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84화 (284/1,303)

284화 갑자기 승부? (4)

성인 스틸씨병(Adult onset still‘s disease)이란 이름만 봐도 느낌이 딱 오겠지만, 스틸씨병과 유사한데 그 병과는 달리 성인에서 오는 병을 의미했다.

그냥 스틸씨병은 대개 소아에서 오는데 이건 30, 40대에 찾아오는 병이란 얘기였다.

재발이 잦아서 관리하기가 까다로운 질환인데, 처음 발병했을 때에는 의심하기 쉽지 않은 질환이기도 해서 환자가 급격히 위험해지는 질환이기도 했다.

실제로 지금 컨퍼런스에서 논의 중인 이 환자 또한 수혁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 또한 있었다.

“스테로이드…….”

치료 자체는 꽤 간단한 편이었다.

중증 환자에서는 스테로이드 또는 면역 글로불린을 혼용해서 쓰면 되었고,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진통소염제만으로도 관리가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주된 치료법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감염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데……. 게다가 결핵 환자와 접촉력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스테로이드는 면역 반응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약 아니던가.

정말로 성인 스틸씨병이라면 쓸데없는 면역 반응을 줄이는 것이니 대번에 치료 효과를 나타내겠지만.

만에 하나 결핵이라면 어떻게 될까.

온몸에 결핵이 번져 버리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다.

‘괜찮지?’

[스테로이드 달랑 주고 퇴원시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어차피 모니터링하게 될 테니……. 충분히 대응 가능합니다. 다행히 대한민국도 결핵 청정국가가 아니라 꽤 훈련받은 몸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사실 대한민국은 ‘결핵 청정 국가가 아닙니다’라는 조금은 나른한 말로 표현이 가능한 국가는 아니었다.

불과 20, 30년 전까지만 해도 결핵이 창궐해 심각한 공중보건 문제를 일으켰던 나라이지 않은가.

나이대가 좀 있는 사람이라면 크리스마스실을 사 본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결핵에 대한 치료를 공짜 또는 아주 저렴하게 할 수 있게 되면서 크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외국인 노동자, 관광객 그리고 해외 동포들의 유입을 통해 아예 사라지고 있지는 않은 실정이었다.

특히 대한민국은 약제 내성균 결핵이 상당히 많아서 본의 아니게 대한민국의 호흡기내과 의사들, 특히 결핵을 보는 의사들의 실력은 감히 세계 최고를 논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네, 괜찮아요. 제가 열흘 정도 더 있을 테니……. 그사이에 혹 결핵이 심해진다고 해도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아…….”

여기서 네가 뭔데 도움이 되냐 이따위 말이 나올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미 발표자를 비롯한 모든 현지 의사들은 수혁의 실력을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태화 의료원 측 사람들 또한 그러했다.

장강명같이 원래도 수혁에게 호의적이었던 사람들뿐 아니라,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던 이들조차 일정 부분 수혁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또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런 제기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건 오직 하나 김문제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입을 열 수 있을 만큼 염치가 없지는 않아서 대화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는 성인 스틸씨병이 확실합니다. 결핵이 동반되었을지 아닐지까지는 제가 확신할 수 없지만……. 환자가 성인 스틸씨병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모든 임상 증거가 그 병을 가리키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 그런 거 같습니다.”

아무래도 발표자는 수혁만큼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하지만 수혁에 대한 신뢰는 꽤나 깊어진 마당이었기에, 결국은 수혁의 처방 또한 받아들여졌다.

“kg당 1mg 정주하시죠.”

kg당 1mg의 스테로이드라면 상당히 고용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인 고 하면, 아무 질환이 없는 사람이 맞아도 오늘 좀 기운이 난다거나 잠이 안 온다거나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하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따위 목적으로 쓰기엔 너무 위험하고 또 많은 합병증을 초래하는 약이니, 말이 그렇다는 얘기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터였다.

실제로 수혁은 아니, 거의 모든 내과 의사들은 이 약을 쓸 때 아주 엄격한 기준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많군요.”

“그래야 환자가 좋아집니다.”

그럼에도 쓰기로 결정했다면 과감하게 사용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이 약을 쓰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알겠…… 습니다.”

발표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후, 처방을 넣었다.

조금 있다가 처방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 왔다.

“네, 맞습니다. 정주해 주세요.”

역사가 짧아 우수한 내과 의사를 배출할 여력이 없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큰돈을 쓴 만큼 병원 시스템은 꽤 잘 잡혀 있는 모양이었다.

뭔가 납득이 가지 않는 처방이 내려왔을 때 다시 한번 확인해 보는 것.

아무것도 아닌 절차 같지만, 이것만큼 수많은 의료사고에서 환자를 보호하는 절차도 드물었다.

[확실히 태화 의료원에서 여러 방면에서 돕고 있는 병원답군요.]

‘아예 정식으로 진출하게 되면 더 좋아지겠지.’

[아마 그렇게 될 겁니다. 오늘 수혁이 이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이 그렇게 가볍지는 않을 거 같거든요.]

‘오……. 웬일로 말을 그렇게 하냐? 하긴 내가 좀 잘하긴 했지?’

[당연히 제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판이었군요.]

‘어휴.’

수혁이 바루다와 함께 티격태격하는 동안 현지 의사들 또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맞는 거 같지?”

“얘기를 들어 보니까 그런 거 같아.”

“진단의 정석을 본 느낌인데……. 태화는 다 이렇게 진단하나?”

“아냐, 그렇지는 않을걸. 이렇게 하는 건 처음 봤어. 저기 봐, 저 교수. 저 교수는 그렇진 못했잖아.”

“하긴……. 그럼 저 사람이 그만큼 우수하다는 건가? 어려 보이는데.”

“동양인들이 원래 좀 어려 보이잖아. 그거 감안하고 봐도 많이 어려 보이긴 하는데…….”

모두들 수혁의 대단함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수혁의 의도대로 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냥 진단명만 띨룽 말해 준 것이 아니라, 그 진단에 닿기 위한 과정을 일부러 머릿속이 아니라 말로 풀어서 설명하지 않았던가.

이를테면 여기 있는 모두는 일종의 콘서트를 본 셈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수혁이라고 하는 걸출한 의사가 바루다라는 희대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펼치는 콘서트.

다른 사람들에게나 무용한 단어의 나열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의사들에게는 아니었다.

“아까 중환자실에서도 그렇고……. 진짜 대단하네…….”

“일단 경과를 두고 봐야겠지만, 확실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저게 내과 의사로서의 사고방식 아닐까?”

“지금 와서 배울 수 있나?”

“그렇게 되게 도와준다는 거 아냐?”

“병원 측에서 거부하면 데모라도 해야 할 판이네, 그럼.”

“그렇지.”

단 한 번의 발표 아닌 발표로 이만큼의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장강명은 다시 한번 아쉬움에 빠졌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김다현은 놀라움에 빠졌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네. 어차피 태화 의료원과의 공동 투자는 내부적으로 거의 결정된 사안이었는데, 이 얘기를 들으니 역시 반드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얘기를 전해 준 이가 다름 아닌 두바이 블루라군의 개발 총책인 동시에 왕자 중 하나인 알 나지르라서 더더욱 그러했다.

대부분의 석유 부자들은 그저 주체할 수 없는 돈에 깔려 인생 즐기기에 바쁘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좀 다른 인간이었다.

석유 패권이 사라진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 얘기를 벌써 미국에서 셰일 가스를 발굴하기 전부터 떠들어 댔으니 똑똑한 것은 물론이고 선견지명이 있다는 말까지 들어 마땅한 인물이었다.

“두바이가 메디컬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역시 태화가 최고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독일 쪽에서도 여러 번 타진이 오긴 했지만……. 그쪽은 기업 주도의 병원이 없어 대규모의 투자는 어렵더군요.”

그런 알 나지르가 태화에 또 한국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었다.

물론 뼛속까지 기업인인 김다현이 보기엔 그저 당연한 일로도 보이긴 했다.

‘그렇다고 미국에 손을 벌릴 수는 없겠지.’

두바이 자체는 반미를 천명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앙아시아 국가이면서 동시에 이슬람 국가인 이곳이 어찌 미국의 자본을 공공연히 끌어들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러시아 쪽에 벌리기에는 미국의 눈 밖에 날 것이 자명했다.

대안이 필요하다 이건데, 공교롭게도 한국은 대외적인 이미지가 썩 괜찮은 나라였다.

특히 중앙아시아에서 그랬는데, 최근 유행 중인 k-pop, 특히 BTS 덕을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저희 태화는 그게 가능하죠. 오늘 보니 병원 자체는 역시 도면으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더군요. 대부분 인력인데, 그건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렇군요. 저희도……. 의료원 판단으로 한국으로 이송이 필요한 환자에 대해서는 에미레이트 항공을 전격 지원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간 이식을 여기서 하기는 무리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영원히 무리라는 말씀을 드리진 않겠지만 한동안은 그럴 겁니다. 아무래도 응급 질환 위주로 지원이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게 더 급한 문제니까요.”

“응급 질환이라면……?”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그리고 외상 또는 내과적 응급입니다.”

“아하.”

알 나지르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두바이 측의 응급 질환에 대한 생존율은 소득 수준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지 않은가.

인프라가 딸린다기보다는 그 인프라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해서였다.

정부 차원에서 힘을 쓰고 있음에도 그랬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은 의사들이 꺼렸다.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단기간에 불과한 데다가, 기반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아주 강한 족속들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금 의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곳이 하나 더 있었다.

‘카타르에서 내건 조건은……. 진짜 말이 안 돼.’

연봉 10억에 본국에 내야 하는 세금도 다 내주는 데다가, 체류하는 동안의 생활비는 물론이거니와 메이드 비용까지 내준다니.

한두 명에게라면 모르겠지만 의료 체계 전반을 바꿀 만한 인원에게는 무리였다.

‘하지만 태화에서 파견 형식을 갖추게 되면 가능해진다.’

지금과 같이 허울뿐인 MOU만 맺은 상황에서도 주요 과에서는 적어도 한 명 정도는 보내준 병원 아닌가.

아예 태화 의료원 소속 병원이 된다면 장기간 파견도 가능한 데다가, 파견 오는 의사들의 커리어가 끊기는 문제 또한 해결이 가능해지기에 더 많은 의사들이 올 수 있을 터였다.

그에 더해 간호 인력, 특히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의 경력 있는 간호 인력 파견 또한 군침 도는 조건이었다.

해서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마침 실력 행사까지 해 주었으니 반가운 마당이었다.

“정말 좋군요.”

“서로에게 좋은 일이죠. 이곳에 저희 태화의……. 연구 시설도 허가해 주셨으니까요. 확인된 사항이겠죠?”

“물론입니다. 내일 부지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두바이 메디컬 허브의 첫발을 함께 내딛게 된 것을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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