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화 협진을 냈으면 인마 (1)
비뇨기과 레지던트 김병엽은 박상헌 교수의 말을 그대로 수혁에게 전했다.
약간의 순화 과정을 거치긴 했으나, 아무튼,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미친 새끼들인가?]
그게 문제였다.
협진 낼 때는 언제고 의견을 내니까 무시를 해?
이건 평소 사이가 어떠고를 떠나서 너무 무례한 일이었다.
아무 근거 없는 주장도 아니고, 나름 합리적인 이유를 대면서 낸 의견이지 않은가.
‘이런 개새끼가?’
바루다는 물론이거니와 수혁 또한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수혁이 일반적인 레지던트였다면 여기서 그냥 참아야만 했을 터였다.
[저지르죠?]
‘그럴까?’
하지만 수혁은 일반적인 레지던트가 아니었다.
지금 그룹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이 그대로 진행만 된다면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박상헌 교수보다 위가 될 몸이었다.
뭐 병원이라는 곳이 보직보다는 경력이 우선시되는 곳이니만큼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일개 평교수와 부센터장을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터였다.
[미리 알리고? 아니면 그냥.]
‘그냥 하지 뭐. 이게 잘못된 일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인생 대부분의 일에서 통용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특히 의학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오죽하면 그 경험 많고 아는 거 많은 이현종조차 환자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땐 펠로우와 레지던트와 짧게나마 토의를 나누겠는가.
자신의 지식이 정말로 정확한지 또 그사이 업데이트 된 것은 없는지,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환자 정보에 오류가 없는지 등등을 확인해야만 사고를 줄일 수 있어서였다.
심지어 그렇게 하는 데도 나는 것이 의료사고였다.
‘일단 환자한테는 가 봐야지. 이게 비용이 드는 일이라.’
[비용? 아, 검사비 말씀이십니까?]
‘그래. 돈 드는 일을 아무 설명도 없이 막 할 수는 없지.’
[그렇군요.]
바루다는 아무래도 인공지능이라 그런지 인간 사회의 어려 부분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의료비 부분이었다.
적어도 바루다에게는 돈이란 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는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아니, 의사에게는 돈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돈 때문에 치료할 수 있는 병임에도 불구하고 죽어 간단 말인가.
대한민국 의료 보험 제도가 잘 되어져 있는 것도 맞고, 의료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한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환자에 대한 걱정을 덜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원장님이나 과장님이나 강조하시는 게 그거야. 조심하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 지르면 환자에게 도리어 해가 될 수 있어.’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검사는 그렇게까지 부작용이 있는 검사가 아닌데요?]
‘아니, 인마. 경제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고.’
[그건 어떻게 판단합니까?]
‘어떻게 판단하긴. 가서 얘기를 나눠 봐야지.’
수혁은 발걸음을 옮기면서 동시에 아까 보았던 환자의 행색을 떠올려 보았다.
너무 말라 있어서 솔직하게 말하면 가난할 거 같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혁은 언젠가 이비인후과 선배가 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실습 학생 시절 수술방에서 해 준 말인데, 어떻게 보면 별거 아닌 말임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잘 봐. 수술 하나에 투입되는 비용이 얼마나 될까? 이거 다 일회용이고. 이 수술 기구들……. 설령 쓰지 않았다고 해도 다 소독을 돌려야 해. 변형될 거 같은 건 화학 소독을 돌려야 해서 돈이 더 들지. 그리고 지금 들어와 있는 사람 수를 봐. 수술 하나에 의사만 마취과까지 넷이야. 간호사는 둘이고.’
처음엔 수술에 드는 비용을 얘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더랬다.
원래 선배들 중에 수가가 턱없이 낮다며 열변을 토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니까.
당시 학생이었던 수혁이 봐도 그렇게 보였으니 화가 날 만도 하지만 너무 많이 들은 말이다 보니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것만 보면 수술비가 싸. 그런데 말야. 어제 내가 동의서를 받을 때……. 환자분이 수술비를 여쭤보시더라고. 그래서 말씀드렸더니 조금 얼굴이 밝아지셨어. 하지만 그 후에 계속해서 들어갈 입원비, 추가 검사비 그리고 다른 치료비까지 듣고 나니까 한숨을 쉬더라고. 전세 비용을 빼야 되나 봐. 그럼 이 환자에게는 수술비가…… 우리가 취하는 의료비가 싸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그걸 모르겠어.’
하지만 뒤이은 말은 조금 충격이었다.
맨날 공급하는 입장에서만 생각하다가, 환자 입장을 생각하게 된 까닭이었다.
무엇보다 이제야 겨우 환자 입장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이 더 충격이었다.
[그래서 결론이 뭡니까?]
‘결론?’
[네. 이건 굳이 제가 데이터화하지 않아도 될만큼 선명히 남아 있던데요? 엄청나게 많이 되새기고 고민했다는 증거 아닙니까? 결론이 뭐예요, 그래서. 그건 흐릿하던데.]
‘글쎄. 아마 그 선배도 고민 중일걸.’
[지금 어디서 뭐 하시는데요?]
‘여기서 환자 보고 있지. 휴가 때마다 해외 봉사 다니고…….’
[해외 봉사하는 거랑 한국의 가난한 환자랑은 관계가 없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사람 마음은 그렇지가 않을걸.’
이런 것까지 이놈이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게 사람이지, 인공지능이겠는가.
수혁은 잠시 인생에 물음표를 던진, 그리고 나름의 해답을 찾은 거 같은 선배를 떠올리다가 병실 안에 들어섰다.
다인실이라 그런지 다양한 소음과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수혁은 어렵지 않게 이기일 환자를 향해 곧장 걸을 수 있었다.
“끄으응.”
환자는 어지간히 기력이 없는지, 수혁에게 인사하는 것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나빠진 건 아니지?’
[혈색은 조금 더 악화되었습니다만, 유의미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 검사상에서 혈색소 수치가 변할 수준은 아닐 거라고 판단합니다.]
‘오케이.’
그나마 이전보다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다행인 상황일 터였다.
해서 수혁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환자에게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그의 어깨를 슬쩍 내리누르면서였다.
“환자분, 몇 가지 검사가 필요하겠어요.”
“검사? 에유……. 힘든데…….”
검사라는 말에 환자는 우선 고개부터 내저어 댔다.
초보 의사에게는 아마도 무척 답답스러운 상황일 터였다.
하지만 3년 차 쯤 되면 환자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대강은 알 수 있게 되는 법이었다.
수혁은 환자의 손목과 팔뚝에 난 수많은 주삿바늘 자국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얼마나 많은 검사를 받았을까?
진절머리가 날 법도 했다.
“알죠. 환자분, 하지만 꼭 필요한 검사예요. 그리고…… 아주 힘들진 않으실 거예요. 뭐 쑤시고 하는 게 아니라……. 영상이에요. 영상.”
“영상?”
“CT나 MRI 같은 거요.”
“아……. 그럼…… 그건 괜찮은데.”
“근데 그냥 찍기만 하는 건 아니고 중간에 뭘 하기는 할 거예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아……. 꼭 필요한 건가……?”
환자는 기운 없는 얼굴로, 하지만 아직 총기 있는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시험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그저 애절하게만 느껴졌다.
그만큼 병마에, 그리고 병원에 시달렸다는 증거였다.
누구라도 애석한 마음이 들 법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 마음에만, 감상에만 빠져 있으면 안되었다.
의사는 공감하는 사람이 아니라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네. 진단에 결정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 그럼 해야지.”
“비용이 좀 발생할 수 있어요, 그것도 괜찮을까요?”
“필요하다면……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동의서를 좀 받을게요.”
“그거 그냥 사인하면 안 되나? 듣는 것도 힘들던데.”
“절차라서요. 그리고 환자분도 어떤 검사를 어떻게 하는지 대강은 아셔야죠.”
“그래, 그럼. 젊은 의사 말……. 들어야지.”
환자는 조금은 체념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수혁은 병동 스테이션으로 가서 처방을 넣고, 해당 처방에 대한 동의서를 뽑아서 돌아왔다.
혹 그사이 수술이 끝났나 하고 수술실 차트를 까 봤는데 마취과 기록을 보니 아직도 멀어 보였다.
약이 한 번 더 들어간 것을 보면 확실했다.
‘나오기 전에 상황 끝내 버리자.’
[그러죠.]
‘근데 꽝 나오면 어쩌지?’
[그럼 더 큰 일입니다. 출혈이 있을 텐데, 이 검사로도 진단이 안 되었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데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는 거니까요.]
‘그렇긴 하네. 내 입지가 문제가 아니구나.’
의학은 누누이 말하지만 법학처럼, 그러니까 사람이 정한 논리에 의해 딱딱 떨어지는 학문이 아니었다.
일정 부분 통계학과 접하고 있었는데, 그 말은 모든 의사들이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했던 일이 종종 벌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까 들었던 것보다는 좀 힘들어 보이는데……?”
“CT 같은 거 동의서 들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오버하는 감이 있어요. 그렇게 느껴지시죠?”
“CT? 맞긴 하네. 거 뭐……. 그거 찍는다고 사람 죽는다고…….”
“네네.”
사실 실제로 죽기도 하긴 했다.
특히 대학 병원처럼 원래 상태가 안 좋은 환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거까지 설명을 해야 할까?
수혁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환자에게 올바른 의학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줘서 혼란에 빠뜨리는 건 쓸데없는 일이었다.
“음. 그럼 제가 검사실에 연락할게요. 준비되면 이송 요원이 올 거니까, 어디 가시면 안 됩니다.”
“어딜 가, 이러고.”
수혁의 말에 환자는 앙상한 다리를 가리키며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무 맞는 말이라 수혁은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뵐게요.”
그리곤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검사 처방을 내고, 환자 설득 및 동의를 받았으니 끝 아닌가 싶겠지만.
이런 검사 같은 경우엔 검사실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특히 수술실 끝나기 전에 스리슬쩍 하려면 반드시 그랬다.
“네, 김진실 교수님.”
그러기 위해 수혁은 검사실이 아니라 김진실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당 검사들은 엄밀히 말하면 복부 파트가 아니라 비뇨생식 파트긴 했지만, 두 파트는 어차피 같이 일을 하는 편이었다.
특히 고참 교수인 이하언의 지침이 복부 파트 영상의학과 의사라면 응당 비뇨생식 파트에 대해서도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기에 김진실 교수의 입김도 꽤 센 편이었다.
게다가 태화 의료원의 복부 파트는 인력이 많이 필요한 곳이라, 전임 발령받은 지 이제 겨우 3년째인 김진실 교수도 후배가 몇 있는 몸이 된 지 오래였다.
“아, 이수혁 선생.”
그래서 그런가 전화 받는 목소리에도 여유가 묻어 나왔다.
“네. 교수님. 다름이 아니라…….”
수혁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미 이현종에게 확실한 아군이라는 컨펌이 있었기에 자세하게 얘기해도 좋았다.
“아……. 그러니까 일부러 그런 협진을 내놓고서 협조를 안 한다 이거지?”
“네.”
“그럼 안 되지.”
다행히 김진실 교수는 파이팅이 좀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데 있어서 딱히 망설임이 없다고 할까?
특히 이쪽에 더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이 들면 더더욱 그랬다.
“내려. 내가 지금 바로 볼게.”
“아, 네. 감사합니다.”
“환자만 보내지 말고. 내려와. 같이 보자고.”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