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35화 (335/1,303)

335화 소아과 협진 (1)

“뭐래?”

아무래도 전화가 좀 심심하게 끝난 느낌이었다.

수혁이 아는 김문재라면 이것보다는 한참 더 지랄을 했어야 할 거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할까.

너무 조용하다고 해야 할까?

“아……. 네,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어디 아프신가? 왜 그러지?”

“그게…… 얘기 들으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좀 지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 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김문재 교수의 얼굴을 아주 자세하게 떠올렸다.

수혁의 사감이 더해진 데다가 바루다까지 교묘하게 조작을 해 둔 처라 정말이지 야비한 인상이었다.

이런 사람이 레지던트 둘이 짝짜꿍이 맞아서 자기 의견에 반하는데 그냥 하라고 한다고?

‘뭔가 음모가 있나.’

[모를 일이죠. 조심하는 게 좋기는 하겠습니다. 데이터상 김문재 교수는 키우는 제자가 있어요. 2년 전인가 지방대 자리가 났는데도 안 보냈을 만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는 가고 싶어 했대? 누구지?’

[방가람이요.]

‘아……. 방가람 선배.’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이 났다.

이름이라기보다는 성이 드문 것이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그랬다.

아무튼, 방가람과는 몇 번인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착하던데, 사람.’

수혁은 가난한 사람 아니던가.

내과도 크게 개원하려면 돈이 많이 들지만, 그래도 2차 병원이라도 가려고 하면 제일 자리가 많은 과이기도 해서 수혁 같은 사람들이 지원하기 좋은 과였다.

학문적으로도 제일 흥미가 동하기도 했고.

애초부터 내과를 지망하고 있었다, 이 말인데 그래서 그런가 선배들이 좀 이뻐했더랬다.

계속 가라앉고 있는 과에 성적 좋은 놈이 학생 때부터 지원한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때 기억이 데이터로 남아 있네요. 선배와의 대화라 제가 남겨 둔 모양입니다.]

‘아니, 그런 식으로 남의 기억 함부로 지우지 말라고.’

[어지간하면 남겨요. 압축해 놓을 뿐이지.]

‘음.’

그런 것도 별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란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이미 바루다가 기억을, 그러니까 당시의 영상을 재생했기 때문이었다.

‘아……. 이게 본인 뜻이 아니네. 김문재 교수가 그냥 가지 말라고 한 거네. 선배는 충청대라고 가고 싶었네.’

[국립대 아닙니까. 지방이라고 해도…… 국립대 교수 티오는 쉽게 안 나죠. 특히 류마티스는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오, 이제 세상 물정에 조금 밝아졌네?’

[맨 그런 얘기만 듣다 보니 교수 티오에 관해서는 그렇습니다.]

원래도 교수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나마 의대 교수는 유학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또 원체 티오가 많아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실력 하나로 들어갈 수 있다지만.

그렇다고 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바깥 사정이 그리 좋지 못한 내과는 더더욱 그랬고, 소화기내과나 순환기내과처럼 술기가 있는 것도 아닌 류마티스내과는 특히 심했다.

애초에 류마티스 질환 자체가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 아닌 데다가 진행하다 보면 심각해지는 특성상 개원이 거의 불가했기에 그랬다.

그런데 지방대라고 해서 교수 자리를 걷어차?

미친 짓이었다.

‘이 인간은 애초에 지가 제자 앞길 막아 놓고 뭐 하는 거야.’

[그러니까요. 근데 원래 교수들 중에 그런 사람 많다던데요.]

‘많기는…… 하지. 내가 운이 좋았지.’

교수 입장에서 펠로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또 그 펠로우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좋았다.

그러니까 제자가 교수가 되건 말건 일단 밑에서 기고 있으면, 그 기간이 길면 더 좋다 이 말이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부리는 인간들도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고생한 보람이 반드시 있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무정하게 내쳐지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하여간 잘된 일이죠. 일단 이 환자 치료는 진행할 수 있겠습니다.]

‘아, 그렇지. 그렇네. 잘됐지.’

[김문재 교수에 대해서는 우선 경계는 합시다. 기억을 재생해 보니까 역시 나쁜 인간입니다.]

‘응, 그렇지. 오케이.’

김문재 교수가 딱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참이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와 더불어 그에 대한 경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로 결심하고는 한창 처방에 매진하고 있는 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차피 수혁이 다 알려 준 것을 복사 붙여넣기 하는 수준 아니던가.

대훈은 이미 거의 다 일을 끝내 놓은 참이었다.

거의 바로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네, 선생님.”

“다했지? 밥이나 먹자.”

“아, 네. 지하 1층이요?”

“음. 원래 그럴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물으니까 또 고민되네.”

수혁의 얼굴에 드러난 고민을 대훈은 즉각 알아차렸다.

옷이나 차와 같은 소비에도 관심이 없고, 연애에는 관심이 있지만, 인연이 없는 수혁이 유독 매진하는 분야가 식도락 아니던가.

대훈 또한 비슷한 처지인지라 관심이 있기도 했거니와, 어떻게든 수혁의 호감을 얻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럼 제가 한번 시켜 볼까요?”

“맛집 좀 알아?”

“리스트가 있죠. 여기.”

“오…….”

종이를 건네주길래 받아 보니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아시아 등등 분류표에 음식점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상위에 있는 음식점은 무려 한 줄 평까지 있었다.

“미쳤네, 이거 뭐냐?”

“선배님이 먹을 거 좋아하시는 거 이제 다들 알거든요. 팬클럽도 늘어났겠다 이번에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팬클럽이…… 늘어났어? 너랑 하윤이가 다 아냐?”

“어휴, 말도 마세요. 저번 집담회 이후로 인턴들이 일단 열 명 넘게 지원했습니다. 저희가 심사해서 걸렀는데도 다섯이나 남았어요.”

“심사…… 뭔 심사를 보니?”

팬이 되는데 무슨 놈의 자격이 필요하단 말인가.

태어나서 평생 누군가의 팬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수혁으로서는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훈은 진지했다.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 수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금세 풀어지긴 했지만, 아주 잠시 동안은 그랬다.

[건방진데요? 이 사진은 저장합니다.]

‘그래, 나도 좀 기분이 나빴어.’

대훈은 수혁이 이런 능력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일단 선배님 출생지 정도는 알아야죠. 혈액형이랑, 키, 몸무게 이런 게 기본이고요.”

“어……. 그런 걸 어떻게…… 어떻게 아니?”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

“아니, 시발 내가 얘기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아냐고.”

“교육 수련부에도 팬이 있거든요. 그분이 덕질 편하게 하라고 풀었습니다.”

“덕질……?”

아무래도 이 얘기를 계속 듣다가는 정신이 혼미해질 거 같았다.

[대화 중단을 요청합니다. 누군가 수혁을 필요 이상으로 좋아한다니……. 회로가 탈 거 같아요.]

수혁뿐만 바루다도 그랬다.

“바, 밥 알아서 시켜라. 오면 불러.”

“네, 선배님! 사랑합니다!”

“사족 붙이지 말고.”

해서 수혁은 부리나케 도망갔다.

밥이 오고 나서도 또 대훈과는 밥만 먹고 도망갔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피해 온 덕에 대훈과 본격적으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 것은 화요일 오후쯤이었다.

“그, 환자는 좀 어때?”

트라우마가 남은 수혁은 일단 환자 얘기로 포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수혁의 팬클럽 쪽으로는 화제를 돌리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안대훈도 눈치는 있는 놈이라 묻는 말에만 성실히 답하고 있었다.

“경과 좋습니다. 다행히 혈관 협착도 없어서 수술이 필요하진 않고요. 스테로이드 로딩 들어간 다음에는 통증도 호소하고 있지 않습니다.”

“음. 부작용은 없는 거 같던데, 아직.”

“네. 속 쓰려 하는 것도 없고……. 물론 메토트렉세이트도 같이 들어가고 있어서 더 잘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 그 환자 말고는 지금 딱히 이상한 환자 없잖아, 그치?”

“네. 그렇습니다. 입원 환자들 다 괜찮습니다.”

원래도 류마티스는 환자 수로 승부 보는 과가 아니었다.

입원 환자 수가 적은 과라는 얘긴데, 지금은 심지어 수혁이 와 있는 상황 아니던가.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았지만 벌써 대강 정리되고 있었다.

덕분에 편해진 것은 대훈과 김문재였다.

대훈이야 주치의이기에 계속 병동에서 환자를 보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수혁이 껄끄러운 김문재는 몰래 회진만 돌고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수혁 선생님 덕에 이번 달은 병동이 평화로워요.”

“진짜…… 원래 지금 이 시간에는 일단 화부터 내시거든요.”

김문재의 부재를 제일 먼저 체감한 이들은 다름 아닌 병동 간호사들이었다.

김문재의 취미 생활 중 하나가 주치의 조지기였고, 또 다른 하나가 병동 간호사 조지기였기에 그랬다.

아주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그러면 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김문재가 물고 늘어지는 건 대개 트집이었다.

“아니, 무슨…… 수액 잡을 때 붙여 둔 테이프까지 뭐라고 한다니까요. 사실 그거 잘 알지도 못하시면서.”

“야, 나는 환자 드레싱 하는데 붙어 있는 거즈 모양 가지고도 혼났어.”

“없으니까 살겠네.”

괜히 김문재가 김문제가 아니란 얘기.

그렇다 보니 그런 김문재를 사라지게 만든 수혁은 병동에서 지나칠 정도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

방금도 그랬다.

대훈과 그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는데 쿠키며 커피며 하는 것들이 쌓였다.

그중에는 심지어 수간호사가 보낸 것도 있었다.

회사로 따지면 회사 부장이 대리 정도 되는 사람에게 선물을 줬다고 보면 되었다.

“어유, 이건 부담되는데.”

“선배님, 역시……. 선배님은 대단하십니다. 저희 팬…….”

“아니, 아니. 고만해. 그 얘기는. 일단 환자를 보자.”

“병동 환자 다 보셨는데요? 그보다 이번에 저희 팬…….”

“아니, 잠깐만.”

내과에서 어디 병동 환자만 볼 수 있다던가.

다 알게 모르게 협진 환자가 쌓이는 법이었다.

류마티스가 좀 드문 질환이기도 하고, 특히 다른 과에 있어서는 정말 낯선 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또 몰랐다.

“이보세요. 협진 없잖아요.”

해서 열어 봤는데 없었다.

“제가 다 처리했습니다. 잘했죠?”

대훈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탓이었다.

뭐 실수라도 한 거 없나 하고 뒤져 봤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자, 그럼 이번에 저희 팬…….”

“아니, 잠깐만.”

“잉, 감염 내과 협진은 왜 보세요?”

“과장님인데 잘 모셔야지. 레지던트가 돼 가지고 근무 시간에 놀아서 되겠어?”

“어……. 굳이 일 찾아서 안 해도 너무 많은데. 저희 일주일에 88시간 근무 시간 맞추는 거 힘든 거 아시잖아요.”

“난 그런 거 안 따져.”

“음.”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수혁은 정말로 그런 사람 아닌가.

아마 근무 시간을 따져 보면 전공의 근무법 도입되기 이전보다도 많을 수도 있었다.

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수혁이 케이스 하나를 발굴해 냈다.

“야……. 이 환자 특이하다.”

“뭔데요?”

“6개월 된 아긴데 주기적으로 열이 난대.”

“말라리아인가? 아기한테는 드문데?”

“그러니까 말이야, 인마. 이런 케이스를 우리 내과가 해결해 줘야지.”

“그…… 감염내과에서 안 볼까요?”

“내가 전화하면 보라고 하실걸. 내기할래?”

“아,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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