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21화 (321/1,303)

321화 협진을 냈으면 인마 (3)

“됐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뭘 어려운 일도 아닌데. 옛날부터 내 말은 다들 잘 들었어. 인턴 때도 그러더라. 사람이 마음을 담아 말하면 다들 알아듣게 돼 있지.”

“네…….”

마음에 뭘 담았을까.

협박?

수혁은 저도 모르게 안대훈과 우하윤이 김진실 교수에게 혼났던 일을 떠올렸다.

엄밀히 따져 보면 혼날 만한 일로 혼난 거긴 했지만.

아마 신현태나 조태진이었다면 한 번은 넘어갔을 만한 일이기도 했다.

“뭔 생각해?”

“네? 아뇨.”

“곧 들어가. 뭐 어차피 영상으로 남지만……. 그래도 바로 봐야 내려온 보람이 있지. 안 그래?”

“네. 그렇습니다. 음.”

수혁은 곧 긴장한 얼굴이 된 채 환자 팔로 들어가고 있는 조영제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썩 좋지만은 못했다.

물론 안전성은 다 검증이 된 약이었지만.

그로 인해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은 아주 희박해졌다고 하지만.

그건 건강한 사람들로 한정했을 때의 얘기였다.

지금 저기 누워 있는 할아버지처럼 상태가 안 좋은 사람에서는 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으음.”

조영제가 들어가니 혈관 부위가 뜨끈한지 할아버지가 인상을 썼다.

수혁은 그게 혹 심장 부근의 통증 때문인가 해서 바짝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아닙니다, 수혁. 저 할아버지는 원래 좀 찡그리는 상이에요. 추정 NRS 점수는 2점입니다.]

‘아, 그래?’

[네. 그러니까 그냥 좀 있어요. 호들갑 떨지 말고. 김진실 교수 보세요. 얼마나 대범합니까.]

‘내과가 아니라서 그런거 아닐까?’

[내과 아니면 환자 잘못되는 것도 못 본다는 뜻인가요? 제가 입이 있었다면 이걸로 협박할 수 있는데 아쉽군요.]

‘너는 꼭 그렇게 사람 말을 곡해하더라.’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내과 의사로 살다 보면 다른 과 의사들에 대한, 뭐라고 해야 하나 편견 비슷한 것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어쩐지 바이털은 하나도 모를 거 같은?

심지어 어떤 경우엔 그게 편견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때도 있었다.

가령 이비인후과 같은 마이너 서저리 과에서 날아오는 협진 문의나 전과 문의를 볼 때가 그랬다.

‘그땐 진짜 놀랐지.’

[언제요?]

‘아니, 아냐.’

혈압이 떨어진다고 주구장창 물만 줬을 줄이야.

진짜 이비인후과 환자였으니까 살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약 내과 환자처럼 기저 질환이 있었다면 벌써 폐에 물 차고, 폐렴 생기고 어쩌구 해서 큰일 났을 터였다.

“음, 나온다.”

상념에 빠져 있으려니, 김진실 교수가 입을 열었다.

영상을 가리키면서였다.

김 교수의 말대로 영상이 넘어오고 있었다.

거의 실시간이었기에 넘어오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

수혁 또한 부리나케 그쪽으로 향했다.

“음.”

“흐음.”

아까 검사했을 때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이게 왜…….”

이번에도 이상 소견이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출혈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그 소견이 진짜로 이상했다.

“요관이 장골동맥을 가로지르는 지점에서 가성동맥류가 있어.”

“조영제가 요관으로 그쪽 부근에서 유출이 있는데요?”

“이상하네.”

“그러니까요.”

출혈이 있는 지점은 찾아냈다.

하지만 그 지점이라는 게 너무 낯설었다.

“여기 보통 이렇게 동맥류가 생기나요?”

“아니, 그렇지 않지. 자연적으로 생긴 병변이 아냐.”

“대체 뭐지……?”

“그러게. 이게…… 이게 뭐지?”

원인을 찾은 셈이었다.

그러니까 치료도 할 수 있게 된 참인데, 정작 진단명을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장골 동맥-요관 교통(Iliac Artery-Ureteral Fistula)이라고 해야 할 텐데.

문제가 있다면 수혁이나 김진실 교수 그리고 바루다 모두 이런 진단명은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는 그렇다 쳐도 김진실 교수마저 모르고 있다니.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해서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뭐지, 뭐지 하고 있으려니 검사실 문이 벌컥 열렸다.

“뭐긴 뭐야? 미친 짓이지. 이수혁, 너 뭐야! 왜 마음대로 남의 환자 데려가고 지랄이야, 지랄이.”

막 수술 끝내고 왔는지 머리가 험하게 눌려 있는 박상헌 교수였다.

어떻게 봐도 잘생겼다는 말은 할 수 없게 생긴 데다가, 머리까지 저러니까 진짜 가관이었다.

하지만 수혁 입장에서 그따위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뭐가 되었건 지금 당장은 둘 사이엔 어마어마한 계급 차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랄이요?”

다만 김진실 교수에게는 그렇지가 않았다.

비록 이쪽은 조교수고 저쪽은 정교수를 코앞에 두고 있는 부교수지만.

정당한 일을 하고도 욕을 먹은 상황에서 참을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너, 넌!”

수혁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박상헌도 조금은 당황했다.

하지만 이미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상황이지 않은가.

‘교수님, 환자 없는데요?’

‘뭐라고? 어디 갔어? 힘없다고 누워만 있던 양반이 어딜 갔냐고.’

‘어……. 담당 간호사가 검사하러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수혁 선생이 무작정 내렸다고…….’

‘뭐? 이런 미친놈이. 어디야!’

분명 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비슷한 직급도 아니고 일개 레지던트가 그랬다.

박상헌은 이런 상황은 진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

본인도 그랬지만, 여태 가르쳐 온 레지던트도 상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정면으로 도전해 오는 놈이 있을 줄이야?

“뭘 잘했다고 두둔하고 있어? 김진실? 조교수지? 지금 이 녀석이 무슨 짓 했는지 알아? 남의 환자 데려다가 마음대로 검사했다고! 알아?”

“압니다.”

“그래. 당연히 모르…… 응? 안다고?”

“얘기 들어 보니까 검사가 필요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할 수 있게 조치를 취했습니다.”

“아니……. 그걸 왜 영상에서 판단해! 내 환자라니까!”

“박 교수님.”

김진실 교수가 약간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한 채 박상헌 교수를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키가 좀 큰 편인데, 어느 틈엔가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 대신 구두로 갈아 신은 참이었다.

그 때문에 박상헌이 오히려 조금은 올려다봐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응?”

“교수님 한 번도 영상에 의견 물은 적 없는 건 아니죠?”

“그, 그건…….”

“제가 기억하기에 컨퍼런스마다 환자 내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제가 직접 진단명 알려 드린 적도 있고요. 수술 절제 범위도 영상과 상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렇다면 저에게도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거 아닐까요?”

구구절절 옳은 소린데 더해 무섭기까지 했다.

분명 이쪽이 부교수고 저쪽이 조교수인데도 그랬다.

황당한 마음에 옆에 선 펠로우와 레지던트를 찾았는데, 둘 다 이미 죽었다 하는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보아하니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여기서 쥐 잡듯 혼난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 그 김진실이 이 김진실인가.’

별명이 뭐라고 했더라.

김판호라고 했던가.

해석하자면 김진실 판독실 호랑이였다.

사람이 얼마나 무서우면 별명이 호랑이가 될까.

“대답이 없으시네요?”

김진실 교수가 다그치자 박상헌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쩐지 물러나야 할 거 같은 느낌이랄까?

하지만 양옆에 펠로우와 레지던트를 거느리고 온 몸이었다.

위풍당당한 모습은 보여 주지 못할지언정 쫄지는 말아야 했다.

“아니, 음.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나랑 토의는 했어야지!”

“수술 중이지 않으셨습니까. 환자는 위험하고요. 시간이 없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벌써 입원한 게 며칠짼데. 오늘내일 환자가 아니잖아!”

“오늘내일할 수도 있겠는데요, 곧.”

김진실 교수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있는 박상헌 교수를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면서였다.

그 타이밍이 어찌나 절묘했는지 박상헌 교수도 저도 모르게 김진실 교수를 따라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응? 이게 지금 검사한 건가?”

“네. 그렇습니다.”

“뭐야, 이게.”

그렇다고 바로 검사의 의미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딱히 한심스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영상의학과의 검사는, 특히 그게 새로 나오는 것일수록 모르는 사람은 정말이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를 수 있어서였다.

오히려 이걸 다 알아보고 있는 수혁이 이상한 것이었다.

해서 김진실 교수는 한숨을 내쉬는 대신 성의껏 설명에 나섰다.

손가락으로 영상을 짚어 가면서였다.

“이게 장골 동맥(Iliac artery)입니다.”

“음.”

“이건 요관이고요.”

“음.”

“여기 교차하는 지점 보이십니까?”

“응, 보이네.”

무서운 만큼 또 가르치는 건 잘한다더니, 설명이 굉장히 침착하면서 동시에 친절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수혁조차 고개를 떼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당연히 대강만 알고 있는 박상헌 교수는 물론이고 뒤에 있던 레지던트와 펠로우 또한 어느새 김진실 교수의 손가락 끝만 보고 있었다.

“보시면 동맥류가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가성 동맥류죠.”

“어……. 이게 왜 거기 있지.”

“그리고 조영제가 요관으로 유출이 됩니다.”

“어…….”

영상을 보고 판독은 못 하지만.

판독문을 들으면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정도는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적어도 태화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 정도는 됐다.

인성이 어떻든 실력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특히 태화 의료원의 비뇨기과는 전국에서 딱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어찌 됐건 최고 중 하나 정도는 되었다.

“출혈이…… 출혈이 있어?”

“네. 이래도 급하지 않은 문제인가요? 이 검사가 불필요한 검사입니까?”

“아니, 그렇게…… 그렇게 다그치지 말고. 잠시만. 이게 정말 그런 건가?”

“네, 어떻게 봐도 그렇습니다.”

“그…….”

그러니까 머리로는 알아들었단 뜻이었다.

하지만 자기는 틀리고 수혁이 맞았다는 사실을 가슴도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웠다.

“이게 그럼 진단명이…… 진단명이 뭐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 보는 소견이라.”

“그럼 잘못 본 거 아닌가?”

“교수님, 객관적인 검사 소견입니다. 이걸 잘못 볼 수는 없죠.”

“처음 보는 소견이라며……. 그럼 이거…… 이게 말이 안 되는데.”

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진상이 됐다 이 말인데, 진상은 그게 어디라도 환영받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특히 조용한 가운데 판독이 진행되는 영상의학과 쪽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드륵.

게다가 아까는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지 않았던가.

그게 신경에 무척 거슬렸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복부 영상의학회의 거두 이하언 교수였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아, 교수님.”

“어……. 교수님.”

이제 곧 정년을 앞둔 교수였다.

김진실도 박상헌도, 수혁을 비롯한 나머지도 모두 고개를 숙였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다들 일하고 있는데. 왜 소리를 질러? 여기가 너네 집 안방이냐? 너네 수술방이야?”

“아니……. 그게…… 그…… 제 환자를 허락도 없이 검사를…….”

“뭐? 누가.”

“여기 이수혁…….”

“이수혁? 현종 선배 아들?”

이하언은 수혁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급 관심을 보였다.

그제야 박상헌은 이하언이 이현종과 꽤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런 망할.’

속으로 욕설을 집어삼키면서 말을 이었다.

“네. 협진을 냈더니 맘대로…….”

“뭔 검사를 했는데. 애가 미친놈도 아니고 필요하니까 했겠지.”

“그…….”

“아, 이거야. 조영술을 했네. 음……. 아, 이거…….”

“어……. 뭔지 아세요?

“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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