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76화 (276/1,303)

276화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2)

틀렸다고?

알 막툼 교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뒤에 있던 장강명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기서 말하는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SIADH)에 대해 소화기내과 교수라 아주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태화 의료원의 교수 아니던가.

워낙에 컨퍼런스에 많이 들어가다 보니, 중요한 질환에 대해서는 꼭 분과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상하네……. SIADH로 보이는데.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SIADH 아닌가?’

이름이 좀 어려워서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은 일종의 족보였다.

의대생 시절 죽도록 외워야 하는 질환이다, 이 말이었다.

그 견지에서 보면 우선 선행된 결핵성 뇌수막염에 동반되고 있는 다량의 소변 그리고 저나트륨혈증은 너무도 전형적으로만 보였다.

“틀렸다고요?”

아마 알 막툼 교수의 눈에도 그랬을 터였다.

그와 상의했던 의사들 눈에도 십중팔구 그랬을 것이고.

때문에 수혁의 아니란 말에 대한 그의 반응은 대단히 날카로웠다.

옆에 VVIP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지경이었다.

마주하고 선 수혁이라면 조금 주눅이 들 법도 한 모양새였다.

알 막툼의 얼굴이 이곳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 기준으로 보면 꽤 무서워 보이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수혁의 대답은 그저 A.I. 같았다.

아주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말이었다.

오히려 덤덤해 보이는 그 모습이 알 막툼을 더 자극했다.

누구라도 대놓고 너 틀렸다고 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는가.

그게 나이도 어린놈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렇게 생각하죠? 근거가 뭡니까.”

그럼에도 달려들지 않는 것은 알 막툼 또한 교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아니 바루다는 그런 알 막툼을 마주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거 진짜 그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데요? 실망인데, 이러면…….]

‘그러니까 우리 불러서 가르쳐 달라고 하는 거 아닐까? 얘들이 세계 최고 수준이면 왜 우리한테 매달리겠어.’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이거 이러면 어디서부터 가르쳐야 할지…….]

‘오버하지 마. 이거 꽤 의심하기 어려운 병이라고. 나니까 그냥 바로 떠올리는 거지.’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현대 의학에 대한 의구심부터 품어야겠군요.]

‘이 새끼는 진짜.’

[하여간…… 대답부터 해 주시죠. 더 꾸물거렸다가는 한 대 치겠어요.]

‘음.’

그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과연 알 막툼은 붉으락푸르락하고 있었다.

자신의 믿음이 정면으로 부정당해서일까?

되게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수혁은 의견을 바꾸거나 할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자, 우선……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부터 예상해 보겠습니다.”

“음.”

다행히 수혁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알 막툼은 팔짱부터 꼈다.

한 대 치는 대신 어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나 보자 뭐 이런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상당히 여유롭게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일단 환자는 결핵성 뇌수막염이 있죠. 결핵성 뇌수막염에서…… 항이뇨호르몬분비 이상이 생기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드물지도 않은 현상입니다. 게다가 동반되는 증상에 소변 과다 및 저나트륨 혈증이 있으니……. 사실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무리가 아닌 게 아니라,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뇨, 변수를 다 더하지 않으셨어요.”

“무슨…… 변수가 더 있다는 겁니까?”

“저혈량증.”

“저…… 혈량증?”

방금 말한 SIADH에서는 저혈량증, 즉 저혈압을 유발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고 보면 되었다.

지금 이 환자처럼 심각한 정도의 저혈량증은 거의 배제해도 되었다.

아니, 한 가지 상황에서는 가능하긴 했다.

“지금 이 환자에게 수분 제한을 하고 있다고 했죠? 심지어 이뇨제를 쓰고 있다고도 했고요.”

“그…… 그렇습니다만.”

“차트를 보니 오히려 그 처방을 한 이후에 환자의 의식 저하가 더 심해졌더군요. 혈압도 떨어지고요.”

“그건…….”

“저나트륨혈증이 있으면서 소변 검사에서도 SIADH 소견을 보이나, 염분과 수분의 소실로 탈수에 이르는 경우. 그리고 이로 인해 저혈랑증성 쇼크, 즉 지금과 같은 환자의 의식 저하 및 혈압 저하를 일으키는 경우에는 전혀 다른 질환을 의심했어야죠.”

“어…….”

알 막툼은 물론이거니와 소화기 내과 의사인 장강명은 아예 처음 들어 보는 상황이었다.

의사로서 알고 있는 생리학 지식이 아니었다면 지금 설명을 따라가기도 벅찼을 터였다.

그러니 옆에 있는 김다현이나 다른 이사들은 뭔 소리를 하나 싶기만 했다.

다만 분위기는 누구보다 잘 읽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알 막툼이라는 교수, 허를 찔린 거 같은데.’

사원일 때는 일을 잘해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지만.

일단 그 높은 자리인 임원이 되고 난 후부터는 사람을 잘 다뤄야 위를 노려볼 수 있지 않겠는가.

김다현쯤 되면 사태 파악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것 또한 도사라 할 수 있었다.

“다른 질환이라니……. 뭘 말하는 거죠?”

김다현의 예상처럼 알 막툼은 팔짱 끼고 있던 것을 풀고는 수혁에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변수를 빼먹었다는 말부터 좀 쎄한 느낌이 들더니만, 저혈량증을 들먹이는 순간부터는 소름이 끼쳐 왔기 때문이었다.

의사로서 환자가 나타내고 있는 소견 중 어느 하나라도 놓치고 있었다면 그건 소양 부족이었다.

특히 저혈량증같이 중요한 소견을 놓친 것은 자칫 사고로 이어지기에 십상이었다.

“여기까지 말씀 드리면 떠오르는 질환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요. 없습니다. 뭔지 말해 주세요.”

“뇌성 염분 소실 증후군(Cerebral salt wasting syndrome). 못 들어 보셨나요?”

“어…….”

표정을 보아하니 아예 모르는 모양이었다.

수혁이 보기에도 그러했는데, 바루다는 아예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 새끼 아예 모르네. 내분비내과 교수는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이건 서효석도……. 아닙니다. 수혁, 실언을 했군요. 서효석도 모를 겁니다. 그런 인간이 태화 교수를 하고 있었으니 저희라고 이쪽을 막 까댈 처지는 아니군요.]

그 확신을 기반으로 마구잡이로 비난에 나서다가 돌연 자기 성찰에 빠지기까지 했다.

녀석이 이토록 딴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 수혁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미 수혁은 환자의 병이 무엇인지 알아내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어떤 치료를 해야 할지도 파악해 낸 후였다.

게다가 다 아는 사안 가지고 모르는 사람 조지는 건 이제 거의 전문이지 않던가.

타고난 성정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노상 보고 배운 사람이 이현종이었다.

바루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일단 질환에 대해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설명을 좀 해 드릴까요?”

“아……. 네.”

우선 전문의가 또 다른 전문의에게 하기엔 꽤 실례되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알 막툼은 그에 대해 딱히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진짜 모르는데 어쩐단 말인가.

전문직일수록 지식의 격차는 곧 힘의 차이로 인식되기 마련이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서로의 계급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뇌성 염분 소실 증후군 또한 결핵성 뇌수막염에서 충분히 같이 나타날 수 있는 질환입니다.”

“그…… 그렇군요.”

“부적절항이뇨호르몬분비증후군과의 차이점은 아주 명확합니다. 이 질환이 저나트륨혈증을 나타내는 기전은 항이뇨호르몬이 과다하게 일어나면서 체내에 수분이 쌓이게 되죠. 반대로 뇌성 염분 소실 증후군은 나트륨이뇨펩티드(Natriuretic peptide)가 과도하게 혈중에 쌓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을 의미합니다.”

“나트륨이뇨펩티드…….”

“처음 듣는 건 아니죠?

“아, 네. 알죠, 이건.”

나트륨이뇨펩티드란 말 그대로 아주 강력한 이뇨 작용, 즉 소변을 많이 보게 만드는 성질을 지닌 펩티드라고 보면 되었다.

이게 농도가 올라가게 되면 이차적으로 신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분비가 저하되고 동시에 항이뇨호르몬의 분비 또한 된다.

말하자면 지금 알 막툼이 생각하고 있는 진단과 전혀 정반대되는 질환이라고 보면 되었다.

“따라서……. 신장을 통한 나트륨과 수분의 배설이 증가하게 됩니다. 나트륨의 분비가 더 많기 때문에 저나트륨 혈증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이 질환만으로도 이미 저혈량증이 올 수 있는데……. 지금 선생님은 거기에 더해 수분을 제한하고 또 이뇨제까지 줬죠. 그래서 환자가 더 안 좋아진 겁니다.”

진단이 잘못되면 치료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었다.

그나마 비슷한 방향의 산으로 가면 다행인데, 지금처럼 정반대로 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럴 경우 치료는 치료가 아니라 독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바로 이 환자가 그런 상황이었다.

“아……. 그럼…….”

“당장 이뇨제를 끊어야 합니다. 또한 식염수를 정주하세요. 풀 드랍 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알 막툼은 아주 기본도 안 된 내분비내과 의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도 수혁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오고 딱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고 있었다.

그는 즉시 수혁이 말한 처방을 따라 원래 하고 있던 치료를 중단했다.

일찍 진단했다면 이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호전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너무 많은 삽질을 했기에 바로 잡으려면 다른 것도 필요했다.

“그리고 플루드로코르티손(Fludrocortisone) 0.1mg부터 시작하시죠.”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플루드로코르티손이란 신장에서 나트륨의 재흡수를 돕는, 일종의 항이뇨 호르몬 보조제라고 보면 되었다.

즉 지금 이 환자에게 발생한 질환에 정확히 카운터 역할을 하는 치료제라 이 말이었다.

“지켜보도록 하죠. 아마 좋아지긴 할 텐데……. 저혈량증에 의한 머리나 기타 다른 손상이 없었길 바라야겠군요.”

“그…….”

“너무 죄책감 갖진 마시고요. 모르고 한 일이니까요.”

“저는 의사지 않습니까.”

“그건…….”

수혁은 늘 그러하듯 아니, 이현종이 그러한 것처럼 지금까지 싹 팩트로 조져 놓고는 마지막에 위로의 말을 건넸다.

물론 원래 잘 안 건네는 편이라 잘하지는 못했다.

대신 나선 것은 뜻밖에 김다현이었다.

“자, 이래서 우리 태화가 두바이에 진출한 겁니다. 앞으로 더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보다 체계적인 교육과 수련 환경을 갖추게 될 테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 그렇군요. 네, 원래도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제 더더욱 그렇습니다. 레지던트…… 맞나요?”

“네.”

“허…….”

김다현은 굳이 수혁은 태화에서도 아니, 대한민국 전체에서도 특출난 사람이라는 걸 밝히진 않았다.

말을 안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정도는 알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로 인해 태화에 환상을 갖게 된다면 그것 또한 좋은 일이었다.

태화-두바이 병원이 어디에 더 이득이 될지에 대해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줄다리기와 같은 협상도 달라지지 않겠는가.

‘가서 태화에 대해 좋게 말해. 반드시 잡아야 되는 동아줄이라고.’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