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0화 류마티스내과 (3)
흉통.
의사라면 절대 가벼이 볼 만한 증상이 아니었다.
‘선생님, 환자가 가슴이 아프대요!’
이 말을 들으면 아드레날린과 함께 스트레스 지수가 확 올라야 정상이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이만한 증상을 잘 접할 일이 없는 과들, 다시 말해 이비인후과 같은 과에서조차 그랬다.
물론 그러한 과들에서는 주로 진짜 의사를 부름으로써 사태를 해결하긴 하지만.
하여간 아주아주 중요한 증상이란 얘기였다.
“환자가 몇 시에 흉통을 호소했지?”
“새벽……. 새벽 2시요.”
“2시? 2시면 자다 그런 거야? 그런 좀 심각한데.”
자다가 깰 정도의 흉통이라면 환자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소리였다.
사람은 어지간한 통증으로는 잠에서 깨지 않지 않던가.
“딱 자다가 그런 것은 아니고……. 1시 반쯤 깼다고 합니다. 소변이 마려워서요.”
“아, 그렇군. 음. 그래서?”
환자는 50이 넘은 남자 환자였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전립선 비대 등으로 인한 야간뇨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나이란 얘기였다.
“그다음 이제 다시 자려고 하다가……. 가슴이 아파서 깼다고 합니다.”
“선잠을 자다가 깼다는 거야?”
“네.”
“환자……. BMI가 어떻게 되지?”
“네? BMI요?”
“그래, BMI.”
BMI라는 건 Body mass index 즉 체질량지수를 뜻했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의학적으로는 주로 비만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였다.
‘흉통에서 왜 갑자기 여기로 튀지?’
안대훈의 머리는 즉시 혼란스러워졌다.
다른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면 참 이 사람 생뚱맞다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상대는 다름 아닌 이수혁 아니던가.
괜히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소문에 따르면 수혁은 자다가도 의학 관련한 꿈만 꾼다고 하지 않던가.
옆에서 지켜본 바에 따르면 딱히 헛소문일 거 같지도 않았다.
‘코골이……. 수면 무호흡이 급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할 텐데.’
그의 예상대로 수혁은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질문을 던진 참이었다.
[근데 질문을 너무 건너뛴 거 아닙니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너무 많은 사전 정보가 필요한데요? 상대는 교수가 아니라 레지던트입니다.]
‘아, 그런가.’
하지만 바루다가 제지에 나섰다.
인공지능이 보기에도 좀 무리한 논리 전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슷한 수준의 의사라면야 별 어려움 없이 대화가 이어지긴 했을 터였다.
예를 들어 이제 곧 같은 센터에서 일하게 된 이현종 정도?
[안대훈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현종과 같은 의사라고 하기엔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그것도 그렇네……. 이건 내가 잘못했다.’
해서 수혁도 반성한 후, 재차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안대훈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상황이었다.
“내 질문이 좀 두서가 없었지?”
“아, 아뇨. 죄송합니다. 제가 통 알아먹지를…….”
“아냐, 아냐. 진짜 좀 그랬어. 다시 질문할게. 자……. 일반 인구에서 주로 사망이 발생하는 시각이 언제인지 혹시 알고 있어?”
“아…….”
뭔가 좀 더 쉬운 질문이 나오려나 했는데.
이번 질문 또한 어렵기 그지 없었다.
세상에 흉통 환자에서 일반 인구의 사망 시각까지 끌고 나올 줄이야.
아마 대훈이 일반적인 2년 차였다면 여기서 바로 침몰하고 말았을 터였다.
아니, 높은 확률로 3년 차들도 답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대훈은 뭐가 되었건 간에 스스로 수혁의 수제자임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 아니던가.
“오전입니다. 보통 9시에서 11시?”
사람이 잠에서 깨고 행동에 나서는 경우, 갑작스러운 신체 활동이 노쇠한 몸에 무리를 주면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현재 주요 선진국에서는 아침 시간에, 특히 노인인 경우에는 침대에서 가벼운 스트레칭부터 하라는 지침을 만들고 있었다.
“그래. 근데 어떤 질환군에서는 그 시각이 자는 시각으로 앞당겨지지. 무슨 질환에서 그럴까?”
물론 질환에 따라 이 시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것이 통계로까지 입증될 만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질환은 몇 없었는데, 대훈은 이 또한 알고 있었다.
“수면…… 무호흡증?”
“그래. 자면서 호흡이 없으면 심장에 무리가 가게 되지. 아주 극심한 운동을 할 때와 비슷한 수준의 스트레스가 간다고 하니까……. 자다가 죽는 거야. 자, 다시 돌아와서. 이 환자 BMI가 몇이지?”
“아.”
그제야 대훈은 수혁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수면 무호흡을 일으키는 원인은 아주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범용적인 것을 뽑으라고 하면 역시나 비만이었다.
그러니까 수혁은 지금 이 환자가 새벽에, 그것도 잠이 들락 말락 한 시점에 통증이 있었으니 수면 무호흡을 일으킬 수 있는 소인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와……. 그 순간에 대체 몇 단계를 건너뛰는 거냐…….’
정말로 맨날맨날 위학적인 것만 생각하고 사는 모양이었다.
미치도록 존경스러운 인간이었다.
대훈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파악했던 것을 입에 담았다.
“키가 173에 65키로입니다. 나이 고려하지 않더라도 정상입니다.”
“음, 그래. 그렇네. 정상이네. 턱의 위치는 어때?”
비만하지 않다고 해서 수면 무호흡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턱이 지나치게 작거나 발달이 덜 된 경우엔 그 때문에도 수면 무호흡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음……. 특별히 작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대훈은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어 환자의 얼굴 생김새를 떠올렸다.
그냥 평범한 50대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었더랬다.
얼굴에 특별히 모난 부분이 없었다고 할까?
“그래?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넘어가자.”
“네, 선생님.”
“그래서…… 흉통이 있다고 해서 뭘 했지?”
“일단 ECG부터 찍었습니다.”
흉통이 있으면 그 이유를 막론하고 무조건 심장 리듬부터 봐야만 했다.
지나가는 협심증이라면 또 몰라도, 경색이 발생했다면 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죽거나 또는 그에 준하는 합병증을 겪을 수 있었다.
“어땠지?”
“그게…… 통증을 호소하고, 그것을 병동에서 인지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제가 간호 기록을 보니까 대략 2, 3분이었습니다.”
“2, 3분. 양호하네.”
“그리고 저한테 콜 하기 전에 이미 인턴을 불렀기 때문에 ECG 찍는 데까지 걸린 시간도 고작해야 5분? 7분? 이 정도입니다.”
“잘했네. 확실히 우리 내과 병동은 일을 잘해.”
답답하게 일하는 곳은 주치의한테 연락하고 구두 처방이라도 받고 나서야 ECG를 찍게 하는 곳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략 5분 내지 7분이 로스 되는데, 이것이 환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병동의 조치는 아주 합리적이었다는 뜻이었다.
“네, 근데…… 정상이었습니다. 도착했을 당시에는 환자가 흉통을 호소하지 않았고요.”
“정상? 아예 정상이었어?”
“네. 혹시 몰라서 리듬으로 뽑아서 대략 2분간 봤는데도 그랬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정상이었습니다.”
“기계 판독은?”
“판독도 정상이었습니다.”
아마도 의료에 있어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도입된 부분이 바로 심전도일 터였다.
현재 대학 병원급에서 쓰이는 심전도 기기는 모두 기기 판독이 가능했기에 그랬다.
물론 아직은 사람의 판독이 필요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적어도 기기 판독에서 정상이 나온 경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비정상 중 어떤 질환인지까지는 부정확할 수 있겠지만 정상이냐 아니냐 정도는 기가 막히게 판독하기 때문이었다.
“흐음……. ECG가 정상이라? 협심증인가?”
“운동부하검사가 예약되어 있으니 그걸 봐야 알겠습니다.”
“아, 효소 검사는 안 했나?”
“했는데……. 그것도 정상이었습니다.”
“이상하네. 협심증이라고 해도 그건 조금 올라갈 수 있는데.”
“네, 저도 그게 참…….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협심증에서는 정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어서…….”
여기서 말하는 효소 검사란, 심장 근육이 파괴될 때 나오는 효소가 피에서 나왔냐를 묻는 것이었다.
경색, 즉 혈관이 완전히 막혀 버리는 경우에야 당연히 엄청나게 오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협심증처럼 막혔다 풀렸거나 조금만 막힌 경우에도 미미하게나마 오를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심장은 한 시도 피가 흐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격렬하게 움직이는 장기이기에 그러했다.
“그래, 정상으로 나올 수 있지. 음.”
대훈의 말대로 가능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쯤 되면 뭔가 다른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둬야 할 거 같았다.
여전히 협심증을 가장 높은 곳에 두어야 하긴 할테지만, 그것만 마냥 보고 있기엔 조금 모자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렇다면 뭐가 있을까요?]
‘아직은 모르지. 일단 환자를 보러 가자.’
[그게 좋겠습니다.]
해서 수혁은 머릿속을 정리한 채, 대훈을 앞세우고 병실로 향했다.
환자는 어제 일 때문인지 심전도를 달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안색이 좋지 못했는데, 거의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간밤에 심장병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자다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눈을 감지 못할 터였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대훈이 노골적으로 수혁이 자기 윗사람인 것을 티 내며 들어갔기에, 환자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아무래도 한 직급이라도 높은 사람이 오는 게 안심이 되지 않겠는가.
“내과 이수혁입니다. 여기 안대훈 선생과 같이 이번 달 환자분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 아! 그 엘리베이터에 붙은…….”
“네, 그렇습니다.”
“아이고, 잘됐네.”
게다가 수혁은 나름 유명인이었다.
환자는 벌써 반쯤 나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반면 수혁은 그렇게까지 기분이 썩 좋지 못했다.
‘확실히……. 수면 무호흡은 없어 보이지?’
[네. 수면 내시경을 해 봐야 알겠지만……. 일단 턱이 넓네요. 입 벌릴 때 안쪽 구조도 좋고요.]
‘가능성이 더 떨어진 셈인데……. 고혈압도 없었단 말야? 당뇨도 그렇고.’
[네, 그렇습니다.]
고혈압과 당뇨는 수면 무호흡의 결과로 생기는 병들이기도 하지만, 또한 심혈관계 질환의 원인이 되는 병이기도 하지 않은가.
적당한 체중, 그것도 근육질로 보이는 기저 질환이 전혀 없는 50대 초반 남자에게 협심증이 있을 확률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수혁과 바루다 모두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천천히 얘기 나누고 있으면 제가 환자 몸을 보다 면밀히 보겠습니다.]
‘이미 대훈이가 경과 기록에 환자 파악 잘해 놨던데 뭘 더 물어봐?’
[시간 끌면서 노가리 까는 거 잘하잖아요. 전문이면서 이러네?]
‘하, 이 자식 이거.’
바루다의 말에 기분이 좀 상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또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그리고 대훈이 한 파악이 완벽한 것은 아니기에 수혁은 우선 대화에 돌입했다.
그사이 바루다는 수혁의 눈동자 닿는 곳 모두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음, 수혁?]
바루다가 수혁을 부른 것은 대략 2분쯤 흐른 후였다.
예상보다는 조금 빨랐기에 수혁은 반가운 표정과 함께 답했다.
‘왜?’
[발, 발에 저 작은 농포 흉터……. 언제 생긴 건지 물어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