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80화 (280/1,303)

280화 통합진료센터 (3)

그날 이후 김다현을 두바이에서는 볼 수 없었다.

병원 투어가 끝나기가 무섭게 더 높은 이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태화 생명 측 인원들 또한 대부분 그랬는데, 병원에서 온 이들에게는 그때부터가 오히려 제대로 된 병원 견학의 시작이었다.

“자……. 각 과별로 흩어질 겁니다. 현지에 계시는 우리 태화 의료원 파견 선생님들하고 이곳 선생님들이 자율적으로 일정을 짜 놓으셨다고 하니, 앞으로 3일간 알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단 병원 컨퍼런스는 필참입니다. 또한 이곳과 대한민국의 질환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통계 꼭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곧 검진센터장을 맡고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끗발 날리는 사람인 장강명이 전체 장이 되어 일을 진행하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네, 교수님.”

“네, 이따 뵙겠습니다.”

“저녁은 같이하는 거죠?”

그 말을 들은 각 과 과장들이나 교수들은 각자의 과로 흩어졌다.

이미 1차 병원 투어에서 각 과의 위치 정도는 파악해 둔 참이었고, 또 동시에 현지에 파견된 태화 소속 의료진들과 번호도 교환해 준 상태였기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불과 5분도 안 되어서 로비에는 내과 인원만 남게 되었다.

‘이런 제길.’

분명 자기 말을 다 잘 듣고 있는데도 장강명의 얼굴엔 불만이 떠올랐다.

아니, 불만이라기보다는 걱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드드득.

괜히 품 안에 넣어 둔 법인 카드를 긁어 보았지만 당연하게도 마음이 풀리진 않았다.

‘시간 좀 비워 두라고 했는데……. 괜히 그랬잖아.’

내과 사정에 대해서는 사실 별로 모르는 것이 없었다.

가장 큰 과이면서 동시에 태화에서 주축으로 미는 과이기도 하지 않던가.

다른 대학 병원에서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지원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 태화는 어찌 되었건 바루다 개발이 될 때까지는 전폭적으로 지원해 준 덕에 사람도 참 많이 뽑았더랬다.

그게 잉여 인력이 될 찰나, 그러니까 대량 해고로 이어지기 직전에 이현종이 기지를 발휘하여 이쪽으로 대거 파견시킨 바 있었다.

그 말은 곧 다른 모든 과 중 내과가 이쪽과 교류가 제일 활발하다 이 말이었다.

‘이거 뭐 이제 와서 커피 사 준다고 하기도 뭐 하고…….’

장강명은 수혁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말이 딱 이때 쓰는 말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두바이에서 꼬실 생각으로 얼마나 이날을 벼르고 또 별러 왔는데.

저 아득히도 높은 곳에서 꼭 집어서 수혁을 뽑아낼 줄이야.

그것도 장강명은 아니, 병원 내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약속할 수 없는 높은 자리를 주면서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저, 교수님? 사실 오늘 오후는 일정이 비어 있는데요.”

장강명이 이런저런 생각에 아무것도 안 하고 우두커니 서 있자, 현장에 나와 있던 교수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직함은 교수였지만 애초에 장강명에게 내시경 배워서 이쪽으로 온 제자였기에 정말이지 굽신거린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음. 음…….”

“해산하실까요? 비행 오래 하셔서 피곤하실 것도 같은데.”

생각 같아서는 진짜 해산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마 전체를 이끌어야 하는 입장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그랬을 터였다.

지금 장강명을 바라보고 있는 열 명 남짓한 인원들 중 대부분이 그걸 바라고 있을 수도 있었고.

하지만 하고 싶다고 마냥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라면, 또 남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자리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내가 여기서 해산시키면 다른 과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다른 과 사람들한테는 가서 열심히 보고 보완할 거 찾아서 협력안을 반드시 제출하라고 한 주제에 나는 놀아?

이현종처럼 뭐 절대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의 위업을 달성했다면 모를까.

아직 장강명은 그런 급은 못 되는 양반이었다.

“아냐, 아냐. 가자.”

“어딜…… 요?”

“어디긴 어디야. 회의실이지. 나랑만 소통했잖아. 그 자료 다 공유해. 각 분과장님들 계시잖아.”

“아……. 아,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전에 얘기된 바는 아니었지만, 지시를 받은 교수는 별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야는 이제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의사들은 여전히 상명하복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었다.

‘하씨……. 그냥 엑셀 파일 띄워야 되나?’

속으로는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현장에 파견되어 있던 교수, 안치현은 우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 뒤를 장강명 그리고 이수혁 등등이 따랐다.

인원들 중에는 내분비내과, 알레르기내과, 류마티스내과, 신장내과 등 여러 분과 의사들과 내과 병원의 수간호사들이 끼어 있었다.

그 면면들을 보다 보니 안치현의 마음은 더더욱 어두워졌다.

특히 류마티스 김문제 교수가 제일 걸렸다.

‘오죽하면 부모가 이름을 문제라고 지었겠어…….’

류마티스내과 하면 뭔가 딱 느낌이 오지 않는가.

왠지 현대적인 질환을 다룰 거 같은 그런 느낌.

실제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자가면역질환 등을 다루는 분과인데도 불구하고 펠로우는 늘 미달이거나 겨우 채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게 다 저 사람 때문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아마 병원 내부인들이라면 절대 과장은 아니라고 해 줄 것이었다.

‘엑셀 보면 발작할 거 같은데.’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어차피 저 인간이 두바이로 올 가능성은 없으니, 있는 동안만 좀 까인다고 생각하기로 작정했다.

아무리 성질이 더러운 인간이라고 한들 설마하니 이제 자신도 교순데 선을 넘을까 싶기도 했다.

‘아, 짜증 나네.’

그건 오산이었다.

애초에 김문제 교수는 기분이 좋지 못했다.

수혁 때문이었다.

‘저 새파랗게 어린놈이……. 뭐? 모든 과의 협진을 보는 통합진료센터의 부센터장을 해? 다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나름 똑똑한 놈이라는 것 정도는 듣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똑똑해 봐야 사람 아닌가.

병원에 괜히 제일 똑똑한 1년 차보다 제일 멍청한 2년 차가 환자 더 잘 본다는 말이 있겠는가.

의학이라는 건 양이 너무 방대할뿐더러 제대로 배우려면 반드시 먼저 그 길을 가본 사람의 가르침이 필요한 학문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 순서를 뒤집으려는 놈이 한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는 것이, 심지어 자신마저도 뒤집으려고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똑똑.

안치현은 그러한 배경은 전혀 모른 채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아무도 없겠지 하면서였는데, 의외로 안에 사람이 있었다.

“들어오세요.”

“네, 응?”

생각해 보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일정이 없다고 생각했으니 예약할 일도 없지 않았겠는가.

빈 회의실을 그냥 놔두는 대신 누군가 예약을 한 모양이었다.

“뭐야?”

당연하게도 김문제 교수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보직이야 장강명과 비교하면 좀 처지는 편이지만 연차는 비슷하기에 장강명이라 해도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김문제는 실력은 있어서 서효석까지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내과의 우환 중 하나였다.

상대하기 만만한 사람이 아니란 얘기였다.

“아니, 저…….”

“회의실도 안 잡아 놓고 뭘 보여 주겠다는 거야? 내가 여기 뭐 놀러 온 줄 알아? 학회 휴가 대신 쓰고 온 거라고!”

“그…….”

삽시간에 복도가 소란스러워졌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은 병동 간호사들과 환자들의 이목이 확 하고 쏠렸다.

그뿐만 아니라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 또한 일부 밖으로 나왔다.

죄 외국인이었는데, 그걸 보고 나서야 김문제 교수의 성질 부림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아무튼 간에 여기가 외국이라는 것을 이제야 다시 인지한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죠? 닥터 안?”

그중 하나가 안치현을 향해 물었다.

태도는 상당히 공손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안치현 교수가 태화에서야 위치가 낮을 테지만 여기선 선생님 아닌가.

지금 말을 걸어온 의사도 다 안치현에게 내시경을 배운 사람이었다.

“아……. 그, 한국에서 온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죠?”

“네, 물론입니다. 근데 오늘은 일정이 없지 않았나요?”

“변경되어서요. 우리 병원 자료를 좀 보여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아니면 의국에서 해도 좋고요.”

“아.”

외국인 의사는 의국 상태를 떠올렸다.

태화 의료원에 비하면 당연히 시설이 더 좋았지만.

의국 더럽게 쓰는 건 만국 공통 아니던가.

거기보단 회의실이 나을 거 같았다.

다만 지금 진행 중인 컨퍼런스를 중단하기는 또 싫었다.

‘대한민국에서 왔다면……. 안치현 교수님의 스승들인가? 그럼 이것도 도움을 좀 주실 수 있을 거 같은데.’

마침 어려운 케이스를 두고 논의 중이지 않았던가.

시간을 두고 본다면 어떻게든 진단을 내릴 수도 있을 거 같긴 했지만.

그러다 환자를 잃을 수도 있어 보였다.

그것보다는 자존심을 내려두는 편이 좋았다.

더구나 그 상대가 한국인 의사라면 별로 거리낄 것도 없어 보였다.

“그럼 우선 들어오시죠. 케이스 컨퍼런스 중인데……. 태화 의료원 교수님들이 봐주시면 영광일 거 같습니다.”

“아……. 어떻게 할까요, 장 교수님. 김 교수님.”

안치현 또한 마침 잘 되었단 생각에 뒤를 돌아보았다.

케이스 컨퍼런스면 그래도 30분은 걸릴 것이고, 그 시간이면 엑셀 파일을 좀 더 그럴싸하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난 좋지.”

장강명이야 딱히 엑셀이고 나발이고 관심도 없는 상황 아닌가.

뭐라도 시간 때울 게 생겼다면, 그게 그럴싸한 용무라면 마냥 좋았다.

“그래, 뭐. 가 봐.”

김문제 교수 또한 무슨 꿍꿍이인지 넙죽 고개를 끄덕였다.

안치현으로서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에 감사하다고 한 후, 안으로 들어섰다.

‘음, 꽤 크네?’

[그러게요.]

회의실 안에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앉아 있었다.

거의 열 명도 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들어온 인원 모두가 자리에 앉고도 공간이 남았다.

돈이 많아서 그런 건지 뭔지 모든 공간을 널찍하게 쓰는 모양이었다.

‘무슨 케이스야?’

[하던 도중이라 잘 모르겠네요.]

바루다의 말대로 화면에 뜬 자료는 어떤 혈액 검사였다.

이런저런 설명도 없이 띨룽 혈액만 떠 있다 보니 당최 뭔지 알기 어려웠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백혈구 중 호중구가 증가해 있다는 점, 그리고 빈혈이 동반되었다는 점에 더불어 급성 염증 지표라 할 수 있는 CRP가 크게 증가해 있다는 점 정도였다.

‘감염인가?’

[저것만 보면 그런데…….]

다행히 발표자는 새로 들어온 이들을 배려하여 파일을 앞으로 돌렸다.

제목은 ‘6주 전부터 발생한 발열을 주된 호소 증상으로 내원한 환자’였다.

‘6주……. 긴데?’

[단순 감염은 아닐 가능성이 있겠군요?]

이런 생각은 비단 수혁만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옆자리에 굳이 비집고 앉은 김문제 교수도 그러했다.

그는 수혁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무슨 케이스인지 아직 모르는 거죠?”

“아, 네. 그렇습니다.”

“잘됐네. 여기 이수혁이라고 우리 미래의 부센터장님이 계신데……. 어디 얼마나 어려운 케이스인지 봅시다. 뭐, 내가 알 거 같으면 내가 알려 드릴 수도 있고.”

대놓고 도전하겠다 이거였다.

수혁이 일반적인 레지던트였다면 쫄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이현종을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미쳤나?]

‘정 원하면 망신시켜 드려야지 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