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66화 (366/1,303)

366화 뇌경색? (1)

신현태가 때아닌 절망에 빠져 있을 때쯤, 수혁은 환자를 따라잡았다.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그래서 속도가 느린 편인 수혁이 그럴 수 있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환자가 더 느렸다.

“갑자기…… 이게 왜 이러지…….”

새카만 정장을 입은 환자는 이제 숫제 호텔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워낙에 깔끔한 외양을 하고 있기에 딱히 아파 보이진 않았다.

그저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싶을 정도일 뿐이었다.

“괜찮다고 하시지만…….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물론 자세히 보면 이상 징후가 보였다.

특히 수혁과 바루다 콤비는 남들보다 훨씬 많은 징후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안의 내전 기능이 소실되었습니다.]

바루다의 말대로 환자는 일부러 좌측에서 접근한 수혁을 보기 위해 눈동자를 돌렸으나, 우측 눈동자는 정면에 박혀 있었다.

아까 우측에서 불렀을 때는 양측 눈동자 모두 우측을 향했었으니, 우측 눈동자의 내전 기능 즉 안쪽으로 돌아가는 기능이 소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었다.

“그…… 약간 어지럽긴 한데…….”

가까이 서 보니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삼십 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뇌혈관에 어떤 이상이 생기기에는 지나치게 젊었다.

[성급한 판단일 수 있겠으나, 팔을 만져 보니 근육질입니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을까요? 유전적 소인이 아니라면…….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응, 그렇지. 하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어.’

체형과 만성 질환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증명된 바 있었다.

아무래도 근육질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고혈압이나 당뇨가 적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통계적으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그 말은 곧 반대의 상황 또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었다.

원래 의학은 예외적인 상황을 늘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저는 대한민국 의사입니다. 태화 의료원…….”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가 위급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당신 아파 보이니 병원 가 보라고 하면 들을까?

모르는 사람인 데다가, 외국인이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의사임을 밝히기로 했다.

[기왕 밝히는 거 양념을 좀 치죠?]

바루다는 그냥 레지던트라고 하기보다는 부센터장이라고 하기를 원했다.

내정이긴 해도 아직 임명장을 받은 건 아니라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럴 땐 바루다의 말을 듣는 게 좋았다.

혹 안 되면 핑계라도 댈 수 있지 않은가.

[참 불순한 사람입니다, 수혁은.]

‘닥쳐.’

해서 수혁은 그냥 지르기로 했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이라고 합니다.”

“아…….”

“성함이 혹시 어떻게 되십니까?”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사내의 반응이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아낸 후, 이름부터 물었다.

이름이란 그게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가장 익숙할 수밖에 없는 단어이지 않은가.

지금이야 의식이 멀쩡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이름을 지속적으로 불러 주는 건 환자의 예후에 도움이 됐다.

“아……. 리입니다.”

“네, 미스터 리.”

같은 성씨군, 수혁은 그렇게 되뇌면서 말을 이었다.

“자, 제 손가락을 봐 주세요. 고개는 움직이지 마시고, 눈동자만 따라오는 겁니다.”

“네.”

사내는 수혁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의사라고 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특히 대한민국의 태화라면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태화와 칠성 그리고 아선 의과 대학에서 교육을 받은 대한민국의 의사 면허증 소지자는 아주 간단한 검증 시험만 치르면 싱가포르 내에서도 의료 행위가 가능하기에 그랬다.

“어…….”

“이상한 점 느끼셨을 겁니다. 우측으로 볼 때는 괜찮지만, 좌측으로 향했을 때는 어떻습니까?”

“손가락이…… 두 개로…….”

“네, 복시가 있습니다. 봐서는 부상이 없었을 거 같은데, 혹시 어디 부딪치거나 하신 적이 있나요?”

이제 복시 및 우안의 내전근 마비를 확신하게 된 수혁이었다.

질문을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전화기를 집어 들어 995 번호에 통화를 걸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119와 같은 번호인데, 보통 의사들은 긴급 사항에 대비해 앰뷸런스 번호만큼은 숙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수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아뇨, 없습니다.”

“확실하시죠?”

“네.”

“이 증상이 발생하게 되면 자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지럼증이 생깁니다. 어지럼증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어지럼증이라기보다는…….”

리라고 밝힌 사내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본능에 의한 행동 같았다.

바루다의 판단도 수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증이 있군요.]

‘두통이군.’

방향을 특정하기는 어려웠다.

환자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머리가 아프고 메스꺼움이 있었습니다. 한 10시간?”

“아, 두통과 메스꺼움.”

뇌경색 또는 뇌출혈이 있을 때 아주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증상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흔한 증상들이기도 하지 않은가.

현대인치고 두통 한 번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터였다.

“혹시 처음 겪는 종류의 두통이었나요?”

“두통은…… 가끔, 가끔 이만큼 아픈 적도 있었던 것도 같은데…….”

“네.”

“약을 먹어도 계속 아픈 건 처음이었습니다.”

“약은 혹시 어떤 걸 드셨나요?”

“타이레놀입니다.”

타이레놀은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진통제였다.

매우 안전해서 약국에서는 물론이거니와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약.

[이전의 두통은 별거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두통은 다르군.’

[일단 전화부터 하시죠.]

‘아, 그래.’

수혁은 역시 급한 환자가 맞았단 생각을 하면서 통화를 시작했다.

“네, 995입니다.”

“네, 여기는 마리나샌즈베이 호텔…… 시느와즈리 식당 바로 앞 복도입니다. 수 시간 전부터 두통 및 메스꺼움이 있었고, 지금은 우측 내전근 마비가 발생한 환자가 있습니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출동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대원은 꽤나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수혁이 읊은 증상만으로도 이게 어떤 상황인지 딱 알아차렸다.

“미스터 리, 일단 구급차가 올 겁니다. 이 안에 보호자가 되어 줄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수혁은 전화를 마친 후, 사내에게 물었다.

머리를 싸매고 있던 리는 고개를 저어 댔다.

“아니, 제가 아프단 것이 알려지면 곤란합니다.”

“네?”

“적어도 저들에게는 알려져서는 안 됩니다. 몰래 빠져나온 거예요.”

그러고 보니 아까 행동이 좀 이상하긴 했다.

몸이 아프면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가야지, 왜 식당을 빠져나온단 말인가.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같이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사내는 절박한 얼굴로 수혁을 올려다보았다.

그 와중에도 눈이 돌아가 있어 약간은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사례라? 얼마나 달라고 할까요?]

바루다는 그 모습에서 팀과 장첸을 떠올렸는지, 선 제시 스킬을 펼치려 했다.

수혁이 지금보다 더 정신이 나간 상황이라면야 충분히 따랐겠지만.

아직 수혁은 인간에 가까웠다.

‘미친놈이.’

아픈 사람한테 대놓고 돈 달라고 하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수혁은 의사였다.

“아뇨, 제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사례는 필요 없습니다.”

“그…….”

“우선 구급차가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죠.”

“아, 네.”

수혁은 사내 아니, 이제는 환자라 부르게 된 미스터 리를 눕힌 후, 살짝 머리를 높였다.

뇌경색이건 뇌출혈이건 필수 부가결로 따라붙는 문제인 뇌압을 그나마 낮추기 위함이었다.

또 웃옷을 벗기고 벨트를 풀어 전반적인 혈액순환의 개선을 꾀했다.

워낙에 타이트한 정장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 이 조치만으로도 환자는 조금 편안해 보였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그제야 호텔 직원이 달려왔다.

심각한 대화라도 하는 건가 했는데, 갑자기 누굴 눕혀서 옷을 벗기고 있지 않은가.

“응급 상황입니다. 995에는 신고했어요.”

“아……. 그…….”

“제가 의사입니다. 당황하지 말고, 일단 기다리죠.”

“아, 네네. 어……. 일단…… 일단 1층으로 갈까요?”

“가능합니까? 부축이 아니라 누워서 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어……. 네, 가능할 거 같습니다.”

호텔 직원은 황망한 얼굴로 뛰어나더니 원래는 식자재 등을 옮기는 데 쓰이는 것으로 짐작되는 카트를 가져왔다.

한 번에 제법 많은 양을 옮기는지, 상당히 컸다.

“이만하면 될까요?”

“음, 되겠네요. 거기 좀 더 도와달라고 하죠.”

“아, 네.”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와 환자를 들어 카트로 옮겼다.

그동안 환자는 아픈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연예인인가?’

[깔끔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편견 아니냐?’

[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죠.]

덕분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환자를 알아보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식당 안에서는 소란이 일었다.

“화장실로 가신 거 아냐?”

“안에 안 계십니다.”

“어디 가신 거야?”

“거참……. 식사 도중에 갑자기 사라져? 이런 무례가 있나.”

안쪽으로 신경을 조금이라도 쓰고 있었다면 수혁도 눈치를 챌 수 있었겠지만.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이동 중이었다.

게다가 수혁은 통화 중이었다.

“아, 삼촌.”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에서 수혁이 삼촌이라고 하는 상황 아닌가.

신현태는 내가 혹시 죽은 건가 싶기도 했다.

“삼촌?”

“어, 어어. 듣고 있어.”

“화장실에서 환자 발견해서 지금 1층으로 가고 있어요.”

“응?”

죽은 건 아닌 거 같았다.

꿈도 아닌 거 같았고.

‘내가 이렇게까지 상상력이 풍부하지는 않잖아.’

수혁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상황이라면야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환자를 발견해서 1층으로 간다고?

소설이나 만화도 이렇게 뜬금없는 전개는 없을 거 같았다.

“1층으로 와 주세요. 아무래도 같이 병원 가 봐야 될 거 같아요. 아슬아슬합니다.”

“어……. 알았어.”

하지만 이수혁이라면 가능했다.

그 녀석은 남들은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인지하니까.

그저 스쳐 지나갈 만한 이상도 녀석에게는 커다란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겠는가.

단 한 번도 수혁과 같은 인지 능력을 가지고 살아 본 적 없는 신현태이지만, 이제는 충분히 믿을 수 있을 만큼 경험이 쌓인 마당이었다.

해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1층으로 향했다.

“계산요.”

“아, 여기.”

돈은 내고서였다.

정신없이 달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보니 벌써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얼굴…… 얼굴을 봐야 합니다.”

“여기서는 말고요.”

“아…….”

“제가 보증합니다. 검진 결과는 확실해요. 우측 내안근 마비입니다.”

환자가 뭘 협조를 안 하는 건지 시끄러웠다.

덕분에 신현태는 단 한 번의 헤맴도 없이 수혁을 향해 달릴 수 있었다.

“아, 삼촌.”

“어.”

문제가 있다면 삼촌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왈칵 날 거 같다는 건데.

‘참자, 참아야 해.’

그건 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 갑시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주접 따위 떨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환자가 발생했고, 수혁이 거기에 관여해 앰뷸런스로 가고 있었다.

도움은 못 될망정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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