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73화 (373/1,303)

373화 리홍이 (2)

“병원 말입니까?”

반면 리홍이는 살짝 경계심이 들었다.

싱가포르에서 병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싱가포르는 자본주의 체제를 택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사회주의이기도 했다.

대다수 국민이 임대 주택에 살도록 만든 주택 정책과 의료 부분이 그랬다.

지금까지는 썩 괜찮았다.

‘하지만…… 돈 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따라잡기는 어렵지.’

인간의 욕망이란 더없이 순수하고 또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는가.

미국의 의료는 이 욕망을 따라가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지만, 동시에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고 또 이룩하는 중이었다.

싱가포르로서는 뒤로 쭉 처질 수밖에 없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외국인 병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일환 중 하나로 외국인 의사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대한민국의 태화 의과 대학 출신 의사들이었다.

‘그 사람이 우수하기는 해. 확실히 평가가 좋아.’

대한민국의 의사들은 약점이 명확한 이들이었다.

바로 언어인데,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한국인 의사를 쓰겠단 의사가 빗발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혹독하면서도 국제 기준을 넘어서는 수준의 대학 병원에서 온 이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랑 얘기 중인 병원들은……. 엠디 앤더슨하고 메이요 클리닉인데…….’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두 병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세계 의료를 선도하는 병원 아닌가.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 의료도 처졌다.

“네, 병원이요.”

수혁 또한 리홍이의 얼굴에 경계심이 선 것을 확인한 참이었다.

[어쩌시려고요? 걍 질러요?]

‘응. 걍 지르자. 해 봄 직한 얘기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직진이었다.

“음……. 태화 의료원 수준이 어떠한지는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저희 싱가포르에서 의료 면허 시험을 면제해 주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죠. 하지만…….”

“아니, 뭐 막 짓게 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저한테 그럴 만한 권한도 없고요.”

“그럼, 어떤?”

“저희 태화 의료원에서는 국제 진료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러시아, 몽고, 중국의 부유층들 중 자국에서 더 나은 치료를 원하는 사람들이 오고 있죠. 성형 얘기는 아닙니다. K-뷰티도 유명하지만, 대학 병원하고는 전혀 결이 다릅니다.”

“음. 그렇겠죠. 그래서요?”

K-뷰티의 위상은 생각보다도 더 대단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에서도 당연히 몰려오지만, 원래 아시아의 성형을 이끌었던, 일종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넘어올 지경이었다.

더 싸면서 더 잘하니 안 올 이유가 없었다.

그 명성은 이미 동남아에서도 익히 알아주게 된 지 오래였다.

소득 수준이 높은 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치료는 얘기가 조금 달랐다.

“사실 제가 볼 때 태화 의료원의 의료 수준은 K-뷰티가 세계에서 갖는 위상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투자도 그렇고, 의료진의 역량도 그렇죠. 그런데…….”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말씀이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더더욱 그렇죠. 그렇게 먼 나라도 아닌데 그래요. 사실 싱가포르 가까이에 의료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나라가 없지 않나요?”

“그렇죠. 싱가포르만 한 나라도 없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빛이 바랜 싱가포르이지만.

그래도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선두를 달렸던 몸 아니던가.

나라 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보건 의료 정책을 소홀히 한 나라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 근방에서만큼은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신 의료 기술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외국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싱가포르의 부유층 또한 심각한 질환에 대한 치료가 필요한 경우 독일이나 미국 또는 일본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심지어 두바이도 후보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자본을 바탕으로 실력 있는 외국인 의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두바이 아니던가.

“그래서 두바이나 미국 쪽으로 많이 간다던데……. 맞나요?”

그 사실은 수혁 또한 알아본 바 있었다.

특별한 기밀도 아니었기에, 알아내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몇 분 뚝딱 검색했더니 나온 사실이었다.

“음, 맞습니다.”

“두바이에 저희 태화에서 지은 병원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나요?”

그리고 두바이를 먼저 언급한 것은 명백히 의도적이었다.

거기까지는 몰랐는지, 리홍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는 단순히……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기서 펠로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 다녀와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아……. 펠로우라면……?”

“의료는 도제식 교육이죠. 그걸 해 주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음.”

수혁이 의도한 대로 리홍이의 얼굴이 조금 바뀌었다.

[미국놈들이 뭐 여기라고 다르게 할까요?]

‘그렇지. 똑같겠지.’

엠디 앤더슨과 메이요 모두 교육에 대해서는 칼같이 거절했기에 그랬다.

의료 서비스는 얼마든지 제공하겠으나, 교육은 안 된다, 그것은 미국 전체의 자산이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돈만 벌고 빠지겠다는 얘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아, 물론 이건 병원이 지어질 때의 얘기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두바이의 전반적인 의료 수준 향상에 태화가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그곳에 나가 있는 태화의 스탭들은 장차 본원에서 중추가 될 인원들입니다.”

“아…….”

“실력이 아주 좋은 사람들이라는 거죠. 제가 감히 말씀드리자면 일본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연구 분야에서는 아직 대한민국이 조금 밀릴지 몰라도 임상에서는 더 나을 겁니다.”

“홍보를 도와달라는 겁니까?”

“아뇨. 저희 태화에서 요청이 있을 시 그저 긍정적으로 보아 달라는 말입니다.”

“음.”

지금 당장 뭘 할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실제 태화가 여기에 투자를 하려고 할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수혁이 퍽 우수한 인재 취급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경영과 딱히 연관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김다현 사장이 선물 보낸다고 한 걸로 볼 때……. 무조건 뭔가 해 보려고 하겠지?’

[네, 그때 그 선물이 아니라, 수혁이 한 부탁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면…….]

‘나는 더 위로 갈 수 있겠지. 게다가 싱가포르 쪽 환자들도 볼 수 있다면 더 좋아. 정치권 환자들을 볼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렇죠. 제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듭니다.]

‘세계 최고의 의사, 맞나?’

[네.]

실력만 최고가 되면 뭐 하겠는가.

누가 알아줘야 비로소 최고가 되는 법이었다.

왓슨만 해도 여전히 바루다보다 평가가 훨씬 좋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간단했다.

바루다는 그게 못내 아쉽고 또 분했기에 수혁이 유명세를 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잡기를 희망했다.

“꼭 들어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실 환자 하나 진단한 대가로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게 된 것도 과분하거든요.”

수혁은 그런 바루다의 욕망에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었다.

어느새 세계 최고의 의사가 바루다의 꿈인지 아니면 자신의 꿈인지 헷갈리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해서 최선을 다해 사기를 치고 있었다.

“아뇨, 제가 한 말이지 않습니까. 무슨 부탁이건 저는 들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실현이 가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긴 합니다만…….”

수혁의 사기는 알아주는 능력 아닌가.

바루다의 도움까지 있다 보니 정말 진심으로 저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훌륭한 의사로구나. 참 의사야. 지식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어쩜 이리 훌륭할까…….’

해서 리홍이는 할 수 있다면 이 정도 부탁은 반드시 들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이건 부탁이라고 치고 싶지도 않았다.

‘어제…… 그거 치료 늦었으면 지금처럼 회복이 안 되었을 거라고 했지.’

정치인에게 건강은 곧 생명이었다.

어떤 사람도 목숨이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표를 던져 주지 않았다.

내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사람이 비실거리는 것을 대체 누가 원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혁은 리홍이의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은원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 집권할 수 있었던 비결이야.’

리홍이의 됨됨이도 그랬지만.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가훈 또한 그랬다.

공정할 것, 하지만 내게 충성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할 것.

그리고 대적했던 자들에게는 혹독할 것.

이것이 다스리는 자들의 덕목이라 배웠다.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또 상의할 일이 있으면 연락하시죠.”

“아뇨, 귀찮게 해 드릴 수 있나요. 오히려…….”

“오히려요?”

“주변에 오래 앓았는데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하겠는 사람이 있다면 제게 연락을 주시죠. 100%라고는 못해도 세상 누구보다 더 잘 진단해 낼 자신은 있습니다.”

“아……. 네, 명심하죠.”

리홍이는 수혁의 자신감을 젊은 사람의 치기라고 여겼다.

아무리 어제 보여 준 활약이 대단했다고 해도, 세계 최고라 하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은가.

보건 의료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나, 워낙 중요한 정책이기에 관심은 있었다.

그가 알기로 의사들에게는 비단 지식뿐 아니라 경험도 중요했다.

어떤 의사는 심지어 경험 없이 쌓은 지식은 허망할 뿐이란 말까지 했더랬다.

해서 수혁의 마지막 말만큼은 그리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그럼 학회 때문에 바쁘실 텐데……. 일어나실까요?”

정작 바쁜 것은 리홍이였다.

어제 갑자기 응급실로 가느라 미뤄진 회의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참여가 아니라 갑자기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병원이 아닌 다른 이유로 둘러대면서 동시에 사과까지 해야만 했다.

쉽지 않은 일정이었기에 준비가 좀 필요했다.

“아, 네네. 그럼 가 보겠습니다.”

“그 전에 이거 가져가시죠. 별건 아닌데, 선물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 준비해 봤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도 선물은 사 놨다.

수혁이 좋아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중국 문화권에서만큼은 퍽 의미 있는 선물이었다.

[용?]

‘금?’

[비싸긴 할 텐데……. 이건 팔아 버릴 수도 없고…….]

‘당직…… 방에 둬야지. 중국 사람들 용 좋아하잖아. 뜻이 좋을 거야, 아마. 오, 이건 뭐냐?’

[붉은 봉투…… 오, 돈이다.]

‘돈을 주네?’

물론 리홍이가 생각한 만큼의 의미가 온전히 다가가지는 못했다.

별 상관은 없을 터였다.

돈과 금.

언제, 누구에게 받더라도 기분 나쁠 리 없는 선물이니까.

“그럼 가실까요?”

그렇게 수혁을 보낸 리홍이는 비서의 안내에 따라 차를 타고 회의 장소로 향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그러니까 그의 취향에 맞는 가게와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만다린 오리엔탈.

동양적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주는 호텔 식당에서 어제의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르던 이들인 동시에 이제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이들이기도 했다.

이미 여러 차례 얼굴을 본 바 있으나, 초선 의원으로서는 어제가 처음이었으니 첫인상은 대차게 말아먹은 셈.

‘어떻게 만회한다…….’

리홍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원로라 할 수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였다.

“쿨럭.”

그중 하나가 밭은기침을 해 댔다.

나이가 들었으니, 별 이유 없어도 그럴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이건데, 애초에 리홍이는 머릿속이 복잡한 마당인지라 더더욱 신경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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