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화 미지의 영역 (1)
의사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덕목은 뭐가 있을까.
일단 실력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할 터였다.
제아무리 환자에게 편하게 잘 대해 준다고 해 봐야 실력이 없다면 고치진 못할 거 아닌가.
웃으면서 계속 아픈 거보다는, 조금 찡그리더라도 다 낫는 편이 환자 입장에서는 압도적으로 나을 터였다.
[김문재 교수가 소문이 이런데도 환자들이 계속 찾아오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었군요.]
‘그러게.’
하지만 실력만 있다고 좋은 의사란 평을 들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어차피 대한민국처럼 제대로 된 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은 곳에선, 어지간한 대학 병원 교수급에서 실력 차이가 그렇게 심하게 나기 어려워서였다.
물론 이현종이나 이수혁처럼 이상하리만치 뛰어난 사람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길 바랄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찌 되었건 본인은 아닐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시네.’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봐야 했다.
일단 성실해야 하는 건 기본이었다.
환자는 정해진 시간에만 아파하지도 않고, 새로운 증상도 예기치 못할 때 나타나기 마련이었으며 동시에 상태가 나빠지는 시기 또한 그랬다.
때문에 잠이 많은 사람은 대개 좋은 의사가 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요. 지금도 보십쇼. 논문 찾아본다고 하고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다행히 대부분의 의사는 성실했다.
학창시절 그야말로 성실히 공부하지 않고서는 의대에 진학하기 어려워서였다.
또 의대에 진학한 후에도 대강대강 공부해서는 유급을 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어려웠다.
그러자면 또 하나의 덕목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감이었다.
동정이나 연민과는 달랐다.
환자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의사가 자신의 실력을 쌓고 또 그 실력을 최대한 성실히 발휘할 수 있게 하여 주는 원동력이었다.
[수혁이 가지지 못한 덕목을 의외로 김문재 교수가 가지고 있군요.]
‘아니, 나는 그렇게 말하면 너무…….’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어떤 환자의 고통에 집중했던 적이 있었나요?]
‘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혁은 딱히 그랬던 적이 없었던 거 같기는 했다.
이럴 수가.
환자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라니?
수혁이 잠시 예상치 못했던 자아 성찰과 더불어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려니, 대훈이 말을 걸어왔다.
수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말도 꺼내진 않았으리라.
“오늘 김문재 교수님이 진짜 이상하네요.”
“응? 아…….”
“연기하시는 건가? 악마가 이럴 리가 없는데.”
연기라.
수혁은 일말의 가능성을 품고 바루다에게 물었다.
바루다는 콧방귀를 뀌었다.
[분석 결과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거의 저기 있는 보호자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곤 지금도 환아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보호자, 즉 목사님을 가리켰다.
김문재 교수의 배려로 비어 있던 2인실에 입원한 참이었다.
환아와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차마 해가 될까 두려워 아이의 손조차 잡아 주지 못하고 서성이는 보호자 뒤로 햇빛이 들어왔다.
비록 종교가 없는 수혁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떤 성스러움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저…… 사람이랑 김문재 교수가 같다고?’
[제 분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사심은 들어가잖아?’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배제할 수 있습니다.]
어쩐지 지나치게 바루다에게 유리하게 세팅 된 대화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애초에 인간인 수혁은 인공지능의 바루다의 사고방식을 따라갈 수 없었다.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어찌 보면 중요할수도 있겠지만.
수혁은 애써 무시하고 싶었다.
대훈이야 언제고 수혁의 말이라면 덥석 고개부터 끄덕이고 보는 위인 아니던가.
게다가 지금은 김문재 교수라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마당이었다.
어쩐 일로 회진이 무난하게, 어쩌면 너무 부드럽게 끝나긴 했지만.
또 그러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네네. 그렇죠, 선배.”
아마 수혁이 없는 자리였다면 아주 높은 확률로 박살이 났을 터였다.
“하여간……. 나도 솔직히 저 아이는 모르겠어. 좀 알아봐야겠는데. 너도 최대한 논문 서치 좀 해 봐.”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대훈은 무언가를 답하는 데 있어 딱히 딜레이라는 게 없는 인간이었다.
대부분의 레지던트가 그렇게 하긴 하지만.
이 녀석은 대답한 바를 대부분 지킨다는 점에서 훌륭했다.
[찾아보긴 할 겁니다. 그럼 그거 우리가 훑어보면 도움이 되겠죠.]
‘오케이. 키워드나 좀 알려 줄까.’
[네. 환자의 문제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마 돌출, 머리둘레 확장, 안장코, 발진, 슬개골 비대. 반복되는 또는 지속되는 결막염입니다.]
‘좋아.’
하지만 혼자 힘으로 이러한 환자에 대한 자료를 찾는 건 역부족일 터였다.
뭘 찾아보는 것도 사실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 해야 효율적인 법 아니던가.
해서 수혁은 대훈에게 방금 바루다가 언급한 것을 고대로 일러 주었다.
그리 긴 단어들도 아니고, 많은 단어들도 아니었지만.
대훈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즉시 메모하고는 병동 컴퓨터 하나를 점유했다.
수혁은 잠시 그런 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른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로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하진 않았다.
‘문제 목록은 그렇고……. 환아에 대한 히스토리는…….’
[아까 물어보니 보호자도 별로 아는 게 없더군요.]
‘응, 그렇더라. 하긴 아이 본 지 이제 며칠이나 됐다고 파악이 되겠어. 의료인도 아니고……. 또 얘기 들어 보니까 한두 명이 아닌 거 같던데?’
[시설이 그렇죠.]
바루다는 그저 자신이 기록해 둔 데이터를 기반해 대답했다.
수혁 또한 해당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줄지어 쓰여 있었다.
‘대부분 예후 안 좋고, 히스토리 불명확하고, 기저 질환도 잘 모르거나 아니면 관리되지 못한 상태라…….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환아야 아직 나이가 어리니 해당 사항이 좀 적겠지만,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게 장벽일세. 부모가 누군지……. 또…….’
유전 질환에서 부모가 누군지 확인하는 것은 꽤 중요한 과정이었다.
많은 유전 질환이 부모의 유전자적 특성과 관계없는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걸 확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
적어도 환아가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우선 지금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들부터 합시다.]
‘아, 알았어.’
바루다의 말이 일견 냉정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이었다.
동시에 지금 필요한 말이기도 했다.
유전 질환이라는 게 보통 하루 이틀 새에 급격하게 더 나빠질 가능성이 적다고는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 이미 치료제가 나와서 진행을 틀어막을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의학은 깊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고, 또 발전하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 검색하니까……. 별로 뜨는 질환이 없네.’
[문제 목록이라고 정리해 놔서 그렇지 사실 너무 뜬금없는 증상들이긴 합니다. 이걸 카테고리화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카테고리라. 그래, 그게 좋겠어.’
수혁은 화면에 뜬 빈약하기 짝이 없는 검색 결과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쓸만한 결과가 단 하나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검색 서비스가 비약적인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문 지식의 영역에서까지 그렇진 못하지 않은가.
사용자가 전문가여야 유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연관 있어 보이는 건 이마 돌출, 슬개골 비대, 안장코야. 이마뼈야 원래 연골이 아니긴 한데……. 아이 나이를 고려하면 아직 그럴 수 있지.’
[네, 저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연골 구조 이상…… 특히 관절부나 코처럼 다른 구조와 연결되는 곳에 문제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른 관절들은 괜찮나?’
[다시 한번 문진할 것을 요청합니다.]
요약하면 아까 볼 때는 그러한 것까지 눈여겨보진 못했다는 것이었다.
바루다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바루다는 어디까지나 수혁의 감각기를 통해 들어온 정보만 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수혁이 처음부터 스쳐 지나가듯 봐 버렸다면 바루다도 별수 없었을 터였다.
‘아니, 일단 다른 문제 목록도 카테고리화 해 보자.’
[아, 네. 그게 좋겠습니다. 한꺼번에 보는 것이 좋죠.]
수혁의 말에 바루다도 동의했다.
아이는 아직 너무 작지 않은가.
자꾸 건드리다가 오히려 그것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도 있었다.
실제 여러 사례에서 치료에 나섰던 의료진들 때문에 일을 그르쳤다는 보고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 어차피 촬영 가네. 잘됐다. 단서가 조금 더 나올 수도 있겠어.’
마침 환아가 누운 침대가 이송 요원의 손에 이끌려 이동하고 있었다.
김문재 교수가 시켰는지, 아니면 주치의인 안대훈이 시켰는지 몰라도 인턴 한 명도 동반한 채였다.
돌발 상황 발생 시 인턴이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저게 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지만.
저렇게 의사 면허증이 있는 사람이 따라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은 됐다.
일종의 토템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그랬다.
비슷한 예를 찾아보자면 사격장에 있는 군의관을 들 수 있었다.
사실 앰뷸런스 안에 탄 군의관이 총상은 고사하고 그 비슷한 상처 한 번 본 적 없는 이비인후과나 정신과 또는 피부과 전문의라 해도 안심하고 쏘지 않는가.
[결막염은 머리둘레 자체와 연관성이 있을까요?]
‘글쎄……. 이게 기전이 명확하지가 않잖아.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으니….’
[우선 머리 둘레는 정말 수두증인지 여부를 감별해야 하겠습니다. 이는 CT 또는 MRI를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눈도 문제야. 저게 정말 그냥 결막염인지 뭔지 알게 뭐야. 포도막염 같은 게 동반되어 있다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겠군요.]
응급실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안과를 콜 했을 때 욕 들어 먹지 않는 상황을 쉬이 상상하기 어려울 터였다.
아주 다양한 논리로 이건 응급이 아님을 설명하면서 갈구기 마련이었다.
어디서 단체로 교육을 받나 싶을 지경이었는데, 심지어 안구가 터졌어도 이미 터졌으니 응급은 아니란 말까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포도막염이 의심된다는 말을 하면 ‘야, 진짜야?’라는 말과 함께, 또는 뒤에 나지막한 욕설을 붙이며 내려오거나 올려보내기 마련이었다.
뭐가 되었건 시력과 연관이 있는 질환이었기에 그랬다.
‘안과 쪽에 확인을 요청해야겠어. 지금 몇 시지?’
[7시가 넘었습니다. 외래는 문 닫은 지 오래입니다.]
‘설비는 쓸 수 있겠지.’
[그건 그렇죠.]
‘내가 전화하면……. 안 해 줄까?’
[높은 확률로 해 줄 겁니다.]
교수들이야 밑에서 치받고 올라오는 수혁이 그저 고까울 수도 있겠지만.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조금 달랐다.
일단 과를 막론하고 수혁의 도움 한번 안 받아 봤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지 않은가.
그저 원장 아들이라는 후광으로 치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이 말이었다.
대리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 줘야지. 단서가 너무 부족해. 뭐라도 해 봐야 해.’
[네, 간만에 아예 모르겠는 케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