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59화 (359/1,303)

359화 거들다 (5)

[이따위 놈한테 로열티를 내?]

장첸의 말에 바루다가 뜬금없이 화를 냈다.

그래 봐야 이따위 놈, 그러니까 거들다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말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와……. 내가 진짜 세상에 나가면 이거 진짜 뒤집어질 텐데.]

‘그래서 안 돼. 네가 나가는 건……. 그리고 나가는 순간 고물인데 뒤집어지겠냐. 나만 죽거나 바보 되고 말겠지.’

[하……. 억울하네? 그때 대체 왜 터졌을까요?]

‘내가 알어? 그리고 그렇게 있어 봐야 지금처럼 됐을 거 같냐.’

[하…….]

수혁의 말이 기분이 나쁠 수는 있어도 사실이었다.

이미 강한 인공지능 개발은 다들 포기하고 철수하고 있지 않은가.

바루다가 이렇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히 수혁의 오감을 죄 사용할 수 있는 데다가, 24시간 쉬지 않고 인간의 뇌와 실시간 소통할 수 있어서였다고 봐야 했다.

즉 이러한 환경이 절대 주어질 수 없었던 예전의 깡통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발전은 꿈도 꿀 수 없었다는 말이었다.

“계약 조건은…….”

장첸은 그 사이에도 말을 이어 나갔다.

‘여기서 바로 계약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수혁이야 바루다와 싸우느라 바쁘기도 했고, 또 워낙에 이쪽으로는 문외한이지 않은가.

바루다에 의해 의학 공부하고, 또 각지에서 밀려드는 컨설트 해결하기도 바쁜 몸인데 언제 금전 감각을 채운단 말인가.

딱히 수혁뿐만 아니라 많은 의사들이 그랬다.

괜히 사기 치기 좋은 대상 업종에서 의사가 항상 상위를 차지하는 게 아니었다.

특히 병원 안에서만 살다가 딱 밖으로 나온, 새 전문의들이 제일 문제였다.

‘흠.’

그나마 신현태는 좀 나은 편이었다.

와이프가 잘나가는 회사원이지 않은가.

아무래도 이런저런 큰돈 오가는 얘기도 들어 왔고, 또 계약 얘기도 많이 들은 참이었다.

‘아무래도 애플이랑 딱 반반 정도인 거 같은데…… 우리가 들어가면 이쪽이 확 유리해지는 그림 아닌가?’

해서 감이 왔다.

수혁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애송이로 보이지 않은가.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의학적인 부분에서야 대가라는 말도 실로 부족할 지경이었지만 인생이란 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전문 분야 외에도 살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문제는 누가 그걸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조금씩 당하면서 익혀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음, 잠깐만요.”

물론 신현태는 굳이 수혁이 뼈아픈 경험을 하게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네?”

장첸으로서는 의외의 일이었다.

내내 가만히 있던 사람이 나서서였다.

게다가 이수혁과 동년배도 아니고 꽤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이지 않은가.

“계약은 우리도 좀 검토를 해 봐야 합니다. 사실 이번에 여기 온 게 그 목적도 있어서…… 검토해 줄 직원들도 오거든요.”

“아…….”

“내일부터가 세미나 정식 시작이라 그때 올 겁니다. 빠른 시일 내에 검토를 해 보죠. 화이자하고도 얘기가 돼야 하는 부분 아닙니까?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해 화이자에서 자금 출연을 좀 했거든요.”

“그, 그건…… 그렇죠.”

장첸은 당황했다.

‘날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드문데?’

엄밀히 말하면 사기 치러 온 것은 아니긴 했다.

그 비슷한 것을 치려고 온 것이라 애써 변명한다면 그럴 수 있었다.

때문에 표정도 자연스러웠을 텐데, 왜 이렇게 나올까.

‘내 공학도 스탠다드 얼굴이 안 먹힐 줄이야.’

어리숙해 보이면 계약에 있어 불리한 면만 있을 거 같지만.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보이면 오히려 유리할 때가 훨씬 많았다.

특히 지금처럼 정보의 격차가 있을 땐, 상대가 무심결에 이 사람이면 뭐 믿을 만하겠지 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었다.

“여기서 그냥 이렇게 정할 문제는 아닐 거 같아요. 사실 아깐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애플 쪽에서도 계약 의사가 있더라고요.”

“네?”

신현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갔다.

단지 자신의 찌르기가 통하지 않았다고만 생각하는 것보다는, 또 다른 막강한 라이벌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협상에 있어 더 유리한 법이기에 그랬다.

‘어휴, 그 새끼들……. 우리보다 진짜 요만큼 좋은 조건으로 딜을 걸었어.’

이런 일이 있을 때, 협상자가 얼마나 열이 받는지는 와이프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그날만은 정말이지 쥐 죽은 듯 있어야만 하지 않았던가.

이미 수틀렸는데 밉보였다간 뭐라도 얻어맞을 수 있었다.

이상하게 친부모라는 사람들도 와이프 편을 들어서 억울함을 토로할 길도 없었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애플에서도 계약 의사를 보내왔어요.”

“아니…… 이건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만든 프로그램인데요?”

“별로 어렵지 않다던데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앱이 안드로이드에서도 쓸 수 있고, 애플에서도 쓸 수 있지 않은가.

신현태야 프로그래머가 아니니 변환에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것 정도는 쉬이 알 수 있었다.

[잘하네, 신현태.]

‘원장님한테 배웠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과장도 하고 경험이 많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은 아니겠죠.]

‘그러니까. 잘하네. 우린 닥치고 있을까?’

[네, 이런 상황은 시뮬레이션해 본 적도 없고, 데이터도 없습니다. 닥치고 있죠.]

‘오케이.’

수혁과 바루다는 그런 신현태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실수로라도 입을 열지 않도록 입술에 힘을 가득 준 채였다.

“그…… 아니, 아까는.”

“계약 왔다는 걸 뭐 하러 다 말씀드립니까. 우리가 지금이라도 여기 구글이 계약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떠들어 대면 좋겠습니까?”

“그건…… 그건 아니죠.”

“기본적인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시는 거 같아 말씀드렸습니다. 이해해 주실 수 있죠?”

“무, 물론입니다.”

그사이 주도권은 완전히 신현태에게 넘어와 버렸다.

그나마 계약을 뒤로 미루자 뭐 이런 얘기만 나올 때까지만 해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있더니.

애플 얘기가 나오자마자 눈에 띄게 쩔쩔매고 있었다.

[식은땀이 나는군요.]

‘보여?’

[저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확실히 이전과 비교하면 얼굴색도 하얘졌습니다.]

바루다는 장첸의 상승한 불안감과 초조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수혁에게 알려 주었다.

이걸 신현태에게 알려 주면 더 강하게 나갈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즈음, 신현태가 말을 이었다.

“그럼, 살펴 가시죠. 저희 이메일로 지금 구글에서 생각하는 조건 보내 주시면 저희가 검토하겠습니다.”

“이메일로 조건을 보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음……. 아, 알겠습니다.”

신현태가 시전한 스킬은 소위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라 불리는, 주로 악명 높은 상인들 사이에서만 암암리에 전수되던 고위 스킬이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 퍼진 지 오래라, 신현태와 같은 책상물림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와……. 이건 만만치 않네. 의사가 아닌가? 계약을 좀 해 본 사람 같은데…….’

당연히 미국에서 나고 자라고 실리콘 밸리에서 일해온 장첸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선제시를 하라니.

내가 구글인데.

이런 경우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래도 안 돼……. 이걸 애플에서 먹으면…….’

그렇지 않아도 북미 지역에서만큼은 아이폰 판매량이 태화나 칠성을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 말은 곧 텔레닥터라는 앱 유저도 아이폰 유저들이 더 많다는 얘기였다.

말이야 반반이라고 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구글이 좀 더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 진짜 윗선이랑 의논을 해 봐야겠네.’

해서 장첸은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며 사라져 갔다.

신현태는 장첸의 모습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교수님, 진짜 잘하시던데요?”

“그래? 그렇게 보였으면 다행이다. 어설프게 하면 오히려 더 깔보일 수가 있어서 이게.”

“아뇨, 아뇨. 전혀 그렇게 안 보였어요. 완전 갑으로 보였어요.”

“맨날 와이프한테 까인 보람이 있네.”

“네?”

“아냐.”

신현태는 고개를 급히 내저었다.

안 좋은 기억이라도 털어 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데 정말 계약서 검토할 직원도 오나요?”

수혁은 신현태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물었다.

그 말에도 신현태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안 오지. 우리 애초에 여기 온 게…… 그냥 화이자 담당자가 우리 거 북미나 어디 넣어 주길 바라서 온 거잖아. 큰돈 벌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한 상황이었기 했다.

아까 수혁이 말한 대로 지금 표면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헬스 케어 관련 기업들은 주로 b to c, 그러니까 기업이 아닌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실적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지 않은가.

패혈증 예측 프로그램과 같이 의료진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지 않겠냐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렇…… 그렇긴 하죠. 그럼 어째요?”

“어쩌긴……. 우리라도 검토를 하든가 아니면 도움을 좀…… 응.”

신현태는 수혁의 말에 넋두리를 늘어놓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느새 다른 사람이 부스 안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내민 명함 때문이었다.

한쪽 구석이 잘린 사과가 그려진 명함이었다.

“진짜 왔네.”

“아무래도 아까 장첸? 그 사람이 말한 것처럼…… 지금 이쪽으로 플랫폼 전쟁 중인 모양인데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고래 싸움에 대박 날 수도 있죠.”

“그럴 수도 있는데…….”

신현태가 명함을 받자, 사내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안쪽 테이블을 향해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애플 전자의무기록 팀장 팀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서였다.

“하, 내가 세계적인 기업을 두고 저울질하는 날이 올 줄이야…….”

신현태는 먼저 들어가 아까 장첸이 깠던 커피 캔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고 있는 팀을 보며 중얼거렸다.

구글과 애플이라니.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과호흡이 올 거 같았다.

의사가 되면, 또 대학 병원 교수가 되면 이런 일은 평생 없을 줄 알았더랬다.

그저 환자 진료만 보면 될 거 같았는데, 갑자기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수혁아, 네가 좀…….”

해서 수혁에게 떠맡기려고 했다가, 이현종의 말을 떠올렸다.

어찌나 자주, 반복해서 말을 했던지 지금도 눈앞에 서 있는 거 같았다.

[이번 세미나는 수혁의, 수혁에 의한, 수혁을 위한 세미나야. 그것만 명심해. 너는 그냥 봉사하러 가는 거야. 알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참 오버한다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니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설마 이걸 다 예상했나?’

이현종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 교수님. 저 사람도 커피 마시면서 기다리는데요?”

고뇌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번뇌 따위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신현태를 채근했다.

‘그래……. 내가 널 위해 간다…….’

해서 신현태는 분연한 얼굴이 되어 다시 격전지로 향했다.

이번 상대는 애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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