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 통합진료센터 (2)
센터장에 있는 동안 이수혁을 지지해라.
다시 말하면 너 센터장 계속하고 싶으면 입장을 분명히 밝혀라, 근데 그 입장은 우리가 정했다 이 말이었다.
“허.”
장강명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반발이 있을지 딱 얘기를 듣자마자 알겠지 않은가.
근데 그걸 무마하라니.
‘설마……. 이번에 동반하는 사람들이 좀 바뀌었던 게…….’
주로 센터장 또는 과장들 중심으로 바뀌지 않았던가.
조금씩 지시가 내려왔던 것이고, 또 합당한 이유들이 있어서 그냥 그런갑다 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었다.
그만큼 두바이행에 위에서도 무게를 두고 있다는 소리가 되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또 다른 꿍꿍이도 있던 모양이었다.
‘아니……. 이수혁 선생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밀어주려는 거야.’
설마 센터장을 떡하니 시킬 작정인가 하는 생각마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센터장인가…….]
‘모든 진료를 다 볼 수 있게 된다고……?’
[미리미리 공부하길 잘했네요. 아니지. 더 공부해야겠네. 소아도 잘 모르고, 외과 계열은 진짜 모르잖아요.]
‘설마 무슨 수술해야 되는지 묻지는 않지 않겠냐?’
[모를 일이죠.]
‘하.’
바루다나 수혁 또한 들뜨다가 또 마냥 그러지는 못하고 있었다.
워낙 큰일이지 않은가.
원래 본인 예상이나 그릇을 넘어가는 일이 벌어지면, 그게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덮어놓고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남지연 또한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남지연뿐 아니라 김다현이나 이현종도 잘 알고 있었다.
수혁은 그 실력이 어떠한지 여부를 떠나 너무 어렸다.
“센터장은…… 이현종 원장이 맡게 됩니다. 석좌 교수시니, 이수혁 선생이 충분히 경력이 쌓일 때까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원장님이? 그럼 원장직은 유임이 안 되는 겁니까?”
“네.”
“혹…….”
“아직 내정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현종 원장께서 워낙에 잘하고 내려오시는 거니……. 그분 뜻에 무게를 두려고 합니다.”
“하.”
그 말은 곧 현 내과 과장이자, 이현종의 의형제라고 해도 좋을 신현태가 원장이 될 거라 이 말이었다.
‘내과에서 또 원장직을 가져간다……. 다른 과에서 가만히 있으려나……. 너무 내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좋은 일이긴 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라, 내과 출신 원장이 있으면 연구비라도 좀 더 챙겨 주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다른 과에서 불만이 가득할 수 있었다.
특히 주요 과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원장을 배출하지 못한 과들은 더더욱 그럴 터였다.
“뭐,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김 사장님, 능력 있는 분이에요. 절대 휘둘리지 않으실 겁니다.”
“아…….”
“그리고 장 교수님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기도 하죠. 그렇죠?”
“아, 네. 그렇…… 그렇습니다.”
남지연은 장강명의 어두워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일침을 가했다.
인사에 대한 전권은 이사장 즉 자신과 그 윗선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 말이었다.
장강명으로서는 조금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태화는 엄연한 기업 병원인데.
의사는 사실상 피고용인으로서 환자만 제 뜻대로 볼 수 있게 해 주면 불만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중론이기도 했다.
게다가 태화는 어느 정도 심평원에 인한 삭감을 눈감아 주는 편이기도 하지 않은가.
이만하면 윗선도 할 만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네, 아무튼……. 그렇게 알고 계시죠.”
“네.”
장강명은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서 뭐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괜히 여러 소리 했다가 심기를 거슬렸다간 좋을 일이 하나 없었다.
게다가 엄밀히 따지고 보면 장강명에게는 손해 될 일이 없지 않은가.
물론 이로써 수혁을 밑으로 둘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가 된 셈이긴 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좋았다.
“저, 근데. 남지연…… 사장님?”
침묵 속에 입을 연 것은 수혁이었다.
남지연은 수혁에게만큼은 자격이 있다고 보았기에 담담하게 대화를 받아 주었다.
“네, 이수혁 선생.”
“그……. 그럼 저 내년에 분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통합의료센터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나요?”
“네, 그렇습니다. 이현종 원장님 말씀이 어느 분과에 들어가도 다른 분과에서 불만을 품을 거라고 하더군요. 농담으로 여기기엔 너무 진지했고, 저희가 따로 알아본 바에 따라도……. 그렇더군요. 장 센터장님도 이수혁 선생을 영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아도 품속에 수혁이 꼬시려고 가져온 법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장강명은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시커먼 속이 다 내비치는데 이러고 있으니 남지연에게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아니, 그건…….”
“어차피 무위로 돌아갔으니 무슨 말이 돌아도 관계없지 않을까요?”
“아, 네. 뭐…….”
남지연은 그렇게 장강명을 다시 침묵 상태로 되돌린 후,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까 하던 말을 계속 이어서 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아닙니다. 일개 펠로우가 어떻게 될지를 저희가 신경 쓸 이유는 없죠.”
“아…….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어떻게…….”
“지금까지 보여 준 천재성에 대한 저희의 평가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군요. 건강검진센터였던 만큼 신설되는 통합진료센터에는 각종 검사 장비는 물론이고, 그 장비에 숙달된 인원들도 딸려 있게 될 겁니다. 수혁은 그저 각 과에서 제대로 된 진단을 붙이지 못한 지 일주일이 넘었거나, 또는 기간과 관계없이 환자 상태가 좋지 못한데 진단을 붙이지 못한 환자들을 보면 됩니다.”
“아……. 그건…….”
“부담스럽습니까?”
부담이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말일 터였다.
통합진료센터라고만 들었을 때는 뭐 하는 데인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병원 전체의 해결사 노릇을 하라는 얘기 아니던가.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 오지 않았나요?]
‘그거야……. 내가 알아서, 골라서 한 거지. 이렇게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
[그 뭐더라.]
바루다는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수혁을 향해 옛 속담 하나를 던졌다.
[멍석 깔아 주면 오히려 못한다더니, 그런 사람입니까?]
‘아니, 아니. 그렇지는 않지. 내가 못 할 거 같냐?’
그리고 수혁은 바루다의 예상대로 발끈하고 나섰다.
그저 뺀질거리거나 얄밉게 놀리는 것만 할 줄 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바루다가 제일 깊숙이 분석하고 또 파악한 인간은 다름 아닌 수혁이지 않겠는가.
원한다면 이런 식으로 조종하는 것 또한 충분히 가능했다.
[바루다는 진단, 치료 목적의 A.I.입니다. 그 대상이 되는 질환에 제한은 없습니다. 범위가 넓어졌다면 오히려 환영해야 할 일입니다.]
‘그야……. 그렇네. 음.’
[빨리 웃으면서 고개 끄덕이십시오. 슬슬 이상하게 여길 만한 시간입니다.]
‘아, 알았어.’
해서 수혁은 바루다에게 홀딱 넘어간 채로 남지연의 말에 답해 주었다.
“아뇨, 오히려 기대됩니다. 제가 바라던……. 진료 행태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이현종 원장님이 공공연히 아들이라고 얘기할 만하군요.”
“네?”
“저희에게도 이수혁 선생은 딱 이렇게 말할 거라고 하셨거든요. 거의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좀 놀랐습니다.”
“아…….”
남지연은 수혁이 이현종의 친아들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둘이 마치 부자지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닮아 있었고, 또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그사이 차량은 당연히 멈춰 있지 않았다.
부지런히 달려 아까 말했던 주메이라 해변에 위치한 버즈 알 아랍 호텔 앞에 들어서고 있었다.
“와…….”
그와 동시에 여러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있어서는 안 될 건축물이 험악한 자연에 떡하니 박혀 있는 느낌이었다.
도시 전체가 인공 도시라고 하더니만,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비현실감에서 오는 아름다움은 자연스러움에서 오는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덜컥.
놀라지 않고 있던 것은 김 비서 하나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럭셔리 매장은 다 가 본 남지연 사장마저 놀라고 있는 가운데, 김 비서만은 문을 열고 수혁을 부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네.”
“조심하십쇼. 턱이 있지는 않지만…….”
“감사합니다.”
“네.”
김 비서는 이제 더는 감사 인사를 외면하지 않았다.
사람에 따라 이 말을 꼭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김 비서는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모실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다.
기왕이면 수혁 같은 사람이 좋았다.
“와.”
[미쳤네. 이게 호텔입니까?]
안은 밖보다 배는 더 화려했다.
사방에 금박 장식과 요란한 바닥 장식에 벽들까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우리 호텔이 진짜 좋은 데인 줄 알았는데.’
[여긴 아예 차원이 다르군요.]
‘너무 화려해서 엄두도 안 난다.’
[저도 그렇습니다.]
다행이게도 둘은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의사가 이만한 곳에 드나들 만큼의 부를 탐낸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감방에 가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해서였다.
“이쪽입니다.”
직원은 그래도 제법 와 본 적이 있는지 능숙하게 길을 따라 걸었다.
덕분에 남지연도 장강명도 수혁도 뒤꽁무니를 쫓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염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직원에게 한 소리 들었을 거 같았다.
“야, 씨.”
그렇다고 해서 감탄이 수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알 마하라라는 이름의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을 지경이었다.
식당 가운데에 위치한 수족관은 그냥 그 자체로 하나의 아쿠아리움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수족관으로 가기 위해 통과한 동굴 같은 구조물마저 화려함의 극치였다.
“진짜 금입니다.”
“네?”
“네, 진짜로.”
금으로 된 동굴이라니.
수혁은 이제 발걸음마저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랬다면 촌스럽다 얘기를 들었겠지만, 장강명도 적극 동참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저쪽에 계시는군요.”
일행이 안내받은 곳은 방이었다.
수족관이 내려다보이는 구조를 하고 있었는데, 김다현은 그곳에 아주 자연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미 다 놀라서 그런지, 아니면 신분에 맞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사장님, 오면서 대강 말씀 드렸습니다.”
남지연은 부리나케 표정 관리를 하며 김다현 옆에 앉아 차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알려 주었다.
그러자 김다현은 미미한 미소를 띤 채 수혁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여기 앉죠. 부센터장님.”
“아……. 네.”
센터가 생기는 것부터, 그 센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리고 거기서 수혁의 위치가 어떤지까지 다 알게 된 순간이었다.
[미쳤다.]
‘미쳤다.’
당연히 표정 관리가 잘 안 되었는데, 그 공간이 여기라 티가 덜 났다.
다들 화려한 인테리어에 눈을 빼앗겼으니까.
그렇지 않은 건 김다현뿐이었다.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기대를 하고 있네. 그릇이 큰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