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7화 (357/1,303)

357화 거들다 (3)

“음?”

당연하게도 모두의 시선이 수혁에게로 집중되었다.

애초에 둘이 그렇게 연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여러모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좋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딘지 느슨한 정장 핏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지팡이까지.

거기에 동양인임을 감안하고도 너무 어려 보이는 얼굴도 한몫했다.

“안녕하십니까, 태화 의료원…….”

수혁은 기대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시선을 받으며 바루다와 잠시 대화를 주고받았다.

예전처럼 허공을 보며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참사는 없었다.

바루다와의 대화가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금은 간단한 대화로 그럴 일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뭐라고 소개하냐? 왠지 좀 있어 보여야 할 거 같은데.’

[부센터장이라고 하시죠.]

‘아직 아니잖아?’

[이거 본격적으로 얘기 되고 할 때쯤이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중간에 틀어질 것도 아닌데요, 뭐.]

‘하긴…… 틀어질 리는 없겠지.’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겼다면 아마 거들다도 다 어그러진 다음일 터였다.

수혁이 죽었거나 중병에 걸리거나 뭐 그렇게 돼야 가능한 일일 테니까.

이미 윗선에서, 그것도 제일 위에서 결정한 사안 아닌가.

심지어 원래 반대파였던 이들 중에서도 김문제 교수 및 그가 설득한 몇몇이 돌아선 참이었다.

비록 박상헌 교수와 그를 위시한 몇 사람과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야 말았지만.

벌벌 떨어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쪽이지 수혁은 아니었다.

‘오케이, 간다.’

해서 수혁은 지르기로 했다.

“저는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던 신현태가 잠시 신음을 흘렸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신현태가 지금까지 학회에서 굴러먹은 짬밥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현종과 함계 다니다 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당황스러운 일들을 코앞에서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부센터장?”

“태화의료원이 어디야?”

“몰라? 그래도 아시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텐데……. 이쪽으로는 좀 약하지만. 주류 의학에서는 대단해.”

“엄청 어려 보이는데…….”

“천잰가?”

“그런가 본데.”

그 덕에 몰려든 이들은 수혁의 말을 의심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실리콘 밸리에도 괴물들이 몇 있기도 하지 않은가.

저 나이에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 준다고? 뭐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이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이 몰리는 지역이니 인재도 몰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천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보다 더 중요한 보상을 찾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과거에는 질병이 일단 발병하고 나면 그걸 고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 방식에는 한계가 있죠. 결국 질병 발현 전에 발견해서 예방하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가고 있죠. 여기 모여 계신 디지털 헬스 케어 분야에 계신 분들이야말로 그것을 선도하고 있고요. 의료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수혁은 웅성대는 틈을 타 일단 칭찬부터 던졌다.

하여간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던가.

한국이고 외국이고 이것만큼은 다를 수가 없었다.

“음.”

“으음.”

과연 다들 만족스러운 얼굴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맨 앞에 앉아 있던 다니엘 러셀 또한 그랬다.

제아무리 미국이 규제에서 자유롭다고 하나, 기존의 의료진들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또 의사나 간호사 그러니까 의료진도 아니면서 무슨 놈의 헬스 케어냐 하는 말도 도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자격지심이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다른 나라 의사라고 해도 어찌 되었건 의사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프로그램 거들다는 바로 그 패러다임의 변화에서 출발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미 패혈증으로 인한 쇼크가 발생한 다음에는 늦었다고 봐야 합니다. 특히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그렇죠. 쇼크로의 진행도 빠르지만 쇼크 발생 이후의 악화도 빠릅니다.”

“음.”

여기 앉아 있는 이들 중 실제로 병원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이는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설령 의사 면허증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이니만큼 의료진과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데 헬스 케어 사업을 어찌한단 말인가.

[잘 따라옵니다.]

‘오케이.’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다들 잘 알아먹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그렇기에 조기 발견 또는 예측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감염 내과 학회에서 발표한 패혈증 예측 스케일이 있고, 이용 중에 있다고 합니다. 논문에서는 그렇게 얘기합니다만……. 현장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고, 미국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누군가 답을 하기에 돌아봤더니만 명찰에 메이요 클리닉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도 그쪽 교수진인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미 산합 협력이 대세가 된 지 오래이니, 더 빠른 편에 속하는 미국에서는 당연히 그럴 터였다.

“현장은 논문 속 세상이 아니죠. 실시간으로 환자가 오고 안 좋아지고 처치를 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의료 환경을 개선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의료진의 근무 시간을 줄이겠답시고 지나친 교대 근무를 하게 되면, 환자에 대한 인계에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병원에서 실험적으로 시도했다가 철회한 바 있죠. 어찌 되었건 한 명의 환자는 될 수 있으면 한 명의 의료진이 보는 것이 좋다는 얘깁니다.”

의사가 인간이 아니어야 가능한 얘기긴 했다.

단 한 명의 환자만 본다고 해도 그랬다.

상태가 안 좋은 환자는 시시각각 악화되기 마련이었고, 의료진의 관심과 처치를 24시간 요구하지 않는가.

그 누구도 24시간 깨어서 매일 환자를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의료진의 근무 시간이 지나치게 늘어나게 되면…… 반대로 또 환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논문도 수도 없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이 와중에 아직 나빠지지 않은 환자까지 예측해서 치료하라는 건 무리한 주문입니다. 상당히 좋은 스케일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외면받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나마 미국은 값비싼 의료비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중환자실 환자가 제한되는 편이었다.

다시 말해 좋은 의료 보험을 가진 돈 많은 환자들에 한해서는 여러 의료진들에 의해 충분한 진료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반대는 아예 치료를 못 받거나, 하나 마나 한 치료만 받는다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상대적으로 중환자실이 저렴하기에 의사 한 명당 봐야 하는 환자 수가 훨씬 많았다.

물론 같은 이유로 중환자실 시설을 모든 병원이 최소한으로 맞추고 있긴 하지만.

하여간 의료진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을 누군가 대신 해 주면 어떨까? 도와줄 만한 인력이나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개발한 것이 바로 이 ‘거들다’입니다.”

따라서 현재 많은 디지털 헬스 케어 프로그램은 의료진의 짐을 덜어 주는 데 주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주 사용자인 의료진들에게 선택받게 될 확률이 높아서였다.

“거들다는 병원 내의 모니터링 시스템과 전자 의무 기록과 연동해서 각 환자의 바이털 사인 및 패혈증 예측 인자로 쓰이는 혈액 검사 수치를 모아서 분석합니다. 절대적인 수치뿐만 상대적인 변화도 감지하기 때문에 기존에 쓰이던 패혈증 예측 스케일보다 임상에서 더 널리 쓰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음.”

상대적인 변화.

아무래도 절대 수치를 신뢰할 수 없는 모바일 기기에서 주로 쓰이는 개념이었다.

가령 모바일에서 청력 검사를 했다고 가정해 볼 때, 거기서 나온 청력 결과치를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주변의 소음이 어땠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기기의 출력이 제대로 되었는지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일한 기기로 다시 했을 때 결과가 나쁘게 바뀌었다면, 그 변화 자체는 신뢰할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라고 보면 되었다.

“예를 들어,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으나 기존의 혈압이 높았다면 여전히 정상 범위 또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범위에 있을 수 있겠죠. 이걸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수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 대고 있는 이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옳거니. 약 잘 판다. 진짜 그럴싸하다. 솔직히 별것도 아닌 놈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시간만 주면 뚝딱 만들 만한 사람이 한가득인데.]

바루다는 그 반응에 딱히 흡족해하지 않았지만.

뭔 상관이란 말인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웃어? 지금 황선우 같은 놈이 주목받고 수혁은 뒷방으로 밀리는 상황보다 더한 건데 웃어?]

바루다의 이어지는 말을 씹으면서였다.

“그러니까…… 기존의 알람 시스템으로는 결코 잡을 수 없었던 위험을 이 거들다는 잡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철저히 무인 시스템을 통해서요. 일단 태화 의료원 통계를 보면 이 프로그램 사용 전후로 조기 발견 확률이 거의 4배 이상 뛰었습니다. 설문 조사를 통해 확인한 의료진의 피로도는 절반가량으로 떨어졌고요.”

요약하면 그냥 대박이라는 뜻이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들어야 정상이었다.

“아, 최윤섭 박사님.”

손을 든 이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 디지털 헬스 케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최윤섭이었다.

각종 규제와 앞에서만 관심을 보이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상처를 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수혁이나 신현태에게는 그저 똑똑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거의 대부로 통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이만한 성과면 그래도 수가 인정에 도전해 보셨을 거 같은데……. 왜 그런 얘기가 없습니까?”

“아……. 네. 사실 태화 의료원하고 생명 통해서 심의를 넣은 바 있습니다. 결과는 불가였습니다.”

“왜죠? 뭔가 프로그램에 결함이라도 있습니까?”

흔히 나랏돈이 날로 먹는 돈이란 얘기를 하지만.

막상 나랏돈 타려고 해 본 사람은 그게 진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았다.

굉장히 규정이 빡빡한 편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해 본 사람들만 타 먹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규정이 영 말도 안 되는 것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절대로 인정이 안 되게끔 되어 있다고 보면 되었다.

문제가 없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기도 했지만.

하여간 최윤섭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질문을 던졌다.

“아뇨, 프로그램에 결함이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작 과정을 문제 삼았습니다.”

“제작 과정?”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신 분들은 다들 아실 겁니다. 그저 프로그램 제작에만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라는 걸요. 일단 모니터링 대상자가 되시는 분들께 소정의 답례를 드려야 합니다. 비침습적 기기라 해도 윤리위원회의 규정상 그렇죠.”

“네, 그렇습니다.”

“또 각 과에서 어찌 되었건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거기에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는 데에 대해서도 협조를 구해야 합니다.”

“네.”

“식약청에서는 이 점을 잘 이해해 주었지만, 그 윗선에서는 오직 프로그램 제작비만 보더군요. 그것도 통상적인 앱 개발비만 쳐주었고, 이렇게 개발비가 적은 프로그램에 수가를 인정해 줄 수는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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