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47화 (347/1,303)

347화 미지의 영역 (4)

“선생님, 교수님 오셨습니다.”

당직방에도 못간 채 병동 스테이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수혁을 대훈이 깨웠다.

띠띠띠띠띠.

그와 동시에 바루다가 수혁이 발작할 만한 소리를 냈다.

기억 속에 있던 가장 괴로운 소리를 재생하는 방식이기에, 누군가를 각성시킬 때만큼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으.”

해서 대훈이 의도했던 것보다는 훨씬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어.”

막상 수혁을 흔들었던 대훈이 크게 놀랐을 정도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대훈의 얼굴에도 눌린 자국이 선명했다.

이 녀석도 여기서 자다가 이제 막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잘 잤어?”

김문재 교수는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비몽사몽 상태인 둘을 향해 천연덕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밤새웠니? 고생했다, 등의 인사치레 따위는 없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 김문재 교수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 보면, 이만하면 대단한 배려라고 볼 수 있었다.

아마 다른 때 같으면 자신이 올 때까지 누워 있던 수혁의 의자부터 엎었을 터였다.

“아, 네.”

물론 수혁은 그렇게 하지 않은 데에 고맙다는 생각 같은 걸 하진 않았다.

그저 자신만만한 눈으로 김문재 교수를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 눈빛에서 김문재 교수는 어제와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설마…….’

애써 멀쩡한 척 굴고 있지만.

김문재 또한 어제 거의 한숨도 못 잔 마당이었다.

심지어 같은 동아리 나온 소아과 후배 녀석과 유전학 전공하고 기초 연구실에 남은 후배를 닦달하기까지 했더랬다.

둘이 보기에도 흥미로운 질환이긴 했는지 같이 밤을 새우다시피 했음에도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한 상황이었다.

‘설마 벌써……?’

그런데 눈앞의 수혁은 어쩐지 뭔가 알아낸 눈치였다.

애초에 수혁에게 온 것이 이렇게 되기를 바라서이긴 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도 너무 빨리 해결될 기미가 보이자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냐, 답이 아닐지도 몰라.’

해서 김문재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질문을 던졌다.

“뭐 좀 알아낸 거 있을까?”

“네, 교수님.”

수혁은 숨돌릴 틈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당당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태도였다.

김문재로서는 도저히 추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라고 생각하지?”

“우선 환자의 문제 목록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 그래.”

수혁은 김문재 교수가 고개를 채 끄덕이기도 전에 마우스를 흔들어 화면 보호기를 끝낸 후 어제 띄워 둔 창을 보여 주었다.

깜빡이는 커서와 함께 수혁이 정리한 환자의 문제 목록이 떴다.

수혁은 차분하고도 전달력 있는 목소리로 해당 문제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워낙 잠을 이상하게 잔 탓에 조금 잠겨 있기는 했지만, 알아듣기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스테이션 반대편에서 다른 업무를 보고 있던 간호사들조차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선 환아의 이마가 과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머리둘레도 확장되어 있고요. 이는 어제 교수님께서 처방하신 CT와 MRI에서도 확인됩니다. 영상을 보시면…… 네, 이 컷에서 보면 경미한 수두증이 관찰됩니다.”

“응, 그건 봤지.”

“또 유두부종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이는 뇌압 상승 시 생길 수 있는 소견이니, 당연한 소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여기, 수막 부근에 보시면 조영증강 되는 부위가 있습니다.”

“음.”

김문재 교수는 어제 연구실에서 자료를 뒤지다가, 환자에게 새로운 처방이 추가되었다는 알람에 급히 처방란을 살폈던 기억을 떠올렸다.

뇌척수액 검사가 떠 있었더랬다.

“무균성 뇌수막염이 의심되던데.”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더군요.”

“이상한 점? 여기서 뭐 더 확인할 게 있었나?”

김문재 교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모니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눈이 벌개져 있던 참이라, 조금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래 봐야 새로 보이는 건 없었다.

원래 MRI는 영상의학과 의사가 아니면 판독이 어려운 검사이지 않은가.

더욱이 복부나 머리 쪽은 더더욱 그랬다.

“음.”

수혁은 김문재 교수의 입에서 튀어나온 신음이 뜻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개뿔도 모르는군요.]

‘그러게. 당연한 일이긴 해. 머리 쪽 MRI를 언제 봤겠냐, 이 사람이.’

[그건 그렇죠. 무리한 기대입니다. 이현종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제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래, 뭐.’

바루다의 잘난 척으로 귀결되는 것이 좀 기분 나쁘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인데.

제아무리 수혁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해도, 바루다의 도움이 없다면 지금 가리키고 있는 병변까지 찾아내진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 양측 달팽이관에 조영 증강이 관찰됩니다.”

“어? 아……. 이게.”

익숙지 않은 사람은 정상 달팽이관의 조영 증강 정도를 모르기 때문에, 봐도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럴 땐 그냥 정상 소견을 보여 주는 게 빨랐다.

이미 여러 차례 남들을 지나칠 정도로 앞서가는 노티를 해 온 바 있는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네이버 이미지 하나를 가져왔다.

“이렇게 보면 확연히 차이가 나죠. 같은 T1 이미지입니다.”

“아, 그렇네. 음. 양측이면…… 게다가 이 환자는 무균성 뇌수막염에 열도 없는데.”

“네, 아마도 유전 질환에 의한 병변일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군…….”

김문재는 어쩐지 음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였다.

하나는 수혁과 자신과의 능력치 차를 확인해서일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아이의 예후가 걱정되어서일 터였다.

보통 선천적 질환에서 동반되는 장애가 많으면 많을수록 발생학적으로 보다 초기에 이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고, 그런 경우에 예후가 안 좋은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환자의 문제 목록에 양측 달팽이관 염증, 그리고 후에 발생 가능한 난청을 추가했습니다.”

“이거…… 이거 결정적인 단서가 됐을 거 같은데.”

“네, 또 어제 실시한 안과 검진도 도움이 됐습니다.”

“그건 노트 보긴 봤는데…….”

“전방 포도막염은 있었으나, 후방 포도막염은 없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거기에 환자의 슬개골을 비롯한 관절 이상과 가려움증을 동반하지 않는 발진을 추가해서 케이스 리포트와 논문 서치를 해 보았습니다.”

수혁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훈과 김문재 교수의 얼굴엔 당연하게도 기대감이 깃들었다.

일단 문제 목록만 해도 자신들이 확보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뭐가 안 나온다면, 따로 게놈 지도를 의뢰해 새로운 유전 질환을 보고해야 할 판이었다.

“그 결과 몇 가지 질환들이 나왔는데……. 환자 검진과 좀 더 밀접해 보이는 질환은 한 가지였습니다.”

“그게 뭐지?”

김문재가 수혁의 팔뚝을 내리치며 물었다.

대훈도 표정만 보면 벌써 뺨이라도 후려쳤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기에 그리 놀랍진 않았다.

‘어제 진짜 개고생하기는 했지.’

[네, 간만에 고생이었죠. 이렇게 감도 안 잡히는 질환은 오랜만입니다.]

무려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자신조차 힘겨운 진단이 아니었던가.

이현종이라 해도 환자를 본 경험이 없다면 이렇게 빨리 진단 내리는 건 무리였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태화 최고의 천재도 그러할진대 앞에 있는 둘이 어찌 알겠는가.

궁금해 죽을 지경일 게 뻔했다.

“만성 영아 신경 피부 증후군(CINCA, Chronic Infantile Neurological Cutaneous and Articular syndrome)입니다.”

질질 끌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바로 진단명을 말해 주었다.

하지만 둘의 어리둥절한 표정은 그다지 개선되지 못했다.

처음 들어 보는 진단명이었기에 그랬다.

게다가 딱히 환아가 지금 보이고 있는 증상들을 다 내포하고 있는 이름도 아니었다.

좀 생뚱맞아 보일 따름이었다.

“만성 영아 신경 피부 증후군?”

“네. 줄여서 CINCA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어…….”

“네, 기전이 어떻게 되냐면…….”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처음 이 진단명이 검색 결과에 떴을 때 수혁도 배재하고 봤으니까.

하지만 기전을 보면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NLRP3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이건 아시…… 아니구나.”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유전학 박사도 모르겠네.”

“이 유전자는…… 말하자면 복잡하니, 간단하게 요약할게요.”

“그래, 그게 좋겠어.”

의사라고 해서 어떤 질환의 기전을 백 퍼센트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세상엔 아직까지 원인이 불명확한 질환들도 너무 많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자를 살릴 수 있는가, 또는 환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임상 영역에서는 특히 그랬다.

“이 유전자는 일단…… 돌연변이가 발생하게 되면 내인성 및 외인성 자극에 의한 선천성 면역 세포의 비정상적인 활성화가 일어납니다.”

“면역 세포의 비정상적인 활성화라……. 그럼 이게…… 무균성 뇌수막염이나 달팽이관 염증, 관절 이상, 발진이 다…… 자가 면역 반응에 의한 거란 얘긴가?”

“네, 그렇습니다.”

“하.”

자가 면역 질환이라.

쉽게 말하면 내 면역 세포가 나를 공격하는 질환이지 않은가.

류마티스 질환의 영역에 속한 질환군이니 김문재 교수의 전문 영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갑갑했다.

‘선천성 자가 면역 질환이라니…….’

치료법이 있을까?

김문재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환자 얼굴을 떠올렸다.

이미 관절 공격이 시작되어 얼굴 모양까지 바뀐 마당이었다.

비록 수혁이 말한 NLRP3 유전자라는 게 뭘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면역 시스템 전반에 관여하는 유전자임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광범위한 이상을 동반할 리가 없었다.

‘제기랄.’

김문재 교수는 초인적인 인내로 욕설을 참았다.

왜 하필이면 아직 너무 어린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병이 생겼을까.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가 이제 현대 의학에서도 저버림을 당해야 한다니.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쯧.’

이럴 때마다 김문재 교수는 의업에 회의를 느꼈다.

너무도 무력했다.

이번이 처음이라면 조금 나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미 김문재 교수는 현대 의학의 한계라는 이유로 여러 환자를 포기해 온 바 있었다.

그때마다 쌓이고 쌓인 상처가 가슴에 남아 은퇴를 종용하는 듯했다.

“저, 교수님.”

“응?”

그때 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제야 김문재 교수는 눈앞의 젊은 아니, 어리다고까지 할 수 있는 레지던트의 눈빛에 변화가 없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고칠 수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악화는 막을 수 있어요.”

“어? 그게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아직 연구 단계에 있지만……. 저자랑 통화해 보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통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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