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화 협진을 냈으면 인마 (4)
이하언 교수는 아세요? 라고 물은 박상헌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돌아보았다.
‘모를 수도 있지. 모를 수도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 영상학적 검사가 가리키고 있는 질환은 그야말로 드문 질환이었다.
심지어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관찰되지도 않았던 병이기도 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질환이기에 그랬다.
‘그래도 교수가 돼서 이런 얼굴을 해도 되는 거야?’
예로부터 모르는 건 죄가 아니란 말이 있지만.
병원에서는 모르는 게 죄였다.
특히 학생이나 인턴, 레지던트가 아니라 교수라면 더더욱 그랬다.
이놈이 모르면 환자가 죽어 나가기 때문이었다.
만약 모르는 게 나왔다면 죽어라고 공부해서 지식의 공백을 메꿔야만 했다.
이렇게 멍청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할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
“모르는 게 자랑이야?”
“아, 아닙니다. 교수님. 근데…… 진짜 처음 보는 소견이라서요. 그게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음 보는 소견을 처음 봐?”
“그건…….”
“박 교수. 자네가 세상 모든 질환을 다 알아? 자네가 처음 보는 거면 이상한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제아무리 박상헌 교수라 해도 이하언 교수 상대로는 감히 건방진 말을 지껄이기가 좀 어려웠다.
석좌 교수를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하여간 국내 최고라 자부할 수 있는 태화 의료원 영상의학과 복부 영상 파트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지 않은가.
김승규 교수 덕에 워낙에 많은 간 수술을 하고 있기에 사실상 국내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박상헌이 좀 열심히 하는 편에 속하기는 하지만 이하언 앞에서 주름잡을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근데 왜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해? 나도 이 나이까지 처음 보는 소견이 매달 있을 지경인데. 사람 몸이 그렇게 우스워 보이나 보지?”
“아, 아닙니다, 교수님.”
“아니긴 뭐가 아냐. 처음 보는 소견이라 그럴 리가 없다고, 니들이 잘못 본 거라고 소리치던데. 얼마나 당당하게 소리를 치던지 옆 옆방에 있던 나까지 달려왔잖아. 나는 또 우리 복부영상 파트가 큰 잘못이라도 한 줄 알았어?”
“아……. 아니, 그건 아니고…….”
박상헌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수혁을 힐끔 바라보았다.
솔직히 김진실 교수가 단독으로 결정한 사안이었고, 거기서 이상한 소견이 나왔다면 자신도 굳이 고집을 부리진 않았을 터였다.
기수로 따지면 박상헌이 훨씬 위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과가 다르지 않은가.
게다가 같은 교수였다.
특히 공부 많이 하기로 유명한 영상의학과 교수.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담이 큰 임상 교수는 거의 없었다.
‘근데 저 새끼는 그냥…… 그냥 레지던트잖아.’
하지만 내과 레지던트 3년 차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교수는 쌔고 쌨을 터였다.
특히 자기 말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해 버린 상황이라면 솔직히 한 트럭도 넘을 거 같았다.
이하언은 감히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진 못하고 입술만 달싹거리고 있는 박상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수혁 선생에 대해 반발이 좀 있을 거라더니.’
이현종의 말에 자신도 동의를 하긴 했던 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더랬다.
감히 원장이 그렇게 딱 부러지게 말했는데, 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시비를 걸 줄이야.
‘미친놈이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가뜩이나 이현종이나 신현태 등의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이게 뭔 짓이란 말인가.
이하언은 잠시 혀를 끌끌 차고는 입을 열었다.
“환자……. 혈뇨로 왔나?”
눈치 없는 박상헌이 아니라 애제자 김진실 교수와 애정하는 선배의 아들 이현종을 바라보면서였다.
둘도 이러길 바랐기에 금세 앞으로 나섰다.
동시에 박상헌은 뒤로 빠졌다.
그로서도 이하언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지 않은가.
게다가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이게 원래 있는 질환인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면 수혁의 말을 들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런 망할.’
망신을 주려다가 망신을 당하게 된 셈이었다.
두바이에서 김문재 교수가 당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한 셈인데,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내면의 변화 또한 같은 과정을 밟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수모를 갚아 주마.’
교수씩이나 돼서 환자 목숨이 달린 실수를 했으면 자중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놀랍도록 뻔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행한 일은 이하언이나 김진실 교수 또 수혁은 이런 민망한 꼴을 쳐다보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셋은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바빴다.
“네, 혈뇨를 주소로 왔습니다.”
“언제부터 그랬지?”
“정확한 진술은 없는데……. 적어도 한 달은 됐습니다.”
“한 달이라. 그럼 환자 배 수술……. 특히 비뇨기 계통 수술은 언제 받았지.”
“아.”
수혁은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생각해 보니 이미 영상을 띄워 놓은 상황 아닌가.
저쪽엔 CT까지 띄워져 있었다.
이하언같이 노련한 영상의학과 의사라면 전립선 없어진 것 정도는 바로 알아차렸을 거 같았다.
[지금 컷에서는 전립선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그럼 어떻게 알아 이걸 인마.’
[저야 모르죠.]
‘어제부터 모른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한다?’
[그럼 거짓말을 합니까? 인공지능이 거짓말하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아니, 아냐.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네.’
진실만 말해도 사람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인데.
여기서 거짓말까지 해?
스카이넷의 강림을 떠올리게 될 거 같았다.
수혁은 잠시 몸서리침에 떨다가 이내 이하언 교수의 말에 대꾸했다.
“네. 임파선 전이 동반한 전립선 암이 있어서 수술받은 바 있습니다.”
“그렇군. 환자 소화는 잘된다고 하던가?”
“아…….”
대화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뭔가 좀 이상했다.
전립선 수술이야 영상을 보고 추측이 가능했나 싶을 수도 있지만.
환자의 소화 정도는 영상을 보고 알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눈에 띄는 협착이 있다면야 또 모르는 일이지만.
영상에서는 전혀 그런 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몰래 환자를 보고 왔나.’
[설마 그랬겠습니까? 이 질환을 알고 있는 투였습니다. 어쩌면 이 질환과 연관된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
‘아…….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긴 하겠다.’
[그렇죠.]
역시 이하언, 이하언 하더니 이 정도구나 싶었다.
수혁은 즉시 질문에 답했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 대가의 입에서 직접 질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다른 레지던트라면야 흔하디흔한 상황이겠지만.
수혁은 너무 우수했고 또 스스로 너무 많은 공부를 했기에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드물었다.
“네. 소화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환자 체중이 굉장히 적습니다. 노인임을 감안해도……. 적습니다.”
“그래, 그랬을 테지. 그건 얼마나 됐다고 하지? 수술하고 당장 그러진 않았을 텐데.”
“아……. 네.”
수혁은 머릿속을 굴려 시점을 잡아냈다.
수술과 소화 불량 간에는 대량 1, 2년 정도의 간극이 있었다.
“1년에서 2년 정도 있다가 그랬다고 합니다.”
“복부 수술 후 장 유착이 생기는 시점은 워낙 다양하지. 그러니…… 그럴 수 있겠어.”
“유착 말씀입니까?
“그래. 유착. 대부분 무시하지. 수술하면 그래 하고 넘어가기 마련이지.”
“음.”
유착이라.
애초에 수술하는 과가 아닌 내과 의사인 수혁으로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였다.
딱 방금 이하언 교수가 말한 정도의 관심만 갖고 있었다고 하면 맞았다.
수술하면 응당 그렇게 되지 않나 싶었다.
‘수술도 결국엔 상처를 내는 거니까……. 그 상처가 낫는 과정에 반흔이 생기겠지.’
[그 반흔이 정상 조직 사이에 생기는 것이 결국 유착이죠.]
‘그게 문제가……. 되기는 되겠지?’
[그렇죠. 어떤 식으로든 되기는 하겠죠. 원래 없던 게 생기는 거니까요.]
지금 일부러 바루다와 토의를 해 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유착은 원래 생길 수 있는 것이고, 들어 보니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정도일 뿐이었다.
하지만 워낙에 외과와 엮인 게 많은 영상의학과 입장에서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 세월이 훨씬 길었던 이하언 교수는 더더욱 그랬다.
이하언은 회한마저 느껴지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생각보다 수술 후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커. 제왕절개만 해도 그렇지. 그나마 이쪽은 산부인과 의사들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서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야.”
“아……. 그건 왜 그렇죠?”
“제왕절개는 거의 유일하게 같은 수술을 반복하는 수술이지.”
“음.”
“그 말은 배를 열었을 때, 이전에 자기가 했던 수술의 결과를 볼 수 있게 된다 이 말이야.”
“아.”
자기가 한 치료의 결과를 두 눈으로 보게 된다라.
어떻게 생각하면 참 무서운 말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보면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이하언 교수는 약간 더 엄중한 얼굴이 되어 말을 이었다.
“그렇게 보니까……. 배가 엉망이 된 경우가 있더라 이거지. 유착이 잔뜩 생겨서 장이 엉겨 붙은 거야. 그제야 돌이켜 보는 거야. 환자가 외래에 와서 요새 소화가 잘 안 된다, 먹는 게 줄었다고 했던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지.”
“아…….”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게 벌써 수십 년 전부터 반복되었다는 거지. 그래서 산부인과는 유착 방지제를 쓰기도 하고, 수술할 때 아기가 빠져나온 후라면 일단 유착을 신경 쓰지. 재수술인 경우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미해 보이는 유착도 제거해 주고.”
“그렇군요. 확실히……. 그 정도로 문제가 생길 수 있군요. 이 환자도…… 보니까 엄청 말랐는데, 그게 유착 때문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듭니다.”
“생각이 아니라, 아마 그럴 거야.”
이하언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까 가리켰던 것을 다시 가리켰다.
장골 동맥이 요관을 가로지르는 부위에 형성된 가성 동맥류와 요관으로 유출되는 조영제였다.
“이것도 유착의 결과로 생기는 거야. 보통 장 유착보다는 형성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이게 유착의 결과로 생기는 거라고요?”
“그래. 원래 이렇게 딱 붙어서 지나지 않아. 유착 때문에 붙게 된 거지.”
“아. 아……. 그렇구나.”
인간의 신체는 상당히 신묘한 구석이 있었다.
오죽하면 의사들 중에서도 어떤 설계자가 있어 창조된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까.
각각의 기관들은 여러 기능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 기능 때문에 서로를 해치지 않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손을 잘못 타면 그 항상성이 깨지기도 했다.
이 환자의 경우가 그랬다.
“즉 이 환자의 병은 비뇨기 계열 수술 때문에 생기는 병이야.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 않아. 특히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면 더 잘 생기지. 알지? 방사선 치료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아, 알죠.”
방사선 치료란 결국 방사선으로 암 조직을 쏴서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사선에 설마하니 눈이 달려 있겠는가.
중간에 걸리는 정상조직도 죽어 나가기 마련이었다.
그걸 최소화하기 위해 방향을 돌려가면서 암 조직에만 방사선이 중첩되게 하긴 하지만,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손상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아……. 그렇구나. 이거 그러면…….”
“얄궂은 일은 무조건 수술을 해야 치료할 수 있다는 거야. 수술과 방사선 때문에 생긴 건데 말이야. 아무튼, 이 환자의 병명은 Iliac Artery-Ureteral Fistula(장골 동맥-요관 교통)이야. 박상헌 교수, 배 열고 들어가서 고치도록 해. 혈관외과랑 조인해야 할 거야. 이걸 그냥 보려고 했다니……. 살인자 될 뻔한 거 구제한 거야. 알아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