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82화 (282/1,303)

282화 갑자기 승부? (2)

사진 변화 양상을 보아하니, 폐부종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얼마든지 그렇게 보이는 양상이었다.

덕분에 발표자를 비롯한 현지 의사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고.

김문제 교수의 얼굴은 아예 흙빛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니지, 아냐. 폐부종이라고 해 봐야…….’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아주 큰 일은 아니었다.

폐부종이라는 것 또한 엄청나게 큰 덩어리 아니던가.

그거 하나 떠올린다고 해서 올바른 진단명을 떠올릴 수 있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감염병 말고 또 다른 질환명들을 생각해야 하게 되었으니 더 골머리가 아플 수 있었다.

‘루푸스는 아닌 거 같지만……. 확실히 자가면역질환 가능성이 있다, 이거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저걸 지금 말한 건 수혁의 악수 같았다.

세상에 자가면역질환이라니?

이거야말로 류마티스 내과 영역이고, 동시에 김문제 교수의 전문 영역 아니던가.

‘새끼……. 아직 어려서 사고가 좀 유연한 거 같긴 하다만…….’

참교육 시즌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김문제 교수만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수혁이 저 입만 좀 다물면 바로 추론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심도 섰다.

“아……. 폐부종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죠? 그럼 폐부종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진단명을 고려해 보죠. 아까 보니까 혈액 검사를 정말 많이 하셨던데, 화면 돌아갈 수 있습니까? 몇 가지 이상한 소견이 있었어요.”

“아, 네.”

그런데 수혁은 입을 다물기는커녕 오히려 발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김문제 교수가 초조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 잘 모를 때 슬라이드 이리저리 돌리면서 시간 끄는 거, 다들 한 번쯤은 해 본 짓 아니던가.

김문제 교수도 그런 적이 있었고, 눈앞에 있는 애송이 또한 다를 거 같진 않았다.

‘아까 얼마나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한다고? 말도 안 되지?’

한창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김문제 교수는 기억력이라면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제 와 아까 떠 있던 검사 결과를 나열해 보라고 한다면 단 하나도 자신이 없었다.

그만큼 한 바닥에 너무 많은 정보가 떠 있었다.

아마 발표자도 거기서 다 보여 줄 생각은 없지 않았나 싶을 지경이었다.

“네, 이 화면. 여기 보면 혈장 철분……. 그러니까 Ferritin 농도가 크게 증가해 있어요. 무려 54,394ng/ml군요. 불명열 환자에서 ferritin 농도가 500ng/ml를 넘어가는 경우에 의심해야 하는 질환이 있지 않습니까?”

“아.”

현지 의사들 중 일부가 그리고 장강명과 함께 온 태화 의료원 교수들 중 일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암만 생각해도 생각나는 질환이 없어서였다.

발표자와 김문제 교수 또한 비슷한 반응이었다.

수혁은 그런 둘을 번갈아 바라본 후, 말을 이었다.

“hemophagocytic lymphohistiocytosis(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죠. 다들 들어 보셨거나, 진료해 보신 경험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당히 먹이는 말투였다.

장강명은 그게 자신만의 착각은 아닐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몰래 켜 둔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니, 애초에 소아과 질환이지 않은가.

그것도 유병률이 무려 5만분의 1밖에 되지 않은 희귀 질환이었다.

따라서 이걸 당연히 알겠지?라고 하는 건, 넌 모르지?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음, 그렇지.”

수혁의 의도를 전혀 알 리 없는 김문제 교수는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그런 김문제 교수를 보며 간신히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좀 심한 거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속으로는 바루다에게 질문을 던져 가면서였다.

저쪽에야 이쪽에 원한이 있을 수도 있지만, 수혁은 전혀 그런 게 없지 않은가.

이런다고 마음이 바뀔 턱이 없는데 괜히 자극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아주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아까 김다현 사장의 말을 들었죠? 부센터장으로 오르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런데 수혁은 너무 어리죠. 아직 석사 과정에 있을 뿐이니……. 학사고요.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겁니다.]

‘센터장으로 아빠……. 아니, 원장님이 오시는 게 그런 거 막아 주려고 오시는 거 아냐?’

[차기 원장이 신현태로 내정되어 있으니 당분간은 그렇겠죠. 하지만 그것도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태화 의료원은 말 그대로 의료원이지 않습니까, 병원이 아니라. 교수들이 단체 행동에 나서면 곤란해지는 건 사측일 겁니다.]

‘하긴…….’

의사들은 자부심이 아주 강한 직종이지 않은가.

고작 수능 하나 잘 보고 들어가서 남들 다 하는 암기 과목 따라가서 딴 면허라고 폄훼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막상 해 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 공부나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떠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에 깊숙이 관여한다는 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었다.

그 부담감을 떨쳐 내기 위해선 평생 부단한 노력을 해야만 했다.

특히 대학병원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는데, 이게 내 몸을 맡길 의사라고만 생각하면 좋은 일이지만 고용주 입장에서 보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막말로 보이콧 해 보십쇼. 수혁의 백이 의심이 된다, 원장 아들이라 주는 특혜다 이러면서 해 버리면……. 타격은 사측이 입게 될걸요.]

‘그래서 지금 밟으라고?’

[적어도 실력 얘기는 아무도 못 하게 하시라 이거죠. 이것저것 의심은 할 수 있지만, 솔직히 아무도 모를 만한 질환 얘기를 계속하세요. 제가 봤을 때 이제 수혁의 실력이나 언변이 그 정도는 됩니다.]

‘알았어.’

듣고 보니 또 그럴싸하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하려던 말을 이어 나갔다.

시선은 당연하게도 김문제 교수를 향하고 있었다.

“네, 교수님. 그럼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의 진단 기준은 무엇이 있나요?”

방금 안다고 했으니까, 진단 기준도 알겠지? 하는 얼굴이었다.

‘혈, 뭐라고?’

김문제 교수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일단 낯선 질환이기도 하거니와, 그렇지 않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자주 보는 질환도 아닌데 어떤 미친놈이 진단 기준을 줄줄 외고 다닌단 말인가.

해서 잠시 망설이고 있으려니, 수혁이 재차 말을 이었다.

웃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죄송합니다. 진단 기준까지 외우고 다니시기는 어렵죠. 제가 대신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약하면 너는 못 외우지만 나는 외운다, 이 말이었다.

자연히 김문제 교수의 원망하는 눈빛이 수혁을 향했지만, 수혁은 여전히 웃었다.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 쫄면 뭐 한단 말인가.

게다가 솔직히 말하면 김문제 정도는 수혁을 쫄게 하기도 어려웠다.

단체 행동에 나섰다면 모를까, 김문제 개인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발열. 비장 비대, 혈구 결핍, 중성지방혈증 또는 피브리노겐의 감소, 골수 검사에서 탐식증의 관찰, NK cell(Natural killer cell, 자연살해세포)의 감소, CD25의 증가, 혈장 Ferritin의 증가 소견 중 5개 이상을 만족하면 진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원망하는 눈빛이 오래가지도 못했다.

복잡한 기준을 따박따박 말하고 있는데 어찌 노려볼 수 있단 말인가.

깡패들끼리의 난잡한 싸움이 아니라, 학자들의 승부였다.

잘 모르는 놈은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수혁은 저도 모르게 눈을 깔아 버린 김문제 교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환자는 발열 및 비장 비개, 혈장 ferritin의 증가는 있으나 나머지 소견은 불분명합니다. 마침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덕에 감별이 되는군요. 따라서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은 배제해도 되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그에 반해 발표자를 비롯한 현지 의사들은 이제 수혁만 보고 있었다.

둘 중 누가 더 지식이 많은지는 너무 명확해 보이지 않는가.

나이가 많고 적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의사였고, 누구라도 좋으니 이 어려운 환자를 고쳐 주길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Chest CT(흉부 CT)로 가 볼까요? 아까처럼 사진만 보여 주지 마시고……. 아예 환자 사진을 띄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능한가요?”

“아, 네. 감시만요.”

해서 발표자는 최선을 다해 수혁의 요구에 응했다.

그는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 입원해 있는 환자의 CT 사진을 띄웠다.

수혁은 그 사진을 바라보며 스크롤을 아래로 갈지, 위로 갈지를 지시했다.

그때마다 화면이 휙휙 바뀌었는데, 회의실 안에 있던 이들은 동시에 수혁의 해석 또한 들을 수 있었다.

“폐 양측에 음영이 뿌예져 있는 소견 즉, ground glass opacity(ggo)가 보입니다. 심낭에도 물이 조금 차 있고……. 경부 및 종격동 내에 임파선 종대도 다수 관찰되는군요.”

“아……. 네.”

아주 새로운 해석은 아니었지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해석이기도 했다.

방금 보여 준 모습 때문이기도 했고, 수혁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상 아픈 사람을 보는 직업이기는 해도.

의사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광경은 보기 드물지 않겠는가.

[진짜 잘하네.]

‘고치기도 어려운데 무기로라도 써야지.’

수혁은 자신의 약점을 이용해 주목을 끄는 것에 익숙한 편이었다.

“이럴 경우 역시 악성 종양을 의심해 봐야겠죠. 하지만 아까 시행한 골수 검사에서 이미 배제가 되었으니…….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김문제 교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생전 처음 듣는 질환을 언급해 가며 화려하게 발표를 이어 나가고는 있지만.

뭐가 되었건 아직 알맹이는 없지 않은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놈은 시간을 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문제 교수는 지금까지 다물고 있던 입을 마침내 열었다.

“잠깐, 잠깐.”

“네, 말씀하시죠.”

“지금 변죽만 울리고 제대로 된 진단명은 말 못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다 같이 고민할 수 있게 조용히 하는 게 좋지 않겠나?”

제 딴에는 나름 회심의 일격이라 생각하면서였다.

아닌 게 아니라, 김문제 교수는 이 말을 하면서 수혁의 표정 변화를 면밀하게 살폈다.

하지만 수혁은 마치 이 말을 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웃고 있었다.

“다음 스텝 또한 떠올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가 무슨 퀴즈쇼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 사고의 흐름을 듣다 보면 자연히 이분들의 진단 스킬 함양에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만……. 김문제 교수님 생각은 다른 모양이네요. 그럼 혹 의심하는 질환이 있으신가요?”

그리곤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나는 교육을 위해서 지금 떠들고 있는데 당신은 뭐냐, 뭐 거의 이런 말투였다.

기분이 확 잡쳤지만 그렇다고 뭐라 할 만한 말을 찾기는 어려웠다.

죄송해요 정도나 예상했지 역공을 해 올 것이란 생각은 못 했기 때문이었다.

“그…….”

해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후후 웃었다.

“없으시면 제가 계속해도 되겠죠? 김문제 교수님?”

꼬박꼬박 존대하는 게 도리어 더 먹이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타고났다니까요?]

바루다는 그런 수혁에게 바루다로서는 실로 드물게 칭찬을 해 댔다.

확실히 수혁은 이런 방면으로는 의학보다는 오히려 더 재능이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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