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2화 (352/1,303)

352화 준비하자, 세미나 (4)

신현태는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고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생각해 보니까 이 둘이 일을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 나쁜 일은 아니었기에 그랬다.

‘그래……. 빨리할 수 있으면 좋지. 일을 더 맡겨 버리자.’

가뜩이나 감염내과 학회 일로도 바쁜 몸이지 않은가.

솔직히 그쪽 일이야 아무리 열심히 해 봐도 이것만큼 실속이 있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학회 어르신들의 관심이 있었고 또 후학들의 기대가 있는데 개판 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음,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럴싸하네.”

해서 짜증을 뒤로하고 칭찬부터 해 댔다.

물론 이현종이 듣기에는 좀 모자란 느낌만 들었다.

“그럴싸? 인마 이거 이대로 가져가면 논문으로 실어 줄 곳도 많을걸?”

“이걸요? 에이.”

“당연하지. 내기할래?”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내기까지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성과를 냈고,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계획서 아닌가.

아주 약간만 손보면 꽤 커다란 학회지에서도 실어 줄 수도 있었다.

기존의 학회지가 아니라, 디지털 헬스 케어 분야의 학회지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럴 것이 뻔했다.

해서 신현태는 고개를 저어 댔다.

“아뇨.”

“와, 이놈 봐. 이거.”

“아무튼, 이건 됐고. 수혁이도 했고.”

“너만 안 했어, 너만. 정신을 어따 팔고 있는 거야.”

이어지는 이현종의 핀잔엔 화가 났다.

나라고 놀고 있었겠냐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라고 하고도 싶었다.

‘근데 그럼 좀 무능해 보이잖아?’

신현태는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돌아보았다.

열심히 채워 넣고 있던 엑셀 파일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쉬지 않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절반도 채 완성하지 못했더랬다.

“미안해요, 미안. 내가 요새 너무 할 일이 많아.”

“원장도 아니고 할 일이 뭐가 있어.”

“원장 아니면 다 노나? 대학 병원이 얼마나 바쁜데.”

“아닌데. 내가 요새 보니까 외래 환자도 적던데. 막말로 감염내과로 오는 환자가 몇이나 되냐? 안 없어지면 다행인 과 아냐?”

“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최선을 다했는데 늦어진 거라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한 공격이었다.

그냥 인신공격처럼 근거 없는 얘기면 또 모르겠는데.

실제 감염내과가 처한 상황이 이렇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오죽하면 원로 교수님들이 팬데믹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우리 과 위상이 변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겠냐…….’

어찌 보면 나라가 잘살게 되면서 오는 필연적인 변화라고 봐야 할 수도 있었다.

더 이상 대한민국은 과거처럼 감염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아니던가.

이미 기생충 감염이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도 주목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소아 백신 접종 사업도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모범적으로 펼치고 있었기에, 감염에 의한 후유증이나 사망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뭐……. 에이즈가 좀 늘고 있기는 한데…….’

에이즈는 직접적인 타액 감염 및 혈액 교환으로만 감염이 이루어지는 질환 아닌가.

전체 의료 시스템을 뒤흔들기는 어려울뿐더러, 질환이 가지는 특성상 감염자들이 음지로 숨고 있었다.

정확한 통계마저 잘 잡히지 않는 실정이었다.

또 이렇게 번지고 있는 원인 규명과 치료를 위한 교육을 시행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감염자들은 교육에 대한 열망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의료진에 대한 적개심이 있었다.

‘와……. 이러다 진짜 우리 과 망하나?’

신현태의 반응이 이렇다 보니 이현종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원래 팩트로 놀리는 게 제일 잔인한 일 아니던가.

“야야. 울어? 미안해, 미안.”

“울기는요.”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심혈관 질환도 줄고 있어, 인마.”

“그래요?”

“그래. 우리가 당뇨, 고혈압 얼마나 치료받으라고 홍보하냐. 그러다 보니까 요새 30, 40대들은 진단받으면 바로 약을 먹어요. 그럼 심장이 망가지겠어? 그 전 단계에서 이미 턱 하고 막혔는데.”

“아, 그렇구나. 미국 따라가나?”

“그래, 그래. 조태진 말고는 유망한 과가 없다, 진짜.”

해서 속으론 별로 걱정도 안 하는 주제를 꺼내 신현태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심혈관계 질환이나 뇌혈관 질환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했다.

지난 수십 년간 내과 학회와 질병관리본부 측에서 시행한 다양한 캠페인들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옛날엔 당뇨나 고혈압이라고 약을 먹으라고 하면 의사 놈이 약 팔아먹으려고 날 속이는구나 하는 이들도 많았더랬다.

증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제는 당뇨나 고혈압을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충분히 널리 퍼져서, 그로 인한 합병증도 크게 줄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근데 여전히 약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크단 말야.’

이건 미국 얘기였다.

국내에서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소위 양약은 끊는 게 좋고, 운동이나 식이로 치료하는 것이 최고란 인식 때문이었다.

정말 운동과 식이를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도 약을 거부하는 게 문제였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선 병원 놈의 얘기라서 그렇지만, 내분비내과 우창윤의 말처럼 당뇨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해당 약이 산삼보다 좋은 것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많이 줄었어요?”

“어? 어, 그래. 많이 줄었지.”

이현종은 속으론 영 딴생각을 하고 있는 주제에 신현태를 다독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족도 없는 늘그막에 말동무라도 해 주는 놈 아닌가.

신현태 아니었으면 주말마다 나 혼자 밥을 먹고, 나 혼자 영화 보고, 나 혼자 노래하고 할 뻔했다.

“여유, 순환기도 큰일이네.”

“그렇다니까. 요새는 그저 암이 최고 문제야. 치매랑.”

이현종이 신현태 위로에 나선 사이, 수혁은 다시 한번 이현종이 쓴 계획서와 자신이 방금 쓴 서류를 검토했다.

‘모자란 부분은 없어 보이지?’

[네. 이렇게만 보면……. 지금 당장 사업화해도 별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 말은…… 돈을 많이 벌게 될 거라 이거야?’

[돈이요? 이거 사용한다고 얼마나 많은 돈을 책정할 수 있겠습니까? 솔직히 프로그램 자체는 너무 간단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전자 의료 차트 일원화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일 겁니다. 당장 이번에 태화, 칠성, 아선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세 병원이 각기 다른 전자 의료 차트를 사용하고 있어서 데이터 취합하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이건 세 병원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좀 애매했다.

국내 의료법상 환자의 개인 정보는 병원끼리도 함부로 공유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일원화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지 않은가.

각 병원은 로열티 낼 필요 없이, 각 병원 진료 환경에 맞는 전자 의료 차트를 개발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하긴……. 음, 그럼 뭐 때문에 사업을 하지?’

차트 일원화가 필요한 사업이기에 돈 되기는 어렵다는 걸 이해한 수혁이 재차 물었다.

사업은 곧 돈을 벌기 위함인데, 그럼 이 짓을 왜 하나 궁금해져서였다.

[허이구.]

합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루다는 의외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왜 또. 왜 시비야.’

[이번 사태를 겪고도 이러시네.]

‘뭐.’

[이 간단한 프로그램이 대체 몇 명을 살린 겁니까? 의사가 돼 가지고 사람 생명 걱정 안 합니까?]

‘아…….’

[수혁은 인류애를 좀 더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공부 항목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이 바루다라도 선생이 되어야겠지요.]

‘그…….’

망할 상황이었다.

하필 바루다에게 비인간적인 면모를 그대로 들킬 줄이야.

이제 이걸로 또 한밑천 삼아서 몇 달은 울궈 먹을 게 뻔했다.

데이터화시키는 것이 일상인 놈이니 어쩌면 평생 갈 수도 있었다.

“어디 봐 봐. 이게 어려워?”

그사이 이현종은 아까 신현태가 혼자 하겠다고 한 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렵다니까요?”

신현태는 부득불 어려워서 못했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다.

‘음…….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어차피 지금까지 나와 있는 제품들이 이거랑 같은 것도 아니고……. 이놈이 이거 디지털 헬스 케어 말만 떠들고 잘 몰라서 이런 거 아닌가?’

아끼는 동생의 말이니 들어는 줬는데, 솔직히 쉬워 보였다.

하지만 방금 상처를 줬던 참이라 이현종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딱히 신현태의 마음을 헤아린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이놈이 의외로 삐지면 오래간단 말이야.’

거의 3주를 삐져서 말도 안 하는데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더랬다.

외골수인 데다가, 괴짜인 이현종이 신현태 말고 누굴 만나고 다닌단 말인가.

수혁이야 제법 말도 잘 받아 주고 밥도 먹어 주긴 하지만.

주말에도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원래 레지던트가 힘든 직업이기도 하거니와, 수혁은 그중에서도 좀 바쁜 편이어서였다.

게다가 수혁은 다리가 불편해 골프를 치지 못했다.

“그렇네, 어렵네. 그래, 내가 남은 거 절반 정도는 해 보지.”

“오, 그래요?”

“그래. 해 볼게. 빨랑 하고 치우자. 이거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다들 바쁜 사람들인데.”

“고마워요.”

“고맙긴. 이번 주 일요일 골프 약속 잊지 않았지?”

“음.”

신현태가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이현종이 이렇게 나오는 게 다 자기랑 좀 놀려는 이유라는 거 정도는 다 알고 있었다.

‘뭐 나쁜 일은 아니지.’

영 불편한데 놀아 주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다른 사람들이야 이현종을 이해도 못 할뿐더러 불편해하기도 했지만.

같이 지내 온 시간이 벌써 수십 년이었다.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였다.

심지어 아내가 질투할 정도로 친하지 않던가.

‘그래도 좀 뜨뜻미지근한 척하는 게 좋겠지.’

그렇다고 다 알고 있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알았어요. 근데 이걸 다 끝내야 가지?”

“에이 이게 뭐가…… 아니지. 어렵지. 알았어. 끝내자. 파이팅!”

“네네.”

해서 두루뭉술하게 대화를 끝마치고는 마무리했다.

이게 다 뻔히 보이는 수혁과 바루다로서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수혁, 원래 인간은 내면이 자라지 않습니까?]

‘응?’

[이 둘 그래도 나이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 갖는 수명의 한계의 절반은 넘지 않았습니까?]

‘말 어렵게 하지 말고. 그냥 나이 들 만큼 들었다고 해.’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분석해 보니 호모 사피엔스는 본인들이 그 종인 주제에 해당 단어를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혁의 입에서 발화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바루다가 이 단어를 알고 있는 건, 다 TV 덕이었다.

[타당한 의견,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나이 들 만큼 나이 든 둘인데 왜 저럽니까?]

‘음……. 그건 답해 주기가 어려운데.’

[왜 그렇습니까?]

‘약간 두 분 욕하는 것처럼 될 거 같아.’

[해당 발언은 이미 욕한 것과 다름없다고 판단됩니다만.]

‘아니, 아냐……. 나는 두 분이 이래서 좋다고.’

[수혁도 똑같은 놈. 아니, 똑같은 호모. 아니, 똑같은 사람이라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 묘하게 욕하는 거 같은데?’

[오해입니다. 바루다도 세 분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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