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아이고 (3)
조태진은 아이고 하는 비명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교수씩이나 되었으면 별의별 꼴을 다 보았을 텐데 오버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뮤코마이코시스는 설령 조태진이 아니라 이현종 아니, 이현종 할애비라고 해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진단명이었다.
“어? 너 왜 그걸 이제 말해!”
그걸 직접 수술해야 하는 입장인 이비인후과 교수라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김효열 교수는 어찌나 흥분을 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그 바람에 김종세는 전화기를 멀찌기 두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는 사방으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교수님……. 콧줄이 들어가 있어서……. 몰랐습니다.”
“이제 뺄 생각은 어떻게 들었는데? 너네 협진 제대로 안 보냐? 이래서 일반의 협진 믿을 수 있겠어?”
“죄송…… 죄송합니다.”
김효열 교수하면 평소 호인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허허 웃는 인상의, 이비인후과 내에서 인기투표 하면 천사로 소문난 이낙준 교수 바로 뒤를 쫓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지금은 호랑이라도 빙의했는지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 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알아본 건 무슨 이유야.”
김효열 교수는 대략 1, 2분간 소리를 지르더니,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니만큼 제풀에 지쳐서 다시금 물었다.
아까는 화가 나서 아무 말이나 막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가라앉고도 또 묻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궁금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해서 김종세는 수혁과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했다.
김종세 또한 마음이 급해진 마당인지라 말소리는 무척 빨랐다.
“이수혁? 아, 그…… 이낙준 교수님이 맨날 칭찬하는 그 친구?”
“네.”
“거…….”
수혁의 이름을 들은 김효열 교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진짜 의사네 어쩌네 하면서 하도 칭찬을 해대는 통에 사실 얼마간 반감을 갖고 있던 게 사실이었다.
수술하는 것도 아닌데 뭔 놈의 진짜 의사란 말인가.
바이털이야 좀 잘 보는지 몰라도, 칼을 쥐어야 진짜 의사란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본인이 칼 드는 의사라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했다.
“아무튼, 갈게. 갈 거니까……. 나 가면 바로 수술방 들어가게 해 놔.”
“아, 네! 네, 교수님!”
“반드시 그렇게 해. 늦어지면 안 돼. 범위가 어떻다고?”
“이제……. 아, 지금 막 CT실 갑니다.”
“그럼 CT실에서 바로 수술방으로 보낼 수 있게 해 놔. 알았어?”
“네, 교수님.”
코에 대한 진단을 이비인후과 의사가 아니라 내과 의사가 했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하기는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 진단이 맞다고 2년 차도 생각하고 있는데.
여기서 뭐 3년 차는? 4년 차는 봤니? 이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질환이었다면 응당 그랬을 것이고, 김종세도 감히 곧장 교수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을 테지만.
뮤코마이코시스만은 예외였다.
그야말로 실시간으로 환자를 잡아먹는 녀석이었으니까.
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일단 CT 처방은 내가 내놨어.”
그사이 김종세는 방금 이송 요원이 끌고 나가기 시작한 환자를 따라나섰다.
그러나 병동 스테이션에 서 있던 수혁이 말을 걸어왔다.
너 전화하는 동안 처방은 내놨다는 내용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보리코나졸도 냈다. 신기능이 조금 떨어져 있기는 한데……. 어차피 필요한 약이고 안 쓰면 안 되는 상황이라.”
“아……. 네. 감사합니다!”
CT야 원래도 찍으려고 했던 것을 조금 앞당겨 준 것뿐이라 아주 고맙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아니, 아직은 왜 낮에 환자를 발견하지 않고 지금 발견해서 이 사단을 만들었나 하는 원망이 오히려 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보리코나졸은 얘기가 좀 달랐다.
아무래도 이비인후과는 외과다 보니 뭔가 새로운 진단명을 발견하면 칼부터 들기 마련 아니던가.
그 외에 다른 치료 옵션은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알아도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래, 항진균제……. 써야지.’
해서 김종세는 역시 수혁이 괜히 유명한 건 아니란 생각을 하면서 이송 요원과 함께 뛰었다.
하윤은 그런 김종세와 수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일단 따라갈까요? 우리 환잔데…….”
“어, 어? 그래야지. 나야 다리가 이래 놔서……. 너는 따라가. 나는 수술실 입구로 갈 테니까, 찍으면 연락 줘. 거기서 영상 볼게.”
“아……. 네.”
하윤은 그제야 수혁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사람처럼 어두워진 얼굴로 수혁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못했다.
그야말로 일분일초가 시급한 상황이었기에 그랬다.
“그럼 연락드리겠습니다!”
해서 하윤은 짤막한 인사만 남긴 채 부리나케 달렸다.
순식간에 혼자 남게 된 수혁은 바루다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발놀림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면서였다.
‘뮤코마이코시스……. 생존율이 얼마나 되지?’
[침범한 범위에 따라 다르니 무용한 질문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굳이 원하신다면 말씀드리죠. 대략 절반은 사망한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합니다.]
‘환자는 이미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에 이환된 상황이야. 지금은…… 뭐 병변이 없어진 상황이지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의 경우 재발의 가능성이 있죠. 그렇다면 일반적인 경우보다도 더 안 좋을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 마음에 걸리는 건 의식 변화야. 만약 이게 뇌를 침범했으면…….’
[그럼 생존율은 극히 희박해집니다. 10% 내입니다.]
10%라는 수치조차 희망적일 수 있었다.
이전 상태로 돌아갈 확률은 그보다도 훨씬 적었으니까.
수술을 제대로 한다고 해도 그랬다.
그러니 지금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병변이 아래로는 퍼졌을지언정, 위로는 가지 않았길 바라는 것뿐이었다.
띵.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다.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안으로 올라타 3층을 눌렀다.
수술실과 중환자실이 있는 곳.
둘 중 수술실은 다리가 불편한 수혁과는 별 인연이 없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이상하게 자주 가게 되네.’
[그렇다고 수술까지 할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현재 제 딥러닝의 방향은 지식의 축적 및 추론에 있지, 정확한 작업 수행 능력에 있지 않습니다.]
수혁의 말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읽어 낸 바루다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세계 최고의 내과 의사 만드는 것도 힘들어 뒤지겠는데, 여기서 외과까지?
그러려면 수혁의 두뇌 용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할 터였다.
아니, 애초에 그리 손재주가 뛰어난 편은 아니니 더 필요할 수도 있었다.
간단한 내과적 처치야 바루다가 없어도 원래 3년 차 정도 되면 익숙하게 하여야 하니 보정 정도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 외에 복잡한 수술은 절대 무리였다.
‘뭐 인마. 수술할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래도 이번 수술은 좀 보고 싶네. 체력이 될까?’
[내일은 주말이니까요. 일정이 없으니, 얼마든지 가능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3년 차가 좋긴 좋구만.’
2년 차 때만 해도 주말이라고 해 봐야 1년 차 당직 백 보거나 직접 당직 서다 보면 시간 가는 건 뚝딱이었거늘.
3년 차, 특히 의국장은 주말 당직에서 자유로웠다.
대신 몇 가지 잡일을 좀 해야 하긴 했지만.
바루다의 보정을 받으면 문서 작업 정도는 순식간에 할 수 있으니 개꿀이었다.
‘역시 아직은 아무도 안 왔군.’
아무리 수혁이 발이 느리다고 해 봐야 병원 안에서 움직이는 수준 아닌가.
게다가 조영제 넣고 찍는 CT라는 게 그렇게 금방금방 찍히는 건 아니었다.
아마 지금쯤 자세나 잡고 있을 터였다.
부우웅.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이렇게 빨리 찍었나 하고 내려다보니, 조태진이었다.
병원 바로 앞에 서식하고 있다 보니 벌써 온 모양이었다.
“네, 교수님.”
“어, 수혁아. 나 지금 로비야. 환자 병실에 있어?”
“아뇨, CT실에 있어요. PNS CT 찍으러 갔습니다.”
“아……. 너는?”
“저는 수술방에 있습니다. 입구 쪽에요.”
“그럼 그리로 갈게.”
조태진은 누가 수혁 바라기 아니랄까 봐 우선 3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딱 그가 도착할 때쯤 다시 핸드폰이 울렸는데, 이번에는 CT실에 간 하윤이었다.
“어, 찍었어?”
“네. 지금 막 영상 올라가는데…….”
“올라가는데?”
“제가 뭐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영 증강되는 부분이 좀 넓어서요. 까맣게 된 부위도 있고.”
“음.”
“아무튼,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는 영상 찍자마자 바로 갈게요.”
“그래, 잘했어. 영상 보고 있을게.”
수혁은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컴퓨터를 조작해 환자 검사 결과로 들어갔다.
조태진 또한 호들갑을 떨며 인사하는 대신 그저 수혁의 어깨만 두드리고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고작 몇 시간 만이라고 해서 수혁이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보다는 자신의 이름으로 입원한 환자의 안위가 걱정될 뿐이었다.
‘김환기…… 21살이던가.’
혈액종양내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암 환자를 보게 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수많은 죽음을 겪게 된다는 뜻이었다.
너무 하나하나의 죽음에 집중하는 사람은 빨리 지치거나 자칫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혈액종양내과 의사들은 대개 죽음에 둔감해질 수 있는 자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많았다.
조태진 또한 그랬는데, 그런 조태진에게도 어린 환자들의 죽음만큼은 쉬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원래 이 나이 때는……. 그냥 연애 고민이나 하고……. 아니면 재수 없는 선배 때문에 속 썩는 게 고생의 전부여야 할 텐데…….’
김환기는 21살의 나이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었다.
애초에 진단 당시부터 그랬을 테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으음.”
수혁은 조태진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스크롤을 굴렸다.
아무래도 영상이 올라오고 있는 와중이라 툭툭 끊기는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독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 여기 잠깐만.”
조태진에게도 그랬다.
비록 영상의학과 두경부 파트만큼 해당 영상 판독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혈액종양내과 교수로서 다학제에 워낙에 많이 들어가다 보니 들은 풍월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거…… 내안근 먹은 거 아냐?”
“아……. 그런 거 같습니다. 검진이 불가해서 눈 움직임은 확인을 못 했는데…….”
“이렇게 되면 눈을…….”
“수술장에서 확인은 필요할 거 같습니다. 뽑아야 된다면……. 음.”
당연한 얘기지만 눈이 있는 게 없는 거보다 백번 낫지 않겠는가.
그렇다 보니 제아무리 냉정한 편에 속하는 수혁이라 해도 말을 이어 나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하……. 일단 내 려봐.”
조태진 또한 그랬다.
그래서 둘은 일단 나머지 영상으로 눈을 돌리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음.”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래쪽으로는 아예 육안으로도 침범을 확인한 바 있지 않던가.
영상에서도 확인이 가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이거 어쩌지?”
“그나마 신경 타고 내려간 거 같긴 합니다. 긁어내면……. 입천장이나 앞니 감각이 이상해지겠지만 뼈를 자르는 거보단 낫겠죠…….”
“내시경으로 할 수 있을까?”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