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65화 (365/1,303)

365화 공룡들이 아부해 (3)

“사장님, 안녕하세요.”

“되게 어색한 인사네요.”

김다현은 껄껄 웃었다.

소음이 있는 것을 보니, 사무실이 아니라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양이었다.

화면도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확실히 지체할 틈이 없는지, 김다현은 곧 웃음을 멈추고 신현태를 불렀다.

“자, 그럼 보죠.”

“바쁘신 거 같은데,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아주 커다란 계약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계약 아닙니까? 들여다봐야죠. 서류를 좀 비춰 주시겠어요?”

“네.”

그리곤 서류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다음 장이요.”

“네.”

“다음 장.”

“네.”

워낙에 계약서를 많이 검토해 와서 그런가 속도가 달랐다.

“거기, 거긴 잠시.”

“아……. 네.”

멈추는 순간도 둘과는 달랐다.

신현태와 수혁은 물론이거니와 바루다조차 무심결에 넘겼던 지점을 지적했다.

“여긴…… 둘이 진짜 급한 모양이네요. 북미 시장 외에 다른 시장에서는 알에스 비율이 달라지는데, 그 비율을 정확히 안 써 놨어요.”

“그럼 같은 비율 아닐까요?”

“외국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죠. 이건 1%로 기입하세요.”

“우리나라요? 우리는…….”

신현태는 내가 잘못 알고 있나 싶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우리나라는 아예 원격 의료는 불법이라 명시하고 있었다.

주요 선진국 중에는 유일한 나라였다.

심지어 중국을 포함해도 그랬다.

“법은 시대가 바뀌면 바뀌기 마련이죠. 계약은 안 그래요. 무조건 유리하게 가져오는 게 좋습니다. 어차피 지금 불법이라는 거 정도는 저들도 알고 있을 테니, 이렇게 기입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게다가 한국 시장에서 태화 의료원은 아주 중요한 고객이에요. 아직 1등을 완전히 굳히지는 못했지만, 그건 거기 계신 두 분이 해결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김다현이 둘이라 하기는 했지만, 실은 수혁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 정도는 신현태도 알고 있었다.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신현태 또한 수혁을 조커와 같은 비대칭 전력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물론입니다.”

“자, 그럼 또 볼까요?”

“네.”

“다음 장.”

“네.”

“다음.”

김다현은 이후로도 계약서를 꼼꼼히 살펴 주었다.

사장이 이러고 있는데, 차마 밥숟가락을 뜰 수는 없어서 코스 요리가 죄다 식어 버릴 지경이었다.

“다 됐습니다.”

“어떤가요?”

“확실히 아주 좋은 조건이에요. 저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두 회사는 전체 병원의 40%가량을 선점하고 있거든요. 굳이 이게 없어도 앞으로 2, 3년 내에 70% 이상 점유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군요. 미국은 진짜 이쪽으로 빠르게 변하네요.”

“지금 시스템에 워낙 문제가 많으니까요. 우리랑은 사정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네네.”

신현태는 미국인들이 괜히 셀프 치료에 매진하는 게 아니란 것을 떠올렸다.

대체 의학 부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효능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주류 의학이 너무 비싸서가 더 큰 이유였다.

심지어 접근성이 좋지도 못했다.

그 틈새를 원격의료가 공략하고 있었다.

“그런 걸 감안해서 보면 둘 다 최고의 조건입니다.”

“아……. 그럼 어떻게 하죠.”

차라리 어느 하나가 월등히 나으면 좋을 텐데.

이렇게 되면 찍기밖에 없나 싶었다.

물론 이건 의사의 좁은 식견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잔뼈가 굵은 김다현은 달랐다.

“그럼 이제 좀 더 큰물로 끌고 와야죠.”

“큰물…… 이요?”

“신현태 과장님, 우리는 태화입니다. 그렇죠?”

“아, 네네. 그렇죠.”

“저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딱히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회사의 이익을 생각해도 좋다고 봅니다. 과장님은 어떻습니까?”

“어……. 저도 뭐 그렇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태화 의료원의 의료진에 대한 대우는 국내 최고 수준이었다.

임금이 막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연구비나 과에 대한 설비 투자 및 삭감으로부터의 보호가 그랬다.

어지간하면 진료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게다가 아, 정말 개같이 힘들다 싶을 때면 귀신같이 보너스도 들어왔다.

신현태에게는 진료 자율성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많은 전공의들은 그걸 금융 치료라 부르며 태화에 대한 충성심을 되새겼다.

“좋아요. 그럼 이 계약은 구글과 합시다.”

“이유가 뭔지 여쭤도 됩니까?”

“당연하죠. 우선 구글 안드로이드는 우리 태화와 이익을 쉐어 합니다.”

“네.”

“아마 이 앱이 완성되고 나면 모든 안드로이드에 깔리겠죠. 우리나라는 불법이니 예외가 되겠지만, 외국에서는 그렇게 될 겁니다. 플랫폼 전쟁에서 구글이 우위를 점하면 점할수록 안드로이드 폰이 더 팔릴 겁니다.”

“아…….”

“그럼 우리가 태화 전자에 빚을 지우는 셈입니다. 이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 이미 태화 전자는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할 수준은 한참 전에 지났잖아요.”

“무슨 소린지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우리가 뭘 요구할 때 큰소리칠 수 있겠군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기업 간의 관계는 인간관계와 크게 다를 거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아무리 큰 기업이라고 해도 그걸 이루는 것은 사람이었다.

의외로 기업들의 의사 결정에 감정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았다.

물론 비즈니스적 이득이 크게 차이가 난다면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비슷한 경우에는 절대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바로 답변할까요?”

“아뇨, 아뇨. 우선 그거 스캔 떠서 저한테 보내 주세요. 다시 한번 검토하고, 바꿀 거 있으면 바꿔서 드리겠습니다. 만약 두 분…… 아니지, 이수혁 선생의 이익이 변하게 된다면 알려 드릴 텐데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현종 원장님이 신신당부했거든요.”

“아.”

이현종은 김다현 사장이라고 해서 태도를 완전히 달리할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가서 나이를 잊고 얼마나 주책을 떨었을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김다현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짚은 신현태를 보며 웃었다.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는 않네요. 안 볼 사이도 아닌데.”

“네네, 그렇죠. 죄송합니다.”

“아뇨, 아무튼, 그렇게 해 주세요. 저쪽에서 채근하면 그냥 기다리라고 해 주시면 됩니다. 계약서 보기 전에는 긴가민가했는데, 이걸 보니까 확실하네요. 이쪽이 갑입니다.”

“네, 사장님.”

김다현은 신현태가 그러마라고 했음에도 몇 번이나 더 기다리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무래도 계약에 서툰, 그래서 사기꾼들의 먹잇감 일 순위가 되기에 십상인 의사들이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자, 그럼 먹자.”

하여간 전화를 끊은 신현태는 이제 더 보기도 싫다는 듯 계약서 꾸러미를 구석에 치워 두고는 젓가락부터 집어 들었다.

[빨리! 저거! 만두!]

‘샤오룽바오?’

[그래요. 육즙 다 식었겠네.]

수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바루다가 머릿속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오.”

“식었는데도 맛있네.”

“그러니까요. 와……. 이럴 수가 있나.”

수혁은 허허 웃으며 그릇을 비워 나갔다.

바루다 때문에 더 과하게 웃고 있었는데, 신현태로서는 내막을 알 길이 없지 않은가.

그냥 역시 이 녀석은 보기와는 다르게 식탐이 좀 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참 수혁아, 이번에 계약금 받으면 네가 한번 사. 특히 현종이 형이 진짜 좋아할 거야.”

“아, 아빠요?”

“어? 어어. 아빠…….”

그러다 문득 이현종 생각이 나 이렇게 말했다.

물론 수혁이 사지 않는다고 해서 딱히 삐지거나 할 거 같지는 않았다.

이현종의 수혁에 대한 사랑은 이를테면 아가페적인 사랑이었다.

아낌없이 퍼 준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얻어먹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형은 진짜 울지도 몰라.’

채신머리라고는 없는 양반 아닌가.

특히나 수혁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빠, 오늘은 내가 살게요.’

만약 이 말을 듣는다면 반드시 울 터였다.

[얼씨구, 저 양반은 왜 눈시울이 붉어지나.]

한 가지 신현태가 눈치채지 못한 것이 있다면, 본인도 비슷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생각만으로도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어 오고 있었다.

‘지금 할까, 삼촌이라고.’

[술이라도 한잔해야 되나 했는데……. 저쪽은 이미 만취네요.]

정말이지 진탕 마신 사람처럼 감정이 울렁거렸다.

이게 다 수혁 때문이었다.

난데없이 찾아온 늦둥이처럼 교수들의 마음을 빼앗고 있었다.

누구나 꿈꾸던 의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다가, 나름 살가운 면도 있어서였다.

아니, 살갑다기보다는 애가 고마운 줄을 아는 사람이었다.

배은망덕한 인간이 넘쳐나는 세상에, 능력도 있는 놈이 싹수까지 있으니 기꺼울 뿐이었다.

“삼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기껍다, 기꺼워하고 있는데, 수혁이 기습 공격을 해 왔다.

신현태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응? 뭐,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삼촌이라고?

하도 듣고 싶어서 환청이 들리나.

이비인후과를 가 봐야 하나, 아니면 정신과를 가 봐야 하나.

‘이명에 뜻이 있으면 환청이니까……. 역시 정신과인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삼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냐고요.”

하지만 두 번이나 들릴 리는 없었다.

게다가 입술 모양도 삼촌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수, 수혁아 너…….”

“네?”

“아니, 아냐.”

안 그러려고 했는데.

기대도 안 하고 있었는데 들어서 그런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거 같았다.

“나 화, 화장실 좀.”

이런 꼴을 제자 앞에서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해서 신현태는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뭐야, 저기 뭐 청혼이라도 했나?”

“아냐, 나이 차이 나는 남자 둘이었는데.”

“요새는 인마.”

“아, 하긴.”

덕분에 밖에 있던 사람들 중에는 이런 착각마저 하는 이들이 있었다.

[와……. 저렇게 펑펑 우네.]

‘괜히 했나.’

[아뇨. 안 했으면 더 오래 울었을걸요.]

‘그런가?’

[조태진 교수한테 형이라고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형이라고 했잖아요.]

‘하긴……. 경쟁하시지…….’

수혁은 그런 신현태의 뒷모습을 황당하다는 표정 반, 민망하다는 표정 반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화장실에서 나오는 이의 얼굴도 보게 되었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주 잠깐이었고.

[음.]

하지만 바루다는 모든 순간을 사진처럼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 아닌가.

‘왜?’

[방금 그 환자……. 얼굴이 좌우 대칭이 아니었습니다.]

‘안면 마비? 후유증일 수도 있잖아?’

[눈이 돌아가 있습니다. 복시가 있을 겁니다. 만성적이었다면 안경을 꼈겠죠?]

‘아.’

타당한 주장이었다.

실제로 환자들은 오래된 병변에 대해 어떻게든 적응을 하지 않던가.

‘그 외에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만,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위급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래.’

[그럼 가 보죠.]

‘오케이.’

해서 수혁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사내를 뒤쫓았다.

덕분에 자리로 돌아온 신현태는 빈자리만 마주할 수 있었다.

‘역시 꿈이었나……. 어쩐지 갑자기 삼촌이라고 해 줄 리가…….’

그래서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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