

[그럼 뭐지?]

‘알 수 없지. 뭐가 되었건 간에 좋은 일일 거 같긴 한데…….’

[음, 잠시만요.]

‘왜.’

[김다현 이사가 부르는데요. 몰랐어요? 그러니까 눈 좀 뜨고 얘기하자고 제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