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사 뭔 신드롬? (1)
[똑딱똑딱.]
바루다는 딱 초 단위에 맞춰 똑딱거리기 시작했다.
사람 마음을 이보다 더 초조하게 만들 만한 방도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적절한 리듬이었다.
특히 심장박동 수가 거의 분당 60에 가까운 수혁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망할.’
하지만 짤막한 욕 말고는 더 해 줄 것도 없었다.
일단 바루다의 시험은 통과해야 하지 않겠는가.
통과 못 한다고 불이익이 있을 리도 없고, 통과한다고 해서 이익이 있을 리도 없으니 순전히 기분 문제이긴 하지만.
이제 둘 사이에 있어서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일도 거의 없었다.
‘환자 검사했던 게…….’
해서 수혁은 일단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미 어지간한 데이터는 바루다가 수치화해서 저장해 둔 후였고, 이걸 감출 정도로 이상한 놈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의 환자 정보를 들여다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초 혈액 검사상 혈색소가 10.4g/dL에 백혈구 7,860/mm3, 혈소판은 412,000/mm3이었어.’
약간의 빈혈이 있는 거 말고는 특이 사항이 없다 이 말이었다.
그 외 칼슘이나 인과 같은 수치도 정상이었고, 신장이나 간 수치 또한 그랬다.
심지어 류마티스 인자 및 HLA-B27, 항핵항체도 음성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있다면 CRP, 즉 급성 염증을 보는 지표가 7.9mg/dl로 상승해 있다는 점이었다.
‘감염이 아닌데 올라갔다는 건 어찌 되었건 뭔가 다른 이유로 인한 염증 반응이 있다는 거지.’
[감염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 만한 근거가 있습니까?]
‘일단 체스트 깨끗하고, 열 없고. 백혈구 수치 정상이고. 기저 질환이 있으면 모를까……. 없는 상황에서는 일단 아니라고 봐야겠지.’
[음, 인정합니다. 추론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합니다.]
바루다는 그 와중에 과정까지 평가하고 있었다.
어차피 결과가 맞을 거라면 굳이 이럴 거까지 있나 싶겠지만, 최근 AI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과정에 대한 검증이 더더욱 중요시되는 실정이었다.
AI 중에서도 딥러닝 방식에 의한 결론 도출인 경우가 특히 그랬다.
분명 답은 맞는 거 같은데, 그 중간 추론이 영 이상한 경우에는 이놈이 이번엔 맞았지만, 다음에는 어떨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AI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주로 드는 예시가 바로 그것이었고, 동시에 AI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제일 개선하고자 하는 것 또한 이 문제였다.
[근데 그럼 무엇을 의심할 수 있습니까?]
‘가만있어 봐. 뭔가 정보가 부족해. 아까 네가 준 시각 정보 다시 띄워 봐.’
[알겠습니다.]
‘어디 보자.’
수혁은 그렇게 랩부터 일단 다시 점검해 놓고, 바루다가 자신의 눈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살폈다.
손과 발의 농포는 뭐 아까부터 알고 있던 것이었다.
바루다가 훨씬 더 정밀하게 분석을 해 두긴 했지만, 요약하면 각기 다른 시점에서 발생한 농포들이 있다 뭐 이 정도였다.
적어도 진단명을 추론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도움이 될 만한 소견이 아니란 얘기였다.
차이가 있다면 얼굴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얼굴 피부 표면에 이상이 있었다.
‘이게 비교적 최근에 발생한 흉터라고?’
[네. 압출해 낸 흔적이 있습니다. 여드름이었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원래 피부가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데…….’
사람이 나이가 들면, 특히 남자는 호르몬 영향의 누적으로 인해 피부 가죽이 두꺼워지기 마련이었다.
두꺼운 피부는 빠른 재생을 보이지 않기에 대미지가 축적되었다.
따라서 흉터가 여기저기 많아서, 어지간한 흉은 그렇게 티가 나지 않게 되었다.
이 환자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니, 자외선을 좀 쬐는 편인지 남들보다 더 안 좋았다.
[하지만 제 분석에 따르면 최근에 발생한 흉터라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이 좀 있습니다. 질문으로 확인하시죠. 어차피 슬슬 환자가 좀 의아해할 만한 시점입니다.]
바루다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환자가 이 사람 뭐 하는 건가 하는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혁이 TV에 나온 유명인인 데다가, 병원에서도 작정하고 스타로 키우려고 홍보를 하는 사람인 만큼 대놓고 뭐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여기고는 있었다.
“아, 환자분.”
해서 수혁은 부리나케 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환자는 어색한 침묵이 끝나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 환자분 얼굴에 여드름 난 적이 있으신가요?”
“네? 아……. 네. 아니, 요새 별로 뭐 하는 것도 없는데 갑자기 트러블이 있어서 병원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압출인지 염병인지, 아 죄송합니다. 하여간 아픈 거 하고는 좀 좋아졌어요. 지금은 거기서 처방해 준 약 바르고 있어서 그런가 괜찮은데…….”
“아하. 그렇군요. 요새라는 게 언제쯤이죠?”
“네? 어……. 어?”
환자는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가 다 각각인 줄로만 알았던 모양이었다.
잠시 이럴 수가 있나 하는 표정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이런 거 생기고 난 다음이네요.”
자신의 손과 발을 보여 주면서였다.
생각보다 사람 중엔 자기 몸에 별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수혁은 환자가 특히 유별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애초에 여드름을 연결 짓느라 바쁘기도 했다.
정보가 하나 더 추가된 마당 아닌가.
‘그럼 여드름에 손발에 농포, 요통과 흉통…… 음. 요통과 흉통. 이게 좀 걸리는…….’
수혁은 혼자 종알종알대다가 문득 요통이나 흉통이 있을 시, 그것이 특히 자가 면역 질환에 의한 것일 시 보이는 변화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다행히 그 변화는 영상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체스트(Chest x-ray, 흉부 엑스레이) 띄워 봐. 다시 리뷰 하게.’
[알겠습니다.]
바루다는 애써 수혁이 점차 정답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숨기며, 그러니까 담담한 척을 하며 체스트를 띄워 주었다.
아까 컴퓨터에서 봤던 딱 그대로의 모습인데 심지어 확대도 가능했다.
바루다의 존재가 이를 가능케 했다.
‘어디 보자…….’
수혁은 그중 환자가 통증을 주로 호소하는 부위인 흉부 측을 확대했다.
심장 통증과 헷갈렸다고 한다면 역시 전흉부일 터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여기 쇄골 내측부……. 여기에 과골화 소견이 있는 거 같은데.’
[네, 하이퍼옵스토시스(Hyperostosis)가 있습니다. 거기뿐입니까?]
‘아니네. 요추에도 있어. 4번 요골에 과골화 소견이 있네. 아예 돌기 쪽, 이러니까 아프지.’
[그렇습니다. 확실히 판독에는 이제 도가 텄군요.]
‘도가 텄지 그럼. 어지간한 영상의학과 레지던트보다는 나을걸.’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펠로우급까지는 정리 가능하지 않나 하는 수준이었다.
바루다가 보기에도 과한 말은 아니었다.
이제 수혁의 실력은 진짜였다.
아무리 바루다가 보정해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영 바보였다면 이만한 퍼포먼스를 보여 주는 건 어려웠을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바로 막 인정해 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긍정하는구만.’
수혁은 멋대로 바루다의 속내를 판단한 후, 방금 알아낸 과골화 병변을 지금까지 연결 지어 놓고 있던 소견들에 이어 붙였다.
즉 환자는 이제 여드름, 손발의 농포, 흉통과 요통을 유발하는 쇄골 내측의 과골화 및 요골의 과골화 소견을 보이고 있었다.
처음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진전이 있게 된 셈이었다.
다른 의사에게는 여전히 한참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하나 더 물어봐야겠는데.’
[어떤 질문입니까?]
‘물어보면 알아.’
[알겠습니다. 지켜보고 판단하겠습니다.]
이미 감을 잡은 마당이었다.
지금 질문은 확신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일 뿐.
그래서 그런가, 수혁의 얼굴엔 미소마저 떠올랐다.
환자와의 대화를 적절히 중단하고 바루다와 내기에 들어간 지 이제 겨우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였다.
‘와……. 선배 이제 또 알아냈나 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안대훈으로서는 경외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김문재 교수가 별명이 김문제이기는 하지만, 그건 인성에 기인한 별명이지 실력에서 발로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류마티스 학회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태화 의료원에 그러지 않았던 사람은 딱 하나, 서효석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감조차 잡지 못했던 것을 이렇게 빨리 알아내고 있다니.
‘평생…… 평생 따라야겠다.’
처음 내과에 들어올 때부터 로컬에 나갈 생각이 없던 안대훈으로서는 이런 생각만 들 뿐이었다.
“환자분.”
“네.”
환자 또한 아까보다도 더 협조적이었다.
질문하는 것마다 의미가 있지 않은가.
의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듣기에도 그러했다.
뭔가 사방에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하나하나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상황에서 눈앞에 선 의사에게 반감이 든다고 하면 그냥 미친 사람일 뿐일 터였다.
“혹시 최근 들어 무릎이 더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아……. 네네. 쭉 괜찮다가 조금? 근데 이건 워낙 왔다 갔다 하는 거라서요.”
“아플 때 상비약을 드셨나요? 병원 기록을 보면 처방된 약이 있던데.”
“네. 먹었습니다.”
“효과는 있었나요?”
“네, 저는 그거 잘 듭니다.”
환자는 답하면서 이번엔 혹 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해도 딱히 실망스럽거나 하진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매 질문마다 이상한 점을 딱딱 잡을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 같았다.
한데 질문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수혁은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내내 쥐고 있던 지팡이를 옆에 내려다 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먹었을 때 가슴 아팠던 적이 있나요?”
“네? 어…….”
“지금 당장은 모를 수도 있어요. 그냥 차근차근 생각해 보세요.”
“어, 네. 음…….”
수혁은 그렇게 환자에게 질문을 던진 후,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이제 드디어 답을 들을 수 있겠거니 하고 있던 안대훈에게는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
눈빛에서 어째 시험하려는 기색이 엿보였기 때문이었다.
비록 감정 분석이 가능한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신처럼 여기고 따르는 사람의 표정이었기에 해석이 가능했다.
‘아, 또 시험인가.’
해서 마른침을 삼키고 있으려니, 아니나 다를까 수혁이 질문을 던졌다.
여기서 그냥 뭐 같냐고 했다면 주저 없이 포기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의 질문에는 힌트가 아주 다분히 들어가 있었다.
바루다 덕에 엄청난 성장을 거듭한 수혁조차 힌트가 없이는 유추가 불가능했던 질환 아닌가.
바루다가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으나, 수혁은 나름 양심이 있는 인간이었다.
“자, 이 환자분은 현재 손발의 농포가 있어. 농포는 보면 알겠지만 각기 발생한 시기가 달라. 그리고 여드름도 있어. 약을 바르고 있어서 불명확하지만, 이것 또한 양상이 손발의 그것과 비슷할 수 있지.”
“음.”
“흉통과 요통은 연관이 있어 보여. 엑스레이……. 지금 없지만 이따가 가서 보면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에 과골화 소견이 보여.”
“아……. 과골화가 진행됐어요?”
“그래. 거기에 더해 무릎의 통증도 조금 빈번해졌지.”
“네.”
“그럼 뭘까?”
“아…….”
물론 힌트를 줬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니었다.
더럽게 어려운 질환이었기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