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김문재 (2)
“어때 보여?”
김문재 교수는 절박한 얼굴을 하고 수혁을 돌아보았다.
대훈이나 수혁에게도 낯선 모습이었지만, 병동 간호사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웬일이래?’
‘맨날 성질만 내던 양반이…….’
성실한 의사란 평가는 있었더랬다.
하여간 회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전 오후 각각 2시간 가까이 도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태화 의료원처럼 해야 할 일이 진료에 그치지 않고, 연구나 교육에도 힘써야 하는 병원의 교수라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좋은 의사냐고 한다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저럴 수 있어. 저 교수님…… 의외로 한 번도 병원 봉사 빠진 적이 없거든.’
그때 누군가 다른 의견을 냈다.
어떤 미친놈인가 했더니, 시니어 간호사였다.
수간호사 바로 아래이면서 동시에 현장에서는 제일 높은 사람이란 얘기였다.
수군거림은 바로 가라앉았다.
어찌 보면 의사들보다도 더 위아래가 확실한 직군이 간호사 아니던가.
이쯤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진짜요?’
‘어떤데요?’
게다가 지금은 너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 참이었다.
별 결론 없을 것이 뻔한 얘기를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것보다는 선배의 묵직한 한 방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이나 기대되었다.
‘말한 대로야. 병동에서 지은 죄를 갚으려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봉사는 진짜 열심히 한다니까. 아마 방금 말한 목사님도 누군지 알 거 같아.’
‘헐…….’
‘저 교수님이 그런 면이 있다니…….’
김문재 교수와 접점이 제일 많은 병동 간호사들조차 몰랐던 면 아닌가.
대훈이나 수혁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지경이었다.
‘뭐지? 진짜 걱정하는 건가?’
[분석 결과 진심입니다. 이상하군요. 제 성능이 떨어진 건가?]
‘이상하잖아? 이 사람 진짜 악마인데.’
[지킬과 하이드 뭐 이런 것 아닐까요? 그나마 수혁의 기억 속에 있던 문학 중 제일 쓸 만했던 걸 뽑아 봤습니다.]
‘안 지워서 고맙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냐. 이거 뭐냐.’
[모르겠는데요.]
시간만 있다면 이러쿵저러쿵 지금 김문재가 보이는 모습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김문재가 가리킨 아이의 사진 때문이었다.
“이마 뼈가 엄청나게 돌출되어 있네요. 안장코도 있고……. 이거 머리 둘레는 어떤가요?”
“정상 범위를 넘어. 확실히 둘레가 넓어.”
“음.”
반드시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외형의 변화를 동반하는 유전적 이상인 경우엔 아무래도 좀 더 심각한 형태의 질환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머리 둘레와 관련한 변화는 더더욱 그랬다.
수혁뿐 아니라 대훈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둘 다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김문재 교수는 그런 둘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수두증이 감별이 안 되기 때문에 MRI, CT 촬영 처방 넣었어. 아, 그것 때문에 입원이 늦어지는 모양인데……. 어디 보자.”
그리곤 아까 외래에서 자신이 내린 처방을 확인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확인’이라는 글자만 떠 있을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태화 의료원같이 커다란 병원에서 방금 낸 처방이 실행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응급용으로 마련된 것을 이용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환아는 그런 판단을 내리기엔 조금 애매했다.
유전자 이상으로 질환은 어떻게 봐도 만성 아닌가.
“그럼 일단 기록을 보지.”
“네.”
해서 김문재 교수는 굳이 CT실이나 MRI실에 연락하는 대신 기록으로 창을 옮겨 갔다.
빼곡하게 적어 둔 기록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이 환자 하나 보는 데만도 거의 30~40분은 족히 걸렸을 거 같았다.
이제 보니 남을 갈구는 데에만 정성을 쏟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수혁과 바루다는 김문재에 대한 평가를 조금씩 수정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보면 결막염이 있어. 내가 볼 때도 있었는데……. 목사님 말씀 들어 보니, 베이비 박스에 담긴 후로 줄곧 그랬더라고.”
“아, 목사님이 의사신가요?”
“아니, 그건…….”
김문재 교수는 습관처럼 수혁에게 윽박지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이제 이놈에게 최선을 다해 진단해 달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화를 내서야 되겠는가.
‘습관이란게 참 무서운 거로군.’
김문재는 이번 기회에 욱하는 성질을 조금 고쳐 볼까 하면서 말을 이었다.
“거기 봉사하시는 분들이 계셔. 매일 퇴근하고 집 가기 전에 들러서 애들 회진 돌고 가시는 거지. 훌륭한 분들이야.”
“아……. 거기서 보인 거군요.”
“그래, 그 덕에 여기도 빨리 왔어. 이틀인가, 만일걸.”
“그건 정말 잘된 일이네요.”
봉사자들이 1차 진료 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아주 빨리 해 준 셈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동네 의원이라고 하면 그저 감기나 봐주는 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매일 한두 번쯤은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심각한 질환의 징후를 잡아내 상급 기관으로 보내 주는 일도 하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아마도 개원의이거나 2차 병원 봉직의들일 텐데, 아주 훌륭한 일을 해 준 셈이었다.
[그게 의미가 있으려면 진단을 빨리 내려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아니지, 그게 의미가 있는 일인지 어떤지도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초 치지 말고.’
[제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긴 하지.’
물론 그 일이 의미가 있기는 어려울 터였다.
일단 진단이 제때 될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유전 질환이라는 건 유전자만큼이나 많아서, 어지간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이는 진단이 어려웠다.
게다가 진단이 된다고 해도 치료가 될지는 또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어떤 유전 질환은 진단명만 달랑 알아 놓고는 손 빨며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미 외형에서 변화가 있었으니, 이 환자에서도 그럴 가능성이 대단히 컸다.
“그리고 여기 봐. 이건 아이 다리를 정면에서 찍은 사진이야.”
“아, 슬개골이…….”
“조금 크지? 소아과에도 협진 의뢰 넣었는데, 거기서 봤을 때 큰 이상으로 보이진 않지만 정상은 아니래.”
“흐음…….”
“지금 내가 외래에서 파악한 건 이 정도가 다야. 아이 상태에 비하면 단서가 좀 모자라……. 아, 온 거 같네.”
김문재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다가,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았다.
인기척이 일었기 때문인데 당연하게도 수혁이 더 먼저 감지한 참이었다.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어서였다.
‘저 아기인가?’
[옆에 있는 사람이 보호자군요.]
‘목사님이겠지? 아는 건 지금 전해 들은 게 전부일 거야.’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큰 병원에 있다 보면 시설에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주기적으로 볼 수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정보를 얻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었다.
특히 환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그랬다.
시설 관계자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고 해도, 한 사람당 맡은 인원이 너무 많지 않은가.
의사소통마저 안 되는 상태에서 왜 더 파악하지 않았냐고 하는 것은 무리한 지적이었다.
“가서 볼까요?”
“그래, 그러자고 온 거니까.”
“네, 교수님.”
해서 수혁은 보호자에 대한 기대는 접은 채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더 명확하게 아이의 특징을 잡아낼 수 있었다.
확실히 아이의 이마는 과도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안장코가 있었으며 동시에 둘레가 넓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각해 보이진 않았다.
사진은 명암 때문인지 도드라져 보였는데, 실제로 보니 그냥 조금 특이하네 싶을 뿐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뭐.’
[너무 희망적인 분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도 변화가 진행 중이거나, 그 변화가 경비한 수준에 그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 내 생각도 그래. 정상과 비정상에 약간 걸친 느낌이 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수혁은 아이를 쭉 훑었다.
원래 교수를 앞세운 주제에 이런 짓을 하면 무례한 일이었지만.
또 김문재는 관용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그냥 두고 있었다.
‘뭐지?’
애초에 자신은 봐도 모르겠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혁에게 맡겨서였는데.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안대훈과 담당 간호사가 의아해하고만 있었다.
하여간 수혁은 별 방해 없이 아이를 살필 수 있었다.
‘청진은 크게 이상이 있진 않은데.’
[네, 심장도 괜찮습니다. 잡음(murmur)도 없습니다.]
‘이건 다행이네.’
[그렇죠.]
머리 쪽에 이상이 있어 보이는 가운데 심장에도 이상이 있다면 어떻겠는가.
치명적이라는 말로밖에는 표현이 안될 터였다.
통계적으로도 그랬다.
머리와 심장 양측에 이상이 있는 경우, 환아의 예후는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 환자는 다행히 심장은 청진에서 문제가 보일 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수혁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아래로 향할 수 있었다.
‘발진…….’
[확실히 벌레 물림은 아닙니다.]
‘그래, 이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거야. 음…….’
[왜 그러십니까?]
‘아이가 아무리 움직임이 힘겹다 해도, 가려우면 이쪽으로 손이 가기는 가야 되거든.’
[아.]
수혁의 말처럼 아이의 손은 허공에 대고 허우적대고 있을 뿐, 전혀 발진 쪽을 향하고 있진 않았다.
어떻다고 말해 준 것은 아니니 단언하기는 어려웠지만.
가려움과 같은 증상이 없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단서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바루다는 얼른 그것을 데이터화해 환자의 문제 목록에 집어넣었다.
이제 환자에 대해 분석할 때면 언제고 저 문장이 포함될 터였다.
‘발진은 다리에도 있어. 거의 전신이라고 봐야겠네. 얼굴에는 거의 없지만.’
[네, 범위도 기록하겠습니다.]
‘좋아. 음……. 슬개골도 확실히 크긴 큰데…… 애매하지?’
[네, 이마의 돌출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음.’
[음.]
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은 수혁은 바루다와 거의 동시에 신음을 내뱉었다.
확실히 저번에 본 아이에 비하면 특이 소견이 정말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더 안개 같기만 했다.
아무리 문제 목록을 되뇌어 봐도 모르겠다, 이 말이었다.
[수혁.]
‘왜.’
[어쩌면 이 질환은 우리가 모르는 질환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 스쳐 지나가지도 못했을까?’
[자만하지 마십시오. 수혁은 바루다의 지침에 따라 흔한 질환부터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놓치는 질환이 없도록 중간중간 케이스 리포트도 공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일 뿐입니다. 유전 질환은 현대 의학에서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곳이니, 아예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질환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어쩌면 이렇게 바른말을 이렇게 아프게 할 수 있을까.
수혁은 바루다가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잘잘못을 떠나 한 대 후려쳤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지 않은가.
현대 의학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었고, 거의 매일 새로운 질환과 증후군이 나오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오래 살기도 하거니와, 의료 접근성이 전 세계적으로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때, 감이 오나?”
하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인정하고 있을 때쯤 김문재 교수가 말을 걸어왔다.
목소리가 어쩐지 좀 평온했기에 수혁은 설마 이 양반은 아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와, 이렇게 되면 좀 부끄러운데.]
‘하씨.’
내과 의사란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해서 수혁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뇨,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렇담 실망인데.”
“죄송합니다.”
“아니, 나도 몰라.”
“네?”
“이 환자, 같이 진단해 보자고. 불쌍하잖아,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