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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77화 (277/1,303)

277화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까? (3)

“저는 그럼 여기 남아서 환자를 좀 보고 있겠습니다.”

17세 남자 환자를 보고 나자, 나머지 중환자실 투어는 싱겁게 끝이 났다.

애초에 도면을 통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있어서도 그랬고.

김다현으로서는 이미 아주 강한 카드를 쥐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도 그랬다.

해서 다 같이 나가려고 했더니, 알 막툼만은 고개를 내저었다.

“시간 오래 안 걸릴 텐데, 같이 가시지 왜요.”

“아닙니다. 이게…… 환자를 아예 잘못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무겁네요. 상태를 좀 봐야 될 거 같습니다.”

“그래도…….”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의사들이 왜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겠는가.

그건 환자를 살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고 동시에 그로 인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단 내과 의사뿐 아니라, 다른 의사들도 그럴진대.

중환자실까지 내려와서 자기 환자를 살피는 교수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이건 김다현이나 다른 회사원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마음이기도 했다.

해서 장강명이 대신 나서 주었다.

“알겠습니다, 교수님. 환자 위하는 마음이 정말 대단하시군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의사라……. 제 환자 잘못 가고 있을 때 심정을 아주 잘 알죠.”

“네. 그럼…….”

장강명은 그렇게 알 막툼 교수와 일별하고는 김다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예상대로 김다현은 조금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이 아주 바쁘면 몰라도 이제부터는 그냥 환자가 어찌 되나 기다리는 거 아니던가.

그렇다면 밥 먹을 시간은 있지 않나 싶은 게 상식일 거 같았다.

“이사님. 원래 의사들이 그렇습니다. 지금 뭐 먹어도 넘어가지도 않을 거예요.”

“그래서 밥도 안 먹는다고요? 나는 이쪽에서 꽤 중요한 사람인데.”

“대충 때우긴 하겠죠.”

“음…….”

“합리적이진 않은 행동이란 건 저도 압니다. 오히려 그 시간에 좀 쉬고 밥 먹는 게 이따 환자 볼 때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적어도 내과 의사를 오래 할 수는 없어요.”

“전문가로서의 소양 같은 거다, 이 말인가요?”

“어떻게 보면 그렇습니다. 네.”

전문가로서의 소양이다라.

그렇다면 인정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문가가 왜 전문가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걸 알고 있어서 그렇게 대우를 해 주는 것이었다.

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이미 전자에서 여러 박사들과 일하면서 느낀 바도 있었으니까.

“그럼 가시죠.”

“네, 이사님.”

게다가 이왕 자신의 몸을 맡길 거라면 저런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마음이 좋을 거 같았다.

너무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환자의 생사 또는 삶의 질에 관여하는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의사가 좋지 않겠는가.

해서 김다현은 별 망설임 없이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식당으로 출발하지는 않았다.

2조 또한 주요 인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그들을 기다려야 했다.

“식당은 어디로 예약했지?”

김다현의 말에 현지 직원이 나섰다.

“네, 버즈 알 아랍의 식당으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괜히 비싼 곳으로 가는 거 아닌가? 거리도 꽤 되는 거로 아는데.”

“버즈 알 아랍 이사회 임원 중 하나가 최근 태화 의료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초청 건이라고 생각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런 일이 있었나?”

“네. 사장님.”

“쓸데없이 회삿돈 낭비하는 건 질색인데……. 그러면 별문제는 없겠네.”

“그럼 계획대로 진행해도 될까요?”

“그렇게 하죠.”

중동의 VIP, 그러니까 오일 머니 만지는 사람치고 자기 나라에서 중요한 치료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면 되었다.

심지어 반미 단체, 즉 테러 단체에 후원하는 사람들마저도 정작 치료는 미국에서 받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즉 세계 각국에 있는 최고의 의료 기관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긴데, 그중에서도 유독 간 이식에 대해서는 한국이 초강세를 보이고 있었다.

바로 태화 의료원에 있는 김승규 교수 덕이었다.

‘드문 일은 아니지.’

그 덕에 중동 지역 투자가 수월해졌던 경험이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바루다의 실패 때문에 바이오·의료에 관한 관심이 소원해진 이유원 태화 전자 사장도 아예 접을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김다현뿐만 아니라 절대다수의 임원진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태화 의료원에서의 VIP 진료를 꼽았다.

“버즈 알 아랍……?”

[어휴, 혼잣말하지 말라니까.]

그 와중에 뒤로 살짝 빠져 있던 수혁이 저도 모르게 그에게는 생소한 단어를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김다현 같은 사람 입에서 비싸단 얘기가 나온단 말인가.

바루다의 타박이 예상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주체하지 못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래, 빨리 고개 숙이고 빠져요.]

물론 계속 종알대지는 못했다.

그 또한 눈치는 있는 사람이니까.

실제로 이런 자리에서 아랫사람이 함부로 입 여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많기도 하고.

하지만 김다현에게 이수혁은 원래도 은인이었고, 이제는 황금열쇠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해서 뭘 해도 좋게 보이는 마당이었다.

“아, 이수혁 선생은 모를 수도 있겠네. 어차피……. 시간도 있으니까 설명 좀 해 주지? 나도 자세히는 몰라.”

그리고 김다현의 호의는 그대로 바루다의 레이더망에 걸렸다.

[확실히 수혁에게는 진짜 잘해 주네요. 잘해 줄 때 잘합시다. 직원 설명이 재미없어도 호응하자고.]

‘알았어.’

덕분에 수혁은 심기일전하고 직원의 말에 집중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직원은 아주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직원이 이러한 특혜를 처음 보았다면 아마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1조에 배정될 때부터 어느 정도 수혁의 신분을 가늠하고 있던 참이지 않은가.

심지어 오는 비행기 편에서 김다현 사장의 옆에 앉았다는 얘기까지 전해 들은 마당이었다.

‘어쩌면 로열패밀리일지도 몰라. 아니지. 로열패밀리겠지.’

완전히 오해이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직원은 아주 공손한 태도로 수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사장님.”

[또 사장님이라고 하네?]

물론 중간에 조금 이상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에 수혁은 직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적당히 반응도 해 가면서였다.

“버즈 알 아랍은 주메이라 해변 근처에 세워진 호텔입니다. 아랍의 탑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상징적인 건물이기도 합니다.”

“미션 임파서블에서 나왔던 건가요?”

“아……. 아뇨. 그건 부르즈 할리파입니다. 태화 물산에서 지었죠.”

“다른 거구나. 네. 죄송해요.”

세상에 죄송하다니.

재벌가 자제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어느 그룹 사람들은 쌍욕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비행기도 돌린다던데.

역시 태화에 몸담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직원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충분히 헷갈리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버즈 알 아랍은 7성급 호텔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주 고급 호텔입니다. 물론 분류상 5성까지밖에 없기는 합니다만……. 안에 가 보시면 정말 놀랄 겁니다. 오늘 가실 레스토랑은 알 마하라인데, 안에 수족관이 있어 보시는 재미도 있을 겁니다.”

“오……. 수족관…….”

그러는 사이 2조의 투어도 끝나서, 다들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김다현은 시간 낭비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실제로 시간이 많지도 않은 마당이라 서둘러 식당으로 가기를 원했다.

“음, 그럼 갈까. 설명은 가면서 하지.”

“아, 네.”

해서 직원은 설명을 잠시 멈추고 1층 로비로 향했다.

로비 앞에는 커다란 밴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맨 앞에는 세단이 있었다.

김다현이 탈 차인 듯했다.

[롤스로이스 아니에요, 저거?]

‘모르지 나야. 면허도 없는데 차를 어떻게 알아.’

[면허가 없어도 저건 기억하고 있어야 되지 않나?]

‘아니, 너는 내가 기억 못 하는 걸 왜 알고 있는 거야.’

[전에 드라마였나 유튜브였나……. 하여간 보면서 엄청 부러워한 주제에…….]

‘몰라, 나는.’

수혁과 바루다가 투닥대는 사이, 김다현은 롤스로이스 팬텀을 타고 저 멀리 사라져 갔다.

수혁은 그 뒤에 있던 밴에 올랐는데, 역시나 김다현이 붙여 준 김 비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제 손 잡고 올라오시죠.”

“아, 네.”

아무리 다리가 불편한 수혁에 대한 배려라고 하지만.

이건 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장강명이야 병원 사람이니 제낄 수 있다손 쳐도, 이 자리에는 남지연도 있지 않은가.

남지연이 아마도 차기 태화 생명 사장이 될 거란 소문은 이미 병원 바닥에도 파다하게 나 있는 마당이었다.

헌데 그런 남지연은 비서를 따로 대동하지 않은 자리에 수혁에게는 비서를 붙여줘?

‘암만 봐도 이상한데 이거…….’

장강명은 공항에 도착하고부터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아래턱을 쓸어내리면서였는데, 어찌나 노골적이었는지 밴에 타고 있는 모두가 그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아차릴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바로 옆자리에 앉은 남지연은 더더욱 그러했다.

‘뭐……. 태화 생명 사장이 되면 앞으로 벌일 사업 중에 제일 큰 게 태화 의료원이겠지.’

보험 또한 돈줄이기는 했지만.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른 시장이기도 했다.

여기에 기업의 미래를 두는 건 좀 미련한 짓이었다.

해서 현 검진센터장이자, 아마도 앞으로도 센터장을 맡아 줄 장강명에게 좀 더 신경 쓰기로 작정했다.

[남 사장, 나는 이수혁 확인하는 건하고……. 두바이 협상 건으로 정신없을 테니까. 나머지 병원 사람들 챙기는 거 좀 부탁할게.]

김다현의 말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장 센터장님. 무슨 생각 하시길래……. 그렇게 얼굴이 어둡습니까?”

“네? 아, 아뇨. 생각은…….”

장강명은 뜨끔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엄청 머리를 굴리던 와중에 들어온 질문이라 그랬다.

본래 태화 생명 사장쯤 되면 원장이나 돼야 소통을 하지, 센터장하고는 말도 잘 섞지 않는 편이라 더더욱 그랬다.

“말씀해 보시죠. 이제 같이 일할 식구인데요. 검진센터……. 새로 지으면 아무래도 태화 의료원의 중점 센터가 되지 않겠어요? 서로 더 친하게 지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만.”

“아……. 네. 그렇죠.”

헌데 그 사장이 먼저 말을 걸어왔으니 이 어찌 황송하다 아니할 텐가.

장강명은 최대한 밝은 미소를 띤 채 다시금 고민에 빠졌다.

‘물어봐? 말어?’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시간을 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남지연 사장이 뻔히 눈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외면할 만큼 간이 크지는 못했다.

“그…… 궁금한 게 있어서 말입니다.”

또한 학자답게 궁금한 건 못 참는 성미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설마 무례하다고 센터장에서 자르기야 하겠냐.’

또 의료원 내의 인사에 관해서는 어지간하면 생명에서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도 염두에 두었다.

누군가를 뽑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병원 내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내치는 일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해도 좋았다.

“네, 말씀하시죠.”

“이수혁 선생……. 어째서 저렇게까지 대우를 해 주는 건가요? 비행기 표부터…… 비서도 붙여 주시고, 아까 중환자실에서 보니까 이미 협진 요청할 것을 미리 말한 거 같던데요. 복안이 있는 겁니까?”

“음.”

남지연은 장강명뿐 아니라 밴에 있는 모두, 그러니까 수혁 또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며 침음했다.

‘적당히 때 봐서 흘리라고 하셨지? 어차피 합격은 했고 말야.’

어떤 얘기를 할까를 고민하는 건 아니었다.

정해진 얘기를 어떻게 꺼낼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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