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소아과 협진 (4)
생후 6개월의 나이.
말로 증상을 표현하기는커녕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조차 힘겨운 시기였다.
하지만 소아과 병동 간호사들은 과연 베테랑들이라 그런지 한눈에 척척 환아의 증상을 유추해 나갔다.
동시에 구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일련의 움직임만 봐도 평소 소아과 병동의 간호사들이 얼마나 열심히 위급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고 있고, 또 얼마나 많은 위급 상황에 대처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복통과 구토가 발생했어.’
[이거 또 새로운 상황인데요? 이렇게 말하면 수혁은 뭐라고 하겠지만, 힌트가 하나 더 생긴 셈입니다.]
‘문제는…….’
[그래도 감이 딱 오지는 않는군요.]
발열은 그 자체가 여러 증상의 원인이 되곤 했다.
우리 몸은 항상성, 즉 늘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게 깨지게 되면 아무래도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법이었다.
복통 또한 충분히 발생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환자 괜찮습니까?”
간호사들이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사이, 연락을 받고 주치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내과나 소아청소년과나 하나같이 수련 환경이 만만치 않은 과들 아닌가.
게다가 이렇게 주치의를 하는 시절에는 더더욱 힘겨웠다.
주치의는 당연하다는 듯 거지꼴을 하고 있었다.
“아……. 네. 일단은요. 근데 너무 보채고 우네요.”
“토는 얼마나 했죠? 양이 많았나요?”
“아뇨, 게워 내는 수준이었어요.”
“색은…….”
“그냥 일반적인 색깔이었어요.”
“담즙이나 이런 건 아니라는 거죠?”
“네, 스테이션에 닦아 놓은 휴지랑 거즈 가져다 놨습니다. 사진 찍거나 보시고 버리려고요.”
“아, 잘하셨어요.”
성인에서는 사실 토사물의 색이 그리 중요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술 먹고 갑자기 많은 양의 토를 하면서 식도 일부가 찢어지면서 발생하는 질환인 말로리 웨이즈 증후군(Mallory-Weiss Syndrome) 또는 간 경화에 의해 식도 혈관이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급격한 토혈 정도를 제외하면 그랬다.
하지만 아기들은 기계적인 폐쇄가 상대적으로 흔했고, 그로 인한 증세 또한 드라마틱한 편이었다.
‘아까 내가 봐도 어디가 막혀서 나오는 거 같진 않던데.’
[네. 그런 구토는 아니었습니다. 색도 여기 간호사 말대로 괜찮았고요.]
‘일반적인 구토라 이건데……. 발열만으로 인한 것 같지는 않지, 또?’
[네. 그렇다고 하기엔 좀 갑작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 진단 내리기는 어렵겠어.’
[제 판단도 그렇습니다. 설익은 진단은 오히려 해를 끼치는 법입니다.]
‘의견은 뭐라고 남기지? 모른다고 하기는 좀 그렇잖아?’
[일단 가능성 있는 질환명들을 남겨 주시죠.]
의무 기록이라는 게 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을 딱 하나만 골라 보라고 한다면 역시나 협진 노트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의무 기록은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과 내에서만, 그것도 주치의와 지정의, 치프 정도만 보지 않는가.
하지만 협진 노트는 대놓고 남에게 보라고 쓰는 기록이었다.
있어 보일 필요가 있었다.
특히, 지금 수혁처럼 주요한 자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그럼 말라리아나 기타 감염병 써 주고 가능성은 이러이러해서 떨어진다, 뭐 이 정도로 남겨 줄까?’
[네. 현재로서는 감염을 의심할 만한 징후가 없습니다.]
‘그래, 쓸데없이 항생제나 이런 거 쓸 이유는 없지.’
항생제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비록 일부 언론에서는 대한민국을 마치 항생제 오남용 국가인 것처럼 호도하지만.
실제 대한민국의 영유아 사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것이, 바로 이 항생제 덕이라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되었다.
물론 일부 사례에서는 좀 남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애초에 1차 진료 기관에서 쓸 수 있는 항생제 종류 자체를 제한해 두었기에 아이 때 항생제를 좀 먹는다고 해서 나중에 쓸 약이 없어질 거란 걱정까지는 필요치 않았다.
[네, 아직 랩이 깨지진 않았습니다만. 항생제를 쓰게 되면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길 여지도 있습니다.]
‘응, 주의하라고 해야겠어.’
[하지만 소아과 판단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내가 진단이 확실하게 서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냐.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어.’
[좋은 태도라고 판단합니다.]
이기자 교수는 수혁을 지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아과 전체가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건 오산이었다.
소아과도 메이저 과인 만큼 사람이 무척 많았고, 그중에서는 자기 사람을 키우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니 최대한 조심스럽게 하는 것이 옳을 터였다.
수혁은 바루다가 이현종과 신현태 등의 조언에 기대 내린 판단을 신뢰하기로 했다.
사실 수혁이 인간관계에 있어 달인도 아닌지라 별다른 방법이 없기도 했다.
“저, 보호자분?”
결심이 선 수혁은 우선 보호자부터 불렀다.
보호자는 수혁이 온 이후 어느 정도 희망을 품었다가, 갑자기 아이가 다른 증세를 보이는 바람에 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숫제 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네? 네.”
“우선 오늘 제가 진료 본 내용 소아과 선생님과 상의하겠습니다. 내일 또 오겠습니다.”
“그냥 이렇게 간다고요?”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상의를 해 봐야 답이 더 나올 거 같고요.”
“아니…….”
게다가 지금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모른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 마음이 너무 왔다 갔다 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하는, 그것도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임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병원은 특히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도 하지 않던가.
“그럼…… 내일 또 오겠습니다. 혹 변동 상황 생기면 바로 오겠습니다. 그리고 여기 소아과 선생님하고 상의하겠습니다.”
수혁은 다소 사무적으로 대화를 정리하고 병동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시간을 더 끌어 봐야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은 없다는 판단하에서 벌인 일이었다.
만약 그것이 보호자에게라도 위로가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보호자의 마음이 극적으로 좋아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내과 의사인 수혁의 할 일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지, 옆에서 같이 있어 주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정리하죠. 생후 6개월 남아. 백신 접종 이후 발생하는 발열 패턴이 있고, 약에는 잘 듣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복통과 구토가 발생했지. 이 두 개와 발열이 연관이 없을 가능성은?’
[높죠.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렵네, 이거…….’
해서 좀 더 고민을 해 보았으나,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한창 낑낑대고 있으려니 어느새 내과 병동이었다.
몇몇 간호사들이 인사를 건네 왔다.
인사 속에는 수혁만 있는 게 아니라 안대훈 이름도 있었다.
수혁은 그제야 자기 옆에 대훈이 있음을 깨달았다.
‘아……. 얘 앞에서 뭐 모른 거 처음 아닌가?’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를까 깊이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우리 이수혁 선배님이 그 자리에서 답을 내지 못했을까! 뭐 이런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바루다의 분석 능력이 표정을 언어로 풀어내는 데까지 닿지는 못했지만, 수혁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이나 노골적이었다.
[이 사람 만족시키려고 진료 보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때론 의학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습니다.]
‘알지. 얘 실망하는 게 뭐 대수야.’
하지만 수혁은 굳이 위로에 나서거나 또는 변명에 나서진 않았다.
방금 바루다가 말한 것처럼 의학에서도 기다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또 필요한 일일 때가 있기에 그랬다.
괜히 마음 급해져 가지고 이거 해 보고 저거 해 보다가 괜히 환자가 더 나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잘못된 치료도, 검사도 환자에게는 독이 되는 법이었기에 그랬다.
“대훈아, 일단 우리 회진 돌고……. 아까 그 환자는 내일 보자.”
“네? 아……. 네……. 선배…….”
안대훈은 아직 그런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수혁을 그러한 기본 상식조차 뛰어넘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거나.
하여간 대훈으로서는 수혁의 명을 감히 거절할 수 없었기에 회진을 돌고 축 처진 어깨와 함께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 중간에 살짝 ‘내일은 반드시 진단하시길…….’ 하고 중얼거린 거 같았는데, 착각 같지는 않았다.
[데이터 돌려보니, 그렇게 말한 게 확실합니다.]
‘약간 무섭네…….’
[그래도 수혁의 몇 안 되는 아군 아닙니까? 잘해 주세요.]
‘나도 그러고 싶지. 일단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하는데 고맙잖아. 근데 어떻게 해야 잘해 주나?’
[그런 조언까지 저에게 의존하는 겁니까? 사람 사이의 일을?]
수혁의 말에 바루다가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경멸하는 표정을 지은 채였다.
예전에라면 조금 상처가 되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무슨 자극이건 간에 자주 반복되면 다 익숙해지는 법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뚱한 얼굴이 되어 질문을 반복했다.
‘나 많이 그러잖아.’
[그건 윗사람과의 사무적인 관계니까 유추가 어느 정도 가능한 거죠. 이건 거의 연애 감정 아닙니까?]
‘연애도 조언하잖아.’
[그냥 못할 거라고 예언하는 거죠. 그것과 조언은 많이 다릅니다, 수혁.]
‘이 새끼가 진짜.’
[수혁의 존재 가치는 연애에 있지 않고,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 제가 드릴 조언은, 일단 눈앞의 환자에 집중하라 입니다.]
‘와…….’
[환자 보라는 말에 화가 납니까? 수혁? 의사인데요?]
‘와…….’
수혁은 고개를 탈탈 내저으면서 왜 나는 인공지능에게 말로 이기지 못하는가에 관한 고민에 빠졌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바루다는 이 분야에 대해 딥러닝을 굴리고 있었으니까.
만약 바루다가 사람이었다면 고작 수혁을 이겨 먹기 위해 첨단 과학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좀 양심에 걸렸겠지만, 기본적으로 기계인 바루다는 그런 약점이 없었다.
‘일단…… 공부를 좀 해 보자. 이 비슷한 증상 일으킬 수 있는 게…….’
[교과서는 의미 없을 거 같습니다. 이미 소아과 관련한 것도 교과서 수준은 숙지했습니다.]
‘나도 알지. 논문을 봐야 되는데……. 뭘 봐야 되나?’
[불명열에 대한 소아과 케이스 리포트를 보죠. 저와 수혁의 능력이라면 어지간히 흔한 질환에 막힐 리가 없습니다.]
‘음, 오케이.’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두 인간과 기계가 참 교만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바루다는 자기 객관화가 꽤 되는 기기였다.
합리적인 판단이란 얘기였다.
해서 수혁은 방금 바루다가 말한 대로 케이스 리포트 위주로 들들 팠다.
보람이 있지는 않았다.
비슷한 케이스는 있어도 완전히 같은 케이스는 없었던 것.
때문에 다음 날 오전 회진을 마친 수혁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한번 환아를 찾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응애애애애.”
병동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어제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힘 빠진 울음소리가 더해졌다는 것 정도일까?
‘계속 아파하나 보네…….’
어떤 말로 보호자를 설득하고 또 아이를 진단하나, 하는 생각으로 처치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바루다가 말을 걸어왔다.
[다시 한번 신체 검진을 요청합니다.]
‘응? 왜?’
[어제와 달라진 점이 있을 거라 추정됩니다. 전체 검진을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