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28화 (328/1,303)

328화 류마티스내과 (1)

“잘했다. 잘했어.”

이현종은 발표를 마치고 내려온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하기 전에도 이미 박상헌이 박살이 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두 눈 똑똑히 뜨고 보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상상만으론 이런 즐거움을 누리기 어려운 법이었다.

“너무 심한 건 아니겠죠?”

“심하긴. 원래 밟을 땐 확실히 밟아야 해. 이제 두고 봐라. 박상헌 교수는……. 절대 못 개겨. 병원 내에서 이미지 조졌는데 개기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이지.”

“그래도 좀 불안하긴 하네요.”

“불안은 무슨. 걱정 마라. 내가 다 막아 줄 테니까.”

수혁으로서는 아무래도 조금 께름칙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박상헌은 자기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사람 아닌가.

그 사람을 주도적으로 깐 마당에 속이 편하면 그것도 안 될 일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그 사람 이미 손절 당한 거예요. 아까 못 봤습니까? 김문재 교수까지 고개 돌리고 있는 거?]

‘보긴 봤지.’

못 보았더래도 상관없을 지경이었다.

바루다가 마치 영화관처럼 계속 반복 재생을 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문재 교수가 박상헌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더니, 후 하는 소리와 함께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려 버리는 몇 초 안 되는 장면이 지겹도록 돌아가는 중이었다.

“나머지도 한동안은 조용할 거야. 그런다고 뭐 다들 싸움에 진 개처럼 꼬리 말고 있을 거 같진 않은데……. 방법이 없을걸. 위쪽으로 투서 넣을래도 안 될 거고…….”

“정부 기관에 감사나 이런 거 넣으면 가능하긴 하죠. 근데 그건 집안싸움에 바깥 세력 끼워 넣는 거라……. 부담이 있을 겁니다.”

이현종이 계속 괜찮다, 괜찮다 하는 와중에 신현태가 끼어들었다.

상당히 부정적인 얘기를 하면서였기에 신현태는 당연하다는 듯 발작했다.

“미친놈이 재를 뿌리네. 야, 이런 거 보복부가 알게 되면 짜증 나지. 내부에서야 상관없어도……. 지금 우리 큰 그림 그리고 있는 거 몰라?”

“아니까 하는 소리죠. 위법 소지는 없는데……. 이게 워낙 걸면 걸리잖아요.”

“그런 말이 왜 네 입에서 나오냐고. 프락치야? 저쪽에서 원장보다 더 큰 거 준대?”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일단 준비를 하자는 거지. 뭔 프락치야. 이 형은 이 말밖에 모르나.”

“아무튼, 수혁아. 지금 당장은 걱정 마. 쟤들이 설령 외부로 싸움 걸어도 상관없어. 태화 바이오 측에서 추진하는 거야. 정부에서도 부담이지.”

“뭐, 그렇긴 하죠. 그리고 오히려…….”

신현태는 뭔가 다른 말을 꺼내려다가 이현종의 눈빛 레이저를 맞고 입을 다물었다.

딱히 이현종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번만큼은 그 뜻을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한 표정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 입 다물지 않으면 죽이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음.”

해서 신현태는 신음과 함께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이현종은 잘했다는 뜻으로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뒤를 돌아보았다.

이하언, 김진실 교수 그리고 조태진이 서 있었다.

든든한 아군들이었다.

“수혁이 고생했는데 여기 세워 두고 떠들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번엔 조태진, 네가 쏴.”

“네? 제가요?”

“인마 이번에 수혁이가 너네 파트 돌았잖아. 그 말은 한 달 내내 놀았다는 뜻인데, 돈이라도 써야지.”

“아니……. 얘 2주 동안 두바이 가 있어 가지고 그사이에 저 1년 차랑 둘이 있었거든요?”

“1년 차는 의사 아니냐? 원래 그렇게 봐 인마. 수혁이랑 보는 거 습관 들어 가지고 이거. 어? 빠졌어?”

“원장님……. 원장님은 2년 차 이상부터만 주치의 받으면서…….”

“억울하면 원장 하시든가. 아니면 석좌 교수를 하시거나?”

“와……. 나 이거 너무…… 너무…….”

조태진이 아무리 억울해 봐야 별 소용이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병원이라는 곳이 원래 서열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 아닌가.

원장이 이렇게 말하는데 부교수가 항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심지어 이하언도 가세하고 있었다.

“원래 정교수 시니어 되면 다 레지던트 2년 차 3년 차 두지. 어떻게 신참이랑 일을 하나……. 말이 되는 소릴 해, 조태진 교수.”

“아니, 교수님까지 이래요? 김진실 교수, 뭐라고 좀 해 봐요.”

“저는 원장님이나 이 교수님 말씀이 옳은 거 같습니다.”

“같은 처지에 지 돈 안 나간다고! 이현종 교수님 미식가인 거 몰라요? 이거 한두 푼이 아닐…….”

“예약해 뒀어, 그렇지 않아도. 맛나는 곳으로 가지. 삼해라고……. 제철 음식만 하는 데 있거든? 기가 멕혀, 거기가. 알아서 차려 줘.”

“이름만 들어도 비쌀 거 같은데.”

삼해라니.

거기다 알아서 차려 준다고?

그런 곳은 안 가는 게 맞지 않나?

조태진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식당 안이었다.

“어이구.”

아니, 식당 안인 정도가 아니라 자리에 앉아 있었다.

새하얀 한지 위로는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는데 일단 접시부터가 비싸 보였다.

공산품이 아니라 도예가가 하나하나 만든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이걸 공장에서 찍어 낸다고 하면 그 공장 주식부터 사야 할 거 같았다.

“송철순 도예가님이 2018년 비엔나 세계 도예 전시회에 출품하셨던 접시들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접시 설명을 하는데 이게 심상치가 않았다.

전시회에 출품했던 물건이면 어디 모셔 놔야 하는 거 아닐까?

이거 깨면 어떻게 하려고 이따위로 하는 걸까?

“깨면 우리가 변상하나?”

“아……. 네, 원장님. 그렇습니다. 물론 원가를 다 받지는 않지만……. 이게 워낙 고가라서요.”

“어어 내려놔요! 이 사람이 미쳤나.”

“누가 깬데? 왜 그래, 미친 사람처럼.”

“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현종이 접시를 들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으니 눈깔이 안 돌아가고 배길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음식이 나와도 이게 뭔 맛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신이 난 것은 바루다였다.

[역시 사람은 제철 음식을 먹고 살아야 한다더니 그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오버한다고 하기엔……. 음식이 너무 맛있긴 하다. 키조개 샤브샤브? 이런 건 진짜 처음 보네.’

[더 출세해야 합니다. 이런 거 맨날 먹어야죠.]

‘그럼 너무 빨리 죽지 않을까?’

[제철 음식인데요? 그리고 운동하면 되죠. 죽어라 하세요.]

‘너는…….’

[뭐요.]

‘아냐. 일단 먹자. 조태진 교수님 슬슬 식욕 돌아오는 듯하네.’

[아, 이 양반은 강적이지. 알겠습니다. 저는 미각으로만 집중하도록 하죠.]

심지어 잠시 다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고 돌아설 지경이었다.

조용해진 바루다 덕에 수혁은 양껏 먹을 수 있었다.

애초에 이현종이 사람 수보다 더 많이 시키기도 했거니와, 삼해라는 음식점 자체가 일단 먹고 죽을 만큼 주고 머리 싸맬 만큼 비싼 값을 부르는 곳이기도 해서였다.

“아, 근데……. 너 다음 주부터 어디로 가니?”

다들 배가 부르고 나서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제일 하고 싶은 말이야 당연히 통합진료센터에 관한 말이겠지만, 밖에서 떠들 만큼 무난한 사안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여기 모인 이들은 수혁의 우군들이었다.

적어도 명절날 만나는 친척들보다는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에 진심으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아, 저요. 류마티스요.”

“류마? 설마 김문제? 아니, 김문재?”

“아……. 네. 그 교수님이요.”

“야……. 이거 껄끄럽겠네. 너나 그 인간이나.”

이현종은 김문재라는 이름에 쯔쯔 혀를 찼다.

분명 아주 나쁜 인간은 아니었다.

이름 때문인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기는 했지만.

적어도 환자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은 아니다, 이 말이었다.

오히려 강박증세 비슷한 것이 있어서 안 좋은 환자가 있으면 집에도 안 가고 원인을 찾는 사람이었다.

알아서 하는 일이니만큼 혼자서 하면 더 좋을 텐데, 밑에 사람은 물론이고 병동 간호사까지 들들 볶아 대서 문제긴 했지만.

하여간 그런 경험을 통해 상태가 좋아진 환자들만큼은 김문재 교수를 아주 좋아했다.

“그 새끼는 왜 두바이에서 그런 거야. 아니, 내가 회의 때마다 떡 먹듯이 얘기했는데……. 우리 수혁이 진짜 똑똑하니까 행여나 뭐 의심할 생각하지 말라고.”

“형이 회의 자체를 많이 안 들어갔으니……. 잘 모를 수도 있지…….”

“뭐 인마. 너는 왜 이렇게 나를 공격해.”

“아니, 그렇잖아요. 뭐 요새는 진짜 잘 들어가고 있긴 하다만.”

“하여간 뭐……. 그놈이 쫌생이긴 한데, 그래도 환자한테 뭐 해 끼칠 놈은 아냐. 너한테는 노력을 할 수도 있겠는데……. 음. 어쩐다? 과장님, 어떡해. 복안을 좀 내 봐.”

다만 김문재 교수의 인성이 문제였다.

딱히 원한 관계가 없는 사람도 툭 하면 괴롭혔다.

목적이야 환자를 잘 보게 하겠다는 데 있기야 하지만, 꼭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죽하면 서효석을 제외한 투표에서 늘 레지던트들이 제일 싫어하는 교수 상위권을 차지할 지경이었다.

“아니 그걸 왜 내가…….”

“너 과장이잖아. 권한 있잖아. 슬쩍 바꾸든가.”

“당장 다음 주 월요일인데 어떻게 바꿔 지금.”

“미리 알아보든가, 그럼.”

“나도 바빠요.…….”

“왜 바쁜데. 설마 늘그막에 NEJM 논문 내는 건가?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신현태는 죽죽 신경 긁고 있는 이현종을 보면서도 의외로 타격을 받지 않는 느낌이었다.

이현종이야 좀 둔한 사람인 데다가, 한창 놀리는 데 정신이 팔려서 잠시 눈치를 못 챘지만.

대략 5분을 그러고 있다 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잉. 설마 진짜 NEJM이야?”

“뭐……. 아직 확정은 아닌데. 거기 낼 거 같은데?”

“워……. 뭘로? 내가 알기로 딱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는데? 설마 국건영 자료가 그렇게 의미 있는 데이터를 냈나? 아닌데?”

이현종의 말에 신현태가 조금은 민망한 얼굴이 된 채 수혁을 바라보았다.

‘사실 얘 아니면……. NEJM이 다 뭐야.’

이번 논문은 태반이 수혁 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신현태도 열심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통은 교수가 아이디어 및 얼개를 짜 주면 레지던트가 나머지를 쓰는데, 그 반대가 되어 있었기에 그랬다.

수혁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이놈이 너무 바빴다.

두바이를 가질 않나, 갑자기 케이스 발표가 생기질 않나.

양심이 있다면 그나마 시간이 나는 신현태가 쓰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 전에 그거 있잖아요.”

“전에 뭐.”

“중환자 모니터링한 거.”

“그거……. 그걸 네가 홀라당 했어? 수혁이 거를?”

“그렇게 말하지 말고. 어차피 교신저자 없으면 안 받아 주잖아. 게다가 내가 다 쓰고 있다니까? 진짜야. 수혁이는 앱스트랙트만 썼어요.”

“진짜야? 수혁아, 이놈이 너 뒤통수 치는 꼴은 못 본다.”

이현종은 반쯤 눈이 돌아간 채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바루다의 성화에 키조개를 욱여넣고 있던 수혁은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읍. 네네.”

“아, 그래? 음. 그래……. 그렇게라도 NEJM 넣으면 일생의 영광이지. 그러고 보니까 그걸로 지금 어디야? 홍콩? 준비 중인가?”

“아……. 홍콩은 지금 좀 난리 나서 취소됐고요. 싱가포르로 변경되었어요.”

“아, 싱가포르. 좋네. 언제 가?”

“다다음 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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