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1화 유전 질환이라고 해서 (2)
바루다의 말에 전공의를 돌아보니 과연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아이들을 살리러 왔는데, 죽어 가는 아이들도 보게 되니 당연한 일일 터였다.
더군다나 아직 유전질환은 현대 의학에서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니, 미지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알면서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만 했다.
게놈지도가 완성된 지 벌써 수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설계도의 결함을 고치는 법은 전혀 알지 못했다.
‘또…… 또 유전 질환이야?’
괴로워하는 아이와 그 아이를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보호자에게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게 벌써 몇 번인지 알지 못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진단을 못 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았다.
무슨 병인지 알면 뭐 하겠는가.
치료가 안 되는데.
진단이 아니라 차라리 선고를 내리는 느낌이었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병이니 체념하시오, 뭐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나도 너랑 같았어. 근데 그거 너무 가슴에 담아 두면……. 소아과 의사 못 한다.’
참다 못해 찾아간 교수가 해 준 말은 이랬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흘려보내야 다른 아이를 치료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가슴으로 납득하지는 못했더랬다.
“선생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병은 유전 질환이지만 아주 심각한 형태의 질환은 아니에요.”
“네?”
“보호자께는 제가 설명 드릴게요. 같이 가실래요?”
“아……. 네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이 병은 아직 잘 몰라서…… 일단 교수님께도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어두워진 얼굴의 전공의를 위로한 후, 보호자에게로 다가갔다.
그사이 전공의는 환아가 유전질환이며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교수에게 알렸다.
교수는 처음엔 뭔 개소린가 하다가도 검사 결과 및 보호자의 유전학적 특성을 듣고 나서는 무릎을 탁 쳤다.
“누가 왔다고?”
“내과 이수혁 선생님입니다.”
“아, 그 이수혁이지?”
“네.”
“음.”
그리곤 대체 누가 와서 이런 신통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는지 물었다.
이수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다시 한번 무릎을 내리쳤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옆에 있던 수혁에게도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지금 갈게. 나도 확인해야지. 내가 알기로 이 질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보고된 바가 없어. 어떻게 의심했을까? 증상이 아무리 특징적이라고 해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라면 모르는 게 자랑이다, 뭐 이런 얘기가 튀어나갔겠지만.
이 질환은 솔직히 교수도 의심하지 못했더랬다.
본적도 없을 뿐더러, 대한민국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단 근거가 나온 이상에는 그런 식으로 느슨한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국제화 시대, 국제화 시대 하더니만……. 진짜 이런 게 진단 되는구나.’
이거 이렇게 되면 의대 강의도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더 이상 지역을 구분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장 교수 자신만 하더라도 올해 예정된 학회만 두 개인데, 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서 열렸다.
거기서 추억과 지식만 들고 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뭔 병을 들고 올지도 염두에 둬야만 했다.
“그래, 뭐. 일단 갈게. 이수혁 선생한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줘.”
“아, 네. 교수님.”
해서 교수는 부리나케 전화를 끊고는 병실로 달려왔다.
수혁으로서는 설명이 그리 급한 것도 아니거니와, 딱히 얼굴도 모르는 교수와 척을 질 이유도 없어 기다렸다.
“아, 이수혁 선생.”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그리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불과 10분도 채 가기 전에 나타난 까닭이었다.
몇 안 되는 머리카락이 이리저리 휘날려 있는 것을 볼 때, 최선을 다해 달려온 것이 틀림 없었다.
[불명열로 여기고 있었다가 진단이 나왔으니 그럴 만하죠.]
‘그렇긴 하네. 나도 거의 우연히 진단한 거긴 하니까…….’
[제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아마 벌써 진단하는 건 불가능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 말인즉슨…….]
바루다의 자화자찬이 그리 고깝게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 녀석이 전반적인 신체 검진을 다시 해 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쓰잘데없어 보이는 질환들까지 죄다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진단은 어려웠을 테니까.
그 말은 곧 지금의 수혁에게조차 난이도가 있는 질환이었다는 뜻이었다.
그걸 이리도 빨리 했으니, 교수가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거 대체 어떻게 의심한 건가?”
해서 교수는 수혁을 보호자가 있는 처치실로 바로 들여보내는 대신 질문을 퍼부었다.
덕분에 수혁은 아까 전공의에게 했던 설명을 재차 해야만 했다.
조금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그냥 보니까……. 환자 상태가 좀 변한 거 같았다고?”
“네. 늘 환자 전신 상태부터 보거든요. 배가 좀 더 불렀나, 뭐 이런 것들요.”
“미세한 변화라 감지하기 어려웠을 텐데…….”
“늘 하다 보니까 늘더라고요, 그것도.”
거짓부렁으로 풀어 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제 머리에는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뭐 이럴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믿어 줄 리도 없거니와, 설령 믿는다 해도 큰일이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머리 뚜껑 열린 채 바루다를 적출당하면 어쩐단 말인가.
수혁으로서는 생존의 위협이 되는 일이었고, 바루다로서도 지금과 같은 퍼포먼스를 유지할 수 있을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어 위험했다.
[잘한다, 사기꾼.]
해서 바루다는 수혁을 응원했다.
적절한 어휘인가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튼, 응원에 힘입은 수혁은 그대로 몰아붙였다.
“이것 참……. 대단하네.”
“아뇨, 하하. 그냥 늘 환자를 생각하다 보니까요.”
“이건 나도 배워야 할 점인데……. 괜히 이수혁 선생이 유명한 게 아니네. 자네도 좀 배워. 아주 좋은 태도잖아?”
“네, 교수님. 명심하겠습니다.”
그 결과, 수혁은 인공지능 탑재했다고 주장하는 미친놈이 아니라 오직 환자만 생각하는 숭고한 의사가 되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부끄러운 언행이었지만.
뭐가 어찌 되었건 환자를 진단한 것은 수혁이지 않은가.
수혁은 상당히 편리한 사고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금세 뻔뻔해졌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가장 뛰어난 거짓말쟁이는 자기 자신부터 속인다더니…….]
‘뭐? 실토해? 머리 열어?’
[아닙니다. 아닙니다, 수혁.]
‘그럼 조용히 하고 있어.’
[네.]
게다가 이 점에 대해서는 바루다도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수혁의 머리에 연결된 지금에 이르러서는 환경이 변하게 되면 망가질 확률이 99%라 판단하고 있어서였다.
“아무튼, 그럼 가지.”
“설명은 교수님께서 하실 건가요?”
“아니, 아냐. 이수혁 선생이 해 줘.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질환은 학회에서 스쳐 지나가면서 본 게 다야. 외국 학회라서 기억에 남은 것도 별로 없고.”
“네, 교수님. 그럼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해서 수혁은 아까의 스탠스를 그대로 유지한 채 처치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어.”
보호자는 즉시 분위기가 변했다는 것을 감지했다.
애초에 교수까지 우르르 몰려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아직도 모르겠다는 말을 할 거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수혁의 얼굴이 너무도 당당하지 않은가
아까 알았으니 검사를 내니 어쩌니 할 때보다도 더했다.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검사 결과 나와서요.”
“네네. 어떤…… 어떻게…….”
“아이는 일단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이란 병을 앓고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네? 무슨 병이요?”
의사에게도 생소한 병 아닌가.
보호자에게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되묻는 보호자를 향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면역 글로불린 D 증후군이요.”
“그게 무슨…….”
“메발로네이트 카이네이즈라는 효소가 결핍되는…… 일종의 유전 질환입니다.”
“유전…… 유전이요?”
“네.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병입니다.”
“아.”
보호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아이가 이제 생후 6개월이지 않은가.
얼마 전까지는 산모였다는 뜻이고, 산모일 당시 지겹도록 듣는 게 바로 유전 질환, 즉 선천성 질환에 대한 주의사항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을 꼽자면 다운 증후군을 들 수 있을 터였다.
무의식적으로 유전 질환 하면 그것부터 떠올리게 된다는 뜻이었다.
“치료는 불가하지만, 관리는 가능한 병입니다.”
“아…….”
그래서 그런지 보호자는 수혁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어찌나 낙심한 표정을 짓는지,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남편조차 눈물을 글썽거리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수혁은 재빨리 보호자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 이 병은 관리가 가능한 병이에요. 제대로 병원만 다니면 큰 이상 없이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곤 최대한 또박또박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제야 보호자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제대로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마도 결정적이었을 터였다.
“네? 그게…… 그게 정말이에요?”
“네.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드물지만, 외국에서는 그래도 사례가 좀 있는 질환입니다. 많은 임상 시험이 있었어요. 그 결과 부작용이 거의 없는 치료법들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아이 같은 경우에는…….”
수혁은 일부러 아이를 돌아보았다.
아까 수혁이 진단명을 떠올리자마자 약을, 그러니까 파라세타몰이라는 흔히 쓰는 약을 처방한 덕인지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기 발을 쥐고 놀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복통에 울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그런 적이 없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우선 가벼운 약으로 증상을 조절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발열이 지나치게 자주 반복이 된다면……. 그때는 약을 바꿔야 하는데, 그 약도 그리 위험한 약은 아닙니다.”
“아…….”
“다만 백신과 같이 아이의 몸에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는 처치를 할 때는 무조건 여기 교수님과 상의가 필요합니다. 작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건 어려울 거예요.”
“그, 그래야죠. 그래야죠…….”
진단명이 나오고 치료법도 나온 상황이었다.
게다가 예후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보호자의 얼굴이 풀어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모든 의사에게 있어 진료의 이유였고 또 보람이었다.
‘와……. 이수혁 선생님은 진짜 대단하구나…….’
또 하나의 젊은 레지던트가 감화되었다.
안대훈은 그런 낌새를 눈치채고는 늘 품고 다니던 서류 하나를 슥 하고 건넸다.
이수혁 팬클럽 가입서일까 싶겠지만, 그게 아니라 가입을 위해 알아야 하는 필수 사항이 적힌 종이였다.
일종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었는데, 레지던트는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눈여겨 읽어 보았다.
“고맙네, 오늘 신세를 졌어.”
대훈이 감히 교수에게까지 종이를 건넬 생각은 못 했기에, 교수는 별다른 방해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는 그에게 수혁 또한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아냐, 아냐. 이거야 원……. 이기자 교수님이 말할 때도 그렇고…… 사실 발표 때도 그냥 똑똑한가 보다 했는데……. 소아과에서도 나보다 나아. 통합진료센터 말야, 나는 절대 찬성이야. 그렇게 전해 줘.”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입김 닿는 교수들한테도 말해 둘게. 어차피 일이 진행은 되겠지만……. 어찌 되었건 교수들 지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