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31화 (331/1,303)

331화 류마티스내과 (4)

‘음.’

수혁은 바루다의 말을 듣자마자 환자의 발을 살폈다.

바루다에게 들은 것처럼 농포가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고, 양측 발에 번져 있었다.

어느 한 시점에 발생했다가 가라앉은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병변 진행이 다 달라.’

[네, 흉터도 있지만……. 지금 진행 중인 것도 있습니다.]

‘이러면 이거 좀 복잡해지는데?’

[그렇습니다.]

보통 수두와 같은 감염병으로 인한 수포는 일시에 올라왔다가 거의 동시에 가라앉았다.

감염병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계속 같은 원인균에 의해 감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아니, 정상 면역을 가진 사람에게라면 아예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즉 이런 상황에서는 감염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농포가 발생했다고 봐야 했다.

대개는 자가 면역 질환이 그랬다.

“환자분.”

중요한 질문이지 않은가.

지금까지는 그저 대훈이 했던 질문을 반복하거나 또는 조금 보충하는 수준의 질문이었다고 하면 이제부터는 아예 새로운 질문이었다.

수혁의 태도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네.”

그 변화는 환자 또한 직감할 수 있었다.

환자도 자세를 조금이나마 바로 했다.

하지만 아주 쉬워 보이진 않았다.

통증이 좀 있는 듯했다.

[흐음.]

일반적인 의사였다면, 그러니까 지금 옆에 있는 대훈 정도 되는 사람이었다면 놓쳤을 아주 사소한 신음이었다.

본래 나이가 좀 들고 나면 그냥 몸을 움직일 때도 습관처럼 신음이 나오지 않는가.

더욱이 아파서 입원했을 정도로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통증으로 인한 신음과 일상적인 신음을 구별할 수 있었다.

‘아파서 낸 거지?’

[네. 예상되는 부위는 허리입니다.]

‘허리라……. 환자가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주로 치료받은 곳은 무릎이지?’

[네. 그리고 그렇게 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진통 소염제로 충분히 조절되었고, 그마저도 먹다 말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류마티스 병은 사람마다 그 정도가 심하게 차이가 나는 병이었다.

어떤 사람은 관절에 변형이 올 정도로 고통을 받지만, 또 어떤 사람은 진단이 되었을 뿐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기도 했다.

그중에서 이 환자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병명은 진단되었지만 편안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이것도 질문 리스트에 넣으시죠.]

‘오케이.’

아무튼, 허리 통증도 예삿일로 넘길 건 아니었다.

물론 환자의 체형을 보건대 운동하다가 다쳤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웠지만.

지레짐작만으로 질환을 감별하는 것만큼 위험천만한 짓거리도 없었다.

“여기 발 말이에요.”

“아, 네.”

“이거 언제부터 이런 거 났어요?”

“아……. 음……. 한 몇 달 된 거 같은데요?”

“몇 달? 근데 그냥 두셨어요?”

“이게…… 이러다가 좋아지다가 말다가 하더라고요. 약 바르면 좀 좋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아프지도 않고. 일도 바쁘고 해서 일단 그냥 뒀죠.”

다른 이유보다는 아마도 마지막 이유가 결정적이었을 터였다.

사회적 통념상 목숨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보다 일을 더 우위에 두던가.

대학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그놈의 바쁜 것 때문에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을 키워서 오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게 마련이었다.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경쟁의 극단으로 내모는지 단편적으로나마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신현태가 얘기해 준 적이 있었다.

[이 나이대 남성들이 특히 그런 거 같습니다.]

‘그러게. 누가 보면 목숨 한 두어 개 더 있는 줄 알겠어.’

게다가 어떤 이들은 진짜 구미호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몸 일인데 대강대강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간이 안 좋다는데 그날로 술을 마신다거나, 암이 의심된다는데 그 소리 들으면서 담배를 피우거나 하는 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환자를 책망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통계적으로야 문제가 있다고 말을 할 수 있겠으나, 개인에게 그런 말을 하면 마치 ‘당신은 당신이 잘못해서 아픈 겁니다’라는 논조로 들리지 않겠는가.

특히 갑작스럽게 치명적인 상태로 빠지기 일쑤인 환자들을 주로 보는 이현종은 절대 그런 말을 환자 앞에서만큼은 하지 않았다.

아직 건강한 이들 앞에서야 얼마든지 구박도 했지만 적어도 환자 앞에서는 참았다.

“그렇군요. 그러면 몇 달 전부터 계속 이렇게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한 건가요?”

“네.”

“정확히 몇 개월 정도 되었을까요? 반년보다는 적은가요?”

“네네. 뭐……. 한 3개월? 그쯤 되었을 거 같은데요?”

“음. 3개월이라.”

3개월 전 발생한 발의 농포.

이렇게 기억해 두려니, 바루다가 끼어들었다.

[손바닥에도 약하지만, 병변이 있습니다.]

‘아, 그럼 손발의 농포로군.’

손발을 동시에 침범하는 농포라.

아무래도 발에만 오는 놈보다는 특이적이지 않겠는가.

질병을 감별하기에 더 좋은 소견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의 얼굴에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환자분.”

“네.”

“혹시 허리 안 아프세요?”

“허리요? 아, 네. 가끔…… 아픕니다.”

“디스크 진단받은 적은 없으시고요?”

“아뇨, 제가 디스크는 없습니다. 등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그런가……. 괜찮아요. 근데 허리가 요새 아프네요.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환자는 저도 모르게 아픈 부위를 주물렀다.

아주 정확하게 인지를 하고 있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몇 번인가 헛손질을 하고 나서야 정확한 부위를 잡을 수 있었다.

수혁이 볼 때 등보다는 확실히 허리였다.

[요추 부근이군요. 아까도 저 부위를 움직일 때 신음이 나왔습니다.]

‘신음이 저도 모르게 나올 정도면 그래도 통증이 꽤 있다는 건데?’

[그렇죠.]

손발의 농포와 허리 통증이라.

여전히 막연한 소견들이었지만.

아까보다는 적어도 해답에 가까이 간 기분이었다.

“그럼 허리가 아픈 건 얼마나 되었나요. 3개월보다 더 됐나요, 아니면 덜 됐나요.”

“어……. 덜 됐습니다. 확실히 덜 됐어요. 이건 두 달이나 되었을까?”

“그럼 농포가 생기고 난 다음에 생겼다, 이 말씀이죠?”

“어……. 그렇게 들으니까 그렇네요. 이게 둘이 연관이 있나요?”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죠.”

“아……. 그렇구나. 허……. 이게…….”

환자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바닥을 제대로 보여 주면서였는데, 아무래도 움직이고 있을 때보다는 수혁에게도 잘 보였다.

‘음. 확실히 농포가 있네.’

[네. 이렇게 보니까 발이랑 뭐 크게 차이도 없네요.]

‘여기도 진행 중이야. 이런 식으로 농포 잡히는 질환 리스트 업 좀 해 봐.’

[벌써 했죠. 근데 이것만으로는 너무 많아요.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요통도 더 해 봐.’

[요통을요? 좀 생뚱맞지 않습니까?]

농포와 요통이라.

이게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엉뚱한 증상이지 않은가.

적어도 바루다는 그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수혁의 생각은 달랐다.

‘아냐, 아냐. 자가 면역 질환을 염두에 둬 봐. 그럼 이상할 것도 없어.’

자가 면역 질환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자기 면역 세포가 미쳐 가지고 자기 몸을 공격하는 질환 아닌가.

그러지 않을 때야 괜찮지만, 한번 눈알 돌아가면 여기저기 가리지 않을 때도 많았다.

말하자면 피부 조직을 공격해서 농포를 일으키는 놈이 허리에서는 뼈나 관절을 공격해서 통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군요. 네, 솔팅 해 보겠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바루다가 듣기에도 그럴싸하긴 했다.

해서 바루다는 더 논쟁을 벌이는 대신 분석에 들어갔다.

“환자분 그럼 혹시 가슴 통증은 어떠세요?”

“가슴 통증이요? 뭐가 어떠냐는 건지…….”

“언제 처음 발생했죠?”

“아.”

그사이 수혁은 혹 흉통도 같은 범주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질문을 던졌다.

다른 의사들이 듣기에는, 대훈이 듣기에도 좀 이상했지만.

이미 자가 면역 질환을 염두에 두기 시작한 바루다로서는 당연한 질문으로만 보였다.

때문에 분석에 열중할 뿐, 굳이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이건…… 이것도 한두 달? 아니 그것보단 더 됐나.”

“3개월 이전에는요?”

“그건 아닙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데, 이후에요.”

“무슨 일?”

“스트레스 있거나 한 건 아니고요. 뭐 좀 그냥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3개월은 안 됐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 말은 곧 농포가 있고 그다음에 흉통이 따라왔다는 얘기였다.

[흉통도 포함합니다.]

눈치 빠른 바루다는 딱히 수혁의 말이 있기 전에 미리 흉통을 집어넣었다.

애초에 이게 다 포함되는 병이 많지는 않았기에 출력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적었다.

‘음…….’

[그래도 대여섯 개는 되는군요.]

‘애매한데. 다 그럴싸하고 또 다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이거다 하는 병이 있진 않았다.

다들 드물었고, 뭐 하나 빠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적어도 수혁이 보기엔 그랬다.

하지만 바루다는 아닌 모양이었다.

[저는 하나로 좁힐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응? 진짜로?’

[네.]

‘알려 줘, 인마.’

인공지능 놈이 간을 본다니.

어이없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당당히 요구했다.

[불가합니다. 수혁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루다도 당당히 거절했다.

미쳤나 하는 욕이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의욕이 불타오르기도 했다.

수혁은 잠시 입을 다문 자신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환자를 일별한 채 생각에 잠겼다.

‘힌트.’

[수혁이 직접 본 적이 있는 환자는 아닙니다.]

‘그게 힌트야?’

[바루다가 판단하기에 지금 수혁의 수준은 낮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힌트는 바로 정답을 알려 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음.’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어쩐지 바루다에게 인정받은 느낌 아닌가.

바루다가 어디 뭐 허접한 놈도 아니고.

수혁이 보기엔 이제 세계 최고라 자부해도 과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한 놈이었다.

바루다가 이런 심리까지 이용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너랑 내가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건 맞아?’

[무슨 소리죠?]

‘너 요새 내 감각 기관으로 들어오는 정보……. 엄청 분석해서 쟁여 놓잖아. 내가 인지하지 못한 정보가 있는 건 아니냐고.’

[호오.]

물론 이제 진짜 바루다가 보기에도 수혁의 수준이 크게 올라오긴 했다.

지금도 그랬다.

바로 다음 질문이 이게 튀어나올 줄이야.

이 말은 곧 같은 정보를 쥐고 있다면 바루다나 자신이나 크게 다를 거 없다는 판단 아닌가.

건방진 놈이라고 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수는 없었다.

실제로 바루다는 수혁의 감각 기관을 통해 수혁 자신보다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한 참이었고, 그 정보가 지금 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참이었기에 그랬다.

‘호오라고 하는 거 보니까 맞는데?’

[네, 그렇습니다. 지금 바로 공유합니다. 머리가 아플 수 있습니다.]

‘어이구.’

반면 수혁은 바루다가 이렇게 많은 정보를 쟁여 놨다는 것에 놀랐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런 분석이 가능할 줄이야.

이를테면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밖에서 볼 땐 그저 꼴값이었다.

어차피 수혁이나 바루다나 한 몸 아닌가.

자화자찬이나 다를 바 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알아보시겠습니까?]

‘1분 안에 해 볼게.’

[오, 자신감.]

‘할 수 있다니까?’

[네, 해 보십쇼. 똑딱똑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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