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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75화 (275/1,303)

275화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1)

“음.”

정신을 차려 보니, 담당 의사도 김다현도 심지어 장강명도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다현이나 장강명과 담당 의사의 차이가 있다면 조금 미심쩍어한다는 점이라 할 수 있었다.

‘너무 어리잖아?’

두바이 측에서 태화는 엄청난 고객이자 파트너라 할 수 있었다.

우선 두바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버즈 칼리파를 지어 준 그룹이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인연이 되어 왕족들과도 연이 깊은 그룹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젠 항공 허브가 된 두바이의 인프라를 활용한 메디컬 허브 구축에 도움이 될 의료 서비스까지 제공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요구는 다 들어줄 용의가 있다 이 말이었는데, 컨설트를 봐주겠답시고 나선 것이 너무 어려 보이는 의사다 보니 꺼려지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도……. 지금 이 사람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어.’

아마 이사 선에서의 요구였다면 곤란하다는 미소와 함께 거절했을 터였다.

하지만 김다현은 이사가 아니라 사장이었다.

그것도 병원 사장이나 생명 사장도 아니고 그 위의 사장이었다.

‘앞으로 두바이 측에서 연구 시설도 지을 예정이니, 적극 협조해요.’

여러 다국적 제약 회사에 비하면 아무리 태화 바이오라는 기업이 신설된다 해도 신약 개발에 대한 역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제약 산업 중 괄목할 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산업 전반에서 설계보다 생산에 뛰어난 나라이니만큼 약제 생산에 있어서도 엄청난 강점을 보였다.

특히 엄격한 설비 관리 및 인력 관리가 필요한 CMO, CDO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만약 그것이 두바이에서 바로 생산된다면 유럽 및 중앙아시아 등의 마켓에 진출이 용이해지니 태화로서도 좋고, 두바이야 투자의 대상이 되니 당연히 좋았다.

‘이 사람이 그 설비 투자도 담당한다 이거지…….’

VVIP라 이 말이었다.

“네, 이수혁 선생님.”

해서 담당 의사, 알 막툼 교수는 수혁을 향해 본격적으로 환자에 관해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였다.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이 충분해야 말이지.’

불과 10분 남짓한 시간에 진단이 될까?

아니, 여기 있는 일주일 안에는 될까?

그사이에 어떤 단서라도 잡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박일 터였다.

때문에 알 막툼 교수는 그런 상황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환자는 17세 남자입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본인은 을이고, 상대는 갑인데.

‘한국에는 왕족 대신 재벌가라는 게 있다더니, 거기 일족 중에 의사 하는 사람이 있나 보지.’

게다가 알 막툼은 왕족을 대하는 사람이다 보니 을질에도 익숙해진 마당이었다.

을질하려고 마음먹는 게 힘든 거지, 막상 마음먹고 나면 식은 죽 먹기였다.

“특별한 병력 없이, 내원 1주 전 갑자기 발생한 두통과 발열을 주소로 왔습니다. 내원 당시 환자가 했던 진술에 따르면 복시도 있다고 했고요, 진료실에서 봤을 땐 보행장애도 있었습니다.”

“음. 두통과 발열에 복시……. 그리고 보행장애라.”

수혁이 다시금 환자 증상을 되새기는 동안 바루다는 이 네 개의 증상을 포함하는, 그러면서 병력 없는 17세 남아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질환들을 추려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이한 증상들의 집합이었지만.

현대 의학에서 밝혀낸 질환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추려도 아직 많았다.

“이 환자군요?”

그렇게 머릿속으로 정리를 해 가며 걷다 보니, 삽관을 한 채 누워 있는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데.’

[키가 165……. 수혁보다도 작군요. 여기 인종 고려하면 상당히 작은 편일 겁니다.]

‘영양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는데, 말이지.’

[뭐, 키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유전이니까요.]

‘하긴 그렇지.’

영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야 원래 클 수 있는 것보다 작을 수도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어지간하면 영양이 충족되기에 키는 그냥 유전이라고 보면 되었다.

클 놈은 콜라 먹어도 크고, 작을 놈은 우유 먹어도 작다 이 말이었다.

어쩐지 울적해진 수혁은 다시금 알 막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알 막툼 교수는 이제 막 컴퓨터에 환자의 검사 결과를 띄우고 있었다.

“내원하자마자 시행한 혈액 검사에서는 백혈구 3700/mm^3, 혈색소 11.9g/dl 등 특이 소견은 없었습니다. 다만 뇌척수액 검사에서는 색은 무색, 압력은 376mmH20, 단백질 222mg/dL, 포도당 28mg/dL, 적혈구 수 41/mm^3, 백혈구 수 340/mm^3(림프구 65%, 호중구 30%, 대식세포 5%) 소견을 보였습니다.”

“음.”

두통과 발열 및 기타 신경학적 증상을 미루어 보면 어찌 되었건 간에 급성 뇌수막염을 의심해야 할 터였다.

이 병원에서도 그걸 의심했는지 오자마자 뇌척수액 검사를 시행한 모양이었다.

그 결과는 상당히 전형적이라 해석이 어렵진 않았다.

‘당 떨어지고 단백 오르고……. 호중구 비율이나 압력 고려할 때 결핵성 뇌수막염이 의심되는데.’

[제 의견도 같습니다. 아무래도 두바이 쪽은 개발 도상국에서 넘어오는 노동자가 많으니, 결핵이 대한민국에 비하면 빈도가 높을 겁니다. 상당히 타당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오케이.’

게다가 인구 구조를 봐도 그게 의심된다면야 더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결핵성 뇌수막염이 의심되는군요? 뭐 다른 검사한 건 없나요?”

해서 이렇게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알 막툼 교수의 눈에 잠시 이채가 서렸다.

너무 나이가 어려서 걱정했는데, 확실히 우수한 사람이긴 한 모양이었다.

기껏해야 레지던트나 됐을까 싶게 생긴 주제에 초장부터 날카로운 질문이라니.

이렇게 나온다면 환자 설명해 주는 입장에서도 흥이 나기 마련이었다.

동시에 좀 더 시험하고픈 마음도 들었다.

“일단 흉부 X-ray도 찍었습니다.”

“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알 막툼은 X-ray를 띄워 주고는 수혁의 반응을 살폈다.

생각보다 결핵이라는 게 진단을 의심하지 않고 보면 어렵기 때문이었다.

감별해야 할 질환이 한두 개가 아닌 것이 한 가지 이유였다.

물론 한때 결핵의 산실이라고까지 불렸고, 지금도 선진국 중에서는 퍽 많은 편에 속하는 것이 대한민국 아니겠는가.

수혁이 아니라 내과 3년 차 아무나 데려다 놔도 바로 진단이 툭 튀어나올 터였다.

“좌측 폐 상엽에 활동성 결핵이 있군요. 확실히 결핵성 뇌수막염을 의심할 수 있겠어요. 음, 근데…….”

수혁이 궁금한 것은 그 진단명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뭐 쉬운 진단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에게 물어볼 만큼 어려운 진단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미 진단이 되었는데 왜 환자 상태가 이렇단 말인가.

[입원 기간이 벌써 2주입니다. 그런데 의식이 떨어진다니, 결핵약을 썼다면 벌써 좋아졌어야 합니다.]

‘이걸 내내 놓치고 있다가 이제야 알았다고 하면……. 너무 실망인데.’

[설마 그럴 리가요.]

‘나도 그러길 바라는데.’

해서 수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결핵약이 들어가고 있다면 환자는 왜 아직도 이렇죠?”

“네, 그게 저희도 의문이긴 한데……. 일단 아직 설명 드릴 것이 좀 남았습니다.”

“아, 그렇군요. 네. 계속하시죠.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뇨, 아닙니다. 뭐, 충분히 궁금해하실 수 있는 사안이죠.”

알 막툼은 이제 수혁을 철없는 재벌가 레지던트에서 동등한 의사로 대하고 있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본인이 환자를 보고 지금까지 해 왔던 생각과 거의 비슷한 판단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어찌 보면 훨씬 빠르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제 겨우 2분도 안 지난 마당이었으니까.

‘확실히 한국 의료 수준이 높긴 하구나.’

그렇다 보니 알 막툼의 말투도 조금은 변해 있었다.

“일단……. 이건 입원 당시 시행했던 MRI입니다. brain입니다.”

“음……. 양측 대뇌와 소뇌의 뇌척수액 공간을 따라 다발성 소결절성 조영 증강이 관찰되는군요. 역시 결핵성 뇌수막염의 전형적인 소견으로 보입니다.”

“네, 그래서 바로 항결핵제를 투여했습니다. 그런데 입원 2일째 환자 의식이 기면 상태로 저하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괜찮았고요?”

“네. 의식 수준에는 별문제 없었습니다.”

“뇌간 압박인가? 아까 뇌압 고려하고……. 그렇게 갑작스러운 의식 변화라면 역시 뇌간 압박 가능성이 크겠는데.”

“아…….”

수혁의 말에 알 막툼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혹 자신이 아까 말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 봐도 그런 일은 없었다.

지금 눈앞에 선 젊은 의사는 단지 자신과의 대화만으로 환자의 경과를 유추하고 있었다.

‘뭐지?’

뭘까 이놈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젊은 친구가 대단하네 정도의, 어떻게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까지만 들고 있었는데.

지금은 등줄기를 타고 어떤 쎄한 느낌이 들었다.

‘좀 이상한데…….’

그렇다고 하던 설명을 중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해서 알 막툼은 꺼림칙한 느낌을 뒤로하고 입을 열었다.

“네……. 뇌간 압박 소견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중환자실로 병실 옮긴 후……. 해당 증세에 대한 처치 및 항결핵제 치료를 지속했습니다.”

반면 수혁은 환자가 누워 있는 자리를 이리저리 살폈다.

알 막툼과 꼭 눈을 마주치고 얘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눈앞에 환자가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환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최대한 환자를 이용한 정보 수집에 들어가야 할 터였다.

[소변 통이 엄청 불어나 있네요.]

‘색은 거의 물이야.’

[희석되었다, 이런 뜻일까요?]

‘물어보지. 뭐.’

다른 사람이 그런다면야 또 모르겠지만.

수혁은 반드시 이상한 점을 찾기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환자 소변량은 괜찮나요?”

“허.”

그게 좀 결정적이었는지, 알 막툼은 뒷걸음질까지 치는 추태를 보였다.

너무 그를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세상에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눈앞에 있는 게 사람인지 귀신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소변량 괜찮나요?”

하지만 재차 계속되는 질문을 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혁과 단둘이 있는 자리도 아니지 않은가.

옆에는 VVIP도 있었다.

사실 장강명이라는 의사나 이사들 또한 만만치는 않은 사람들이었고.

해서 알 막툼은 헛기침을 해 대고는 입을 열었다.

“아, 아뇨. 하루 5000에서 10000ml 정도로 다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 혈압은 괜찮아요?”

“혈압도 낮습니다. 수축기가 90에서 120 정도.”

“중심 정맥압은요?”

“2.5에서 6cmH20입니다.”

“낮군요.”

“네.”

수혁은 폭풍 같은 질문을 하고서 잠시 멈췄다.

물론 오래가진 않았다.

혈압을 떨어뜨릴 정도로 지나치게 많은 소변이라면 이상하지 않은가.

반드시 동반할 만한 이상들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혈중 소디움 농도는 어떻죠?”

“낮습니다.”

“그럼 뭘 의심하고 뭘 처방하고 있죠?”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SIADH, syndrome of inappropriate secretion of ADH)를 의심하고 있고……. 수분 제한 및 furosemide(이뇨제) 처방하고 있습니다.”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이라.

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뇌수막염에서 동반될 수 있는 질환이기도 하거니와 저나트륨혈증 및 과량의 소변 등 대강 맞아떨어지긴 하니까.

하지만 수혁은 납득했다는 얼굴보다는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흐음.”

“왜……. 그런 표정을 짓죠?”

“왜냐고요?”

“네.”

“틀렸으니까요. 당신 진단이 틀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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