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화 아이고 (4)
수술방 입구 앞에 마련된 대기실에는 잠시 침묵이 돌았다.
수술 전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놓인 여러 대의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만큼 수혁이나 조태진이나 음울한 기분에 빠져들었단 뜻이었다.
바루다는 둘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거 날 밝고 확인했으면 수술도 못 했을 텐데, 뭘 그리 우울해합니까?]
방금 바루다가 말한 대로지 않는가.
그나마 지금 발견했으니 이 정도지, 몇 시간만 더 지났으면 사망이었다.
바로 죽을 거라는 게 아니라 손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얘기긴 하지만.
바루다가 판단하기에 둘 사이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지 않은가.
물론 확률이 좀 적은 게 문제긴 하지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환자가 너무 어려.’
[소아과 가면 더 어린 환자 천지입니다.]
‘너는…….’
수혁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루다가 최근 인간처럼 행동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저 수혁을 모방하는 것에 그치지 않겠는가.
애초에 기계 아니, 프로그램에 불과한 놈에게 공감을 요구하는 것은 좀 지나친 기대였다.
‘너 수술장에서 어디까지 절제 범위를 가져가야 할지 판단 가능하겠어?’
그렇다면 수혁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바로 바루다가 잘할 수 있는 것을 기대하고, 또 시키는 것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뮤코마이코시스에서 절제 원칙은 간단하니까요.]
당연하게도 바루다는 이에 대해서도 별 고민 없이 답변해 왔다.
녀석은 질문의 종류에는 개의치 않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저 안다 모른다로만 평가할 뿐, 그 질문에 담긴 인간 고유의 감정이나 가치 판단은 전혀 의미가 없었다.
‘그래, 피가 나면 절제를 멈추는 거지.’
뮤코마이코시스는 진균, 즉 곰팡이의 일종이라고 보면 되었다.
녀석은 정상 면역을 가진 사람에서도 종종 발견될 만큼 그렇게 드문 녀석은 아니었다.
다만 정상 면역자에서는 침윤을 일으키진 못했다.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니니까.
[네. 그것만 확인하면 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방어 시스템이 무력화됐을 땐 아주 무서운 존재로 화했다.
산 채로 숙주를 뜯어 먹기 시작하는데, 우선 미세 혈관을 틀어막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말은 곧 어떤 조직을 긁어냈는데 피가 나지 않는다면 이미 뮤코마이코시스가 잠식한 부위라는 뜻이었다.
반대로 피가 난다면 그곳은 아직 괜찮다는 뜻이었다.
이 간단한 규칙만 잘 따라가면 이론상 뮤코마이코시스를 완전히 절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드르륵.
그사이 환자가 수술실 입구로 들어왔다.
동시에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던 마취과 의사가 나왔는데 달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상태 안 좋은 환자를 마취하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않겠는가.
스스로 수술실의 지휘자이자 선장임을 자처하는 마취과 의사가 이럴 때 웃는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김환기 환자분 맞죠?”
그렇다고 비협조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이 자리에 온 교수만 벌써 둘이지 않은가.
마취과 쪽하고도 교수급이랑 얘기가 된 지 오래라는 뜻이었다.
이쯤 되면 그저 오늘은 날이 아닌갑다 하고 있어야지, 괜히 뻗대다가 불똥이라도 튀면 큰일이었다.
“네.”
“체스트가 좀 지저분하던데…….”
그렇다고 해서 미리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까지 그냥 넘기지는 않았다.
마취라는 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약 주고 재우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사실 그거 자체가 아주 어렵고 또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현대 의학도 경험이 쌓여서 절차가 까다로워졌지만.
그걸 모르던 시절 마취는 사람을 죽이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도로 위험한 행위였다.
“아, 괜찮습니다. 마취에는 문제없습니다.”
체스트 얘기에 본능적으로 긴장했던 이비인후과 김종세와 김효열은 앞으로 나서 준 이수혁의 등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대적으로 왜소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하여간 바이털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내과야말로 제일 듬직한 기둥이었다.
“그렇군요. 그리고 랩이 좀…… 흔들리던데, 이것도 괜찮나요?”
“네. 혹시 몰라서 신장내과에 투석기 준비는 해 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렇게 걱정할 단계는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네, 그럼 들어가죠.”
마취과 또한 내과가 괜찮다고 하는데 안 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뭐가 어찌 되었건 상대는 바이털의 스페셜리스트 아닌가.
거기서 괜찮다는데 뭐가 어찌고저찌고 나선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드르륵.
해서 환자는 수혁을 더없이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게 된 이비인후과 의사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딱 들어가자마자 낯이 익다 싶었는데, 과연 일전에 마취 가스 관련 집단 감염이 일어났던 곳이었다.
하필 감염 환자 수술하러 들어온 방이 이런 방이라니.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입니다, 그런 거.]
당연하게도 바루다는 그러한 수혁의 비논리적인 사고 체계를 교정하려 들었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와 논리적인 언쟁을 벌이는 대신, 수술실 구석에 놓인 컴퓨터를 이용해 영상을 띄웠다.
영상은 벽면에 위치한 꽤나 커다란 모니터에 떴다.
수술하면서도 집도의가 환자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게끔 마련한 설비였다.
원래대로라면 수지타산이 안 맞는 물건이라 태화의료원처럼 기업 병원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음. 아까 사실 나도 대강 봤는데……. 절제 범위가 작지가 않아. 게다가 이쪽으로는 아티팩트가 있어서 오류도 좀 나고. 환자가 금니가 있나.”
김효열 교수는 김종세가 마취과와 더불어 환자 마취에 들어간 사이 아래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시선은 영상에 꽂혀 있었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까 조태진 교수가 언급했던 내안근이었다.
쉽게 말해 눈 안쪽에 위치한 근육이었는데 이거 뚫리면 바로 눈이었고, 그 말은 곧 뚫린 것을 확인하게 되면 눈을 뽑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 음……. 우선 수술방에서 최대한 확인하면서 절제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경구개 쪽으로도 침범이 확인되는데……. 이거 내시경적 접근이 어렵지 않을까요?”
“응? 아, 뭐 그렇지. 그럴 수…… 있지.”
김효열 교수는 자기 옆에 서서 영상을 보고 있던 게 김종세가 아니라 수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잠시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얘는 대체 뭔데 나랑 수술에 관해 얘기를 하나 싶었다.
“제 생각에는…… 완전 절제를 위해서는 modified weber ferguson incision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교수님.”
“흐음.”
modified weber ferguson incision이라.
코 주변에 긋는 절개법이기는 하지만 주로는 비과 쪽보다는 두경부 쪽에서 사용하는 절개법이었다.
거기서도 많이 하는 건 아니고, 비인두 쪽에 방사선성 괴사가 있거나 할 때나 쓰는 술식이었다.
태화 의료원 정도 되는 규모에서나 하지, 그렇지 않은 병원에서는 그게 대학병원이라 해도 잘 하지 않는 술식이기도 했다.
그 말은 이비인후과 의사라고 해도 평생 한 번도 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김종세가 이 절개법 이름을 댔어도 충분히 놀랄 법한데, 심지어 지금 입을 열고 있는 건 내과 이수혁이었다.
‘대단하다더니……. 얘기가 좀 그럴싸하잖아?’
김효열 교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하긴 이낙준 교수가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물렁한 인간은 절대 아니지 않은가.
특히 나르시시즘이 좀 있는 터라 남 칭찬에만큼은 인색한 편이었다.
그런 사람이 노상 진짜 의사라고 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뜻이었다.
‘modified weber ferguson incision이라……. 일단 준비는 하는 게 좋겠어.’
물론 처음부터 그 말에 따를 생각은 없었다.
조금 오버한 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딱히 수혁이 모자라서는 아니었다.
그저 현장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랬다.
원래 텍스트로 받아들이는 것과 실제 거기서 일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그럼 어디 우리 진짜 의사 선생에게 내시경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 줄까.’
김효열 교수는 아까보다도 더 열의를 불태우며 어깨를 돌렸다.
드륵.
그때 마침 오랜만에 당직에서 벗어나 집에서 자고 있던 비과 펠로우가 안으로 들어섰다.
원래는 두경부 교수가 되기 위해 두경부 수련을 2년 받다가, 도저히 자리가 안 날 거 같다는 교수들의 조언에 비과에서 또 펠로우를 하고 있는 비운의 사나이였다.
‘마침 또 쟤네. 잘됐어.’
개인사로는 더할 나위 없는 비극이지만.
지금 현 상황에서만 보면 잘된 일이었다.
두경부와 비과를 동시에 수련받은 사람은 정말이지 드물었으니까.
“자, 손 닦고 들어오자.”
“네, 교수님.”
해서 김효열 교수는 득의양양한 얼굴이 된 채 지친 얼굴의, 동시에 펠로우라기엔 나이가 많은 김보영 선생의 어깨를 두드린 후 밖으로 향했다.
그사이 김종세는 마취가 끝난 환자의 얼굴 전체를 소독한 후, 드랩을 시작했다.
평소 내시경 할 때보다는 그랩의 범위가 훨씬 넓었다.
딱히 modified weber ferguson incision을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애초에 눈을 뽑아야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하지 않은가.
얼굴 전체가 다 드러나야만 했다.
“좋아……. 일단 내시경 주세요.”
다 세팅이 되자마자 김효열 교수가 내시경을 집어 들었다.
그와 동시에 펠로우 김보영이 보조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레지던트인 김종세는 뒤로 밀렸다.
만약 이대로 내시경으로만 수술이 진행된다면 김종세는 뒤에서 졸아도 될 터였다.
“으음…….”
마취가 된 상황에서의 내시경 시야는 평소와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보스민이나 에피네프린이 섞인 거즈를 이용해 비강을 넓혔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뮤코마이코시스는 가뜩이나 혈관을 막아 괴사를 일으키는 놈 아닌가.
그걸 억지로 도와줄 필요는 없다는 게 김효열 교수의 판단이었다.
“이거…… 이거 아주 까맣게 죽었는데.”
보고 받았던 것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그세 더 자랐을 수도 있고, 또 아까 제대로 평가가 안 되었을 수도 있었다.
둘 중 뭐가 더 비중이 클지 고민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다.
“일단…… 마취 주사 줘 봐요.”
“네.”
해서 김효열 교수는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는 전방의 점막에 주사기를 꽂았다.
그러자 핏방울이 맺혔는데, 원래 같았으면 다들 싫어할 만한 일이었다.
피가 나면 내시경 시야를 가리지 앉은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이익.
김효열 교수는 그렇게 마취가 된 점막에 절개를 넣었다.
범위는 엄청나게 길었다.
깊이도 깊었다.
뼈에 닿았을 지경이었다.
뿌드드득.
그렇게 절개를 넣고는 넙적한 기구로 뼈와 점막 사이를 벌려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수월했다.
원래 정상 조직 다루는 데는 도가 텄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숙한 곳에 다다르자 곧장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다.
“이런 제기랄.”
점막이 찢어지거나 해서는 아니었다.
그랬으면 이렇게 욕설을 내뱉지는 않았을 터였다.
“뼈가…….”
“어떡하죠?”
점막 안에 뼈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