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63화 (363/1,303)

363화 공룡들이 아부해 (1)

안내받은 자리는 제일 앞자리였다.

영화관과는 달리 어차피 단상이라고 해 봐야 허벅지 높이 정도였기에 사실상 맨 앞이 강연을 듣기에 가장 좋은 자리라고 보면 되었다.

목을 뒤로 젖힐 일은 없다, 이 말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장첸하고는 별 교류가 없다는 말과는 달리 떡하니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뭐 하긴 얼굴도장 또 찍는 거지.’

[열심이네요. 구글이라면 그래도 큰 회사 아닙니까?]

‘큰 회사지.’

큰 회사라는 말도 모자라지 않나 싶었다.

태화 의료원의 모기업인 태화 그룹도 어마어마한 세계 굴지의 기업이긴 하지만.

구글에 비하면 아무래도 빛이 좀 바래지 않던가.

시가 총액 천조 클럽의 일원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키트루다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장첸은 의사도 아니면서 제일 최근에 나온 약 이름을 주워 넘겼다.

실제로 관심이 있기는 했기에 수혁은 그렇다고 말했다.

“네. 많을 수밖에 없죠. 요새 연구되는 레지멘 중에…… 특히 폐암 쪽은 저 약을 빼고는 얘기가 안 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그거 아십니까?”

“뭘요?”

“키트루다 개발할 때 저희 구글이 주요 투자자 중 하나였습니다.”

“잉? 그래요?”

이건 좀 구미가 당기는 얘기였다.

구글이라고 하면 무조건 IT 쪽만 하는 줄 알았는데, 바이오라니.

너무 느닷없는 얘기 아닌가.

“네, 저희가 인공지능 개발도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현실적인 이유로…… 자율 주행 쪽으로 주력하고 있으나 역시나 의료 쪽은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인공지능하고 바이오는 좀 다른 얘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이어져 있기도 합니다. 마침 다음 연자가 저희 쪽 펀딩 받은 연구자시군요.”

“펀딩을……?”

수혁은 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이미 연자가 강단에 선 이후였다.

이현종이라면야 누가 나왔건 궁금한 게 있으면 입을 열었겠지만.

다행인지 뭔지 수혁은 아직 그만큼 뻔뻔하지는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메이요 클리닉의 한스입니다.”

처음부터 메이요였다.

거의 뭐 현대 의학을 선도하고 있는 병원 중 하나라고 보면 될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아직 대한민국의 병원 중 저 자리에 설 수 있는 병원은 하나도 없었다.

[마음 약하게 먹지 마십시오. 이제 곧입니다.]

‘곧?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냐?’

임상만 놓고 보면 뭐 곧이라는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건 간에 임상은 빨리 따라가면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연구는 멀었다는 말도 좀 모자랄 지경이었다.

메이요만 해도 임상 진료동과 연구동의 크기가 엇비슷할 정도인데, 태화는 연구동이라고 해 봐야 병원 지하에 낑겨 들어가 있는 수준 아니던가.

태화 그룹 회장이 몸소 미래 먹거리 중 하나가 바이오라고 선언했던 것을 감안하면, 또 실제로 태화가 그나마 다른 기업들에 비해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처참한 수준이었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의료 연구에 대한 투자가 딱 그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네가 뭐.’

[이러깁니까? 제가 얼마나…….]

‘조용히 해 봐. 방금 되게 이상한 얘기 했어, 저 사람.’

[뭐요. 어? 어……. 진짜 좀 이상한 얘기네요, 이건? 데이터화 활성화합니다.]

‘어, 최대한 다 해 놔.’

이 공기, 이 온도, 이 습도, 이 분위기 다 기억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연자는 그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운 말을 하고 있었다.

“키트루다, 즉 펨브롤리주맙은 그 타깃이 되는 표지자가 있을 경우 극적인 효과를 보입니다. 이론적으로도 그렇고 임상적으로도 대개 그렇죠. 그런데 반대로 표지자가 없는 경우에도 펨브롤리주맙을 이용했을 때 효과를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다들 알고 있는 얘기였다.

이론적으로는 무조건 타깃이 되는 표지자를 발현하는 암에서 효과를 보여야 하고,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효과가 없어야 하는데 꼭 그렇지가 않았다.

“이것은 표지자가 있고, 효과도 있던 환자의 병리 슬라이드입니다. 옆에 있는 건 표지자가 없으나 효과는 있던 환자의 병리 슬라이드죠.”

이상하다 싶었으나, 연구할 짬도 없고 설비도 없었더랬다.

조태진이야 당연히 수혁보다 훨씬 더 원했으나 일단 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저 펨브롤리주맙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안 갖추어져 있었다.

건강 보험에서 1차 약제로 쓰는 경우를 인정하지 않아서였다.

그 말은 곧 다른 약을 일단 써 보고 실패한 경우에만 이 약제가 보험이 된다는 뜻이었다.

돈만 생각해 보면 그럴싸할 수도 있겠지만, 약의 기전을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기준이었다.

‘환자 면역력이 있어야 효과가 좋은 약인데…….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1차 약제를 써 보고 안 돼야 쓰라는 게 대체 누구 머릿속에서 나온 걸까.’

심지어 치료 실패한 경우이니, 암은 더 진행한 이후 아니겠는가.

암은 그 자체로 환자의 삶의 질뿐만 아니라 컨디션도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질환이었다.

면역력이고 뭐고 이중으로 나빠진 다음에야 쓰게 된다는 뜻인데, 당연히 원래 기대할 수 있던 치료 효과보다 훨씬 더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엉망진창이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알 수 없죠. 그런 건 뭐 어떻게 못 합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하겠어. 위에서 정한 건데.’

[백이 원장이잖아요?]

‘원장님도 안 돼. 김다현 사장님이 가도 콧방귀도 안 뀔걸.’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야.’

학회에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수혁은 조태진이 불가 판정을 받고 크게 한숨 쉬고는, 환자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거의 울면서 이어 나갔던 것을 기억했다.

환자도 보험이 안 되면 1년에 5천만 원이 든다는 약값에 울었더랬다.

“지금 화면은 그 반대의 경우입니다. 효과가 없던 경우죠. 메이요에서는 엠디 엔더슨, 존스 홉킨스, 노스 웨스턴, 스팬포드와 다기관 연구를 통해 각각의 경우에 해당하는 슬라이드를 이용해 천 개씩 병리 슬라이드 판독 인공지능, 슬라이더를 학습시켰습니다.”

슬라이더란 이름이 나오자, 옆에 있던 장첸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구글에서 투자했다는 녀석이 바로 저 녀석인 모양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보이기는커녕 프로그램도 없는 듯했으나, 바루다는 곧 으르렁거렸다.

[그래 봐야 하잘것없는 놈이.]

‘기다려 봐, 다 쓰임새가 있겠지. 괜히 이 자리에서 발표하겠냐?’

[괜히 할 수도 있죠.]

‘인공지능한테 너무 불타지 말고.’

[수혁도 더 잘난 인간 보면 불타죠? 저는 오죽하겠습니까? 더 잘나지도 않은 놈들이 주목받고 있는데?]

‘음.’

딱히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연자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수혁은 집중했다.

“그리고 신규 케이스에 약을 쓰기 전 슬라이더에 분석을 시켰습니다. 과연 펨브롤리주맙, 키트루다의 효과가 어떨지 여부를 물은 거죠. 그 결괏값과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표지자의 유무를 통해 예측한 것 중 어느 것이 더 임상적으로 유의미한지를 비교하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타깃이 되는 표지자의 유무가 절대적이어야 할 터였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표지자의 유무 그 자체보다 슬라이더의 판독이 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 메이요 클리닉에서는 슬라이더의 판독을 적용한 결과, 그 간 70%에 머물러 있던 펨브롤리주맙의 치료 효과를 85%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표지자에서 음성이 나온 환자들까지 포함한 결과이기에 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병리 슬라이드의 패턴에 무언가 숨어 있던 탓이었다.

다만 슬라이더라는 녀석이 취한 학습 행태가 하필 딥러닝이었기에 과정을 알기가 어려웠다.

“후속 연구로 이 병리 슬라이드의 패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를 파헤쳐 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자는 비록 과정은 불분명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슬라이더라는 병리 슬라이더 판독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게 된 연구라고 떠들어 댔다.

수혁이 듣기에도 그러했고, 다른 이들이 듣기에도 그러한 모양이었다.

특히 투자 주체자인 구글과 화이자가 그랬다.

“좋아, 더 강한 레지멘을 만들어 봅시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왔다는 연자는 발표를 마치자마자 화이자 담당자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구글 쪽에서도 한 명이 다가가 낑겨 들었다.

하지만 장첸은 여전히 수혁 옆에 있었다.

“잘 들으셨나요?”

인마 봤지, 뭐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아, 재수 없네. 우리 애플이랑 합시다.]

‘왜 이렇게 감정적이야. 계약은 비즈니스야. 제일 유리한 쪽이랑 해야 한다고.’

[근데 재수가 없는걸요.]

‘그러기로 따지면…….’

수혁이 바루다와 아웅다웅하느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는 사이 장첸이 입을 열었다.

“지금 구글에서 이쪽…… 헬스케어나 바이오 쪽으로 정말 엄청난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희가 제시하는 조건이 당연히 저쪽보다 좋겠지만, 그 뒤를 생각하셔도 당연히 구글을 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닥터 리, 나이도 젊으신던데……. 연구 계속하실 거 아닙니까? 저희는 후속 연구에 대한 펀딩도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펀딩이라.

아끼지 않는다는 게 대체 어느 정도일까.

[10억?]

‘설마. 우리 프로그램 총 개발하는 데 5억도 안 들었는데. 그것도 돈 벌려고 한 게 아니잖아.’

[모를 일이죠. 물어봐요.]

‘알았어.’

궁금해진 수혁은, 속물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바루다의 도움으로 민망함을 이겨 내었다.

“그럼 얼마 정도 생각하시나요?”

“네? 알에스 비율 말인가요? 그건 저희가 아직 조율…….”

기업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시불보다는 추후 나눌 돈에 예민해지는 법이었다.

장첸은 그래서 망설였고, 수혁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쪽은 기업은커녕 개인이지 않은가.

“계약금은요?”

“아……. 최저 100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100만……?”

“달라입니다, 당연히.”

“아…….”

그럼 11억이 넘는 거금이었다.

계약금만 11억이라?

이래도 되나 싶은데, 누군가 수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음?”

팀이었다.

“구글에서는 아직 계약서 초안이 준비 안 된 모양이군요. 저희는 준비됐습니다.”

양손에 꽉 찰 만큼 커다란 서류 하나를 들고 있었다.

저걸 다 읽어야 된다니.

아무리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다지만 귀찮은 일이었다.

[한 번 더 고.]

‘오케이.’

어차피 얼굴 한 번 팔고 나면 두 번은 쉽지 않은가.

이현종이라고 뭐 처음부터 그렇게 막무가내였을까.

학회에서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피는 이어받지 못했으나, 정신만은 제대로 이은 수혁이었다.

“이쪽은 얼마?”

“네?”

“계약금 말입니다. 얼마 제시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묵묵히 있던 사람 아닌가.

하루아침에 책상물림에서 장사치가 되어 버린 수혁 앞에 팀이 눈을 끔뻑였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아아, 이게 착오가 있습니다.”

그는 계약서를 꺼내 계약금 부분에 적혀 있던 100만 달러에서 1을 슥슥 지웠다.

“이게 제대로 된 금액입니다.”

그리곤 2를 기입했다.

앉은 자리에서 11억이 뛴 셈이었다.

“이 개새끼가.”

장첸의 입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뭐, 너 뭐라 했냐? 어디 칼텍 같은 대학 같지도 않은 데 나온 놈이.”

“칼텍을 무시해? MIT면 다냐? 석사따리가. 척척석사냐?”

“유능해서 박사 따기 전에 나온 거야!”

그리고 패드립이 시작되었다.

수혁은 살짝 뒤로 빠진 채 천조국 개싸움 관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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