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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312화 (312/1,303)

312화 범위가 커진다 (4)

탁.

조용한 수술방 한가운데서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1 보조의 김보영이 가위질하는 소리였는데, 마지막 봉합 후 실을 자르는 소리이기도 했다.

“휴.”

백정완 교수는 방금 봉합해 준 입천장 쪽을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었다.

두두둑.

동시에 목 쪽에서 나서는 안 될 거 같은 소리가 났다.

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였다.

“환자 상태는 어떻지?”

백정완 교수는 한동안 목이 좀 뻣뻣했는지 이리저리 돌리고만 있다가 마취과 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마취과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은 수혁이었다.

자리만 지킨 게 아니라 환자의 바이털을 지키고 있던 것 또한 수혁이었다.

그래서 대답도 수혁의 몫이었다.

“괜찮습니다. 안정적이에요. 나가서 랩을 좀 나가 봐야 하긴 하겠는데……. 30분 전에 나간 랩 결과는 좋아요.”

“다행이네. 시간은……. 어이구, 벌써 6시간 지났네.”

백정완 교수가 들어올 때 시각이 이미 12시가 넘은 시점 아니었던가.

그 말은 날밤을 새웠다는 뜻이었다.

병원 업무 특성상 이제 바로 정규 업무에 돌입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 백정완 교수는 오늘 하필이면 외래가 있는 날이라 정신적 피로감이 더했다.

하지만 마냥 힘들지만은 않았다.

‘단면……. 아주 깨끗했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게 절제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쓸데없이 잘려져 나갔을 법한 부위를 많이 살릴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봉합도 수월했고.’

동시에 수술 자체가 더 쉬워지는 효과도 있었다.

유리피판술이라는 거 자체가 뭘 가지고 해도 어려운 수술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뼈를 이어다 붙이는 거랑 그냥 살을 이어다 붙이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피도 덜 났어. 혈압을 만진 거 같은데…….’

심지어 수술하는 동안 내내 피가 평소보다 덜 나는 느낌을 받았다.

애초에 숙련된 집도의라면 피부 절개 때 말고는 이렇다 할 출혈을 못 느끼는 게 정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연신 닦아 낼 정도의 출혈이 있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설마 해서 고개를 돌려 보니, 뭔가 중요한 술기를 할 때마다 혈압이 대략 10 정도 내려가 있었다.

그게 뭐 그렇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겠냐 싶기도 하겠지만.

막상 칼 대고 수술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살 수도 있겠어.’

백정완 교수의 짧지 않은 수술 경력을 뒤돌아봐도, 오늘만큼 깔끔하게 수술이 잘된 케이스는 많이 없었다.

덕분에 백 퍼센트 자신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는 환자 예후가 긍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 그럼 환자 빼야 되는데. 중환자실 잡혔나?”

“네. 바로 여기 내과계 중환자실로 가시면 됩니다. 저희가 바이털은 계속 볼 텐데……. 수술 부위는 이비인후과에서 봐 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할까요?”

“당연하지. 비과랑 두경부랑 같이 볼 거야. 아무래도 코 쪽은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김 교수?”

백정완 교수의 말에 김효열 교수가 허허 웃었다.

사실 남의 수술인지라 나가도 되었겠지만.

이 환자는 끝이 어떻게 되나 궁금하기도 했고, 또 백정완 교수를 부른 마당에 나가는 게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억지로 졸음을 참고 있던 참이었다.

“아, 네네. 당연하죠.”

그럼에도 웃음이 나오는 것은 백정완 교수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김효열 교수가 봐도 이 환자에 대한 수술적 처치는 빈틈이 없었다.

‘저 친구 덕분이라고 봐야겠지?’

애초에 수술을 하게 된 것부터가 수혁 덕분이었다.

수혁이 아니었으면 발견도 못 했을 테니까.

아니, 발견을 하긴 했을 터였다.

이미 늦고 나서.

“그래……. 아유, 그럼 나는 경의실에서라도 눈 좀 붙여야겠다. 보영아, 너는 중환자실 가서 담당 간호사한테 상처 인계 좀 해 줘. 다 늙어서 밤새우려니까 죽겠다, 진짜.”

“네, 교수님. 가서 쉬세요.”

“너는 오늘 스케줄 뭐냐?”

“수술이요.”

“아이고.”

순간 백정완 교수의 눈에 동정심이 비쳤지만 그렇다고 뭐 조치를 취해 주거나 하진 않았다.

말 그대로 제 코가 석 자인 상황 아닌가.

지금 당장 가서 샤워하고 쓰러진다고 해도 2시간도 못 자고 외래를 가야만 했다.

대학 병원에 남기를 희망한 이상 감내해야 할, 일종의 업이라고는 하지만.

때론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수혁아, 우리도 가자.”

“아, 네. 교수님. 교수님은 괜찮으세요?”

조태진 교수의 말에 수혁도 몸을 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다리가 불편한 와중에 오랜 시간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 있었더니 뻣뻣한 느낌이 들었다.

조태진은 그런 수혁은 한 손으로 번쩍 당겨 주며 답해 주었다.

“넌 괜찮냐? 난 체력 하나는 옛날부터 자신 있었어.”

말처럼 멀쩡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누가 누굴 걱정합니까? 수혁은 체력이 너무 약합니다.]

‘야……. 레지던트가 이 정도면 됐지.’

[아뇨, 운동을 좀 하긴 해야겠습니다.]

‘다리가 불편한데 무슨 운동을 해.’

[핑계입니다. 상체 운동을 좀 하시죠. 솔직히…… 이게 뭡니까? 아직 젊은데, 이게 뭐냐고.]

‘아니……. 왜 남의 몸을 보고 뭐냐고 해. 너무하는 거 아니냐?’

그 모습을 본 바루다가 속상하다는 얼굴로 수혁을 공격하고 나섰다.

수혁은 이런 바루다를 볼 때마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친구들이 엄마에게 잔소리 들었을 때마다 이런 불평을 하던데.

혹 자기 진짜 엄마도 이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럼 갑시다.”

“네.”

그러는 사이 수술했던 팀이 환자를 중환자실 침대로 옮겼다.

계속 재워서 벤틸레이터를 사용할 작정이었기에 마취과 의사는 환자 머리 쪽에 붙어 있었다.

연신 앰부를 짜내면서였는데, 이것만은 수혁보다 마취과 레지던트가 훨씬 나았다.

하여간 몸으로 하는 건 대부분 별로라고 보면 되었다.

“세팅은 일단……. 그냥 이대로 해 주시고요.”

“상처는 제일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은 여기……. 입안에 보면 입천장 이쪽 보이죠? 여기가 우리가 새로 만들어 준 부분인데……. 색이 변하거나 하면 바로 콜 해 주세요. 우리가 두 시간마다 와서 확인은 할 건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환자가 딱 중환자실에 도착하자마자 다들 인계 때문에 바빠졌다.

수혁이라고 해서 한가한 것은 아니었다.

수혁은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중환자실 처방을 주르륵 넣기 시작했다.

원래 인계되어 내려오던 세트를 수혁이 자기 입맛대로 수정해 만든 세트였다.

딱히 지적 재산권이 있는 세트도 아니거니와, 수혁도 배포를 허용했기에 이제 모든 내과 레지던트는 이 세트를 사용하고 있었다.

[약은 보리코나졸로 나가고……. 이 환자는 일단 아이오를 잘 봐야 합니다.]

‘응, 신장이 안 그래도 좀……. 일단 신장 내과에서도 이 환자 알고는 있으니까. 문제 생기면 투석은 가능할 거야.’

[안 할 수 있으면 안 하는 게 낫죠. 다행히 지금은 뭐……. 폐도 괜찮아 보이긴 하네요.]

바루다의 말에 수혁은 방금 들은 청진음을 떠올렸다.

원래 같으면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적어도 수혁만은 그랬다.

바루다가 청진음을 싹 데이터화해 둔 덕이었다.

‘오케이, 그럼 이 정도로 가자.’

[네. 자주 들여다보면 되겠죠. 이비인후과 쪽에서도 2시간마다 온다니까요.]

‘응, 근데 마이너 서저리 쪽은 정말 딱 상처만 봐주긴 하더라.’

[그게 어딥니까. 게다가 이 환자 유리피판술 한 환자잖아요. 거기 상처가 좋다는 건 대충 전신 상태도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도 될 겁니다.]

‘아……. 하긴 그렇네. 정말 그래.’

유리피판술이 뭔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곳에 있던 살덩이나 뼈 등을 잘라다 붙여 준 거 아닌가.

사람이 프랑켄슈타인은 아니기에 그냥 잘라다 붙여 주는 것만으로 딴 데 있던 것이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혈관 문합술이 필수적이다 이 말이었다.

새로 이어 준 혈관은 그만큼 약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혈액 공급이 제대로 되고 있다면 어지간히 전신 상태가 좋은 거라고 유추할 수 있다는 건 옳은 말이었다.

교과서에는 당연히 없는 내용이었기에 수혁은 깨달음을 얻은 얼굴이 되어 몇 번인가 더 그 말을 되뇌고는 처방을 마쳤다.

“음, 그래. 처방은 이렇게 나가면 되겠네.”

조태진은 그 처방을 검토하고는 고개를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 다행이에요, 진짜. 제가 이걸 놓쳐 가지고…….”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하윤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래도 상황이 좀 안정이 되어 가는 것을 보자 마음이 풀린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자기 환자가 자신이 놓친 질환으로 인해 죽어 가고 있지 않았던가.

심지어 아직도 100% 다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만큼 심각한 질환이 있었는데, 그걸 잡아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하윤을 온통 휘어 감고 있었다.

“야, 나도 놓친 거야. 네가 그러면 나는 뭐가 되니.”

하윤은 이제 겨우 레지던트 1년 차 아닌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라는 뜻이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약간은 담담해져야 오래 걸을 수 있고, 또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특히 혈액종양내과를 하면서 무수히 많은 죽음과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해 떨어져 나간 동료들을 보아 온 조태진은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심해야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중도를 지켜야만 했는데,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일단…… 밥 먹자. 밥 먹고 오늘 하루도 힘내자고.”

“아, 네.”

“네, 교수님.”

조태진은 자기도 아직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일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내가 처음 낙담했을 때……. 현종이 형이 해 줬던 거나 해 주자.’

다만 힘내라는 말이나 할 뿐이었다.

어차피 고민은 혼자 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다행히 내과는 분과가 많으니, 그 고민 끝에 여전히 죽음과 다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혈종으로 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또 갈 수 있는 길이 많았다.

“맛있지?”

“오……. 병원 근처에 이런 곳도 있었네요?”

“저는 처음 먹어 봐요.”

“뜨끈하니, 밤새우고 먹기 딱 좋아. 수혁이 너야 워낙 환자를 빨리빨리 잘 보니까 이런 날이 적겠지만……. 그래도 하나 알아 두면 괜찮아.”

“그러게요. 진짜…… 뭔가 좀 든든해지는 느낌이에요.”

“와……. 가게가 벌써 수십 년이 됐네요.”

해서 조태진은 이현종이 아직 펠로우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 자신에게 사 주었던 설렁탕을 둘에게 사 먹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하윤에게였다.

조태진이 생각하기에 수혁은 이미 자신이 뭐라 할 수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었다.

‘곧 교수 되면 동료지 뭐. 같은 전문의끼리 가르치긴 뭘 가르쳐.’

이런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비단 조태진 하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전설 속의 인물 같은 이현종이나 신현태도 그랬다.

심지어 류머티스의 악마라고 불리던 김문재 교수도 수혁 얘기만 나오면 말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아, 그러고 보니까……. 오늘인가? 교수 회의 있다고 한 게?’

뭔가 지각 변동이 있을 거라고 들었던 거 같았다.

지각 변동이라.

무조건 수혁과 연관이 있을 거 같았다.

어떻게 아느냐고, 너 또 신 내렸다 어쩐다 할 생각이냐고 한다면 좀 억울했다.

‘수혁이도 들어오라고 했을 텐데, 아마…….’

근거 있는 의심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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