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01화 (301/1,303)

301화 기다렸다구! (2)

“저는 운전하러 온 거예요?”

수혁이 오고 한 번 안아 준 후로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던 조태진이 입을 내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현종이야 수혁이 오자마자 신나서 떠들어 대지 않았던가.

신현태는 지금 수혁 바로 옆에 앉아서 자료를 보여 주고 있었고.

그에 반해 조태진은 진짜 인사 말고는 한 게 없었다.

그저 운전대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몰랐어? 네가 여기서 제일 짬찌잖아.”

그 말에 이현종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얼굴로 대꾸해 주었다.

그래서 그런가, 더없이 상처가 되었다.

세상에 조교수도 아니고 부교수 레벨인데 짬찌라니?

여기 수혁도 있지 않은가.

“와……. 어떻게…….”

“뭘 어떻게야. 아무튼 간에 수혁이 얼굴 봤잖아. 그럼 된 거 아냐?”

“아니, 뭐가 돼요. 사실 이번에 수혁이가 저한테 얼마나 고마워해야 되는지 알아요?”

“뭔 소리야 갑자기. 쟤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이 왜 있어. 네가 고마워해야지.”

“와……. 내가 이런 사람을 원장으로.”

“뭐 인마. 원장이기 전에 선배다, 너? 아니지, 너는 나한테 배운 적도 있잖아. 어떻게 제자가 스승한테 이러지? 내가 너 그렇게 가르쳤니?”

“와…….”

조태진은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더 환장할 노릇인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은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사고나 확 났으면 싶었지만, 수혁이 있지 않은가.

쟤만은 다치게 둘 수가 없었다.

해서 운전을 열심히 하고 있으려니, 뒷자리에서 조곤조곤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거 어떻게 다른 병원 자료까지 받으신 거예요?”

“우리 원장님이 프락치를 심어 놓으셨더라.”

“네?”

“네 생각처럼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고. 스파이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친한 후배들 심어 놨다 이거지. 생각해 봐. 우리나라에서 심혈관 인터벤션하는 사람치고 원장님이랑 관련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어?”

“아…….”

수혁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신현태가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 심혈관 중재 시술에 이현종이 남긴 족적은 그야말로 거대한 것이었다.

적어도 이현종 이후 세대는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할 정도였다.

아니,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 모두가 그러했다.

이현종 이전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시술이 이제는 당연시되고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까.

“아무튼, 덕분에 잘됐지. 이쪽이 이제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 없이 대응한 병원들이고, 이쪽은 우리 데이터야. 확실히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지? 대강 돌려도 P값이 엄청 의미 있게 나오더라고.”

“그렇네요. 아, 이게…….”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양측의 데이터를 슥 하고 훑었다.

그것만으로도 대강의 분석은 가능했다.

‘조금 아쉬운데?’

그렇다 보니 아쉬운 감이 있었다.

바루다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신현태가 준비해 온 자료에 대한 불만은 아니었다.

그저 이 자료의 바탕이 된 로데이터에 대한 불만이었다.

[그러게요. 저……. 프로그램 안 쓴 병원들 데이터라고 해 봐야, 우리가 사태에 대해 알려 준 병원들 아닙니까? 자연 상태보다는 훨씬 빨리 알아차리고 대응했다는 뜻이죠.]

‘그거 때문에 비뚤림 오류가 발생했을 거야. 뭐 그때 안 알릴 수는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

만약 그 당시 태화에서 마취 가스 오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홀로 정보를 독식했다면 어찌 됐을까?

아마 사망자가 배로 증가하고 말았을 터였다.

그리고 비난은 모두 해당 병원들이 아닌 태화의 몫이 되었을 터였다.

이현종이 지금처럼 위대한 원장으로 남을 수도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원래 생명을 다루는 직종은 그런 법이었다.

적어도 적자생존의 법칙 같은 건 좀 뒤로해야만 했다.

[그래도 아쉽군요. 완전히 비교가 되진 않아요.]

‘그렇네. 흠.’

그러한 사실은 수혁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에 불과한 바루다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애초에 만들어지기를 의료 목적의 에이아이로 만들어졌기에 그러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쉬움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심지어 그런 수혁을 바라보고 있던 신현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참…….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모든 병원에 방송을 통해 브리핑을 하는 바람에 사실 이쪽이 원래보다 훨씬 대응을 잘했어. 기껏해야 하루 이틀 정도의 차이만 보이는 게 그 때문이야.”

“그래도 태화 쪽이 훨씬 예후가 좋게 나오네요.”

“원래대로면 이것보다도 훨씬 심하겠지. 그래도 뭐……. 이것만 해도 의미가 있긴 하잖아, 그치?”

“네. 그럼요.”

“게다가 너 없는 동안에도 이 프로그램이 한 건 했어.”

“그래요?”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임에도 그랬다.

그렇지 않은가.

태화는 병상이 2천 병상을 넘어가는 거대한 병원이었다.

심지어 태화를 채우는 환자들은 일반적인 환자들에 비해 중증도가 높은 편이기도 하고.

근 2주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응, 뭐……. 집단 감염이 또 생긴 건 아니고. 애초에 패혈증으로 가는 걸 예측하기 위한 거잖아, 이게.”

“네. 그렇죠.”

“근데 사실……. 병실 간호사들이 숙련도가 높으면 경험적으로 알거든? 아니면 내과같이 중증 환자 보는 레지던트가 있어도 그렇지. 우리만 봐도 그렇잖아. 딱히 수치 계산 안 해도 느낌 오잖아.”

“좋다, 안 좋다 정도는 다들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촉이라고 부르는 건데.

모든 의사들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 촉이 있기 마련이었다.

바이털이라면 바이털 쪽으로, 수술 쪽이라면 수술 쪽으로.

그 말을 반대로 하면 분야가 아닌 쪽에 대해서는 촉이 없다는 뜻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마이너 과에서 엄청 도움이 돼, 이게. 2주 동안 여기에 걸러진 케이스가 대략 42건인데……. 그중에 진짜 주치의나 담당 간호사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8건이야.”

“아……. 그게 모두 마이너 과였나요?”

“응. 별관이 압도적이었어.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아……. 아무래도 그렇죠.”

대학 병원의 피부과, 안과, 이비인후과, 성형외과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하고는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가령 태화의 피부과는 화상을 주로 보았고, 성형외과는 골절이나, 재건술의 달인들이 있었다.

이비인후과야 아예 내부에 두경부 암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니 말할 것도 없었고.

안과 또한 중증도가 무척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이털에 대해 전문가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통계를 내 봤더니……. 이 프로그램 쓰기 전에 봐 봐. 우리한테 협진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지?”

“아……. 이게 확 빨라졌네요.”

“그래, 나는 이게 비단 우리 병원만의 일은 아닐 거라고 봐. 외국이라고 해서 다를 거 같지도 않고.”

“오……. 이것도 엄청 의미 있는 데이터네요.”

“그렇지?”

“네.”

현대 의학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만 보면야 무조건 좋은 일이었지만, 의사 개개인에게는 고달픈 일이었다.

이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의학의 모든 부분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라도 커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긴밀한 협조가 필요해졌다 이 말인데, 문제는 언제 협조가 필요한지조차 알아내는 것이 어려워진 마당이었다.

각기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과 숙련도를 쌓고 따라가기도 바쁜데 대체 언제 다른 과 지식을 쌓는단 말인가.

진짜 수혁처럼 머릿속에 바루다라도 박지 않는 이상에는 어려웠다.

“사실 처음에 네가 아이디어 냈을 때는 그냥 모니터링할 때 도움이 되겠다 싶은 정도였는데, 지금은 아냐. 막상 써 보니까 프로그램이 단순한 데에 비해 쓰임새가 너무 많아.”

“그렇네요. 이건 진짜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데.”

“그렇지? 게다가 봐라. 이걸 만약 작은 병원…… 그러니까 뭐 2차 병원에서 쓴다고 해 봐. 거기는 더 도움이 될 거야.”

“와……. 진짜 그렇네요. 이거…… 이거 진짜 대박 나는 거 아닐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으니까, 좋네. 화이자에서도 이렇게 봐 줄지가 좀 의문이긴 하다만…….”

2차 병원이라 함은 주로 지역 거점 병원 역할을 하는 병원을 의미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국토 전체가 1일 생활권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의미가 좀 퇴색되기도 했고, 심지어 망해 자빠지는 병원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또 어떻게든 의료의 질을 어느 정도 이상 유지해야만 하는 병원들이기도 했다.

만약 이러한 보조 수단들이 늘어난다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개선은 해낼 수 있을 터였다.

상대적으로 수혁에 비해 경험도 더 많고 감염내과 의사이기에 정책에 관심이 많았던 신현태는 거기까지 염두에 둔 보고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아……. 정말 이렇게만 되면 좋겠네요. 이게 확실히…… 보조 용도로 쓰임새가 있을 테니까요.”

“근데 이건……. 대중화되려면 수가 인정을 받긴 받아야 해. 돈도 못 받는 프로그램을 가뜩이나 운영 어려운 2차 병원들한테 사라고 할 수는 없지.”

수혁은 신현태의 말에 얼마 전 동창회 와서 술만 푸고 갔다는 한 선배를 떠올렸다.

KTX를 비롯한 기술의 진보는 엄청난 생활 편의성을 가져옴과 동시에 애매한 사이즈의 2차 병원들에는 절망의 시대를 열었는데, 직격탄을 맞아 망해 버린 모양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수혁은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그리 사려 깊지는 않은 방안이었다.

깊이 고민해 보진 않았던 일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상으로 증정하는 건 안 될까요?”

“이거 소유권이 우리한테도 있지만, 기업에도 있잖아. 돈이 들어간 프로젝트인데 어떻게 공짜로 주겠어.”

이윤이 있어야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프로그램만 해도 이만큼의 위력을 발휘하는데, 계속 개발이 되어 가다 보면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바야흐로 의료의 미래가 성큼 다가온 느낌이었다.

이게 실제로 벌어지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지 간에 수가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이건 진짜 어렵겠는데요? 수가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어서.”

“나도 잘 몰라. 그래서 이건 해당 분야 전문가분을 좀 모셔 보려고.”

“아, 그런 분이 계셔요?”

“최훈섭 박사라고, 우리나라 디지털 헬스케어 대부가 있으셔. 미국에 계시다가 이번에 다시 들어오신다고 하더라고. 이미 몇 개 프로그램에 수가 인정을 받도록 이끈 경험이 있으니까 도움이 될 거야.”

“오…….”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진심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의사라고 하면 당연히 수가에 대해 잘 알겠거니 싶겠지만.

실제 현장에서 환자를 보는 의사들은 오히려 그러한 부분에 대해 무지한 사람도 많았다.

수혁 또한 예외는 아닌 데다가, 바루다마저 그러한 부분에 수혁의 한정된 용량을 할애하는 데 있어서 부정적이었다.

해서 진심을 다해 웃고 있으려니, 여태 삐진 얼굴로 말없이 운전대만 잡고 있던 조태진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야, 수혁아. 이제 다 끝났어?”

“아……. 네.”

“그래, 너 없는 동안 정말 힘들었다……. 네가 지금 내 파트 치프인 건 알고 있지?”

“앗. 맞네. 네,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그냥 가서 어려운 환자들 좀 봐주면 돼. 내가 다 보려니까 벅차더라.”

“알겠습니다. 복귀하면 바로 싹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너 오니까 정말 좋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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