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74화 (374/1,303)

374화 호흡곤란 (1)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회의는 일단 사죄로 시작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제아무리 전 총리이자 현직 실세라 할 수 있는 리셴룽의 아들이라지만, 식사 중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음.”

다만 이미 몇몇 원로 의원들에게만은 자초지종을 설명한 참이었다.

증상이 심각한 거 같아서 응급실로 갔었는데, 다행히 별거 아니었고 다 호전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팠다는 사실이 널리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이런 식의 이야기들.

원로들은 리콴유 일가에 일생을 바쳐 충성을 해 온 참이었고, 그 대가로 이러저러한 이권을 받아 챙긴 사람들이었다.

“설마 리홍이 의원이 별일도 없는데 그랬을까.”

한마디로 말해 의리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중 하나가, 리콴유에서 리셴룽으로 총리 세습이 이어지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이가 입을 열었다.

노화와 담배 때문이지 거친 음성이었지만 힘이 느껴졌다.

“집안일이었다면 이해할 수 있죠.”

그 옆에 있던 이 또한 이를 거들었다.

“그렇다면 자세한 사정은 말할 수 없겠군.”

다른 이도 마찬가지였다.

“음.”

때문에 조금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이라고 하지 않은가.

보통 집안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퍼스트 패밀리였다.

어쩌면 국가지대사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을 수 있었다.

이곳 싱가포르에서 저 집안이 가지는 힘과 무게가 그러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이제 그만하시게. 집안일인데, 그럴 수 있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럴 거네. 그렇지?”

거기에 더해 지금 말을 잇는 노인의 말 또한 무게가 있었다.

퍼스트 패밀리가 아님에도 한때 이인자 자리를 지켰고, 또 지금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랬다.

어찌 보면 저 사람이야말로 이 자리에 모여든 중진 의원들의 목표였다.

“네, 그렇습니다. 시작하시죠.”

해서 회의는 별 탈 없이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여당에서도……. 불만이 있기는 할 거라고 하시더니.’

하지만 눈빛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몇몇 인물들이 쏘아 대는 눈에서 불만을 느낄 수 있었다.

십분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싱가포르가 그래도 동네 구멍가게는 아니지 않은가.

비록 GDP만 따지면 기껏해야 세계 34위에 불과한 나라이지만, 인구가 600만도 안 되는 데다가 면적은 여느 도시만 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여전히 도시 경쟁력에 있어서는 서울보다도 위에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3대 세습은……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 3대 세습이라니.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쉬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한 일이었다.

아니, 충분히 아는 사람들 중에서도 슬금슬금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리콴유-리셴룽이야 뭐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 아들에게까지 넘어가는 건 좀 너무하지 않냐, 뭐 이런 얘기가 있었다.

여당이라고 해서 무풍지대는 아니었다.

‘할리마 해리스…….’

그중에서도 특히 저 말레이계 거물이 그랬다.

싱가포르 최초의 여성 국회의장으로 낙점되어 있지 않은가.

국민의 지지가 그랬고, 또 리셴룽 또한 할리마를 낙점해 두고 있었다.

능력이 있다 이건데, 문제는 저 의원이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점이었다.

큰일이었다.

“쿨럭.”

그 순간 할리마 의원이 기침을 해 댔다.

벌써 꽤 된 일이었기에 관심이 쏠리진 않았다.

전해 듣기론 감염병도 아니라지 않던가.

이미 병원에 다녀온 참이었다.

‘유독 힘들어 보이긴 하는데…….’

아까와는 달리 조금은 여유를 되찾은 리홍이였다.

사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나올까 걱정이 되었는데, 막상 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지원 사격에 나서준 덕이었다.

해서 리홍이는 보다 자세히 할리마 의원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제 청년을 지나 명백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녀는 훅훅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숨이 찬가?’

기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증상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라고 들었는데.

드문 병이지만 약이 아주 잘 듣는 편이므로 그리 걱정할 거 없다는 말을, 리홍이는 리셴룽까지 배석한 자리에서 전해 들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정치인에게 건강 이슈는 너무 예민한 문제였다.

국민에게도 그랬지만, 중용하려는 입장에서도 그랬다.

‘거짓말을 했을 거 같지는 않은데.’

리홍이에게야 얼마든지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 터였다.

퍼스트 패밀리라는 배경을 제외한 리홍이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리셴룽은 달랐다.

총리직이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직이지만,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실질적인 싱가포르의 지배자에게, 문명화된 그 어떤 나라보다 엄한 형법 체계를 지니고 있는 나라에서 그 누가 거짓을 고할 수 있을까.

“자,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리홍이가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에도 회의는 진행 중이었다.

할리마마저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워낙에 중요한 안건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을 터였다.

안 그래도 국회의장을 앞둔 몸 아닌가.

어찌 같은 당 의원들이 즐비한 곳에서 말을 아낄 수 있을까.

“창이 공항 경쟁력이……. 조금씩 하락하고 있습니다. 특히 각 취항 도시 및 항공…….”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였다.

자체적인 생산 여력은 당연히 극히 제한적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식량 수급은 말레이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다.

가장 필수적인 것조차 외부에 맡기고 있다는 것인데, 그 와중에도 절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있다면 인재였다.

국내 인재 유출도 막아야 하겠지만, 역시나 시급한 것은 외부 인재를 들여오는 것.

그러자면 다국적 기업들을 끌어들여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창이 공항이 잘나가야만 했다.

“두바이가 문제인가?”

“네, 쿨럭. 두바이 쪽이 항공 허브를 천명하면서……. 그쪽으로 물류가 몰립니다. 동북아 쪽도 문제죠.”

“상해, 인천?”

“네, 특히 인천 공항에 경유 인력이 몰립니다. 쿨럭.”

“새로 지었다더니…….”

문제는 경쟁자들이 자꾸만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두바이야 뭐 비슷한 입장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인천 공항은 대체 왜 저 난리인지 쉬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딱히 외국계 기업들에 세제 혜택을 주고 있지도 않으면서 공항 경쟁력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쿨럭.”

“음, 괜찮으십니까?”

한창 한국 욕을 좀 해 대려는데, 할리마 의원의 기침이 더더욱 심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숨이 찬데 말을 빨리하려다 보니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대부분 의원들은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리홍이 또한 엉거주춤한 자세만 취할 뿐, 달려 나가진 않았다.

할리마의 됨됨이를 잘 알아서였다.

강한 사람이었다.

“쿨럭…….”

하지만 한 번 더 기침을 하고, 누가 봐도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이자 얘기가 달라졌다.

“어어, 할리마 의원!”

“괜찮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엉덩이를 뗄락 말락 하고 있던 리홍이를 필두로 해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후우……. 후우우…….”

그런다고 딱히 뾰족한 수가 나는 건 아니었다.

할리마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슴이 심하게 오르내렸다.

의료인이 있었다면 여상한 수준을 넘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을 터였다.

부속근까지 사용하는 호흡은 오래가지 못하니까.

“이, 일단 병원으로 가지!”

물론 그런 지식이 없다 해도 병원을 떠올리지 못하진 않았다.

할리마는 정말이지 중요한 사람이었다.

마침 밖에 차량도 대기 중이었기에, 병원으로의 이송은 순식간이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아, 그래. 자네가 가게.”

리홍이가 그녀와 함께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어제 큰 곤욕을 치르지 않았던가.

정치인이 아프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챙겨야……. 나중에 딴말 안 나오겠지?’

또한 정치적 계산도 있었다.

단기적으로 보자면 빚을 지우는 식의 인간관계는 늘 손해로 다가오기 마련이지만.

할리마 같은 거물에게 빚을 지우는 것은 길게 보면 이득이었다.

‘나도 참…….’

리홍이는 어느새 아버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털었다.

“할리마 의원님, 괜찮으세요?”

그리곤 진심을 담아 걱정을 전했다.

“후우…….”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병원은 얼마나 걸리지?”

해서 리홍이는 기사에게 소리쳤다.

기사는 황급히 차를 몰며 답했다.

“곧, 곧 갑니다. 많이 가 봐서 길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기사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병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의 지옥 같은 교통 체증을 생각해 보면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다.

끼이익.

차량은 바로 응급실 앞에 멈추어 섰다.

일반 차량이 이 앞에 서는 건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이었기에 곧 청원 경찰이 다가왔다.

“여기 세우면…….”

“환자입니다!”

“어……?”

하지만 정치인에게 힘이 있는 것 또한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특히나 거의 독재에 가까운 싱가포르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빨리! 빨리 안으로!”

게다가 척 보니 확실히 아파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 양반도 얼굴이 낯이 익었다.

드르륵.

덕분에 곧 이송 요원들이 침대를 끌고 왔고, 할리마 의원을 실어다 안으로 날랐다.

미리 기사가 연락했는지, 아니면 비서가 연락했는지는 몰라도 담당 의사가 내려와 있었다.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었다.

“할리마 의원님, 괜찮으세요?”

“후욱.”

여전히 유의미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의사는 여러 신체 징후를 살필 수 있도록 훈련을 받지 않던가.

아직 청색증까지 오진 않았지만, 가슴이 오르내리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즉시 커튼을 치고, 웃옷을 젖혔다.

그러자 갈비뼈 사이의 근육들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정도라고?’

호흡기 의사는 더더욱 당황했지만, 얼굴만은 무표정을 가장했다.

여기서 의사가 놀라 버리면 환자는 자칫 과호흡으로 넘어가 더 잘못될 수도 있었다.

“일단 산소 달고, 풀로 틀어. 동맥혈 채혈해.”

“네!”

해서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하지만 최대한의 처치를 지시했다.

여기서 잘 듣지 않으면 다음은 삽관이었다.

‘할리마 의원한테 삽관…… 그건…….’

이렇게 젊은 의원에게 삽관은 곧 정치 생명의 끝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그것만은 제발 피하고 싶었다.

“어, 어찌 되는 겁니까?”

병원은 의료진들에게나 익숙하지, 다른 이에게는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대상을 가리지 않았는데, 리홍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처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일단은 기다리세요.”

“위험한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원래 알고 있는 질환이에요.”

다행히 의사는 설명에 인색한 편은 아니었다.

자기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괜찮단 말을 남발하기도 했다.

그리곤 그사이 산소를 단 채 한결 편안한 모습이 된 할리마에게 다가갔다.

“일단 스테로이드 쓰겠습니다. 말씀드렸지만…….”

“그 약…… 내가 계속 먹던 거 아닌가? 근데 호전이…….”

“그럴 수 있어요.”

“원래는 금방 좋아진다고 했잖아요?”

“그것도 그럴 수 있습니다.”

다음엔 그럴 수 있단 말을 남발했다.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리홍이는 아까 만난 수혁을 떠올렸다.

‘이거 정말 효과 없으면……. 어쩌면 그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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