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범위가 커진다 (1)
김효열 교수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있는 모든 놈들이 자신이 아닌 수혁 편을 들고 있지 않은가.
환장할 노릇인 것은 펠로우마저 이러고 있다는 점이었다.
‘너까지 이래? 너마저?’
부투투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줄리우스 시저의 심정이 이랬을까?
김효열 교수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다가, 이내 모니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누가 태화 의료원 시스템 아니랄까 봐 모니터도 4K였다.
화질이 기가 막히다 이 말이었는데, 놀랍게도 이비인후과 의사 중엔 그 누구도 이 설비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국 이비인후과 중 4K 화질로 수술 부위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은 태화, 칠성, 아선뿐임에도 그랬다.
‘신경외과는 3D 모니터던데…….’
전통적으로 이비인후과는 대학 병원에서 보기엔 그다지 돈을 못 버는 과 아니던가.
어디 외국 환자라도 유치해서 코 성형을 대량으로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애석하게도 태화 의료원의 이비인후과 중 가장 강세를 띄고 있는 분야는 인공와우, 부비동 내시경 그리고 두경부외과였다.
돈 안 되는 세 개만 들들 파서 그런가 몰라도 이사회 측에서는 장비 마련해 주는 데 조금은 소극적이었다.
‘말을 듣고 보니까……. 확실히…… 이제는 피가 안 나.’
그렇다고 해서 수술 부위 살피는 데 부족함이 있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불과 1년 전까지 쓰던 모니터 화질에 비하면 오히려 차고 넘치는 편이었다.
덕분에 수술 부위를 면밀히 살필 수 있었는데, 좀 이상하긴 했다.
‘근데 키스톤 영역을…….’
그렇다고 해서 즉시 자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생각해 보라.
이비인후과는 코를 살리는 과지, 코를 자르는 과는 아니지 않은가.
특히 김효열 교수는 코 성형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모양을 중시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코 모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야말로 기둥 격에 속하는 구조물을 자르는 건 확실히 보통 일이 아니었다.
“교수님, 자르시죠.”
하지만 펠로우 김보영의 재촉을 받고 보니 더 지체하기도 어려웠다.
‘얘가 실력 하나는 죽이지.’
두경부에서 자리 안 나는 문제로 비과로 이 친구 넘겨줄 때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심지어 백정완 교수는 자기가 은퇴해야 하나 고민도 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물론 말만 그렇게 하는 거겠지만.
아직 60도 안 된 양반이 그런 말이라도 했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알았어. 음……. 칼 줘 봐.”
“네.”
해서 김효열 교수는 내시경을 김보영에게 건네주고는 칼로 키스톤 영역에 절개를 넣었다.
그와 동시에 수혁이 훈수를 좀 더 두기 시작했다.
“교수님, 거기보다 조금 위 어떨까요?”
“응?”
“한……. 1mm. 정도 위요.”
“뭔……. 아.”
김효열 교수는 절개를 넣었음에도 피가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큰마음 먹고 키스톤 영역에 넣었는데, 피가 안 났다.
그 말은 곧 아까 수혁이 했던 말이 맞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뭐야, 설마. 쟤는 이게 보이나?’
이상한 생각이 들어 화면을 뚫어져라 봤으나, 그냥 비중격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1mm 위랑 여기랑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저 녀석이 말하는 1mm가 어디쯤인지도 잘 모를 지경이었다.
‘근데…… 어차피 위로 가긴 가야 되잖아. 1mm면 충분히 조심스럽게 고려한 전진 속도기도 하고.’
허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또 나름 타당한 주장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은가.
냅다 뭐 1cm 위를 자르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1mm라면 좁은 코안에서라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전진이었다.
해서 김효열 교수는 맨눈으로 또 내시경 화면으로 1mm를 가늠하고는 칼로 그었다.
톡.
그러자 새빨간 피가 딱 절개 끝에서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 고여 있던 녀석하고는 때깔부터가 달랐다.
인마, 내가 살아 있는 피다 뭐 이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오. 여기까지가 경계네. 좋아. 이거 뒤로는 계속 이 레벨로 가? 넌 뭐가 보이는 거 아냐?”
한 번 맞히는 것은 우연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번 연속 맞히는 것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혁이 이 환자와 별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지금 조태진 교수 아래 치프 레지던트였다.
주치의는 아닐지라도 깊은 연관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뇨. 뒤로부터는 15도 정도 각도로…… 내려와 주세요.”
“오. 그래?”
해서 혹시 또 알려나 하는 생각으로 물었는데, 생각보다도 답변이 더 구체적이었다.
바로 1분 전 같았으면 말이 되냐 새꺄 하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밑져야 본전이야.’
원래 뮤코마이코시스와 같은 침습성 질환에서 절제는 좀 더 과감하게 하는 게 원칙이지 않은가.
근데 지금 수혁은 아까보다 좀 더 범위를 좁혀 가라고 하고 있었다.
그 말은 곧 저 녀석 말이 틀려 봐야 손해 보는 건 약간의 시간뿐이라는 점이었다.
그에 비해 만약 수혁의 말이 맞다면 어마어마한 이득이었다.
뭐가 되었건 정상 조직을 조금이라도 더 남길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지이익.
해서 김효열 교수는 최대한 수혁이 말했던 각도에 맞춰서 칼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딱 절개된 틈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그 아래쪽은 아무리 봐도 죽은 거 같은데, 위는 아니라 이 말이었다.
‘기가 막히네. 뭐야 대체.’
김효열 교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또 안 믿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조태진이 나섰다.
한 손으로는 비틀거리기 시작한 수혁은 지탱해 주면서였다.
“선배, 이거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
“응? 뭔 소리야.”
“내려서 그래, 신이.”
“미친 소리 하지 마. 내가 너 점 좀 그만 보고 다니랬지? 내가 네 말 듣고 주식 투자했던 거 생각하면……. 아오 내가 병신이지. 점 보는 놈 말을 믿고…….”
“이건 진짜라니까요? 과학적으로 설명이 돼요, 이게?”
“얘가 눈이 좋은 갑지.”
“멀쩡하던 애가 비틀거리는데?”
“몰라, 인마. 방해하지 마. 수술해야 해.”
김효열 교수는 그 후로도 조태진 저 자식은 다 좋은데 미신에 약한 게 문제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난 다음과 전은 아무래도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진짠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용해.’
계속 수혁의 말대로 자르고 있는데, 어찌 된 게 정말 딱 들어맞고 있었다.
비단 비중격에서만이 아니라, 눈 쪽 벽 그러니까 비강의 외측 벽에서도 그랬다.
“내안근……. 살릴 수 있어요. 영상은 노이즈예요. 지방만 걷어내 보세요.”
“음.”
심지어 내안근을 살릴 수 있었다.
그 말은 곧 눈을 살렸단 얘기였다.
수혁의 말대로 내안근을 싸고 있는 지방에는 염증이 잔뜩 퍼져 있었지만, 캡슐은 뚫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주 세심하게 캡슐이 살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박리를 했어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아무튼, 내안근은 무사했다.
이쯤 되니 신기하다는 생각보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뭐냐……. 나 약간 무서울라 그러는데?’
제발 누구라도 나타나서 원래 사람 눈이 이렇게 예민할 수도 있는 거라고 얘기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들 지경이었다.
드르륵.
바로 그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딱히 김효열 교수의 바람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두경부외과의 백정완 교수.
마니어 서저리 과인 이비인후과에서 메이저 서저리보다도 더 험악한 두경부외과를 도입하다시피 한, 일종의 전설적인 외과 의사였다.
“앗, 교수님. 오셨습니까.”
그렇다보니 김효열 교수 또한 같은 교수라는 생각 따위는 할 수가 없었다.
보자마자 고개를 재까닥 숙였다.
수술실만 아니었으면 허리까지 숙였을 터였다.
그래도 좋을 만한 권위와 실력이 있었다.
“눈 뽑아?”
백정완 교수는 딱 들어오자마자 거친 질문을 던졌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좀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비인후과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직설적인 화법에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아뇨, 교수님. 눈은 살릴 수 있었습니다.”
“오, 그래? 노이즈였나? 제대로 본 거 맞아? 어디 한번 띄워 봐.”
물론 대꾸하는 것은 이 중에서 제일 익숙한 김보영이었다.
김보영은 2년 간 백정완 교수 밑에서 두경부외과 수련을 더 받았던 만큼, 또 자타가 공인하는 애제자였던 만큼 노티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
“아니, 아니 CT 말고. 뭐 하는 거야. 내시경이지.”
그에 비해 뒤에 서 있던 김종세는 그렇지 못했는데, 결국, 한 소리 듣고야 말았다.
김종세가 희생한 덕에 바로 감 잡은 김효열 교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코안에 내시경을 집어넣었다.
한때는 새카맣긴 해도 점막으로 뒤덮여 있던 비강 안쪽이 온통 붉게 변해 있었다.
1차적으로 뮤코마이코시스에 오염된 부위를 죄 제거했다는 소리였다.
“어디가 눈이야. 아, 이거야? 눌러 봐.”
“네.”
백 교수는 딱 내시경이 내안근 근방에 가자마자 지시를 내렸다.
김보영은 그 즉시 환자의 눈을 눌러, 비강 안쪽으로 내안근이 벌렁거리게끔 조치를 취했다.
원래 같으면 관찰되어선 안 될 장면이었다.
종이처럼 얇은 뼈로 막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얇은 뼈가 모조리 곰팡이에 먹혀 있었고, 심지어 그 안에 있던 지방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어 있었다.
“이야……. 깨끗하게도 뗐다. 이거 반들거리는 거 캡슐인가?”
“네. 살렸습니다. 눈은 괜찮아요, 아직.”
“으음……. 그럼 아래는. 바닥은 어때.”
“바닥이…… 아유, 이쪽이 진짜 문젠데요.”
김효열 교수는 백 교수의 칭찬에 들뜬 기색을 애써 숨기고는 내시경 방향을 돌렸다.
0도가 아니라 30도였기에 바로 바닥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바닥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으음……. 긁어 봤어? 한번 긁어 보지그래.”
“아……. 네.”
백정완이 이제 막 눈을 끝낸 후에 들어온 마당이라 바닥은 사실 건드리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저 점막만 벗겼다 이 말인데, 그래서 긁는 것은 처음이었다.
김효열 교수는 프리어로 검게 변색된 부위를 힘주어 밀었다.
그그극.
제대로 된 뼈라면 들려서는 안 될 소리가 들려왔다.
뼈가 긁혀져 떨어져 나오는 소리.
“아이고.”
“아, 썩었네. 손 닦고 들어올게. 이거 드랩 치우고, 다리 닦아.”
“다리…… 그럼?”
“뼈 자르고 그냥 두냐? 재건해야지.”
“아…….”
“아는 무슨. 사람 살리려면 어쩔 수 없어. 내시경으로 수고했는데, 이제부터는 열어야 해. 그나마 뭐……. 코 쪽은 잘한 거 같네.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했대?”
김효열 교수는 거기다 대고 신이 내린 아이요 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해서 그저 침통한 얼굴이 된 채 드랩을 걷어 냈다.
그걸 지켜보던 조태진 또한 어두워진 얼굴로 김효열 교수에게 다가갔다.
“이거……. 얼굴 여는 거예요?”
“응, 이제……. 비과는 빠진다. 두경부 수술이야.”
“이런 망할.”
“그래도…… 희망적이야. 백 교수님이 수술을 하겠다고 결정한 거잖아. 눈도 살렸고. 어쩌면……. 이 환자 살 수도 있어.”
“견뎌 줘야 할 텐데…….”
“쟤, 쟤가 도와주면 가능할 수도 있지.”
김효열 교수는 대화를 하다 말고 수혁을 턱으로 가리켰다.
반쯤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이.
아까는 말도 안 된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신 내린 사람이 도와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