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69화 (369/1,303)

369화 뇌경색? (4)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게 대체 뭔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뭐라고? medial longitudinal fasciculus?’

명색이 신경과다 보니 아예 모르는 이름은 아니었다.

medial longitudinal fasciculus은 뇌간에서 척수로 뻗어 가는 수초 섬유였다.

다만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거기서 기인한 부상과 관련된 증후군이라는 말이었다.

[멍해졌네.]

‘약간 어려운 개념이긴 해.’

[그래도 교순데.]

‘그건 그렇네.’

태화면 이렇게까지 깜깜이는 아닐 듯했다.

실력이 없으면 뒤로 처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 않은가.

태화의 기업 분위기도 그랬고, 또 대한민국이 처한 의료 환경도 그랬다.

잠깐 방심하면 어느새 뒤따라온 아선과 칠성이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누구에게 지지 않으려는 국민성 또한 한몫 거하게 하고 있기도 했다.

경영진과 의료진 모두 자기 계발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씀드리죠. medial longitudinal fasciculus의 부상에서 기인한 ILO 증후군입니다. 전제 조건이 하나 있는데……. 환자분께 질문을 드리죠.”

“아……. 네.”

수혁은 아까 환자가 타이레놀을 먹었다고 하면서 보여 주었던 작은 약통을 떠올렸다.

당시엔 일단 뇌혈관과 관련한 병이라 생각해서 넘어갔는데, 영상에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란 것을 확인한 참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진통제를 들고 다니진 않죠.]

‘그렇지.’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약을 먹을 수는 있었다.

고혈압이나 당뇨 또는 고지혈증이나 심지어 비염약이 그랬다.

하지만 진통제란 어디가 아파야 찾는 약이지 않은가.

멀끔한 정장을 입고 있는, 헬스를 통해 근육을 키운 사람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을까?

가능성이야 배제하기 어려웠지만, 만약 그렇다면 타이레놀보다는 소염제를 먹을 터였다.

[만성적인 통증이 있었을 겁니다. 이 경우에는 두통을 의심해 볼 수 있겠죠.]

‘내 생각도 그래. 아니지, 내 생각이 그랬지. 너 왜 네가 처음 떠올린 것처럼 그러냐?’

[한번 해 봤습니다.]

‘하여간 이상한 놈이야.’

수혁은 고개를 털어 내고는 말을 이었다.

“오늘 머리가 아프셨다고 했죠? 대략 10시간 전에. 이제는 11시간 전이겠네요.”

“아, 네. 그랬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구역감이 있었어요.”

환자의 언행은 여전히 명료하기 그지없었다.

일반적인 뇌혈관 허혈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보통 혈관이 막히면 주변 조직으로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어떤 식으로든 동반되는 증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수혁은 역시나 자기 생각이 맞을 거란 확신을 다져 가면서 질문을 던졌다.

“그게 처음입니까?”

“약 먹고 해소되지 않는 건 처음이에요.”

“증상 자체는 처음이 아닌 거죠?”

“아……. 그렇습니다. 두통이 간혹 있어요. 아무래도 골머리를 썩이는 게 제 일이다 보니.”

연예인 쪽은 아니고 정치인이 맞는 듯했다.

방금 대답을 듣고 신현태가 내 말이 맞지? 하고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어깨를 들썩이면서였다.

“그 두통이 약을 먹지 않으면 얼마나 갑니까?”

“약을 안 먹으면……. 안 먹으면 안 됩니다.”

“오래가는군요?”

“네. 그동안에는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상비약을…… 들고 다닙니다.”

진통제가 가득 든 약통을 들고 다닌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아차렸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이 환자는 갑작스레 찾아오는 통증이 있을 거란 것 정도는

실책이었다.

‘너도 아직 멀었어.’

[아니, 이걸 생각해 낸 건 자기 공이고 늦게 떠올린 건 내 탓이에요?]

‘그렇지.’

[와…….]

수혁은 가볍게 바루다를 원망한 후 말을 이었다.

“전조 증상은 없나요? 그런 종류의 두통은 보통 다른 증상을 동반하는데.”

“어……. 전조 증상이라면 그게 어떤……?”

“아, 내가 머리가 아프겠다. 뭐 이런 느낌을 유발하는 증상입니다.”

“아……. 있어요. 일단 약간 속이 안 좋습니다. 눈앞이 번쩍거리기도 하고요.”

환자가 여기까지 말하자, 신경과 의사가 끼어들었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기에 그랬다.

“편두통을 진단받은 적이 있나요?”

“응? 이게 편두통입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증상이 비슷한데요?”

“아시겠지만, 저는 너무 바빠요.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 한번 CT 찍고 별거 없다는 얘기만 듣고는 친구한테 약 타서 먹고 있었습니다.”

“아.”

흔한 경우였다.

특히 나이가 젊은 환자인 경우엔 별 근거도 없이 건강을 과신하곤 했다.

이 환자 같은 경우엔 그냥 젊기만 한 게 아니라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랬을 터였다.

“네, 제 생각도 같습니다. 환자분은 아마도 편두통을 앓고 있었을 겁니다. 타이레놀이 잘 안 듣는 경우도 많은데, 너무 일반적인 약에 잘 들어서 오히려 진단이 안 된 거죠.”

“아…….”

수혁은 뭔가 알 것도 같다는 얼굴의 신경과 의사를 슬쩍 밀어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일반적인 약에 잘 듣는다는 것이 반드시 경한 편두통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빈도수가 더 중요할 수 있죠. 약통을 들고 다니시는 것을 보면 꽤 자주 아팠던 거 같은데, 맞나요?”

“그…… 최근 들어 더 심해지긴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주에 1, 2회라.

약을 먹어야 조절되는 수준의 편두통이라면 정도가 꽤 심한 편이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요?”

“아, 네. 그렇죠. 아무래도…….”

환자의 말에 신경과 의사가 알 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밖에서 분위기를 보다가 화살이 넘어갔음을 확인하고 돌아온 응급실 의사도 그랬다.

[뭐야,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차차 알게 되겠지.’

수혁이야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지금은 중요치 않다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게 어떤 종류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그렇군요. 방금 이분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지금 환자분의 뇌혈관 조영술은 깨끗합니다. 다만 MRI상에 중뇌의 극히 일부분에서 허혈 병변이 있을 뿐이죠. 이것만 놓고 보면 진단이 오리무중이 되기에 십상이지만, 환자가 편두통을 앓고 있고 최근 악화 요인이 있었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ILO 증후군이 여기서 나온 얘기였나. 이걸 어떻게…….”

그제야 신경과 의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곤 수혁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이만한 단서를 가지고 여기까지 연결해 올 수 있단 말인가.

‘아까…… medial longitudinal fasciculus를 괜히 언급한 게 아냐. 영상에서 그 경로를 읽어 낸 거야. 그게…… 신경과도 아닌데 가능한가?’

가공할 만큼 대단한 해부학적 지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신경과에서 잔뼈가 굵어 온 사람들도 저런 걸 확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

두뇌의 정확한 해부학적 위치는 아직 연구에 머물러 있을 뿐, 임상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ILO……. internuclear ophthalmoparesis…… 이것도 쉽사리 떠올릴 수 있는 질환명이 아닌데.’

그가 놀라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수혁은 입을 쉬지 않았다.

“편두통과 연관된 뇌경색에서 환자분과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아……. 그럼 이게 내 편두통 때문입니까?”

“네. 그래서 치료도 편두통에 관한 치료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예후가 나쁜 편은 아닙니다. 아직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 아닌 데다가, 혈류가 아예 차단된 것도 아니라 약을 먹으면 좋아질 거예요.”

“아, 아…….”

뇌경색이라는 병명과 편두통이라는 병명 사이의 간극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치료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편두통이란 병도 만만치 않았으나.

환자에게는 뇌경색에 비하면 천 배, 만 배 나았다.

“처방하겠습니다. salicylates과 propranolol 주시죠. 경과 보다가 퇴원해서 외래 통원 치료하시면 됩니다.”

그에 더해 수혁은 처방까지 내렸다.

아까 신경과 의사가 내린 처방과는 명백히 다른 약이었다.

“그…… 어쩌죠?”

때문에 간호사가 의견을 물어 왔다.

분위기상 저 낯선, 다리가 불편해 보이는 젊은 의사가 모두를 압도하고 있는 거 같긴 했다.

하지만 일단 처방권은 이쪽에 있었다.

신경과 의사는 응급실 의사 또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냥 놀라고만 있을 때가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단 얘기였다.

“아, 그. 그래요. salicylates하고…… propranolol 투약하죠.”

“아, 그게 맞습니까?”

“네. 이게…… 맞아요. 맞을 수밖에 없겠어.”

주로 여자 환자에게서 발생하는 증후군이었다.

지금 이 환자하고는 성별도 나잇대도 조금 어긋나 있다, 이 말이었다.

하지만 이게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자칫 잘못했으면 환자는 쓸데없는 치료를 받다가 정말 사시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 그럼 나을 수 있는 겁니까?”

처방된 약을 받아 든 환자가 물었다.

신경과 의사는 입술만 달싹거릴 뿐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내게 자격이 있나 싶어서일 터였다.

해서 수혁이 자연스레 질문을 받았다.

“네. 나을 수 있습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지금껏 응급실 내에서 나눈 말 중 이 말이 가장 위안이 된 모양이었다.

한쪽 눈이 마비된 상황에서도 당황했을지언정 불필요한 동요를 보이지 않던 환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혁은 그가 눈물과 약을 동시에 삼키는 것을 잠시 바라보았다.

[됐네요.]

‘응, 이건 내가 한 거다?’

[그래요, 뭐. 그래도 제가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추론입니다. 다만…….]

‘다만 뭐.’

[남녀가 바뀌는 상황을 제가 상정하지 못했습니다.]

‘보다 유연해야지, 사람이.’

수혁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바루다를 따라잡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애초에 현존 최고의 인공지능을 목표로 해서 만들어진 녀석은, 수혁 덕에 오감을 익히게 된 이래 그 어떤 인공지능보다 빠른 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때문에 최근 들어 별로 이겨 본 일이 없었는데, 오늘 앞선 것이었다.

수혁이 감개무량하다는 표정을 짓게 된 그리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

“수혁아, 너 정말 대단하다.”

“아뇨, 삼촌. 최근에 읽은 케이스에 있었어요.”

“너 맨날 최근이라고 하는데 대체 하루에 케이스를 몇 개나 보는 거야?”

“글쎄요? 적으면 50개? 많으면 100개 정도요.”

“아.”

신현태는 그런 수혁을 치하하다가 입을 벌렸다.

케이스 리포트가 논문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이라고 해도 매일 이렇게 본다니.

‘현종이 형…… 형도 안 됩니다.’

의학에 돌아도 한두 바퀴 돈 놈이 아니었다.

해서 더욱 칭찬을 해 가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꽤나 흘렀다.

이제 슬슬 돌아갈까 하고 있으려는데, 환자가 둘을 청했다.

아까와는 달리 눈이 조금 돌아와 있었다.

“아, 좀 나아지셨네요?”

“효과가 아주 좋네요.”

“뭐…… 맞는 약을 썼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환자는 고개를 담담히 젓는 수혁을 지켜보다가 명함을 하나 건넸다.

아픈 사람 같지 않게 지극히 당당해 보였다.

“한국 분들이라 제가 무슨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어떤 청이 되었건 반드시 들어드리겠습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