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48화 (348/1,303)

348화 미지의 영역 (5)

저자와 통화라.

김문재는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일 리는 없는데.’

대한민국 의료 수준이 엄청나게 가파르게 발전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후발 주자이지 않은가.

게다가 임상 영역이 아닌 연구영역에서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매해 천문학적인 자본을 연구에 투입하는 미국은 차치하고 독일과 일본도 따라가기 벅찼다.

“통화를 했어?”

“네. 통화요.”

“아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네, 그래도 논문에 적힌 대학 병원 측에 환자 얘기라고 잘 설명을 했더니 통화 연결이 됐습니다.”

“그래?”

그게 되나 싶었다.

제아무리 환자에 관한 얘기라고 해도 일반적인 일은 아닐 거 같았다.

해서 이상하다 싶은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허허 웃으면서였다.

“우연히 제가 미국 연수 갔던 병원이라서요. 그래서 수월했습니다.”

“아……. 아이오와 주립대학?”

“네.”

“어디 봐 봐.”

아이오와 주립대학 병원이라면 아주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었다.

일단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하고는 제법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가.

당장 김문재 교수만 하더라도 그곳으로 1년간 연수를 다녀온 경험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막 알려 주고 그러나?’

물론 한 가닥 의문이 남아 있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환아의 진단명이 나왔을 뿐 아니라, 치료법도 소개되려 하는 순간이었으니까.

수혁은 김문재 교수의 눈빛을 한 몸에 받으며 마우스를 조작해 창 하나를 열었다.

3년 전 발행된 논문이었다.

“이게…… 드물긴 하지만 그래도 종종 보고되는 형태의 유전 질환인 모양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일찍 진단되기보다는 좀 크고 나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는 건데……. 이번에 저 환아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겠죠.”

김문재나 안대훈이 보기엔 운이 좋았다기보다는 그저 수혁이 잘한 것 같았지만.

둘 다 굳이 지금 이 순간 쓸데없이 입을 털지는 않았다.

대신 수혁의 이어지는 말과 끊임없이 움직이는 마우스 커서에 집중했다.

“아무튼,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선천 면역 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입니다. 그 결과로 주로 피부 관절 신경이 손상받게 되죠. 이 환자의 경우, 뇌수막염이 있고 달팽이관 염증에 발진 그리고 비대해지는 관절 등이 있어 상당히 특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진행이 그렇게까지 많이 된 것은 아니라…….”

“아이고.”

“이렇게 되는구나.”

“네. 여기 보시면 이 환자들이 다 혈연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비슷하게 보이죠.”

“그렇게 될 수 있지…….”

유전 질환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비혈연 간의 환자들임에도 외형이 비슷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질환 때문에 외형에 특징적인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이 질환, 그러니까 만성 영아 신경 피부 관절 증후군(CINCA sd)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환자들은 지나치게 돌출된 이마와 눈 그리고 짧아진 손가락과 발가락 및 툭 튀어나온 무릎 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나만 떼어 놓고 보면 개성적일 수 있으나, 모아 놓고 보면 오히려 몰개성한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 결과는 해당 환자들에 대한 아이큐 검사 결과입니다.”

“떨어지는군…….”

결과표를 본 김문재 교수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떨궜다.

그렇지 않아도 이 험한 세상에 대한 방파제가 턱없이 낮을 수밖에 없는 아이이지 않은가.

저 목사님이 비록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평생 책임질 수는 없을 터였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뿐이지 않은가.

그 평생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희생하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요구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김문재 교수는 언젠가 동기이자 만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비인후과 교수를 떠올렸다.

원래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닌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교수 회식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았더랬다.

또 그 친구도 평소와 달리 술잔을 스스로 기울였다.

‘내가 그때…… 괜히 살렸어. 그걸 하면 안 됐어.’

알고 보니 거의 8년을 보아 온 아이가 죽은 날이었다.

그 아이도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젊은 의사들이 으레 그러하듯 동기 녀석은 1%도 채 안 되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보답 받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이는 조금의 호전과 끝없는 악화를 반복하다가 결국, 첫 치료 이후 8년 후에 죽었다.

그사이 아이 부모는 지나친 고생으로 인해 이혼했고, 그 모든 과정에 동기가 함께했다.

‘그런데 내가 다음에…… 또 그런 아이를 본다면 제때 포기할 수 있을까?’

동기는 한참 술 취한 목소리로 주절거리다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작정인 모양이었다.

김문재도 그랬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의사는 의사이지 않은가.

눈앞에서 보게 된 환자를 포기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그런데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에서 이 질환의 진행에 관여하는 인자 중 키가 되는 인자를 발견했습니다. 이 논문의 주요 골자가 바로 그것입니다.”

“응?”

잠시 낙담에 빠져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논문 페이지가 꽤 넘어가 있었다.

“바로 인터루킨 1입니다. 모든 환자에서 인터루킨 1이 과하게 발현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

“이전까지의 치료는 스테로이드를 포함한 면역 억제제였는데, 그다지 효과가 없었습니다. 보시면…… 거의 쓰나 안 쓰나 비슷한 수준이죠.”

“음……. 이게 참……. 이게 참 끔찍하구만.”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에서 쓴 논문은 단일 센터 논문이 아니라 멀티 센터 논문이었다.

미국 내 각 기관에서 보내온 자료를 바탕으로 쓰여 있다, 이 말이었다.

거기에 따르면 환아들의 지능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날 때부터 지능에 손상이 있는 게 아니라, 면역 체계의 이상 때문에 반복되거나 지속되는 뇌수막염 및 수두증 그리고 증가된 뇌압 때문에 지능에 손상이 발생한다는 얘기였다.

심지어 귀도 멀어 갔다.

아이들의 심리 또한 우울감에 지배당해 갔다는 보고가 있었다.

내가 그 부모라면 그 모습을 과연 멀쩡한 정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무슨 이런 병이…….’

자료에 따르면 그 어떤 치료를 했든지 간에 관계없이, 또 어느 시점에 했든지 간에 관계없이 같은 결과를 보였다.

모든 환아는 어김없이 신경과 피부 그리고 관절에 광범위한 손상을 입었다.

“네, 그렇죠. 그런데……. 인터루킨 1에 대항 길항제……. 저자들은 아나키라(Anakira)를 사용했는데, 결과가 좋았습니다. 여기 보시죠. 치료 이후 추적 관찰한 내용입니다.”

“음.”

수혁이 말을 마치면서 동시에 페이지를 넘겼다.

자연스레 김문재 교수와 안대훈의 시선도 거기 고정되었다.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병원의 엄청난 성과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상세히 적혀 있었다.

환자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을 지경이었다.

“변화가 없잖아?”

사진부터 본 김문재 교수의 얼굴에 진한 실망감이 서렸다.

뭔가 새로운 치료법이 제시되었다기에 기대를 품었건만.

진행에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환아들의 무릎은 점차 비대해져 갔으며, 이마와 눈 또한 돌출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만 보면 이전까지 시행했던 치료들과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 교수님. 여기, 여기 좀 보십시오.”

하지만 안대훈은 조금 다른 것을 보았다.

사진보다는 아무래도 알아보기가 좀 어려운 도표였다.

“여기 보시면…….”

“어?”

“네, 뇌압 상승을 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달팽이관의 염증 또한 그렇죠. 즉 지능과 청력은 지킬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수혁은 방금 대훈이 가리킨 도표에 마우스 커서를 빙빙 돌려 하이라이트 하며 말을 이었다.

“아……. 이거, 이거 평균 치료 시작이 언제지?”

김문재는 흥분한 얼굴로 되물었다.

비로소 희망을 본 까닭이었다.

동기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환아에 대한 희망은 1%도 채 되지 않는 망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손에 잡힐 듯이 선명했다.

“보통 6개월 이후입니다. 진단이 어려워서요. 그나마 센터에서 치료가 시작되면서 1차 의료진에게도 교육이 되고 있는 모양인데……. 미국은 좀 의료 전달 체계가 복잡하지 않습니까.”

“하긴, 거긴 그럴 거야. 그렇지.”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시애틀에서는 전문의를 보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무려 100일 넘어갔다.

다른 지역이라고 해서 그것보다 많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뭐가 되었건 하루 이틀 내에 동네에서라도 해당과 전문의를 볼 수 있는 대한민국에 비하면 열악하기 짝이 없는 동네였다.

물론 상류층들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좋은 민간 보험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긴 하겠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질환의 타깃은 랜덤이었다.

그리고 최종 희생양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당장 치료를 시작하게 되면 이 연구의 평균보다 훨씬 더 빠른 셈입니다. 물론 치료 전에 확실히 해당 유전자 이상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해야겠지만……. 그건 질본에 문의하면 바로 처리해 주지 않을까요?”

“내가 푸시 하지. 그래도 아는 후배가 몇 있어.”

“아, 잘됐군요. 감사합니다.”

“아냐, 아냐. 내가 고맙지. 내가…… 내가 고마워.”

김문재는 미안했다는 말을 하려다 그저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고 말았다.

수혁에게 깊이 감복한 지 오래긴 하지만, 그래도 교수 된 체면에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기는 좀 그래서였다.

“그런데 그 아나키라는 어떻게 쓰는 거지?”

김문재 교수는 잠시 혼자 민망해하다가 질문을 던졌다.

[그래도 교수라고 아까부터 질문이 예리하군요.]

‘그러게. 대훈이는 그냥 웃고만 있는데.’

[경험치 차이죠. 설마 김문재 교수가 지금까지 이런 케이스 하나 보지 못했을까요.]

‘하긴 이 양반은 서효석 같은 놈하고는 다르지.’

[네, 확실히 다릅니다.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원인을 알고 약만 알았다고 해서 바로 치료가 되는 게 아니었다.

우선 치료 시기를 알아야 했고, 그다음은 정확한 치료법을 숙지해야만 했다.

이게 없이는 또 다른 삽질만 예상될 뿐이었다.

김문재 교수의 질문엔 이런 의미가 있었다.

물론 수혁은 이미 이 때문에 통화까지 한 마당이었다.

“레지멘 메일로 받아 뒀습니다. 보험이 안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기는 한데…….”

“그건 걱정 마. 저 아이 정도면 태화 재단에서 커버 해 줄 거야. 게다가…….”

“게다가요?”

“아니……. 이수혁 선생. 차기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으로 낙점되어 있잖아. 그렇게 되면 맨 이런 환자만 볼 텐데, 지원 안 하겠어? 홍보팀이라도 붙을 거 같은데.”

“아.”

이 양반 입에서 부센터장 얘기가 나올 줄이야.

이 말은 곧 나는 널 인정하겠다, 이제 반대파에서 발을 빼겠다 뭐 이런 뜻이었다.

그래 봐야 발이 넓은 양반은 아니니 큰 도움이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산 하나를 또 넘은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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