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49화 (349/1,303)

349화 준비하자, 세미나 (1)

“목사님, 목사님.”

대화를 마친 김문재 교수는 부리나케 병실로 내달렸다.

의사들이 비록 나쁜 소식 전하기에 대해 의과 대학에서 또 병원에서 배우긴 하지만.

그건 경험이 쌓이건 뭐가 됐건 결코 익숙해지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에 비해 좋은 소식 전하기는 교육도 받은 적이 없지만 늘 설레었다.

김문재 교수 나이가 돼도 그랬다.

“아, 교수님. 어쩐 일…….”

병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선잠에서 깬 보호자가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났다.

밤새 아이 곁에 있는 침대에서 누워 있던 탓에 굉장히 지쳐 보였다.

“아이 병 뭔지 알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병명을 알아냈다는 말에 바로 생기가 돌았다.

좋은 소식엔 이런 힘이 있는 법이었다.

“네네. 그…… 만성 영아 신경 피부 관절 증후군이라는 병입니다.”

“네? 그게…….”

물론 듣는다 해서 바로 알아먹을 수 있는 질환명은 아니었다.

대부분 의사들도 모르는 진단명 아닌가.

아니, 김문재와 같이 당당히 태화 의료원에 실력으로 교수가 된 사람도 모르는 병이니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를 해도 무리가 아닐 터였다.

“아이 보세요. 발진 있고, 무릎 부었고…… 머리도 좀 부었죠. 이런 증상이 다 나타날 수 있는 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렇군요. 네네.”

김문재 교수가 그나마 간단화시켜서 말을 해 준 덕에 보호자는 조금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이 병이 진행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보게 되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김문재 교수 또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굳이 겁을 줘서 뭐 한단 말인가.

눈앞에 선 보호자는 이미 너무 많은 비극을 체험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의사보다도 더 죽음과 절망에 가깝게 지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치료법이 있어요. 좀 비쌀 수도 있고……. 보험이 안 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건 저희가 알아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치료가 되는 겁니까?”

“네네. 아시죠? 저희 병원에 사회 공헌 팀 있는 거. 그쪽으로 아마 후원금 기탁된 것이 있을 테니까……. 뭐 그게 아니더라도 생명 측에서 매해 지원금이 나오고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치료하면 아이는 완전히 일반인으로 클 수 있는 겁니까?”

해서 김문재 교수는 일부러 희망찬 목소리로 희망찬 얘기만 떠들었다.

하지만 보호자는 그렇게 녹록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자기 손으로 키워서 사회에 내보냈던 아이들 몇몇이 적응하지 못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현장에도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 이후로는 어떤 아이를 봐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

김문재 교수는 차마 얘기를 더 이어 나가지 못했다.

대신 수혁이 나섰다.

[냉정해져야 합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바루다 덕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냉정한 녀석이기에 수혁 또한 감정에 치우치지 않을 수 있었다.

“보호자분.”

“아, 네.”

다행히 목사는 수혁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끼고 있었다.

새벽녘에 뭐 좀 물어보러 병동 스테이션에 나갔다가, 쪽잠을 자고 있는 수혁을 본 탓이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런 적이 없었다 하지 않은가.

다 저 아이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땐 고마워서 울먹일 뻔했다.

“일단 아이의 머리…… 는 괜찮을 겁니다. 원래 지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데, 그건 치료하면 막을 수 있어요.”

“오.”

보호자는 반색을 표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회에 적응하는 데 이보다 좋은 사인은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환경과 교육이 뒷받침돼야 하긴 하겠지만.

그건 적어도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역이지 않은가.

“원래 이 질환에서 청력도 손상됩니다. 달팽이관에 손상이 생겨서인데……. 그것 또한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손상되어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겠지만……. 시기를 볼 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보호자는 하늘에 대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혁에게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경건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식의 감사 인사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닳은 수명이나 배터리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네, 하지만…….”

“아.”

그렇다고 해서 해야 할 말을 빼먹을 수는 없었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보호자와 저 아이는 남이었겠지만.

이젠 주 양육자가 될 사람 아닌가.

아이에 대해 모르는 것이 있어선 안 될 터였다.

“관절 변형은 아직 막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연구 중이니 아이가 성장하면서 뭔가 획기적인 치료법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은 그렇습니다.”

“관절 변형이라고 하면……. 키에도 영향을 받습니까?”

“약간요. 하지만 아주 크진 않습니다.”

“그럼……?”

“무릎하고 손가락, 발가락이 좀 짧아집니다.”

“아.”

단지증은 여러 증후군에서 동반되는 증상이었다.

보호자는 심지어 몇몇 그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그 정도 이상은 사람들의 편견만 아니면 일상에 커다란 피해를 끼치진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숨을 쉬거나 하는 대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도 좀 변형되긴 할 겁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희망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기르겠습니다.”

나름의 포부도 내비쳤다.

그것만 봐도 이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보살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선배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저는 이번에 진짜…….”

그렇게 부연 설명을 마치고, 김문재 교수까지 보내고 병동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비로소 안대훈이 입을 열었다.

깊이 감명받았단 얼굴을 하고서였다.

무리는 아니었다.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려운 질환이었으니까.

“나도 몰랐어. 좀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더라.”

“선배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는…….”

“너도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 어제 네가 서치 해 준 논문들이 질환들 배제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아이고,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도 들뜬 기분을 굳이 숨기지 않고, 평소 하지 않던 칭찬까지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대훈은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어 껄껄 웃을 수 있었다.

거기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수혁의 업적을 알리기 시작했다.

처음은 역시나 이수혁 팬클럽의 창립 멤버라 할 수 있는 우하윤이었다.

“아, 정말요? 아쉽다……. 어제 찾아보니까 그거 진짜 전혀 모르겠던데.”

“우리가 모른다고 선배까지 모르진 않지.”

“하긴 그래요. 와……. 진단명이 뭐라고요?”

“만성 영아 신경 피부 관절 증후군.”

“대박. 들어도 뭔지 모르겠어요.”

“나도 그래. 근데 공부해 보니까……. 이게 카테고리가 있는 질환이더라. 경한 거부터 심한 형태까지 있어. 그중에 이 환자는 가장 심각한 형태야.”

“저도 자료 있으면 좀 줘요. 공부할게요.”

“그래. 그래야 이수혁 선배 발가락이라도 따라가지.”

옆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의 칭찬이 이어지자, 제아무리 들뜬 상태의 수혁이라도 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어, 소아과 선생님.”

심지어 다른 과 사람들에게까지 저러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해 봐야 안 듣겠지?’

[네, 일종의 미친놈입니다. 그냥 뜨시죠.]

해서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허사였다.

“어, 수혁아!”

조태진이 달려오고 있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디선가 방금 일어난 일을 들었다는 것을.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뿌듯해하면서 전력 질주해 올 일은 없을 터였다.

“어우.”

“진단명이 뭐더라?”

역시나 조태진은 거의 미식축구 태클처럼 수혁에게 달려들더니, 곧장 안아 들었다.

“진짜 저러시는구나.”

“나는 소문인 줄로만 알았지.”

당연하게도 병동 간호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진귀한 광경 아닌가.

성인이 또 다른 성인을 얼싸안고 어화둥둥 하는 꼴이라니.

그게 하나는 대학 병원 교수고, 또 다른 하나는 레지던트라는 걸 알게 된다면 아마 평생에 한 번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보통 저런 사이의 직군이 아니었으니까.

“인마, 내려놔.”

“그래, 우리 수혁이 어지러워.”

“너도 내 아들한테 우리 수혁이라는 말하지 말고. 이수혁 선생이라고 해.”

“그럼 거리감 느껴지는데.”

“거리감 느껴지라고 그러는 거야!”

게다가 원장과 과장까지 합세한 마당이었다.

찰칵.

몇몇 용기 있는 간호사들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댔다.

국내법에 따라 찰칵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지만, 교수들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새끼 내가 이뻐한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게다가 이번 케이스는 정말이지 황당할 정도로 어려운 케이스였다.

“형도 몰랐지?”

“응? 나도 처음 봤지. 심장에 딱히 문제 생기는 질환도 아니고……. 아예 처음 봤어.”

이현종조차 처음 보는 케이스 아닌가.

환자를 직접 보지 못했단 뜻이 아니라, 문헌에서조차 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다니까.’

본래 계획대로 원장에서 물러나면 그저 순환기내과에서 말년을 보내다 은퇴하려고 했다면 이런 생각까지 들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미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는 최고이지 않은가.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수혁과 통합진료센터로 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노력을 해야만 했다.

‘오늘부터 다시 열공해야지.’

이현종은 각오를 새로이 다지면서 이제야 조태진의 손에서 풀려난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수혁은 잠시 땅바닥의 소중함을 만끽하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이 바쁜 양반들이 단지 자기가 뭐 하나 맞혔다고 신나서 달려왔을 거 같진 않았다.

[아니, 그럴 수도 있을걸요.]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그랬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단 아까 머릿속에 떠오른 말부터 꺼냈다.

“근데 어쩐 일이세요?”

“아, 뭐 겸사겸사 왔지.”

제일 먼저 나선 것은 신현태였다.

무언가를 건네주면서였는데, 그제야 수혁은 파이자 세미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신현태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비행기 표였다.

“일단 이거 받고. 우리…… 할 일이 많아. 너나 나나 너무 바빠 가지고 제대로 준비도 못 했잖아.”

“네, 맞아요. 그게 사실 진짜 큰 행사던데.”

“그렇지. 거의 뭐 내년 한 해……. 아니지, 앞으로 10년간 바이오산업이 어디로 갈지 보여 주는 세미나지.”

그 10년의 계획이라는 게 매년 바뀔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아무튼, 한번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시야가 넓어졌다고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현장에 있는 의사들은 경주마처럼 눈앞의 환자만 보기 마련이니까.

밖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적인 추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거 일단 이름부터 정해야 해. 패혈증 예측 인공지능 이러면 좀…… 이상하잖아? 직관적이긴 한데.”

“아, 네.”

“그러니까……. 일단 둘이 얘기 좀 할게요. 당신네 둘은 왜 온 거야, 대체.”

제대로 준비해야 된다는 뜻이었다.

신현태야말로 수혁을 보러 올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해서 신현태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둘을 돌아보았다.

둘은 어쩐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답을 해왔다.

“야, 인마. 아들 보러 왔지.”

“저도 우리 수혁이 보러 왔어요.”

“거짓말하지 마. 나랑만 더 친해질까 봐 온 거지?”

“음.”

“음.”

“아오, 이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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