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26화 (326/1,303)

326화 집담회 (3)

대강당은 순식간에 웃음소리 대신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혈색소 수치를 보면, 이전 검사 결과와 비교했을 때 단기적으로 상당한 양의 실혈이 발생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보통 고령에서 이만한 수치 변화를 단기간에 일으킬만한 실혈의 원인은 암이었다.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특히 더 호발하는 위장관계 암이 그랬다.

“원래 위암 같은 건 내시경을 해야 보이잖아. CT에서는 진행 암 아니고서는 안 보일 텐데.”

“위장관 출혈이 없잖아, 지금.”

“야, 직장 수지 검사(Digital rectal exam, DRE)가 만능이면 잠혈 검사는 왜 하냐? 육안으로 피가 다 보이디? 게다가 지금 직장 수지 검사한 사진도 없는데?”

“그걸 사진으로 올리는 건 좀…….”

특히 내과나 외과 의사들 쪽에서 아무래도 토의가 더 활발해지고 있었다.

암을 주로 보는 의사들이기도 하거니와 바이털 과라는 부심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혹시 코피 아닐까?”

“동맥 출혈이면 얼마든지 가능은 한데…….”

“근데 그랬으면 안 보일 리가 없지?”

“그렇지. 우리 이런 얘기 왜 하니? 개뿔도 모르겠는데. 혈뇨는 아냐?”

“아니. 하나도 모르지. 사실 나는 아까 박상헌 교수님이 강의하는 거 재밌더라. 처음 듣는 얘기 같어.”

“그래, 닥치고 있자.”

이비인후과와 같은 마이너 과 의사들은 후후 웃을 뿐이었다.

혈뇨니 뭐니 하는 것들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막대한 실혈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들이 머릿속에 떠돌지 않는 건 아니었다.

경동맥 파열이라던지 하는 질환은 순식간에 죽음에 이르기도 하는 병 아니던가.

심지어 코피도 그 위치에 따라서는 죽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해당 사항이 없어 보였고, 따라서 잠시 웅성대다가 다들 입을 다물었다.

본인들이 떠들어 대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에 집중하는 것이 더 효용성이 있어 보여서였다.

“하여간……. 제대로 된 검사가 안 된 상황에서는 역시 위장 관계 출혈을 의심하는 게 맞지.”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뭐 어떻게 다른데.”

“너 나랑 동기거든? 눈 부라리지 마.”

“아……. 맞네. 미안. 내가 교수 되고 난 후에는 이렇게 따박따박 대드는 놈을 못 봐서.”

“나도 그렇긴 하지. 아무튼.”

외과 쪽에서의 토의가 계속되었다.

수혁과 바루다는 그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기로 했다.

아니, 들려오는 말을 분석하고 있기도 했다.

수혁 혼자였다면야 당연히 분간도 못 할 테니 불가능했을 테지만.

바루다의 도움을 받고 있었기에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었다.

[아직까지 혈뇨 자체에 집중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주로 어떤 과야?’

[마이너 과들이 오히려 그렇네요?]

‘경험이 적어서 그런가?’

[그럴 수 있죠.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편견이 생기니까요. 수혁도 그랬지 않습니까? 제가 계속 신선한 충격을 주지 않는다면 제일 빨리 꼰대 의사가 될 겁니다.]

‘뭔 개소리를…….’

아주 보탬이 되는 분석은 아니었다.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절대다수의 의사들이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위장관이 아니면 뭔데, 인마.”

“그…… 이상한 얘긴데.”

“이상한 얘기?”

“혈뇨…… 혈뇨가 심한 거 아닐까?”

“피가 소변으로 나온다고? 야, 저만한 실혈이 소변으로 나갔으면 벌써 신장 나갔어. 투석 돌리지……. 공부 안 하니?”

“그래서 이상한 얘기라고 했잖어. 왜 화를 내.”

케이스 자체가 여러 가지 함정으로 가득 차 있어서였다.

애초에 드문 케이스이기도 하거니와 대량 출혈이 그냥 혈뇨로 나가는 것 자체가 드물었다.

아니, 반드시 수반해야 할 거 같은 신부전이 있었다.

근데 이 환자는 없지 않은가.

신장 이후의 요관에서 출혈이 있어서 그랬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닿았다고 해서 막 유의미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야.”

“그냥 듣고 있지 왜 생각을 해. 아까는 닥치고 있자고 해 놓구서는?”

“아니, 봐 봐. 코피처럼 어? 요관에서도 피가 날 수 있지 않을까?”

“하아…….”

신박한 이론에 이비인후과 비과 파트 펠로우 하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같은 과 동기이자, 두경부외과 파트 펠로우를 지긋지긋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면서였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진 않았지만, 분명히 갑자기 큰 수술만 하다 보니까 머리가 비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그럴 수도 있었다.

두경부외과 쪽 수술은 길면 30시간도 훌쩍 넘기곤 했으니까.

거기 펠로우로 있다 보면 알고 있던 것도 다 잊을 거 같았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을까?

“야……. 코피가 왜 피가 그렇게 많이 나냐?”

“코에 혈관이 많잖아.”

“그래. 혈관이 왜 많어.”

“밖에 있는 차고 건조한 공기를 따뜻하고 습기 차게 해서 폐로 보내려고.”

“왜 그렇게 하는데?”

“그래야 폐에서 가스 교환이 잘 되니까?”

“알기는 잘 아네?”

비과 파트 펠로우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여기까지 물었고, 곧잘 대답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기는 아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미쳤나.’

비과 파트 펠로우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떤 시선을 느꼈다.

천사로 소문난 교수, 이낙준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 교수는 그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일단 설명이나 좀 제대로 해 주고 까라는 뜻일 터였다.

‘자기처럼 까라는 거구나!’

밖에서야 천사로 소문난 사람이지만, 글쎄 수술실 안에서도 그랬나?

같은 파트 밑 사람으로서 박박 기고 있는 입장에서는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중간중간 깔깔 웃어 대면서 까는 걸 듣고 있자면, 진짜 교수만 아니었으면 내시경으로 후볐을 거 같았다.

“야, 그럼 요관에 그렇게 혈관이 많을 이유가 있냐? 넌 고추로 숨 쉬냐?”

“아…….”

“아니면 소변을 막 요관에서 데워서 내보낼 이유가 있어? 밖에 어따 싸는데.”

“아…….”

“거긴 혈관이 코처럼 많을 이유가 없지. 해부를 몰라도 생각만 해 보면 알겠다, 야.”

“아……. 알겠는데. 왜 그렇게 날이 섰냐? 나 방금 이낙준 교수님 앞에 있는 줄 알았네.”

“너도 그 밑에 있어 봐…….”

“하긴.”

하여간 요관에서 피가 날 거 같다는 의견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 근거라는 것이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대강 그런 식의 논의로 그치고 있을 뿐, 거기서 더 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 슬 조용히 하라고 할까요? 이 무지렁이들.]

‘아니, 꼭 그렇게 말해야 되냐?’

[아뇨.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

뭐 어쩌겠는가.

그게 좋다는데.

개인의 기호까지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수혁이 바루다가 인공지능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자각하고 있다면 이거 좀 이상한데 싶었겠지만.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바루다는 이미 수혁에게 있어 인공지능이 아니라 친구처럼 인식되고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진 않았다.

다만 싸가지가 좀 없구나 싶을 뿐이었다.

“자, 난상토론은 이만 마치고요……. 우선 이 화면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수혁은 그런 생각을 뒤로하고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보정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식간에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마성의 목소리였다.

타고난 것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여러 교수님 또는 펠로우 선생님들, 전공의, 간호사님들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여전히 소화기……. 그러니까 위장관 출혈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환자의 나이와 기저 병력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우리가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환자의 증상입니다. 이 환자분은 살아 있는 사람이지, 교과서 지문에 나오는 케이스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내용 또한 사람들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최대한 점잖게 얘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엔 니들 말이 다 틀렸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 앉아 있는 사람 중 수혁보다 그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훨씬 적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건방진 얘기였다.

심지어 수혁을 아니, 그 뒤에 선 이현종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살짝 기분이 나빠질락 말락 할 지경이었다.

[자, 서두르시죠.]

물론 바루다는 그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었다.

수혁은 조금 긴가민가했는데, 다행히 인공지능 바루다는 그러지 않았다.

해서 최대한 말을 빨리 이어 나가라고 조언한 바 있었다.

수혁은 비록 약간 사회성이 딸리는 편이지만 고집까지 센 편은 아니어서 그 말을 곧잘 따랐다.

“그래서 저는 혈뇨에 주목했습니다. 저도 압니다. 이만한 양의 실혈이 단순히 혈뇨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먼저 신장이 망가져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환자의 주소는 혈뇨입니다. 그래서 이를 좀 더 파 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환자의 소변백 사진입니다. 유독 붉죠? 사실상 거의 피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지경입니다.”

“오…….”

“음.”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 해도 문서만 보고 환자를 진단하고 또 치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렇게 주목받지 못하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어서였다.

다들 이처럼 붉은 소변백은 처음 보는지라, 허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제가 그냥 임의로 현미경으로 봐 봤는데……. 사진에 보이십니까?”

사실은 진단 당시에 본 것은 아니고, 집담회 준비하면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 조작이 있었다 이 말인데.

이미 플로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이렇게 확인하는 편이 훨씬 그럴싸하지 않은가.

[거 봅시쇼. 이거 건너뛰고 논리 전개하는 것보다는 이게 더 낫다니까.]

‘그렇네.’

[내 말 들으라고, 그러니까.]

‘언제는 안 듣냐.’

수혁은 생색내는 바루다를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혈뇨 자체가 실혈의 원인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었지만……. 상황 자체가 이를 가리키고 있지 않습니까. 의학자로서 최소한 검사는 해 봐야만 했습니다.”

그리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

바로 검사가 나온 게 아니라 협진 의견서가 떡하니 떴다.

박상헌이 제일 숨기고 싶어 하던 것이 하필이면 제일 집중 받고 있을 때 떴다, 이 말이었다.

“혈뇨가 요관에서 흘러나오는지 여부를 보려면……. 우선 배설요도 조영술 및 요관 조영술이 필요할 겁니다. 또한 정상적으로는 피가 이렇게까지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기에, 혹시 있을지 모르는 혈관 기형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동맥 조영술도 시행해 주십사 하고 의견을 냈습니다. 그런데 비뇨기과에서는 이 의견을 거절했습니다.”

수혁은 얄밉게도 마지막 말을 하면서 박상헌을 바라보았다.

박상헌이야 당연히 할 말이 없어 고개를 숙일 따름이었다.

이쯤 하면 좀 넘어가 줄 만도 하건만.

수혁은 말을 이었다.

“아직 그 이유는 듣지 못했습니다.”

이 새끼가 말 안 해 줬다 이런 식이었다.

그래 봐야 이 말을 아무도 안 받아 주면 별 소용이 없었을 텐데.

영상의학과 교수 이하언이 손을 들었다.

“네, 이하언 교수님.”

“그 이유가 뭔지 듣고 싶은데. 협진 의견서가 이렇게 세세한데……. 거절했다면 이유가 있겠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