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미지의 영역 (3)
수혁은 바루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일으켰다.
남들이 도와줄 때보다야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가능은 했다.
“끙.”
물론 신음이 흘러나오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바루다는 그의 유일한 입출력자, 다시 말하면 유일한 숙주의 수혁의 건강이 갑자기 염려되었다.
세상에 아직 서른도 안 된 양반이 벌써 고작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로 끙 소리가 나올 줄이야.
이러다가 사십도 되기 전에 비명횡사라도 하게 되면 바루다의 지금까지의 고생은 다 허사가 될 터였다.
인공지능이니만큼 수명에 미련이 남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정상의 자리에 오른다면, 그 자리에서 더 많은 활약을 오래도록 하고픈 마음은 있었다.
[멀쩡한 다리라도 헬스를 시켜야 되나.]
‘나도 방금 그 생각 들긴 했다.’
[다행이군요, 공부 외에 의견이 일치하다니. 아무튼, 갑시다.]
‘오케이. 일단 뇌척수액 검사를 좀 해 보자고.’
수혁은 대강 가우닝을 마치고 환자가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그러자 여태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보호자, 즉 목사님이 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가운 표정을 지으면서였는데 아무래도 수혁에 대해 들은 바가 있거나, TV에서라도 본 적이 있는 듯했다.
“아, 안녕하세요. 이수혁…… 선생님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보호자분.”
“잘 좀 봐주십시오. 아무리 저희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성인이 되고 나서 사회에 적응하려면…… 지금 이대로는 어렵습니다. 가뜩이나…….”
“네,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느 사회에서나 부모가 없다는 건 강력한 페널티 아니던가.
그 누구보다 보육원에서 자란 수혁이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수혁은 운이 좋아 공부 머리가 있었다고 하나, 동기들을 떠올려 보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겉도는 이들이 많았다.
예전엔 그래도 연락은 닿았었는데.
지금은 보육원장도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했다.
[옛 기억에 너무 취하지 마세요. 머리는 늘 차가워야 합니다.]
‘알았어.’
바루다는 수혁이 환자와 지나치게 동일시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이런 식으로 몰입하는 것을 역전이라고 하는데, 치료에 당연히 영향을 주었다.
긍정적인 효과도 있기야 하겠지만 바루다는 지금까지 쌓아온 통계에 변수가 생기기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
‘휴, 좀 안정됐다.’
[아무래도 고아다 보니, 더 몰입이 되는가 보군요.]
‘그렇지. 게다가…….’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환아를 진심으로 위하는 표정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걱정을 품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어린 시절 보던 보육원장과 지나치게 닮아 보였다.
사랑과 애정을 주지만,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본인은 더없이 화목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어쩐지 고아들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어 인생 2막을 보육원에서 보내기로 했다던 원장의 말을 수혁은 차마 잊지 못했다.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원생이 많았으니까. 그래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일단 노력은 했어, 역부족이었어서 그렇지. 하여간 여기에 집중하자.’
수혁은 애써 그 생각을 떨쳐 낸 후, 같이 들어온 담당 간호사 그리고 대훈과 함께 아이에게로 바짝 다가갔다.
대훈이나 수혁이야 익숙지가 않아 어리버리를 탔지만, 담당 간호사는 그렇지 않았다.
김문재 교수가 직접 소아과 병동에 전화해서 경력 있는 간호사 한 명을 빌려온 마당이어서 그랬다.
“제가 이렇게 잡을게요. 그럼 거기 못 움직여요.”
“오…….”
“근데 애가 확실히 힘이 없네요. 아직 임프레션은 없는 거죠?”
“아, 네. 아직은…… 그냥 유전 질환의 한 종류일 거라고만 의심하고 있어요.”
“흐음……. 저도 이런 케이스는 처음인데…….”
간호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아이를 완벽하게 포지셔닝 했다.
말하자면 척수 천자를 위해 새우등 모양을 한 채 옆으로 뉘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또래에 비해 힘이 없다고 해도, 발버둥은 칠 수 있을 텐데.
신기하게 간호사의 손아귀에 잡힌 아이는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감탄만 하고 있지 말고, 빨리해요. 이러다 움직이기 시작하면 재워야 해요. 가뜩이나 애 상태도 별론데…….”
“아, 네. 죄송합니다.”
간호사는 소아과 병동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 만큼 강단이 있었다.
아니, 대가 세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의 척추뼈 사이에 손톱으로 자국을 내었다.
[아니, 조금 더……. 한 1mm 정도 위.]
‘아이 입장에서지?’
[당연하죠. 의학 상식이지 그건. 왜 이래요, 무섭게.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요?]
‘확인하는 거야, 확인. 애잖아, 어른이 아니라.’
[긴장했나? 아, 그렇네. 심장 박동수가 좀 상승했군요. 교감신경 톤이…… 지나치게 올라간 건 아니니까 그냥 두겠습니다. 괜찮죠?]
‘어? 어. 손 떨 정도는 아냐. 이만하면 그냥 적당하지.’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손톱자국을 조금 변경한 후, 대훈의 보조를 받아 가며 장갑을 끼웠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을뿐더러 꽤 빠른 편이었기에 소아과 간호사에게도 인상 깊었다.
‘근데 잘하려나? 생각해 보니까 우리 과 레지던트 쌤한테 부탁하는 게 맞을 거 같은데.’
하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온 참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은 내과 레지던트이지 않은가.
물론 소문이 워낙에 무성한 사람이기는 했다.
소아과에서조차 어려운 환자 맞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근데 술기는 많이 해 본 사람이 장땡인데.’
사람들이야 간호사라고 하면 그냥 다 같은 간호사인 줄 알겠지만.
소아과 병동 간호사로서 들을 때마다 참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아마 이 병원 전체를 틀어도, 신생아 혈관 잡을 수 있거나 피 검사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 터였다.
설마하니 타고난 재능의 차이겠는가.
그냥 경험의 차이였다.
“좋아.”
그사이 수혁은 장갑을 낀 후, 방금 손톱자국 낸 곳에 소독까지 마쳤다.
베타딘액이라는 게 색이 좀 있어서, 막상 소독하고 나면 내가 아까 어디에 표시를 했더라 헷갈리기도 했지만.
수혁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었다.
[지금 노랗게 표시되는 곳 있죠? 거기가 바로 아까 표시한 부위입니다.]
‘오케이.’
바루다가 마치 인공지능 탑재한 내시경 카메라처럼 시각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이 짓을 했을 땐 진짜 무서웠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서운할 지경이었다.
어찌나 편한지 표시를 안 해 줄 때와 비교하면 술기 자체가 다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폭.
수혁은 망설임 없이 바늘을 찔렀다.
어찌나 빨리 찔렀던지, 경험 많은 간호사조차 찔끔했을 지경이었다.
이러다 잘못 찔렀기라도 하면 애가 진짜 발버둥 칠 텐데 큰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바늘을 통해 액이 톡 하고 흘러나오자마자, 자신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오.”
“오.”
간호사와 대훈은 그저 액이 나오고 있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반면 이건 그냥 당연한 거라고 여기고 있던 수혁은 더욱 심층적인 분석에 나선 마당이었다.
‘색이 그냥 투명하네?’
[세균성 감염이었다면 이보단 훨씬 진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데이터랑 비교해 보면 어떤 거 같아?’
[무균성 뇌수막염과 가장 흡사합니다만, 아직 단정 지을 만큼 많은 데이터가 쌓인 건 아닙니다.]
‘세균성은 아니라, 이 말인가?’
[네. 세균성 감염은 배제할 수 있습니다.]
수혁이 봐도 뇌척수액 색은 거의 정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압력도 재어 보니 정상에서 조금 올라간 정도였다.
유두 부종이 관찰되긴 했지만 아주 심하지 않았던 것과 일치하는 소견이었다.
나머지는 제아무리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이라 해도 분석은 불가했다.
만약 데이터를 맛까지 봐 가며 쌓는다면 적어도 당 농도 정도까지는 어떻게 가능하겠지만.
수혁도 바루다도 거기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좋아, 이만하면 검사 나갈 만하지. 이제 뽑을 게. 네가 눌러.”
“아, 네. 선생님.”
해서 수혁은 검체 채취가 끝나자마자 바늘부터 뽑았다.
대훈은 그 부위를 멸균 거즈로 꾹 누르다가, 이내 테가덤을 붙여 균이 들어갈 수 없도록 조치했다.
“와, 선생님. 손 되게 좋으시네요?”
그제야 긴장이 풀린 간호사가 말을 걸어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인 듯했다.
난다 긴다 하는 소아과 레지던트들보다도 더 잘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혁은 겸양의 뜻으로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아뇨, 아뇨. 그냥 뭐…….”
“이렇게 잘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진짜.”
“하하. 소아과를 갈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가면 다 받아 줄 텐데.”
“하하, 그랬다간 원장님한테 죽을걸요.”
“맞네.”
그리곤 잠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 오래 시간을 끌진 않았다.
보호자가 답을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물론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기에, 보호자의 얼굴은 많이 풀려 있었다.
설마 사고 치고 이렇게 웃지는 않을 거 아닌가.
“보호자분. 검사는 잘됐습니다. 지금 작은 모래주머니로 눌러 놨는데, 이따가 시간 되면 제거할 거예요. 결과 나오면 바로 말씀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보호자의 인사를 뒤로하고 검체를 들고나와 검사실로 보냈다.
지금 당장 검사가 필요하다는 뜻의 ASAP(As soon as possible)을 붙여서였다.
보람이 있었는지, 검사 결과가 그 날이 채 가기 전에 보고되었다.
병원 직원을 쥐어 짜내서 가능한 일이었는데.
아선과 칠성이 먼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어쩌겠는가.
태화로서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나 환자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좋아……. 무균성 뇌수막염이 맞아.’
뇌척수액 내 당 수치는 정상이었고, 백혈구 수치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전형적인 무균성 뇌수막염이라는 뜻이었다.
이것도 좋은 건 아니었지만 세균성보다는 나았다.
‘그럼 이제 새롭게 추가되는 문제 목록이 뭐가 있지.’
[전방 포도막염과 무균성 뇌수막염입니다. 만약 후방이 괜찮은 게 우연이 아니라, 질환의 특성이라면 의미 있는 문제 목록이 될 겁니다.]
‘그럼 그거 조합해서 검색해 보자.’
[네. 근데…… 이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노가다 해야지. 너 덕에 나 이제 이런 거 잘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개소리를 끝으로 끊임없이 키보드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운동이고 나발이고 다 없던 일로 돌아간 셈인데, 바루다의 사고 회로 또한 이쪽으로 완전히 몰려 있었기에 별다른 말이 나오진 않았다.
“하…….”
미친 사람처럼 키보드를 두들기던 수혁이 손을 멈춘 건 새벽 3시 경이었다.
옆을 둘러보니, 2시간 전까지만 해도 주기적으로 논문 목록을 들고 오던 대훈이 뻗어 있었다.
다른 과에 소속되어 있음에도 돕겠다고 나섰던 하윤 또한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이었다.
[이거 같군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
[좀 더 증상을 대조해 봐야 하지만, 이게 아니라면 세상에 없던 병입니다.]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있기야 하겠지만 이 질환일 가능성보다는 희박한 확률이겠죠.]
‘오케이……. 그럼 일단 좀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