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화 협진을 냈으면 인마 (2)
“왔어?”
“네, 교수님.”
수혁은 김진실 교수가 부르자마자 아래로 향했다.
말하자면 최선을 다했다는 뜻인데, 다리가 불편해서 그런가 그래 봐야 시간이 좀 걸린 참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환자도 내려와 있었다.
다행히 김진실 교수는 수혁의 다리가 어떠한 상태인지 너무 잘 알고 있기도 하거니와, 애초에 수혁에 대한 호감이 맥스인 사람이었다.
“일단 지금 의심하는 게 출혈인 거지? 요로관에서의 출혈.”
“네.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만한 출혈이 설명이 되질 않아요.”
“음, 그래. 내가 지금 간호 기록을 보고 있는데…….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해.”
“간호 기록이요? 어떤 것이 이상하죠?”
해서 김진실 교수는 늦었니 어쨌니 얘기하는 대신 그저 환자 얘기부터 꺼냈다.
이게 다 배려임을 수혁도 알기는 알았지만, 환자 얘기하는 데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도 좀 이상한 일 아닌가.
해서 잠자코 김 교수의 대화를 따랐다.
“여기 봐. 이 간호사만 환자 소변 색을 주의 깊게 봤나 봐.”
“이 간호사……?”
“몰랐구나. 간호 기록에도 서명이 있어. 교대하잖아. 뭐 다 같은 서식으로 원칙에 따라 기록하니까 구별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잘 보면 조금씩 달라.”
“어…….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이건 수혁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혹시나 해서 바루다를 불렀더니 이놈도 마찬가지였다.
[간호 기록 열심히 보기는 하는데 이런 걸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리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님이 얘기 꺼내시는 거 보니까 이게 이번 일에 핵심 같은데?’
[끝까지 들어 봐야 알죠, 그건.]
‘하여간 지기 싫어 가지고.’
인공지능 주제에 전자 기록을 놓친 주제에 입만 살은 놈이었다.
수혁은 지금 당장은 바루다와의 대화에 영양가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고, 즉시 김진실 교수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사이 김진실 교수는 한 간호사의 기록을 띄워 두고 있었다.
아예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비록 다른 과 병동이긴 하지만 그래도 협진 때문에 가면 나름 살갑게 지내는 편인 수혁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이라면 아마도 신규일 가능성이 컸다.
“영상의학과라고 환자 영상만 보고 어떻게 다 알겠어. 임상적인 정보가 필요한데……. 레지던트들 입원 기록만 보다 보면 조금 부족할 때가 있거든. 그래서 간호 기록도 열심히 보는데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된 사실이야.”
김진실 교수는 기록이 띄워지는 동안 어떻게 자신이 간호 기록의 대가가 되었는지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럴 수 있겠네요, 정말. 환자를 직접 보시고 진단을 내리는 게 아니니까요.”
“응. 영상은 결국 우리 몸의 그림자를 보는 거잖아. 경우에 따라선 완전히 다른 병이 같은 형태로 보일 때도 있거든. 임상적인 정보가 없으면 절대 안 돼. 특히 간호 기록은 결국, 환자랑 제일 오래 같이 있는 의료진이 남기는 기록이잖아. 의견을 제시하지는 않더라도 그 플로우를 보고 있으면 뜻하지 않게 뭐가 걸리는 경우가 많아.”
“으음. 그렇네요. 저도 간호 기록을 좀 더 열심히 봐야겠어요.”
“응. 아, 떴네.”
김진실 교수와 대화를 잠시 나누다 보니 컴퓨터 화면이 바뀌었다.
띄워야 하는 창이 여러 개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린 모양이었다.
이럴 때마다 신현태는 대체 태화 전자가 같은 계열사인데 병원 컴퓨터가 왜 똥컴이냐고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럼 이현종은 환자 기록이 개인 정보라 보안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데, 이놈의 보안 프로그램이 무거워서 그런 거라 변명했다.
잠시 두 철없는 어른의 대화를 떠올리며 미소 짓고 있으려니 김진실 교수가 말을 이었다.
화면을 가리키면서였다.
“자, 봐 봐. 여기 소변 주머니 제거하면서 다른 사람은 다 그냥 I/O만 체크했잖아. 근데 이 간호사는 아냐. 색도 표시해 놨어.”
“어……. 어, 그렇네요.”
“보면 대부분 아주 붉다고 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은 날도 있지.”
“그렇네요. 음……. 이건…….”
색이 달라진다.
이게 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수혁도 바루다도 당장 뭔가를 떠올리진 못했다.
그에 반해 이 문제를 발견한 후 골똘히 고민했던 것이 분명해 보이는 김진실 교수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평소처럼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황상 요로관 내 출혈이 의심된다고 했지?”
“네.”
“그게 종양이나, 정맥으로 인한 출혈이라면 출혈량은 변함이 없었을 거야. 그렇지?”
“음……. 거의 그렇겠죠. 종양이라고 해 봐야 사실 종양의 신생혈관이 터지면서 생기는 출혈일 테니까요. 변화가 있어서 줄었다면 아예 멎어야 말이 될 것이고요.”
“그래. 뭐 다양한 가능성이 있으니 확률이 제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종양이나 정맥보다는 동맥으로 인한 출혈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돼.”
“아, 그렇군요. 음, 그럼 더 이상한데…….”
대화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듣기엔 다소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급작스럽게 진행되었다.
둘 사이에 이 정도는 알지? 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어서였다.
[김진실 교수의 말처럼 동맥은 오히려 피가 나다 말다 할 수 있죠.]
‘그렇지. 혈관벽이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너무 많은 피가 유실되고 있으면 수축할 수 있지. 그래 봐야 뭐……. 다시 열리지만.’
[그 말은 곧 동맥이 터져서 요로관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얘기가 되죠?]
‘그렇지. 근데 그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죠.]
‘뭐야, 이거.’
그런데 그렇게 이어진 대화의 결론이 좀 이상했다.
비단 수혁과 바루다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정작 말을 꺼낸 김진실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상하지? 요로관에 동맥이……. 이만한 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동맥이 있을 리가 없는데. 이 기록은 그걸 시사하잖아.”
“별 의미 없는 기록일 가능성도 있겠네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배웠죠.”
김진실 교수 또한 수혁처럼 태화 의과대학에서 배운 사람 아니던가.
그 말은 곧 이현종 교수나 이하언 교수에게 학생 시절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았단 뜻이 되었다.
물론 둘 다 의대 교수 특성상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학생들에게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그와는 전혀 관계없이 학생들의 시간은 많이 뺏을 수 있었다.
더럽게 어려운 시험인데 심지어 유급할 수 있는 과목이어서 그랬다.
당연히 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학생들에게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음, 일단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사를 해 보자고.”
“그럼…….”
“일단은 요관조영술부터 해 봐야지.”
“환자분이 막 좋아하진 않겠네요.”
“할 수 없지. 그래도 위험한 검사는 아냐. 감염 소견 같은 건 없지?”
“네? 아, 네. 감염 소견은 전혀 없습니다. 소변에서 검출되는 건 오로지 피예요.”
“그래.”
요관 조영술이란 요관을 통해 조영제를 주입해서 보는 검사를 의미했다.
요관이라는 게 결국은 소변 보는 관 아니던가.
남자 같은 경우는 그 관이 더 길기 때문에 검사가 유독 더 힘든 감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환자는 그나마 이미 소변줄을 꽂고 있었기에 저항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또 꽂을 필요는 없다 이거지……?”
“네. 누워 계시면 여길 통해서 저기가 조영제를 넣을 거예요. 시간 됐다 하면 침대가 수직으로 서거든요? 너무 놀라지 마세요.”
“어, 그래……. 근데 교수님이 하시나……?”
“아, 아뇨아뇨. 다른 분이 합니다.”
“그랴……. 그거 다행이네.”
그나마 김진실 교수가 여자라 좀 당황스러웠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노인이라고 해도, 또 아픈 몸이라 해도 벗은 몸을 아무한테나 보여 주기는 싫지 않겠는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온다는 말에 유독 안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진실 교수는 그렇게 짤막한 검사 설명을 마친 후, 돌아왔다.
“내가 불알 초음파도 하는 거 알면 깜짝 놀라시겠네. 진짜 별의별 꼴 다 보는데.”
껄껄 웃으면서였는데.
과연 영상의학과 호걸다운 풍모였다.
하여간 곧 소변줄을 통해 조영제가 들어갔고, 방금 김진실 교수가 말한 것처럼 침대가 수직으로 섰다.
소변이 나오는 모습을 찍기 위함이었다.
“흠.”
“으음.”
김진실 교수와 수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면에 들러붙었다.
혹 어떤 이상이 있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흠.”
“으음.”
둘 다 막 이렇다 할 이상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아주 정상은 아니었기에 애매한 신음 같은 것만 흘리고 있었다.
“여기……. 혈전이…… 있지?”
“네. 혈전으로 보입니다. 확실히 안쪽으로 출혈이 있기는 있는 건데요.”
“이쪽 원 위 요관도 좀 이상하고.”
“불규칙성이 관찰됩니다.”
“응, 그래. 이상해.”
“근데…….”
“막상 출혈 부위가 어디인지는 특정이 안 되네.”
“네, 진짜 이상하네요.”
이상 소견이 있기는 했다.
어느 정도의 이상 소견인고 하면, 환자의 요관에 조영제를 넣고 수직으로 세운 보람 정도는 있을 정도의 이상 소견이었다.
문제는 그 이상 소견이 현재 환자가 보이고 있는 증상을 뚜렷하게 가리키고 있질 않았다.
“음.”
“으음.”
둘 다 일단 환자를 바라보았다.
검사를 끝내고 수직으로 섰던 침대가 누워서 그런가, 그리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단 아주 힘든 검사는 아니었으니까.
설령 꽝 비슷한 게 나왔다고 해도 많이 화가 나진 않을 터였다.
[꽝은 아니죠. 요로관 내에 관찰되는 혈전은 분명 어딘가에 출혈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대 신장이나 그 위에서 발생한 혈뇨는 아니란 뜻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다.’
다시 말하자면 일단 비뇨기과에서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소견이 나왔단 뜻이었다.
이것만 가지고도 아까 검사하지 말라고 했던 박상헌 교수의 입 정도는 꿰매고도 남았다.
하지만 수혁은 애초에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솔직해집시다?]
‘아, 물론 뭐 엿 먹이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환자가 더 중요해. 그것마저 아니라고 하지는 마라?’
[인정.]
결국, 수혁은 의사고 바루다는 최고의 진단 및 치료 목적 인공지능을 지향하고 있는 존재 아닌가.
환자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검사를 하나 더 시행해야만 했다.
“혈관 조영술을 해야겠어.”
“바로 가능할까요?”
“어차피 방금 한 검사는 조영제가 신장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거든. 바로 할 수 있어.”
“아……. 그거 좋네요. 그럼…….”
“내가 설명할게.”
“감사합니다.”
“아냐, 뭘. 아무래도 교수가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지. 할아버지 관상 보니까 말 잘 들으셔.”
“네.”
수혁은 잠시 할아버지가 말 잘 듣는 게 관상 탓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잘했습니다. 괜히 호걸이 뭔지 체험할 필요는 없죠.]
‘그렇지?’
[그렇습니다.]
김진실 교수는 처음 전임 교수가 되었을 때만 해도 발톱을 감춘 고양이처럼 얌전히 지냈더랬다.
누가 됐건 간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협진을 냈다간 박살이 났다.
드물게 여자 의사라고 추잡스러운 짓을 하려 하는 환자는 물리적으로도 박살이 났다.
그 때문에 클레임이 있다고 하는데, 태화는 대기업이니만큼 애초에 그런 문제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었다.
오히려 역고소를 시전할 정도였다.
그만큼 당찬 사람이라 이 말인데, 이번에도 역시나 할아버지는 고개를 하염없이 끄덕였다.
이번 검사는 좀 힘들 텐데도 그랬다.
“방금 한 검사로 확실해졌어요. 환자분은 여기 어딘가에 출혈이 있습니다.”
“어……. 그런가…….”
“바로 검사해 보겠습니다. 그래야 치료가 가능해요.”
“아, 알겠……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