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화 낭중지추 (2)
“아, 교수님.”
수혁은 그제야 알 막툼의 시선 및 나머지 의사들의 시선 또한 자신을 향해 쏠려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달라지는 게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수혁은 여전히 환자 앞에 바짝 붙어 서 있었고.
알 막툼은 왜 하필 그 환자에게 수혁이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저 그런 태화 의료원 사람이었다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테지만.
수혁에게만큼은 예외였다.
‘환자 둘 다 호전 중이야.’
중환자실에서 진단 내려준 결핵성 뇌수막염에 동반된 뇌성 염분 소실 증후군 환자는 수혁의 처방을 따라 플루드로코티손을 투여하자마자 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급기야 오늘 아침엔 의식을 완전히 회복해서 일반 병실로 올라갔을 지경이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사경을 헤매고 있던 수준을 넘어 일각에서는 이 환자는 아마 죽을 거라는 얘기까지 돌았던 것을 감안하면 기적이라는 말이 실로 아깝지 않았다.
‘그 환자도…… 엄청 좋아졌다고 했지?’
항생제를 때려 붓기만 할 때는 계속해서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면서 결국엔 악화 쪽으로 기울고만 있더니 스테로이드를 투여하자마자 우선 숨찬 증세부터 사라졌다고 들었다.
심지어 환자가 오늘은 아주 좋다는 말과 함께 웃기까지 했다던가.
의사에게 그보다 더한 즐거움이 또 있을까.
또 그러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사람만큼 고마운 사람이 있을까.
“이수혁 선생님. 무슨……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럴까?
수혁을 대하는 알 막툼 교수의 태도는 조심스러움을 넘어 일견 공손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음.”
이 자리에 있던 태화 의료원 의료진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대를 다녀왔으니 수혁보다 적어도 5년 이상 선배이지만 아직 임상 조교수로서 전임 발령을 받지 못해 얼마 안 있으면 수혁에게 추월당할 신세였지만.
당연히 그러한 사안에 대해서는 불만을 품고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수혁의 실력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 네. 이상한 점이 있기는 합니다.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이수혁 선생님. 선생님 덕에 이미 두 명을 살릴 수 있었어요. 얼마든지 말씀해 주세요.”
알 막툼은 이미 수혁 옆으로 다가간 지 오래였다.
그리곤 수혁이 보고 있던 환자를 같이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그저 오래 앓아 온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뿐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단서도 알아내기 어려웠다.
해서 챠트를 슬쩍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원인미상의 고칼슘혈증이라는 진단명이 적혀 있었다.
밑에는 아마도 악성 종양이 원인으로 의심된다는 말도 쓰여 있었다.
‘대체 이것만 보고 뭘 더 알아냈다는 걸까?’
내분비내과 교수로서 이보다 더한 임프레션을 잡기란 어려워 보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러고 있으면 단지 시간 낭비로 여기고 무시했거나 이제 그만 가자고 손을 잡아끌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수혁을 상대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 환자 각막을 보시겠어요? 눈을 감았다 떴다 할 때는 불명확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두고 보면 조금 이상한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해서 가만히 있으려니,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뒤뚱거리며 환자의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환자의 눈을 벌렸다.
딱히 저항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환자의 의식이 온전치 않은 데다가, 수혁의 행위가 그리 자극적이지는 않았던 덕이었다.
오히려 자극을 받은 건 알 막툼 교수 그리고 태화의 의료진들이었다.
“어디가…….”
“저도 좀 볼게요.”
그들은 앞다투어 다가와 환자의 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안과 의사는 없었기 때문에 바로 답을 내는 사람이 있진 않았다.
내과 의사답게 내과 질환에서 보일 수 있는 눈의 소견을 찾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황달은 없는데.’
‘각막환(Kayser-Fleischer ring)이 있지도 않은데?’
‘뭐야 대체.’
그런 의심만으로는 좀 부족했다.
당연히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는 못했다, 이 말이었다.
해서 말은 이은 것은 수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각막을 잘 보시면……. 석회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아실 수 있을겁니다.”
“석회화?”
“아. 그러고 보니……. 그럼 이게 석회화인가.”
다행히 꽤나 실력 있는 의사들인지라 석회화라는 말을 듣고도 뭐가 있는지 못 알아보는 참사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석회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떠올리지는 못했다.
때문에 다들 이게 석회화구나라는 말을 떠들어 재끼고 나서는 더 입을 열지 못했다.
뭘 알아내야 더 대화를 진행시킬 거 아니겠는가.
다만 현상에 대해서만 알아냈을 뿐이었다.
[뭐 실망할 필요는 없겠죠?]
‘단서가 너무 작아서 그래. 나처럼 데이터 풀을 활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게 당연한걸.’
[이현종 원장도 이럴까요?]
‘아빠? 아빠는……. 아빠는 나도 모르겠다. 진짜 천재잖아?’
[아쉽네요. 같이 왔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어차피 김다현 사장님 말에 따르면 계속 같이 일하게 될 거 아니겠어?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고개 끄덕임을 뒤로한 채 입을 열었다.
누구라도 말을 좀 했으면 대화를 받아 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지 않은가.
하는 수 없이 혼자 떠들어야만 했다.
“각막에 석회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수개월 이상 고칼슘혈증이 진행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수년일 수도 있죠. 아무튼, 이 환자의 고칼슘혈증이 절대 단기간에 발생한 것은 아니란 뜻입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알 막툼 교수는 확실히 그렇겠다는 생각과 함께 수혁을 돌아보았다.
뭐가 되었건 석회화 병변이 자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 말은 곧 수혁의 말대로 환자의 고칼슘혈증은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딱 거기까지는 알겠는데, 다음 스텝으로 나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단 고칼슘혈증 자체가 드문 일인데다가, 악성 종양이나 부갑상선에 의한 것이 아닌 경우는 더더욱 드물었기에 그러했다.
“여기 암에 의한 것을 의심한다고 하셨죠? 암이 수개월 내지 수년 지속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환자분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아…….”
물론 노년 인구에서 암은 그 진행이 느리긴 했다.
하지만 고칼슘혈증이라는 증상을 일으킬 정도로 진행한 암이 수년간 있었다고 하기엔 환자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객관적으로 지금 상태를 좋다고 한다는 게 맞는 말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기는 했지만.
하여간 진행암 환자라고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었다.
우선 환자는 단 한 번도 암성 통증을 호소한 적도 없지 않은가.
‘비명도 안 나온다고 하지?’
비록 내분비 내과 의사이기에 교수가 된 이후 암 환자를 본 경우가 드물긴 했지만.
내분비 쪽에도 암이 없는 건 아닌 데다가, 수련 과정에서는 암 환자를 여러 차례 본 경험이 있지 않겠는가.
환자 진술에 따르면 세상에서 암으로 인한 통증만큼 끔찍한 것도 없어 보였다.
“단지 이것만으로 암을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반드시 다른 이유를 고민해 봐야 한다는 단서 정도는 되겠죠.”
“그렇…… 그렇군요. 다른 이유라면 뭐가 있을까요?”
수혁은 즉각 답하는 대신 오래된 고칼슘혈증 때문에 일어난 근육 소실로 얇아진 환자의 다리를 들춰 보았다.
이것만 봐도 사실 고칼슘혈증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짐작이 가능했다.
물론 팔다리의 노쇠는 암도 일으킬 수 있긴 하지만.
이미 생각이 기운 이상 모든 사고회로가 이쪽으로만 돌았다.
“우선 환자의 기저질환을 살펴봐야겠죠. 혹 고혈압에 대해 이뇨제를 사용한 병력이 있습니까?”
“이뇨제……. 잠시만요. 제 환자는 아니라. 죄송합니다.”
“아뇨, 천천히 해 주세요.”
사실 수혁은 이미 머릿속으로 떠올린 질환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걸 바로 말하는 대신 이리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김다현 사장이 해 주었던 말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깊은 인상을 심어 주라 이거지.’
원래 세상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해도 눈앞에서 너무 뚝딱 해치워 버리면 그걸 보는 사람들은 그 일이 어려운지 어떤지 알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 일을 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고와 사유가 필요한지, 또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지를 알아야 대단함 또한 알게 된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그걸 똑똑히 알려 주기 위해 그의 머릿속서는 불과 초단위로 이루어졌던 배제 진단 과정을 조금 시간을 들여 알 막툼에게 몸소 체험하게 하고 있었다.
“음……. 아뇨, 고혈압이 있기는 한데……. 그에 대해 딱히 약을 먹은 적은 없습니다.”
“고칼슘혈증이 고혈압을 일으킬 수 있으니, 지금 이 환자에서의 고혈압은 원인이라기보단 결과로 생각해야겠군요.”
“고혈압이 원인……? 아, 이뇨제……. 티아자이드를 말하시는 거군요.”
“네. 티아자이드를 복용하는 경우 드물게 고칼슘혈증이 나타날 수 있죠.”
“그런데 이 환자의 경우엔 그 이유는 아니네요.”
“그렇습니다. 그럼…….”
수혁은 짐짓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상당히 그럴싸했기에 수혁을 보고 있던 모두는 아, 이게 정말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쇼를 잘하시는 군요, 수혁. 쇼닥의 전형을 보는 거 같습니다.]
물론 바루다는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아냥거렸다.
‘어쩌라고 인마.’
수혁 또한 그의 비아냥에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비타민 D 복용력도 없어 보이고……. 리튬 처방도 받지 않았군요.”
“둘 다 고칼슘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 인데. 음, 네. 확실히 없습니다.”
수혁은 그렇게 하나하나 고칼슘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들을 짚어 나갔다.
흔한 원인도 있고 드문 원인도 있었으며, 오직 케이스 리포트 정도만 된 원인도 끼어 있었다.
당연히 설명을 듣고 있던 모두의 표정엔 경외감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자식은 대체 공부를 얼마나, 어떻게 하기에 이만큼의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까?
또 얼마나 열심히 환자를 보면서 경험을 쌓았길래 이렇게 능숙하게 진단 과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걸까?
평소에는 5년, 6년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추월하려는 수혁에 대해 분노를 느꼈다면, 지금은 그 세월이 부끄러워질 따름이었다.
‘나는 뭐 했냐…….’
‘이 자식은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길래……. 나도 열심히 살았는데…….’
‘진짜 천재구나.’
‘이건…… 얘가 보내는 시간은 나랑 다르구나.’
그리고 종래에는 납득의 경지에 오르고 말았다.
그런 그들의 변화는 고스란히 바루다에게 감지되었다.
[역시 넘어오네요. 수혁의 연기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칭찬이지?’
[물론이죠. 이만한 연기력을 지닌 의사가 또 있겠습니까? 이현종도 이건 못할걸요.]
‘그럼 슬슬 끝내 볼까?’
[그래도 될 거 같습니다. 가시죠.]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