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36화 (336/1,303)

336화 소아과 협진 (2)

의도가 아주 순수하지만은 않은 진료였다.

하지만 합리화할 수단은 넘쳐났다.

딱히 수혁이 먼저 얘기를 꺼낼 필요조차 없었다.

“어어. 그래, 통합진료센터 하려면 과에 얽매일 필요가 없지. 근데 이상하네? 내가 오늘 오전에 협진 훑었을 땐 없었는데. 언제 난 거야?”

전화를 받은 신현태가 먼저 수혁을 비호하고 나섰다.

네가 왜 내 환자를 가져가냐는 둥의 얘기는 아예 없었다.

틈만 나면 수혁 칭찬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 11시쯤이요.”

“그렇구나. 급한 거였으면 그래도 연락이 어떻게든 왔을 텐데. 그렇게 판단하진 않았나 보다.”

“환자 상태가 아주 위급해 보이진 않아요. 그냥 여러 감염병 감별이 필요한 거 같아요.”

“감별이 중요하지. 애들은 괜찮은 거 같다가 훅 가기도 하니까……. 주의 깊게 봐야 할 거야.”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어, 보다가 헷갈리는 거 있으면 언제고 연락 줘.”

아무 문제 없이 환자를 넘겨받은 셈이었다.

대훈은 그런 수혁을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급히 표정을 고쳤다.

‘하긴……. 수혁 선배 정도면 과가 중요치 않지.’

이미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으로 내정되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대훈 정도의 레벨에서는 교수님들 하는 얘기 주워듣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원래 교수들이 그렇게까지 아랫사람 있다고 해서 혀를 주의하는 사람들이 아닌 만큼 꽤나 많은 것을 알아먹을 수 있었다.

‘수혁 선배만 믿고 갑니다……. 충성충성.’

태화 의료원은 그 특성상 많은 레지던트들이 교수를 꿈꾸는 병원이었다.

대학 병원의 대학 병원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교수들이 그 어떤 병원에서보다 멋져 보이는 병원이라는 뜻이었고.

또 태화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이 곧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 몇 안 되는 병원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교수 임용은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이번 센터 신설은 여러모로 젊은 의사들에게 있어 기회였다.

‘최소 기준이 어떤가가 문제긴 한데……. 이미 들어간 두 명을 기준으로 할 수는 없을 거야.’

물론 쉽지는 않을 거 같았다.

하필 태화 역사상 최고 천재라는 둘이 센터장, 부센터장을 맡고 있지 않은가.

저 둘의 눈에 차려면 대체 무슨 짓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현종, 이수혁 부자의 퍼포먼스에 익숙해진 이사진에서 대훈 같은 범인의 능력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야, 뭐 해. 다 왔어.”

“아, 네. 선생님.”

한 가지 다행한 일이 있다면 그나마 대훈은 수혁이 그래도 꽤 이뻐하는 후배라는 점이었다.

태반은 자신이 수혁의 그 혹독한 교수법을 따라와서이긴 하지만.

덕분에 같은 연차 중에서는 대훈을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아예 현장 학습까지 따라온 참이었다.

‘이렇게 계속 배우면 나도 좀 쓸 만해지려나?’

대훈은 어느새 도착한 소아과 병동을 두리번거렸다.

수혁도 소아과만큼은 익숙하지가 않은지라 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우선 병동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저거 뽀로로인가.’

[펭귄 말하는 거죠? 이름이 있는 펭귄이 있더군요.]

‘그건 펭수고.’

[한국 사람들이 펭귄을 좋아하나 보네요. 이름을 둘이나 지어 주네.]

수혁은 굳이 사실은 페티도 있어서 셋이라는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

어차피 바루다가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노력하면 이해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삭막하게 남는 편이 더 나았다.

갑자기 바루다가 펭하 하고 아침 인사를 해 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공포였다.

“어, 웬일이세요?”

둘이 우두커니 서서 병원이라기엔 지나치게 알록달록한 병동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찬가지로 알록달록한 간호사복을 입은 간호사 하나가 다가왔다.

다른 병동의 그 우중충한 색과는 달리 블링블링 한 색감을 자랑했다.

“아, 네. 내과 이수혁입니다. 협진 때문에요.”

“내과에 협진이요?”

간호사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아과는 다른 곳에 협진 내는 일이 드물었다.

수술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내과에는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니 손을 들고 일어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아, 우리 환자. 감염 내과에 협진 냈어요. 그…… 도진이 때문에 오신 거죠? 박도진.”

“네, 맞습니다. 어디에 있나요?”

“지금 처치실에 나와 있어요. 자꾸 열이 나서.”

“아……. 네, 가서 볼게요. 가우닝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 아뇨. 격리 대상은 아니에요. 랩이 깨져 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아하.”

확실히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더랬다.

발열이 지속되고 있어서 그렇지, 상태는 아주 나쁘진 않다는 뜻.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어 불명열로 분류된 지 며칠 되었기에 의료진들이 마냥 속편이 있을 수는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까 협진이 왔을 텐데……. 사실 태화 의료원 소아과가 수준이 낮지 않은데.’

[수준 얘기하기엔 최고 수준이죠. 특히 이기자 교수의 미숙아 케어는 유래를 찾기 힘듭니다.]

‘그렇긴 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못 살린다는 게 정설이었던 500g 미만의 미숙아를 이제는 턱턱 살려 내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그렇게 살려 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이기자 교수에게 안긴 채 찍은 사진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사진 속의 이기자 교수가 정말이지 뿌듯하다는 얼굴로 울고 있어 더했다.

다른 분야의 소아과 교수들 또한 이기자의 제자들이니만큼, 그 수준을 의심하는 것은 별 의미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정말 원인을 찾기 어려웠다는 건데.’

[검사 결과는 좀 보고 올 걸 그랬을까요? 안대훈 떠드는 거 시끄러워서 바로 왔더니 환자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습니다.]

‘뭐……. 여기도 컴퓨터 있잖아. 어차피 시간은 있으니까, 여기서 봐도 돼.’

[뭐가 되었건 안대훈 입만 좀 다물게 하면 좋겠습니다. 쉬지 않고 수혁 칭찬을 해 대는데 듣다 보면 회로가 탈 거 같아요.]

‘나도 괴로울 정도야. 너무 지나치니까 욕 같어.’

[저는 그렇게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바루다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다.

처치실 안에는 작은 아이 하나가 지나치게 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눈물 자국이 선연한 여자가 하나 앉아 있었는데, 누가 봐도 환아의 엄마였다.

순간 동기들이 소아 응급실에서 겪었다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지만.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 일부 보호자들은 너무도 쉽게 그 분노와 슬픔을 의료진에게 풀었다.

‘아, 어쩌지. 이렇게 어린 보호자는 처음인데.’

[일단 보겠다고 하세요. 어차피 포괄적인 대응은 소아과에서 할 테니. 수혁은 그냥 화만 돋우지 않으면 됩니다.]

‘해 볼게.’

[연기 잘하잖아요. 자애롭게 웃어요. 내가 도울 테니까.]

‘오케이.’

수혁은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바루다가 주문한 미소와 함께 환자에게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 환아의 어머니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혁을 아는 모양이었다.

‘휴.’

[김다현의 선견지명이 정말 어마어마하군요.[

유명인의 힘은 대단한 것이지 않은가.

사람들은 내가 아는 사람이 하는 얘기라면 아무리 헛소리 같은 말이라 해도 우선 들어 주는 법이었다.

병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생각해 보면 수혁은 엄청난 어드밴티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안녕하세요, 내과 이수혁입니다.”

“아……. 알아요. 저번에…… TV에서 봤어요. 그…… 집단 감염…… 맞죠?”

어머니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였다.

울음만큼 성대를 혹사시키는 행위도 드물기도 했고.

또 아픈 아이를 간병하는 것처럼 몸을 혹사시키는 행위도 드물었다.

초인적인 인내와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버티고는 있겠지만 몸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 맞습니다. 아이 때문에 왔어요. 잠깐 봐도 될까요?”

“아, 네. 물론이죠. 감사…… 합니다.”

유명인 보정으로 인해 아이 엄마는 마치 수혁이 이 아이를 곧 치료해 주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다.

예전 같았으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을 터였다.

그땐 수혁도 바루다도 지금과 같은 자기 확신은 없었기에 그랬다.

부담이 됐다, 이 말인데 이젠 아니었다.

“네, 그럼 볼게요.”

수혁은 내가 모르면 다른 사람도 모를 가능성이 99% 이상은 될 거라 믿고 있었다.

삿된 믿음은 아니었다.

바루다 또한 동의하고 있었다.

해서 둘 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아이를 보기 위해 나섰다.

[38.2도. 차트를 보니 4시간 전에 이부 프로펜 들어갔습니다. 들어간 직후에는 열이 떨어졌지만, 반감기 지나자마자 다시 오르는군요.]

‘비스테로이드성 진통 소염제에 해열이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된다는 뜻이네.’

[네, 지금이야 열 말고 다른 증세가 없지만……. 진행한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무슨 병인지 모른다는 게 공포일세.’

원래 사람은 미지에 대한 공포가 있지 않은가.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이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훅 하고 가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반대로 좋아지면 확 좋아지기도 하지만.

의료진으로서는 안 좋을 때를 더 자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황달은 없고.’

[입술 색도 괜찮습니다. 호흡이 흔들리지는 않아요.]

‘목에 뭐 만져지는 거 없고.’

[네, 림프절 비대는 없습니다.]

‘청진음도…… 깨끗해.’

[엑스레이상에도 문제는 없었습니다.]

‘복부는…….’

[비장 비대, 간 비대 없습니다.]

신체 검진이 진행될수록 수혁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지금 언급하는 것들이 전부 어떤 질환을 감별해 내는 포인트인데, 이게 다 꽝이 나고 있지 않은가.

“아이가 어디 아파하는 것 같지는 않았나요?”

“아뇨, 그런 것은 없었어요. 사실…… 아직 말을 못 해서 그것도 있고요.”

“음. 하긴 그렇죠.”

“네네.”

심지어 증상도 불명확했다.

6개월밖에 안 된 아이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일일이 다 살펴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만……. 이미 소아과에서 아이 신체 검진은 꼼꼼히 한 것 같군요.]

‘응, 차트 보니까……. 아예 발가벗겨서 다 봤네.’

애초에 아이가 얼마나 급히 나빠질 수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소아과 아닌가.

특히 태화 의료원의 소아과는 전국에서 제일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이 몰리는 메이저 병원 중 하나였다.

다들 긴장하고 있다는 뜻.

그래도 혹시 몰라 살펴봤으나 역시나 이상한 점은 찾을 수 없었다.

‘아……. 불명열이네, 진짜.’

[검진에서 이상이 안 보이는 건 오랜만이군요.]

‘어쩌지……. 어머니 아까부터 나만 보고 있는데.’

[부담되는군요.]

실로 오랜만에 보호자의 시선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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