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70화 (370/1,303)

370화 이건 또 누구야 (1)

“아, 네. 감사합니다.”

명함엔 파란 원에 붉은 번개가 친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특이하네.’

[그러게요.]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별생각이 없었다.

다만 옆에 있던 신현태는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오히려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명함의 전체적인 형태, 또는 인상이 눈에 들어와서 그랬다.

‘어서 봤는데, 저거? 내가 어디서 봤지?’

신현태가 수혁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사회적인 경험이 월등하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전문직들이 대개 그러하듯, 의사들 또한 전공 외에는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에 있는 이들은 더했다.

다른 곳에 눈 돌려도 될 만큼 현대 의학이 만만치 않아서였는데, 역설적으로 그래서 융합이 중시되는 최근 흐름에 뒤처지고 있었다.

헬스 케어라는 당연히 의사들이 중심이 돼야 할 거 같은 산업에 있어서 미미한 역할만 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럼 치료 잘 받으세요. 이건 제 연락처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앞으로 한 5, 6일은 더 여기 있을 거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닥터…… 리.”

그사이 수혁은 자신의 명함을 건네곤 처치실을 빠져나왔다.

신현태는 부리나케 그를 뒤쫓아 나왔다.

“수혁아.”

“네, 삼촌.”

“허허.”

이제 기계적으로 삼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저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지금 수혁이 치료한 이는 보통 사람은 아닌 듯했다.

명함만 보고 이러는 건 아니었다.

‘보통 처치실로 직행하지 않아.’

신현태는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응급실 전경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병원이었다.

무엇보다 구조가 그랬다.

새로 짓기 전의 태화 의료원이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때 응급실은…… 그래, 저랬지.’

당시엔 아직 응급의학과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전이었다.

때문에 전체 병원 크기에 비해 응급실도 작았고,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당연히 개인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 따위는 없었다.

누구든, 죽도록 아픈 게 아니라면 우선 의자에 앉아 있거나 바닥에 누워야 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그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처치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의사가 상주했다.

“수혁아, 아까 받은 명함 한번 줘 볼래?”

“아, 네.”

“음.”

“제가 한자는 잘 몰라서……. 읽기가 어렵네요. 영어도 있기는 한데, 다 옮겨 놓진 않은 거 같아요.”

“너네 때는 한자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어?”

“네? 그런 적이 있어요?”

“어…….”

잠깐 동안의 대화 끝에 신현태는 수혁과의 세대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차피 친구 사이로 지낼 건 아니었으니 딱히 섭섭할 것도 없었지만.

마음이 조금 그랬다.

하여간 한자 공부를 해 놓은 보람은 있었다.

“이름은 이홍이. 얘들 발음으로 하면 리홍이네.”

“리홍이. 아는 이름이에요?”

“아니, 전혀. 어, 택시 왔다. 일단 타고 가자.”

“네네.”

보람이라는 게 기껏해야 명함을 읽을 수 있는 정도라는 게 한심하기는 했지만.

신현태는 굴하지 않고 계속 명함을 읽어 나갔다.

“이름은 그렇고. 음, 이게‥… 이게 당자인가.”

“당이요?”

“응. 보자……. 인민행동당. 뭔 당 이름이 이래?”

“사회주의 당일까요?”

“그런가 봐. 마이너한 당의 정치인인가?”

신현태는 인민행동당이라는 이름과 함께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위시해 더 플러튼, 만다린 오리엔탈, 리츠 칼튼 등의 특급 호텔이 즐비한 마리나 만을 바라보았다.

휘황한 야경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화신처럼 보였다.

이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싱가포르에 대한 이미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인민행동당이라는 이름은 그저 낯설기만 했다.

“어렵게 사시네. 근데 의외로…… 인지도는 있어 보이지 않았어요?”

“응? 어, 그랬지. 이만한 병원에서 과장들이 내려올 정도면……. 근데 뭐, 그건 우리나라도 그래. 국회의원이 갑이지.”

“이름 없는 국회의원도요?”

신현태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름 없는 국회의원이라니.

세상에 이보다 모순적인 말이 있을까.

물론 의석수가 300명이 된 지금은 진짜 듣도 보도 못한 의원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회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이 갖는 무게는 절대 얕볼 수 없었다.

20대의 치기 어린 마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랬다.

“당연하지. 그게 어느 당이 됐건 나쁜 짓 시키는 거 아니면 거즘 해야 해. 어쩔 수가 없어. 밉보이면 우리만 손해야.”

“싱가포르도 그럴까요?”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그럼 국회의원이었던 거네요? 엄청 젊던데.”

“그러게. 흠.”

대한민국에도 젊은 의원들이 있기는 있었다.

비례대표란 정책이 나와서 가능해진 일이었다.

싱가포르에도 그 비슷한 정책이 있다면 불가한 일은 아닐 터였다.

“아니면 리홍이란 사람이 워낙에 유명한 사람인가? 음?”

수혁은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택시 기사가 백미러를 통해 자신을 순간적으로 힐끔거렸음을 깨달았다.

‘내 착각 아니지?’

[네, 확실히 리홍이란 이름에 반응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루다의 분석 또한 일치했다.

다행히 택시 기사는 뒷자리의 둘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딱히 더 말을 걸어오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궁금증만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해서 둘은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우선 컴퓨터부터 켰다.

“저기, 수혁아. 난 일단 이거 스캔 떠서 보낼게.”

“아, 네네.”

신현태는 계약서를 들고 호텔 로비로 향했다.

비즈니스호텔이다 보니 스캐너가 구비되어 있다고 들었던 탓이었다.

싱가포르가 워낙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국인 직원도 상주 중이었다.

해서 나가는 신현태나 보내는 수혁이나 별 부담이 없었다.

[검색이나 해 보시죠.]

‘오케이.’

덕분에 수혁은 마음 편히 리홍이란 이름을 검색했다.

웬 배우가 나왔는데,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적어도 아까까지 병원에서 봤던 얼굴은 아니었다.

[검색 능력이 왜 이럽니까? 당 이름을 쳐 봐요.]

‘아, 오케이.’

이번엔 인민행동당이란 이름을 쳐 봤다.

한자라 그런지 온통 한자 결과물만 떴다.

‘너 혹시…….’

[못합니다. 한 달가량 공부해야 할걸요.]

‘아, 그럼 일단 여기로 가 보자.’

[뭘 알면서 누르는 건가?]

수혁은 그중 제일 위에 있는 있는 링크를 눌렀다.

그리곤 한글로 번역시켰는데 의외의 단어가 눈에 보였다.

‘여당이라는데? 유일한 여당.’

[여당이 수혁이 알고 있는 그 여당이 맞습니까?]

‘어.’

[허.]

그 말인즉슨 인민행동당이 어디 군소정당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총리를 배출해 내고 있는 거대 정당이란 뜻이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하니, 아까 병원에서 다른 의사들이 보여 주었던 과한 친절이 이해가 갔다.

‘초선 의원이구나.’

[초선이라는 게 처음 했다, 이거죠? 위세가 대단하군요.]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럽다는 표정 짓지 마. 난 정치는 못 해.’

[사기 잘 치잖아요? 재능 있는 거 아닙니까?]

‘지적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일단 사기랑 정치랑 뭔 상관이냐?’

[이현종이 맨날 그러던데요. 정친인들 죄 사기꾼들이라고.]

‘그건…….’

할 말이 없었다.

보통은 이현종이 잘못 말한 거라고 하면 맞았다.

하지만 그때 이현종에게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고, 신현태나 조태진, 홍창기 등도 동조했더랬다.

맨날 뭐 해 준다고 했다가 말 바꾸고, 뭔 안 한다고 했다가 말 바꾼다는 대화 도중에 나온 말이었다.

[내 말이 틀립니까? 그렇게 따지면 수혁은 의사가 아니라 정치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 존재의의가 세계 최고의 진단, 치료 목적의 인공지능이라며.’

[말리는 건데요? 천부적 재능이 있어도 부디 그쪽으로는 가지 말라고.]

‘생각도 없어.’

[원래 정치할 놈들이 나는 생각 없다고 한다던데.]

‘그럼 생각 있어.’

[역시 그렇군요.]

‘어쩌란 거야, 이 미친놈이.’

둘이 티격태격하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돌아왔다.

뭉치로 되어 있던 계약서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기계 좋더라. 난 스캔을 그렇게 하는 건 또 처음 봤네.”

“어떻게 하는데요?”

“그냥 프린터 하는 것처럼 하니까 돼. 이건 뭐야? 아, 인민행동당? 응? 여당?”

“아, 네. 검색해 봤는데……. 이게 여당이래요. 리홍이, 그 사람은 초선 의원이고.”

“어……. 그래, 내가 이걸 어서 봤나 했더니 입국할 때 봤구나.”

신현태는 그제야 명함 속 마크가 왜 익숙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동시에 무언가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잠깐…… 잠깐만.”

“왜요.”

“그 환자 그러고 보니까 누굴 되게 닮았는데, 내가 미친 생각하고 있는 거 같지만…….”

“누구요.”

“이 사람 봐 봐.”

신현태는 다른 창을 띄워 리콴유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사진에 뜬 얼굴은 과연 아까 그 환자, 그러니까 리홍이와 닮아 있었다.

“어……. 닮았어요.”

“닮았지?”

“이 사람이 누군데요?”

“어. 세계사 안 배우니?”

“필수 아니에요.”

“그, 그렇구나. 이 사람이 누구냐면…….”

신현태는 수혁이 이토록 상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 놀라움이 일었다.

병원 안에서는, 그러니까 질환에 관해 얘기할 떄는 그토록 이지적이더니.

조금만 벗어나니 이렇게 무식할 줄이야.

보통 이렇게 되면 실망이라는 감정이 움터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이런 게 백치미인가.’

도리어 귀여웠다.

조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리콴유……. 이 사람이 싱가포르 초대 수상이야. 30년도 넘게 해 먹었어.”

“네? 30년이요? 독재자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다음 수상이…… 여기 링크가 있네. 리셴룽. 이 사람이 아들인데, 다다음 수상이야. 하나 건너뛰긴 했는데 사실상 세습이야. 완전 심복이 총리 하다가 넘겼거든.”

“허.”

세습이라.

싱가포르라고 하면 뭔가 세련된 이미지였는데 독재 국가였을 줄이야.

고아로 자라 성공하겠다는 일념하에 딱 수능에 나올 문제만 공부해 온 수혁에게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신현태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수혁을 귀엽단 얼굴로 후후 웃으며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근데 이 양반도 이제 나이가 있을 거 아냐. 또 세습하겠지. 리콴유 일가가 여기 퍼스트 패밀리거든.”

“아……. 그럼 이 사람 아들이?”

“어, 첫째가 어디 보자. 링크가 있네. 리이펑. 아. 리이펑이구나. 음……. 이 사람이…… 아, 자폐가 있네. 후계자가 아니래.”

“둘째가 있다는데요? 둘째 이름이…….”

“리홍이.”

리홍이.

환자와 이름이 같았다.

아니, 링크를 눌러 보니 같은 사람이었다.

초선 의원을 거쳐 곧 총리가 될 사람을 고쳐 준 모양이었다.

[미친.]

‘이게 뭔 일이야…….’

[보아하니 왕인 거 같은데. 그럼 뭘 해 줄 수 있을까요?]

‘나야 모르지. 근데…….’

[작은 건 아니겠군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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