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14화 (314/1,303)

314화 공표 (2)

“이야, 이렇게 회의에 열심히들 참여하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이현종은 비아냥거림을 시전하면서 주변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말투보다도 더 험악한 표정을 하고서였으나, 별 소용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현종이라고 하면 태화에서는 상징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째려보면서까지 손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현종은 일부러 그중에서 제일 적대적인 인물을 뽑았다.

“안과 최다예 교수님?”

우스운 사람은 아니었다.

소아 사시의 대가 중 하나였으니까.

오히려 좋은 의사라고 봐야 할 터였다.

돈 잘 번다는 안과에서도 소아 사시만큼은 그런 분야가 아니지 않은가.

그야말로 돈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택한 사람이었다.

“네, 원장님. 제가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그러라고 만든 자리입니다.”

때문에 이현종도 날카롭게 대하진 못했다.

괴짜이자 불세출인 기인 이현종이 유일하게 약해지는 순간이 바로 이런 이들을 앞에 두었을 때였다.

“이수혁 선생에 대한 소문은 저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천재라지요?”

“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원장님 성품을 제가 잘 알고 있으니, 단지 아들이라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아닐 거라 믿습니다.”

“물론이죠. 이 녀석이 멍청했으면 절대 옹호할 일 없습니다.”

“네, 그럴 겁니다. 저도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원래 교수쯤 되면 앞에서부터 면박 주는 사람이 더 드문 법이었다.

그런 사람이 더 하수이기도 했고.

‘뭔 얘기를 하려고 저러나.’

이현종은 회의를 열기 전 신현태 및 조태진, 홍창기 등 여러 프락치를 가동해 분위기 파악에 나섰던 것을 기억했다.

그뿐 아니라 태화 생명 측에서도 미리 조사에 나섰더랬다.

[되기는 할 텐데 과정이 순탄치는 않을 겁니다.]

위에서 강행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설마 안 되겠는가.

하지만 센터를 개설하는 것과 그 센터가 잘 돌아가는 것은 조금은 다른 얘기였다.

다른 과에서 통합진료센터에 의뢰를 해 주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일단 이 자리에서 수혁과 이현종의 위엄을 드러내 보여야만 했다.

“이곳은 태화입니다. 자랑 같지만, 저도 천재 소리 들으며 컸고, 병원 와서도 내내 그런 평가를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가 된 겁니다. 아마 여기 계신 거의 모든 교수님들……. 다 그럴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음.”

“그리고 제가 키우고 있는 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리어만 따지면 이수혁 선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전문의 따고 군대도 다녀왔고, 펠로우 2년에 지금 임상 조교수도 3년째입니다. 전문의 딴 지 8년째라는 소립니다. 이제 곧 9년 차에 접어들고요.”

“으음.”

9년이라.

어떻게 봐도 짧지 않은 세월이었다.

사실 이현종 때를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땐 펠로우 하지 않고도 교수가 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지금 세대는 그야말로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동안 저술한 SCI급 논문만 20편이 넘습니다. 박사야 당연히 땄고요. 그런데도 아직 교수 발령은 못 받았습니다. 비단 제 제자뿐만이 아니라, 여기 계신 교수님들이 키우는 제자들도 태반이 그럴 겁니다.”

“으으음.”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해서 이현종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뭐 하나. 수혁이보다 멍청한데.’

물론 속으로는 전혀 딴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지만.

적어도 겉에서 볼 때만큼은 최다예 교수의 말에 십분 공감하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형평성의 문제입니다, 원장님. 이수혁 선생이 뛰어나다는 건……. 그렇게 커다란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솔직히 요새 의대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그중에서도 태화는 더 어렵구요. 게다가 저희가 키우는 제자들은 거기서도 선별한 인원이에요.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음.”

“할 말이 있으시면…….”

해서 최다예는 하고픈 말을 다 한 다음에도 이현종을 몰아붙이기 위해 쉬지 않았다.

“말 다 끝난 거죠?”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내 할 말을 잃은 사람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던 이현종이 고갯짓을 멈추고 손을 들어 올리자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한량 원장에서 석좌 교수 이현종으로 화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그런 이현종을 앞에 두고도 계속 말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형평성 문제는 저도 잘 압니다. 교수 되기 어렵죠. 부센터장 같은 자리야 더 어렵고. 보통 실력도 실력이지만 시간도 많이 필요하죠.”

오죽하면 교수 자리는 하늘이 내는 것이란 말도 있을까.

그만큼 교수 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현종 또한 자리가 없어서 교수 자리를 못 준 제자들이 몇 있을 정도였다.

아직도 생각하면 아쉬웠는데, 그렇다고 해서 수혁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다.

‘얘랑 실력 운운하는 건 말이 안 돼.’

수혁을 천재라고 정의한다면 여기 앉아 있는 나머지 모든 사람은 천재가 아니었다.

그저 수재 정도일까.

‘그렇게 말하면 나도 좀 기분 나쁘니까…….’

해서 이현종은 수혁은 괴물 정도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천재라고 하는 데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시간이 불필요하기도 한 법입니다. 이수혁 선생이 바로 그 케이스지요.”

“원장님!”

“제 말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까 제가 교수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으니, 이번엔 교수님이 기다려 주시죠. 예의를 지키세요.”

“음.”

정색한 이현종만큼 무서운 사람도 드물었다.

원래 평소에 허허거리던 사람이 이렇게 나오면 당황스럽지 않던가.

심지어 옆에 있던 신현태마저도 긴장이 될 지경이었다.

‘낯설다, 이런 모습…….’

하여간 수혁이만 관여되면 눈이 돌아가는 양반이었다.

‘파이팅.’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었다.

신현태 또한 수혁 바라기였으니까.

“일단 아까 말씀하신 제자…… 내가 기억하기로 안현준 선생 같은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전문의 따고……. 군의과 빼면 6년인데. 그동안 SCI 20개 썼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수혁이는 3년 동안 20개 넘게 썼어요. 그중 두 개는 NEJM에 실렸습니다. 케이스 리포트까지 하면 더 많고요. 논문으로는 일단 상대가 안 되네요. 맞습니까?”

“어……. 네? 레지던트가…… 원장님이 그거…….”

“내 학자로서의 명예를 건들면 가만히 안 둘 겁니다.”

“아, 죄송…… 죄송합니다.”

이현종은 낮은 목소리로 교수를 깨갱 하게 만들고는 말을 이어갔다.

“필드에서의 실력이 문제가 될 텐데. 뭐 안현준 선생도 6년을 대학 병원에 있었으면 어지간한 교수급은 되겠네요, 그쵸?”

“네, 저 이외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거라 자신합니다.”

“이수혁 선생은 사실 저보다 뛰어납니다. 아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내과 교수보다 뛰어나죠.”

“네? 아니……. 무슨 그런…….”

“사실이 아닌 거 같습니까? 그럼 옆에 있는 홍창기 교수에게 물어보세요. 어떤가.”

“어…….”

최다예는 저도 모르게 홍창기를 돌아보았다.

홍창기는 그런 최다예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슥 하고 돌려 버렸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솔직히 자신 없어요……. 평생 본 미코플라스마 폐렴이라면 모를까, 다른 분야는…….”

“아니…….”

“나도 그래요. 심장……. 그중에서도 관상 동맥 질환이야 뭐 내가 낫겠지만. 다른 분야는 자신 없습니다. 무엇보다 각 과의 연결 고리를 찾아 통합하는 과정은 제가 본 누구보다 뛰어납니다.”

“그건…….”

웅성거리기 시작한 것은 비단 최다예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그에게 동조했던 다른 모든 교수들이 다 그랬다.

“이건 그냥 말뿐이지 않습니까?”

“증거가 있습니까?”

“네, 증거 있어요?”

이현종은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리다가 후후 웃었다.

“증거요? 어떤 증거를 원하는 겁니까?”

태화 생명 관계자들과 신현태, 조태진 등등을 갈아 넣어 만든 자료를 떠올리면서였다.

이른바 이수혁 일대기였는데.

그걸 만들면서 다들 이번 일에 더 확신을 갖게 되었을 정도로 훌륭했다.

‘내 자식이지만 정말 잘 컸어.’

심지어 이현종은 이제 정말로 수혁이 자기 친자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종의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 셈인데, 신현태를 비롯한 여럿은 이미 교정에 포기했다.

아니라고 하는 순간 죽일 듯이 소리를 지르는데 그럼 어쩐단 말인가.

게다가 딱히 수혁에게 해가 되는 일도 아니었고, 이현종에게도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좀 불편하고 이상할 뿐이었다.

“내과 의사로서 뛰어나다는 건……. 뭐 내과 의사들이 그렇게 말하니 넘어가야겠죠. 하지만 다른 과 진료도 잘한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여기 보면 통합진료센터는 모든 과의 협진을 맡는다는 조항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다른 과라……. 물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요?”

“일단…… 김효열 교수 어딨지?”

난데없는 호명에 김효열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어제 있었던 일이 죄 PPT로 만들어져 화면에 떠 있었다.

‘이 사람들아……. 나한테 전화 건 사람이 남지연 이사장이야…….’

내막을 몰랐다면 왜 이렇게 오버하나 했을 텐데.

이미 전화를 받은 참이었다.

그때까지도 이걸 편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고민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김효열 교수는 줄을 잘 잡는 편이었다.

“네, 교수님. 일단 최근에 있었던 케이스입니다.”

해서 김효열 교수는 마치 학회에서 자기 연구 발표하듯 성심성의껏 수혁을 변호하고 나섰다.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바루다마저 감동했을 지경이었다.

[저 교수님 협진은 특별히 잘 봐줘야겠군요.]

‘그러게. 엄청난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산부인과 진태림 교수.”

“정형외과 김선웅 교수.”

“소아과…… 음, 이기자 교수?”

호명하는 대로 수혁을 두둔하고 나섰다.

심지어 이현종이 껄끄러워하는 소아과의 호걸 이기자 교수마저도 그랬다.

비록 딸의 커트라인에는 들지 못했지만.

이기자 교수의 커트라인은 넘고도 남음이 있었다.

물론 의사로서 그랬다.

“더 필요합니까?”

그렇게 폭격을 한 후, 이현종이 재차 물었다.

최다예 교수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을 향해서였다.

대부분 눈을 피하거나 고개를 저었지만.

불순 불자들은 꼭 있는 법이었다.

류머티스 내과의 김문재 교수의 친우이자, 비뇨기과의 문제아 박상헌이 그랬다.

“네, 더 필요합니다. 통합진료센터라는 말을 하기엔 부족하지 않나요?”

김문재 교수에게 나 잘했지? 하는 눈빛을 보내면서였다.

김문재 교수도 사람이 좀 된 사람이면 여기서 아니라고 할 텐데.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여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었다.

“거참.”

이현종은 고개를 가로젓고는 말없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이를 바라보았다.

혹 자신과 눈이 마주쳐 심장이 멎을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사람, 김승규 교수였다.

“박상헌 교수?”

“힉.”

“나 일반외과 김승규야.”

“히익.”

“이수혁 저 친구, 내 환자도 살려 준 적 있어. 말 다 한 거 같은데.”

“히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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